제1장 개혁신학의 신관

    1. 율법과 복음신앙

    모든 종교는 신을 믿고 있으며 자기들의 신이 참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종교는 진리를 말하고 윤리와 도덕의 기초가 되는 계명을 갖는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 구원의 진리라고 선포한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독교는 이미 참 하나님을 믿고 또 그 하나님의 계명을 통하여 신앙이 고도를 성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신앙에 도달하지 못하므로 복음의 진리를 새롭게 발견하는데서 시작하는 종교이다.[(1)11 사도 루터도 복음신앙(아신칭의) 발견하기 전에는 율법신앙이었다.]

    유대교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의 공통점은 율법적이라는데 한결같다. 이와같은 현상은 인간은 생태적으로 율법적 경향을 생득관념으로 출생하기 때문이다.[(2) 이원근, 율법과 복음 국제신보사출판부 1958.6 p.5]

    그래서 사람은 어떤 종교를 가리든지 율법적인 관념에서 해석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한 예로 요한복음의 니고데모는 경건하고 철저한 신앙을 가졌음에도 그는 거듭나지 못했으며 율법신앙에서 고도의 훈련과 수련을 쌓은 선생이었으나 그의 성향은 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런고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복음으로 말미암은 중생의 필요성은 역설하신것이다. 이와같이 기독교는 하나님 중심의 철저하고 절대적인 신앙의 기초위에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다시 출발하는 것이 참 기독교이다. 마틴루터가 카토릭교회에 있었을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신자가 아니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온전케 믿으려고 애쓴 수도사였고 교회 지도자였으며 또 신학자요 교수요 신학박사였다. 그러나 그가 복음과 십자가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전환되기 전에는 기독교와 기독교의 진리를 율법의 안경을 쓰고 보고 있었으므로[(3) 고후 3;14-15 사도바울은 이것을 수건이라고 하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요 율법아래 있는 율법신자였다. 루터는 철저하게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다시 복음신앙으로의 전환이 있으므로 철저한 개혁신학 기수가 된 것이다.

    이와같은 원죄가 구약신앙에서 신악신앙으로 개종한 바울을 비롯한 11사도와 당시의 유대의 기독인에게 적용되었고 또 루터를 포함한 모든 개혁자들과 거기에 호응한 신자들에게 적용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을 주의깊게 관찰하면 구원사적 입장에서 신약을 고찰할때 유대인을 모델로 하여 그들이 처음에 하나님께 대한 회개로 시작한 구약신앙과 율법교육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복음신앙으로 결실된 것이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비롯한 사도들의 초기서신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기독교로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주로 외쳤으나 사도 후기 서신들은 신자의 완전을 요구하는 교훈들로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4) 히6:1-2, 골1:28, 요일3:95:18]

    이와같은 사실은 율법신앙으로 성숙한자에게는 이신득구에 대한 진리에 의해서 구원이 허락 되었음을 인식하게 하는 좋은 교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변화되기 전에는 육에 속한 인간들이었다. 이와같은 신약신학의 근본주제가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서 본장에서는 특히 뚜렷한 구원의 체험을 통하여 신앙의 전환을 자신속에서 이루고 그 힘으로 종교개혁을 힘차게 전개한 루터가 수집한 개혁신학의 내용이 무엇인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마틴루터가 어떻게하여 또 언제 종교 개혁자가 되엇는가 하는 질문은 루터신학의 생성발전을 배우는 종교개혁 자체의 기원을 아는데도 중요한 문제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루터신앙의 전환이 결정적인 동기가 된 것은 하나님의 義를 발견한데서 시작된 것이며 루터신학은 바로 이 문제를 취급하는데서 시작된다. 루터의 이 발견은 그와 식사를 함께한 사람들에게 말한 "탁상담화"에 의하여 일반에게 탑의 체험이라고 알려져 있다. 루터는 그러한 체험이 당시의 그의 연구실이었던 힛덴버그대학(현재는 닛덴버그 마틴루터 대학)의 탑안에서 오랜 세월에 걸친 신학연구 성경과의 계속적인 싸움 그리고 스스로 구원을 찾는 간절한 탐구의 결과로 되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이다.[(6)김남식 종교개혁 신학" 한국성서 협회 (1976.3.p15).]

    2. 하나님의 義의 발견

    루터가 "하나님의 의에 관한 종교개혁적인 발견이 된 것은 그가 1513-1515년에 걸쳐서 제1회 시편강의를 했을 때 주의 의로 나를 구하소서"(시 31:1-11) 라는 성구에 의해서 기인 되어진 것이다. 루터는 시편의 이 말을 읽고서 매우 놀라 이 말에 적의를 느꼈다고 말한바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엄한 공의와 심판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 하나님의 의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의에 의해서 우리들을 의롭다고 하는 의이다. [(7)ibid pp 15-16]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탁상회담에서 회상하고 있다 (7)

    루터는 제1회 시편 강의 때에 문제의 이 대목에 관해서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보여준 하나님의 심판이며 또 그것이 그리스도의 의이며 따라서 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우리의 의가 되는 것을 이해한 것이며 그가 이와같은 해석에 이르게 된 것은 롬 1:17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는 구절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루터는 말하였다. 이와같은 사실은 루터가 죽기 전해인 1545년에 출간된 그의 전집 서문에 기록되어 있다. 거기서 그는 개혁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의의 새로운 이해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또 그것이 롬 1:17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8)ibid p.16]

    이와같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이해는 사도바울의 신학을 그가 이해한 것을 의미한다. 사도바울의 이신칭의 교리는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신학이요 또한 부활의 신학이었다. 사도바울의 십자가와 부활의 교리는 십자가로 말미암은 속죄와 아울러 율법의 성취(롬 10:45:18-19) 는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대신(사도바울의 견해는 대신이라는 견해보다 전인류를 포함한 대표이다) 하여 죄를 완전히 처리함과 동시에 완전한 순종으로 완전한 의를 성취하였다. 이와같은 그리스도의 승리는 우리를 대표한 행위이므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성취된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다(롬 4:253:21-24)

    루터는 바울의 십자가 신학을 여기까지 밖에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십자가 신학은 이신칭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법적인 칭의요 그 칭의를 받은 자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함께 못박히는 옛사람의 죽음과 그의 부활에 연합된 완전한 새 인격의 중생의 신학인데 루터는 여기까지는 이해하지 못한듯하다. 그러므로 그는 여전히 그리스도인은 의인이면서도 죄인이라는 말을 자주 쓴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여간 루터는 사도바울의 이신칭의의 교리를 발견하느데 그가 어떻게 그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였는가 하는점을 우리는 착안하여야 할 것이다. 사실 로마교회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이신칭의의 교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성 어거스틴 이후로 죄와 은혜는 늘 살아있는 문제가 되어 있었으며 어거스틴이 수립한 은혜관이 자취를 감춘 것이 아니며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상당한 공헌을 이루었으며 체계정연한 신학을 확립한 것이다. [(9) 왓슨... "프로테스탄트 신앙원리" 이장식역 컨콜디아사 1977.6.p33.]

    루터가 신학자로서 이런 교리를 모를리가 없다. 그러나 그가 참 진리에 조명되기 전에는 이 모든 진리를 그대로 지나쳐 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자기 인격의 구원을 위하여 실제적으로 자기에게 적용되는 완전한 의를 찾게 되므로서 비로서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는데 이른 것이다. 이와같이 그가 참된 의를 발견하기 까지에는 그가 어떻게 하여 이 진리에 이르렀는가 하는 사실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이제 그가 회상한 글을 통해서 검토해 보면 "..... 왜냐하면 나는 이 하나님의 의라는 이 말을 미워하고 있었다. 그 까닭은 나는 그 말을 모든 교회 교사들의 반응에 따라서 철학적으로 형식적 혹은 능동적으로 이해하도록 배워왔기 때문이다. 이 능동적 의에 의하면 하나님은 의이고 죄인은 불의한자로 벌하신다는 것이다.[(10) opcit .p 17] 루터가 한 간단한 이 말 속에는 그가 하나님의 의의 표준에 대한 심각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의를 至善至高의 의로서 그 표준대로 인간에게 요구하시고 그 의에 미달하는 모든 ㅇ니간은 일률적으로 죄인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옳바르게 파악하는데 이른것을 나타낸 말이다. 모든 인간은 이와같은 하나님의 공의를 먼저 발견할 때에 자기 자신을 옳바르게 볼 수 있는데 이르는 것이다. 이와같은 사실은 사도바울의 교훈에도 나타나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의 표준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잘 나타낸 말씀이다. 그것은 완전히 무죄하며 거룩하게 되는 "하나님의 영광의 표준이다. 그것은 타락전 하나님의 영광스런 형상대로 지음 받았던 죄없는 인간의 본래의 형상이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을 지으셨으므로 그러한 사람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성경이 모든 인간을 일률적으로 범죄자로 몰고 의인은 없다고 판단하시는 기준이 바로 이와같은 하나님의 심판기준에 기인하는 것이다. 루터가 바로 이와같은 하나님의 공의의 기준을 파악한데 이르렀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계속하여 이르기를 "그러나 나는 수도사로서 비난받지 않을 생활을 하고 있을 경우에도 하나님 앞에는 양심의 맹렬한 고민을 갖는 죄인이라 느끼고 내 죄를 보상하는 행위에 의해서도 '이것은 회개, 금식,수도, 고행으로 보상해 보려고 노력한 것을 말함) 하나님은 좋게 보실 것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죄인을 벌하시는 의로운(공의로운) 하나님을사랑할 수가 없고 오히려 미워했다. "두려워 경원한 것을 뜻함" [(11) ibid] 고하였다.

    이 말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루터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그가 구원받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고 애섰는가 하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자신의선행이나 수도나 고행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파악한 것이요 그럼에도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온전한 의에 이르려고 부단히 애쓴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구원은 모든 사람이 온전한데 이르려는 간절한 구함이 있어야 그 영광에 이르는 것이다.

    이 노력은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그러한 마음이 루터에게 일어나게 하신 것이거니와 성경에는 이같이 "참고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신다"(롬 2:7) 고 하신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는 루터가 "하나님의 의"를 발견한 진술을 들어 보기로한다. "하나님의 자비를 입고 나는 밤낮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중 드디어 '하나님의 의는 복음에 계시되고 있다) 라고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한 문장과의 관련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하나님의 의란 의인이 하나님의 선물 즉 신앙에 의해서 사는 종류의 의란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복음의 의로서 의롭기 하는 수동적인 의를 말하고 이것은 마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기록된 그대로인 것이다. 이제야 나는 마치 새로 태어난것 처럼 느끼고 또 열린문을 지나서 낙원에 들어간 것으로 느꼈다. 나는 기억하고 있는 한, 성경 말씀을 찾고 다른 말씀 안에서도 그것과 비슷한 것을 찾아 내었다. 즉,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우리들 안에서 하시는 것이고 하님의 강력한 힘 그것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강력하게 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지혜란 그것으로 하나님이 우리들을 슬기롭게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 처럼 유사어를 찾아낸 것이다)... "[(12) ibid.pp.17-18]

    루터가 구원을 받기 까지에는 먼저 그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그의 심령이 개발되면서 의로 성숙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고한 선과 의의 표준을 아는데 까지 이르렀으며 이로 말미암아 그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고 깨끗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의로운 표준대로 흠과 티가 없는 온전한 의인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한 자취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표준에 이를 수 없었으며 하나님 앞에 떨며 좌절하는 상태에 까지 이른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다시 루터의 회고록을 보면 "내가 수도사 였을때 나는 갈수록 아주 버림받은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그것은 육의 정욕을 생각할 때 마다 즉 내가 어떤 악한 뜻과 육적인 욕심과 분노와 미움과 형제에 대한 원망을 품을때 마다 경험한 것이었다.나는 내 양심을 무마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모양으로 노력 하였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 까닭은 자기에와 육의 정욕이 언제나 되돌아 와서 나를 안절부절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13) 이장식 op.cit p 39]

    이와같은 루터의 경험은 롬 7:14-24 까지에서 말한 사도 바울의 경험과도 일치한다. 루터는 이와같이 자기의 노력으로는 이제 아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음을 알고서 다른 구원의 방법이 성경에 있는가를 모색하기 위하여 이제는 성경속에서 어떤 희망이 있을까 하여 오랜시간을 성경연구에 몰두하다가 그는 복음에서 하나님의 의를 발견한 것이다.

    3. 복음 신앙에의 전환

    다음으로 우리가 관찰하고 숙고해야 할 문제는 루터가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는데 이르는 결정적인 동기가 무엇이었느냐 하는 점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도시대나 종교개혁 시대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느시대고 복음이 전파되지 않을때는 없었다.그러나 그 보음을 들으면서도 그 복음의 영광의 빛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의 율법신앙의 관념에 잡혀 있어서 율법의 눈으로 복음을 볼때는 그 복음의 광채가 그들의 심령에까지 비취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사실을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 그러나 저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후 3:14-16).

    여기서 말하는 수건은 모세의 얼굴을 가리었던 수건을 들어서 오늘날 모든 인간의 심령을 덮고 있는 율법관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관념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하였고 오늘날도 대부분의 신자들이 복음의 영광을 볼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루터는 어떻게 그것(율법 관념과 사상)을 벗고 복음의 광채를 보게 되었는가를 관찰하려는 것이다.

    루터는 그가 수도사로서 자기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그 당시 교회가 가르치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였고 또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최대한 다 경주하였다.루터는 교회가 주는 실패없는 만능약 통회의 성례전으로도 도움을 받지 못하였다.만일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을 가지며 악을 미워하며 완전한 광채를 하고 자기죄를 고백하고 신부로 부터 사죄의 선언을 받으면 사죄가 되고 하나님과 일치함을 확신하게 된다고 가르침을 받았든 것이다. 실은 이러한 완전한 회개를 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공포심이 유도하는 불완전한 회개를 성례전의 은혜가 보충하여 줄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루터를 만족하게 하지 못하였다. 그는 아무리 자주 고백을 했어도 그 맹렬한 고백이 사랑의 회개로 변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14)ibid.pp 40-41]

    루터는 성자들의 저서와 전기도 많이 읽었다.그는 어거스틴의저서와 또 신비주의자들의 책도 읽엇다. 그래서 그는 신비주의들이 가르친 방법도 알려고 노력했다. 그는 하나님과 자기 영혼이 연합하는 경험을 갖기 위하여 아레오파키테와 보나벤튜라의 취한 방향을 따르고자 했다. 또 그는 베르나드 의 길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명상하는 가운데 자신을 잃어버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신비주의자들이 말한 경험은 루터에게 있어서는 부인되었다.[ (15)ibid.p 43]

    그는 당시 교회에서 가르치는 모든 노력과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하여 완전한 구원에 이르려고 최선의 노력을 모두 동원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력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그는 좌절당했으며 때로는 실의에 빠졌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힘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 그는 자기의 노력은 포기함에 이르렀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가 율법신앙에서 복음신앙에로 전환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되는것이다. 그는 이제 다른 방도의 구원의 길을 찾아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가 성경을 연구하게 된 것은 다른 방법이 있는가를 모색하는 행동이요 그가 먼저의 방법을 포기한 뒤에야 구원이 발견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심령을 덮고 잇는수건이 벚겨졌기 때문이다. 그는 신앙 의인의 교리를 발견하고는 너무나 기쁨에 가득차 큰 환희와 은혜로 충만하였따. 그는 이 구원의 진리를 믿음으로 얻는 것을 발견하고는 "오직 믿음으로 만" "오직 그리스도로만"이라는 말을 자주 그리고 힘있게 사용하엿는데 그가 이 진리를 발견하기 전에는 자기 노력에 의지하여 율법신앙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으나 그가 그리스도를 발견한 이후로는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그의 공로에만 믿음으로 의존하는 신앙의 전환을 가지게 된 것을 뜻하는 것이다.이와같은 신앙의 전환은 모든 복음적인 중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12사도를 위시하여 특히 사도 바울은 율법신앙에서 복음신앙에의결정적인 전환을 뚜렷하게 경험하므로서 그의 서신에 율법과 복음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가르친 내용들이 많은 것이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요 부흥사인 스펄젼의 경험에서도 그가 신앙의 전환을 분명히 체험한 사실을 볼 수 잇다. 스펄젼은 그의 체험기" 나는 어떻게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였는가"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나는 기독교국에 태어나고 나의 양친도 기독교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가지 기독교복음의 자유성과 단순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는 내가 살고있던 거리의 예배당을 두루 헤매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은 수없이 들었고 익었으나 나는 여전히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한 작은 감리교회에서 사 45:22의 "땅끝의 모든 백성들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서... 나는 주님을 바라볼때 구원을 받았던 것이빈다..."(16) 하였다.[(16) R.A 토레이 '성령의 세례" 박지용역 성령출판사 1967.1. pp .123-129 ].

    이와같은 복음신앙에의 전환을 자기와 자기 공포에 의한 오직 복음만을 바라보는 신앙으로의 방향전환을 뜻하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와 자기 행동에 의하여 구원이 결정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갖지 못하는 것이다.

    루터가 복음을 일찌기 이해하지 못하고 그가 모든 최선을 다하다가 지치고 좌절된 후에야 깨닫게 된 것도 그가 율법 관념과 율법 신아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았음으로 얻어진 것이다. "오직 믿음만으로!""오직 그리스도 만으로! "라고 하는 표어들은 루터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자기 노력으로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그저 바라봄으로 구원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었으며 그때 그는 그리스도와의 신비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불뱀에서 물렸을때 구리뱀을 쳐다봄으로 치유를 얻었던 사실을 가리켜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모형이라고 하셨다 (요 3:14-15). 이와같은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얻게되는 것이다.

    또한 사도바울은 이같이 율법의 수건을 벗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볼때 변화와 구원을 얻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제2장 개혁신학의 성서관

    1. 성서의 권위

    루터신학의 3대본의는 "이신칭의""만인 사제론""성경의 권위"[(1)송락원, "교회사"기독교문화사,4292,3,p., 323-324 ]이고 칼빈신학의 주오 원리는 "하나님의 주권""성서의 권위""구원의 은혜성"이다.두사람의 신학이 거의 같으면서도 루터는 개인 구원의 신앙으로 출발한 신학체계 이고 칼빈의 신학은 개인 구원에 기초한 점이 두사람의 신학적 차이가 되었다.그럼데도 불구하고 양자공히 성경의 권위를 종교개혁 신학의 주요원리로 삼고 있는데는 일치하고 있다.

    루터가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계몽된 것은 "토론"후 멜랑톤의 계발에 의하여 발단된 것이다. 루터는 로마교회의 권위를 반대하고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였다. 함은 로마교회라고 성서의 권위르리 부인한 것이 아니요 로마교회에서는 성경해석의 권위를 교회가 보유하고 성경 이외의 교리와 진설을 성경에 편입하여 성경의 진리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였다.그뿐 아니라 성경의 권위보다 교회권위를 우월하게 여겨 교회에서 가르치기 위하여 만든 여러가지 교리가 학설, 문답서를 성경과 동일시하였다. 이리하여 로마교회의 가르침이 성경에서 점점 떠나 인간적 교훈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으므로 개혁교회에서는 그것을 받대하고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구원과 행위의 표준이 되는 권위로 삼은 것이다.[(2) ibid ]

    2. 정경으로서의 성경

    개혁주의 자는 성경의 권위를 절대적이라고 주장한다. 성경말씀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절대적으로 신봉하며 순종하여야 하는 것으로 믿는 것이다.

    칼빈은 이점을 매우 강조하였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였다면 거기에 대하여 오직 한가지 뿐이니 곧 순종하는 것이다.성경을 이렇게 고귀하게 보는데 대한 설명은 물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데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삶에 기준을 계시로 말씀하여 주셨으며 우리는 이에 순종해야 한다. 특히 칼빈주의에 있어서는 정경을 축자적 영감설로 믿으며 이점은 루터에게 있어서도 동일하나 루터는 성서에서 신적분자와 인적분자를 구별했다. 그는 말하기를, "성서의 각 부분이 신적이라면 각부분이 다 인적이다. 초자연적 현실은 인간적 현실속에 포용되었다"고 하였다.

    성서의 인간적 측면에 대하여 루터는 각자의 판단할 여지가 있음을 인정했다.[(4) 송락원 op.cit.pp.324-325] 그러나 칼빈주의는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철저히 엄수하였다.

    그러므로 칼빈주의는 완전영감을 주장한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것을 다 포함하도록 저들을 지도한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뜻이다.[(5) 그러므로 칼빈주의가 루터주의보다 우수한 점은 성경의 권위를 수호한 점에 있어서 루터보다 우월하다. 루터의 견해는 고등비평학의 현대신학을 초래햇으나 칼빈주의는 성경의 권위와 신성을 보존하는데 크게 기여한 점을 인정해야 한다.]

    칼빈은 교황주의(카토릭주의)의 성경관과도 싸워 성경권위위에 올라있는 교황주의를 배격하고 성경의 권위를 교황주의라들로부터 지켜왔다. 또한 성령의 내적 계시망을 우월하게 여기고 성경을 경시한 심령주의자들에 대해서도 성경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하여 싸웠다.

    루터에 있어서는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책으로 봄으로써 이신칭의를 가르치는데만 성경의 가치를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서를 혹평하는 실수를 범했으나 칼빈은 성경을 오직 완전한 영감에 의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립하는데 어떤 누구보다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제3장 개혁신학의 교회관

    1. 성전과 교회

    우리는 역사상에서 하나님의 교회외에 무수한 이방신의 신전들을 볼 수 있으며 그 신전들은 그 규모와 위엄도에 있어서 대단히 장엄하며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며 압도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크메르의 앙코르와트 사원은 세계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그 규모와 조형이 엄청나다 또한 느브갓네살에 의하여 건설된 바벨론성은 신들의 소굴로 이름지어질 정도로 무수한 신전으로 이루어진 도성이었다. 이 수도의 신전들의 수를 보면 主神 마루덕의 신전이 55개 여러 대신들의 대신전이 53개 땅의 신들의 소신전이 300개 하늘의 신들의 소신전이 600개 신들의 여왕인 이라타르를 위한 제단이 180개 그리고 고대불가사의의 하나인 공중 정원과 바벨탑을 재현한 성탑 직구라트등[(1)김봉유 "대세계역사 "삼성출판사 1973.1 제1권 P.385.] 바벨론은 성경에 가르치신대로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공중의 권세잡은 마귀와 그 사나들을 가르킴)의 모이는 곳"(계18:2) 이 된 것이다.

    이방인들은 참신은 모르므로 귀신과 마귀와 미혹의 영들의 가르침과 영향을 받아 인간의 조작된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과 거기 진열된 각종 우상신들에게 압도되어 절로 경외심과 경배가 이루어지게 하기위하여 조작된 것으로 곧 우상숭배를 하도록 시도된 것들이다. 이방신전은 그들의 고안자와 창안자들이 신적 생명과 진리가 없는고로 시각적 효과에 호소하는 화려한 건물과 장엄한 우상시설에 인간이 압도되어 경배심을 유발하도록 조작된 것이다.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성전은 주셨으나 본래는 성전이 아니요 성막이었다. 이는 참신은 보이는 어떤 화려한 건물안에 계시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하신 백성들에게 거하신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후 다윗의 충성과 솔로몬에 의해서 또 그후에도 화려한 성전을 건축했으나 하나님은 역사의 손을 이용하여 파괴해 버리셨다. 이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성전 곧 신령한 성전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작업이었으며 또한 예수께서 예언하신 것의 성취였다.[(2)예수께서는 두번 성전 파괴를 예언하셨다(마24:1-2,요2:19)]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길때 그들은 이방인과 같이 성전안에 여러가지 조각물과 우상과 신상들을 두기를 좋아했다.(렘 7:3032:34-34-35,겔5:117:20)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아 재물이 풍부해지면 이런 제단과 우상들을 더욱 늘려 나갔다 (호 10:1).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하는 동기가 된것이다. 옛날에 이스라엘이 이같이 우상과 제단 만들기를 좋아함같이 중세의 카토릭교회가 똑같이 이런을 답습하여 교회를 부패케 하는 원인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개신교회에서까지 신약교회에의 참 모습에 대한 지식이 없는 어리석은 신자들에 의하여 교회내에 많은 조각물과 화상과 제단을 만들어 놓고 분향을 하는 것이 성행되고 있다.

    신약시대는 보이는 성전시대가 아니요 신령한 성전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교회 건물과 제단을 화려하고 장엄하게 장식하여 놓은뒤 신성시하여 성전화시키고 있는 행위는 신약교회의 신령성에서 퇴보하여 구약시대의 의식종교로 타락하는 현상이다. 상술한 바와같이 중세 카토릭교회가 타락하게 된 경로도 이와같이 교회건물을 성전화시켜 신령한 교회를 의전화 시킨데 있었다. 우리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초대 사도시대 교회는 성전중심이 아니었고 혹은 다락방 혹은 개인집에서 모였다. 그들은 성전에서 떠나 그리스도인의 집회소를 보통 개인집에서 가졌다. 그들은 보이는 건물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구원의 주를 모시고 결속된 형제들의 형재애와 사랑의 교제로 모이는 집회 뿐이었다. 이와 같은 사도시대의 신령한 교회는 카토릭시대에 들어오면서 점점 신령한 면은 사라지고 의식과 제도와 보이는 교회당을 성전과 같이 섬기며 예배하는 습관으로 화해갔으며 여러가지 제단 설치 화상제작 우상까지 만들어 섬기게 되었다.

    성경에는 어떠한 형상도 금하였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자기의화상도 그리 못하도록 하였고 A.D. 70년 엘비라(Elvira) 회의 개혁교회에서는 십자가의 우상화도 반대했다.[(3) 죤 칼빈"기독교 강요"김문제 역,혜문사,1982,4.제1권 P 232 ] 로마교회나 개신교회는 십자가가 구속의 상징으로 믿는데는 이의가 없다. 그런데 로마 카토릭교회는 이를 우상화해서 교회,학교,병원등에서 섬기고 있다. 니케아회의를 전후해서 신자들은 십자가를 눈,입,가슴,옷 등에 그리고 미신으로 사용했다. 터툴리안 때에는 십자가 숭배자의 별명까지 붙였다.[(4)ibid]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회에서까지 십자가를 우상화 시키는 경향이 짙어져서 웅장하게 조각한 십자가를 교회내에 설치하므로 교인들이 그 앞에서 분양하며 기도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로마교회의 많은 미사 제단을 본받아 개인교회 안에서도 많은 제단을 설치하는 경향이 늘어가고 있다. 개신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사진까지도 교회에 부착하는 것을 금하였는데 이는 카토릭교회에서 많은 성상 화상을 걸어놓고 숭배한 것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려고 한 것이었다. 주지하는 바와같이 독일의 종교개혁 당시 비덴베르크 대학의 칼시타르는 당시 교회에 장식되어 있는 여러가지 성상, 장식을 예수의 십자가상 성도의 화상, 초상화,성모상 등등의 조상()을 치워버리고 심지어 당시의 의전화 틀에 박힌 종교음악까지 치워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것들은 우사숭배이며 육신의 감각에 호소하는 저열한 것이라고 퇴치하였다.[(5)김봉규, "대세계역사"삼성출판사,1973,1.제6권 PP.344-345]

    이와같은 칼시타르의 개혁의 여파는 급격히 파급되어 당시 의식화된 종교와 우상숭배의 모순속에서 죽은 종교에 기만당하데 분노한 많은 학생들과 심니들은 성당에 몰려와 모든 우상과 성상, 제단들을 마구 부수는 소동이 일어났었다. 독일 각처에서는 우상 종교의 허위에 속은 사실에 분노한 군중들이 각처의 성당으로 몰려다니며 성상 조각물과 심지어 화려하게 조각된 교회당 건물까지 우상이라고 파괴하는 소동이 급격히 비화되어 갔다. 그리하여 대혼란이 일어났을 때 루터는 급히 비덴베르크로 돌아가 이를 진정시킨 일도 있었다.[(6) ibid]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인간의 종교성이 저열하여 영적으로 교육하기에 미흡하므로 종교적 의식과 제도로써 종교 교육을 하였으며 성전이나 제단 제사의식등 원시적 형태를 통하여 종교 교육을 고취하였으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같은 의식, 제단,성전,제사제도는 신령한 예배로 개혁된 것이다(히 9:10). 그러므로 신약교회는 어떤 의식도 배제하고 오직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부름받은 성도의 집단 그 자체가 교회이며 한님이 거하시는 성전이요 어떤 화려한 건물도 하나님 앞에는 무가치한 돌과 나무조각에 지나지 않으며 그런것은 결코 성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2. 만인 사제론

    중세 사상에는 사람이 세속적 직업에 종사하는 자로서는 신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없다고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데 종교개혁에 의하여 그러한 사상이 깨지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신자의 일상생활이나 직업생활이 교직과 일반으로 다 신성하다는 사상이 생겼다. 이것이 중세와 근세를 구별하는 사상이다. 루터는 말하기를 "수도사가 만사를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가 금식하고 철야기도 하며 금욕생활을 하는 것을 큰일로 보고 소녀가 집에서 세탁하고 요리하는 것은 적은 일로 보는 것이 통례로 되어있다. 그러나 사람이 신의 명령대로 행하면 이런 적은 일로 봉사하는 것도 신을 봉사하는 의무가 되는 것이니 모든 수도하는 남녀의 성결관 금욕생활보다 우월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직이든 일반 신자이든 간에 신께서 볼때에 고하의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라 칭하는 것이고 당시 구라파인들의 마음에 승려를 두려워하든 생각을 제거함이 되었다. 즉 신자는 누구나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사제가 됨을 규명한 것이다.[(7) 송락원 "교회사"기독교 문화사 4292.3.P.324.]

    중세 카토릭 교회에서는 조직과 신도사이의 종교적 직업과 세속적 직업을 엄격히 구별하여 왔었다. 개혁자들은 이러한 처사에 대해 성서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하고 예수님과 그 소집단 가운데서도 교직과 신도의 구별을 찾아 볼 수 없다는 태도를 굳혔다. 벧전 2:9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하신 개념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그 처한 환경에서 일하였다 물론 어떤 사람은 지도자로 어떤 사람은 교사로 일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인된 의무의 방향에서 일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후 카토릭 시대가 되면서 교직계급이 나타나게 되었고 아무나 교직이 될 수 없다는 교권적 해석과 규칙이 부가되었다. 그리하여 교직계급과 신도를 크게 구분하는데 이르렀다. 그러나 조교개혁자들은 이러한 곡해를 비난하고 직업적인 교직계급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유일한 중보자인 그리스도께 모든 신도가 다 각각 직결되어 있다고 선언하므로서 만인사제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루터는 교황제도의 정치적 주장에 도전하고 자기를 지지하는 제후에게 행정상 또는 정치적 영역에 있어서도 교직이 평신도에게 우월한 지위를 갖는다는데 반대한 걳이다. 즉 신앙있는 자의 통치자는 곧 사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교황들은 근거없는 성직제도에 뿌리를 박을 수 없고 박을 권리도 없다고 대항했다. 그런데 회중이 한 지도자를 선정하여 세울 경우에는 그에게만 사제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회중과 같은 사제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같은 정도로 임해있다. 결코 교직자에게만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이라 아울러 성경지식에 대해서도 동일한 원리에 주어져 있다고 칼빈은 주장하였다. 그런고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성서를 연구하고 말하고 가르칠 의무를 갖게된다. 루터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제이다.[(8) 성갑식, "그리스도교 대사전"기독교서회, 1981.6.p304.]

    정신적 지주로서 인간사회의 계급사상을 타파하였다. 본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직접통치 하에서 신정통치를 받도록 하여 이방 사회와 같은 계급제도를 불러 하였었다(삼상 8: 참조).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방의 풍습을 모방하기를 원하여 완악한 경향으로 향하므로 자정적으로 허락하셨으나 본래의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호 13:11).계급제도는 이방인 죄인 세계의 산물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자녀들의 세계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자유인이며 평등하며 하나님의 직접 통치하에 있으므로 인간 계급이 개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만인사제 사상은 기독교 민주주의 정신적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 4장 개혁교회 예배관

    1. 제단과 예배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로마 카토릭 교회의 미사제단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며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의 은혜를 은폐시키고 매몰시키는 것이 미사제단이라고 다음과 같이 비평하였다" 미사의 또 다른 힘에 대하여 말한다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압박하여 매몰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자신의 희생으로 우리의 구원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완성하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 하셨다 (요 19:30).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희생이 불완전하다고 제물을 바치는 조건하에 행해지는 미사는 자신을 유일한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고난을 매장하고 또 무시하는 이의에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것일까 이와같이 명백하고 또 분명에 진리에 거스리는 것이 사탄의 행위임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소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1) 죤 칼빈,"기독교 강요" 김문제 역, 혜문사. 1982.4.제4권 18장 3항 pp 681-682] 고 하였다.

    이와같이 칼빈은 미사제단이 교회를 제단화, 미신화 십자가의 무력화 작용으로 보고 비난한 것이다.

    미사한 말은 본래 예배와 설교를 마친 후에 학습교인과 방청인을 내보내고 세례교인만을 위한 성찬식을 행할때 학습인들은 "내 보낸다"는 라틴어 "콩그레가리오에스트 미사(Congre gatioest Messa) 란 말에서 끝자만을 약해서 부르므로 미사란 말이 생겼는데 당시 라틴어를 모르는 평민들은 미사를 성찬으로 오해하게 되었고 후에 또 제사의 의미가 된 것이다. 사도시대에는 성만찬이 떡을 떼고 포도즙을 마시는 성도의 교제로서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예배였으나 카토릭교회에서 이것을 지나치게 신성화 의식화 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하나님께 바치는 의식이 첨가되고 또 미사를 제사제도화 하여서 자기와 죽은 자를 위한 미사, 연옥에서 고생하는 자를 위한 미사등을 행하는 과정에서 미사는 마치 공양과 같은 성격을 띠고 여기다가 교직의 수입 목적을 삼기 위하여 많은 제단을 설치하여 많은 신도들의 헌물을 수납하는 교직의 수입수단이 되므로 큰 성당에는 수많은 제단을 설치하게 되었다.[ (2)송락원,"교회사"기독교 문화사 4292 3,p 247]

    이와같이 성만찬 예식이 카토릭교회에 의하여 의식화 되고 제단을 설치하는 등 형식과 의식으로 화하여 교회의 타락과 미신화의 경향을 띄게되고 아울러 신약교회의 정신에서 크게 이탈하여 마치 구약교회의 제사종교로 다시 돌아가는 경향이 짖게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많은 미신사상이 내포되므로 교회는 부패하고 신령한 생명은 없어지고 의식적이고 형식적으로 타락하는 원인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은 한결같이 교회에서 제단을 두는 일을 극력 반대 하였다. 영국여왕 엘리자벧 1세는 교회를 개혁할때 교회당에서 십자가 제단 화상을 제거하였고, [(3)ibid.p 369] 쯔빙글리는 1516년 아인슈델(Einsudel)에서 목사가 되었는데 이곳의 수도원에 마리아상이 있어서 그곳에 참석자가 많았는데 쯔빙글리는 이 미신적 숭배를 목격하고 종교개혁의 정신이 격발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다시 주릭으로 옮기어 그곳에 목사가 되어 루터의 95개조문과 비슷한 67개 개혁안을 내놓아 토론에 의하여 주릭시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개혁이 이루어졋는데 그는 루터보다 적극적이어서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하여 로마교회의 의식, 형식,우상, 제단들을 제거해 버렸고,[(4)ibid.p 306-307] 쯔빙글리를 도와 개혁의 계승자가 된 불링거(Bullinger,J.Heirnrich 1504-1575)도 쯔빙글리와 같이 의식, 제단형식,형상등을 제거했다. 이와같은 쯔빙글리의 개혁사상은 칼빈의 개혁을 위하여 길을 개척한 것이었다. 그리고 청교도의 비조 죤 후퍼(John ,Hooper. 1465-1555)는 헨리8세 때에 대륙으로 다니며 2년간 쥬릭에 체제하였고 불링거의 감화를 받아 그 의견을 찬성하였고 귀국후에 교회에서 제단두는 일을 반대하였다.[ (5) ibid.pp 392-393 ]

    이와같이 개혁주의 신앙의 전사들은 로마교회의 제단사상을 반대하였고 제단을 교회에서 제거하는데 개혁의 열심을 기울였다.이것은 기독교의 제단은 칼빈의 말과 같이 십자가로 완료되었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신약시대는 제단예배 시대가 아니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헤와 구원을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이 신약교회의 근본 이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신약교회를 표방하고 있는 개신교회에서도 교회를 제단화하고 여러가지 제단들을 설치하고 있는것은 신약시대의 신령성에서 후퇴하여 구약시대의 제단사상을 고취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신앙과 예배정신이 의식되어 제단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2. 개혁교회 성례관

    (가) 세례에 관한 견해

    로마교회는 롬바르두스(Lombardus Petrus:1100-1160) 이후 칠성례(시례,견진,성찬,고해,결혼,종유,임직)를 채택하고 있으니 개혁교회는 세례와 성만찬을 성례로 보고 5가지는 성례로 보지 않는데 모든 개혁교회가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세례와 성찬의 의의에 관해서는 루터와 쯔빙글리및 칼빈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하에서 우리는 개혁교회의 성례관과 그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상고하려 한다.

    (1) 세례요한에 세례에 관한 견해

    요한의 세례와 기독교의 세례가 서로 그 의미에 있어서 같은 것이냐 아니냐하는 문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왜냐하면 요한의 세례는 그 형식이 문제가 아니고 그 세례가 갖는 영적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한의 세례를 성경에는 회개의 세례라 했고 (마 3:1-11,눅3:3) 12사도를 비롯하여 요한의 제자였떤 문도들이 기독교의 세례를 다시 받았으며 그후에도 요한의 제자였던 자들이 다시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행 18:2419:1-7) 요한의 세례가 있으나 기독교의 세례는 성령의 세례로 말미암은 전인적 변화의 중생의 재창조에 있으므로 그 차이는 근본적으로 대단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 세례를 받은 신자라도 단순한 회개의 은혜로 입교한 신자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복음의 약속에 참례하여 재세례를 받어야 한다는 것이 침례교회의 주장이다.[(6)J.C.크레인 "조직신학"하권 종교교육부 1959.8 pp.709-720]

    로마교회는 트랜드 공의회 결정에 따라 (Trent 신경 7부 1장) '누구든지 세례요한의 세례가 그리스도의 세례와 같은 효력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지어다." 한대로 세례요한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세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에 반대입장에서는 개혁자 루터, 쯔빙글리, 칼빈등은 이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세례와 같은 목적과 효력을 가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근대 개혁자들은 전적으로 전기 개혁자들의 의견에 찬동하지 않는다.

    하지(Hodge) 는 다음의 이유에 의하여 요한의 세례를 기독교 세례와 구별했다.

    (1) 요한은 구약적 인물이고 신약은 은혜시대에 속하지 않는가 그는 엘리야의 심정으로 와서 신약의 은혜를 준비하였다(눅 1:7).
    (2) 요한의 세례를 회개의 세례요 중생과 성령의 세례가 아니다.
    (3) 요한의 세례를 삼위의 이름으로 실시되지 않았다.
    (4)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가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은 예가 있다 (행 18:2419:7등) [(7) 최인원 "조직신학..개요 은성문화사 1966.5.p 465]

    (2) 루터의 세례관

    루터는 그의 요리문답에 "세례는 죄를 사하고 사망과 죄에서 구원한다"(제4부 22항) 하였고 "영생의 구원을 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생명을 주는 것은 진실로 물은 아니다 이에 따르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물과 관련 되어서 또 말씀을 의지하는 우리의 믿음과 관련되어서 효과를 발생한다. 대개 말씀을 떠나서 물은 단지 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세례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과 연결될때 그것은 물세레가 된다. 즉 생명의 은혜의 물.. 중생의 세례(씻음)이 된다." 했고 그리고 이 효과가 대인에게 있어서는 구원적 신앙에 의한다는 것을 "또 믿음이 없을때는 그것은 단지 벌거벗은(무의미) 무력한 표가 될 것이다고 하였다.[(8)ibid.p416]

    이와같이 루터는 세례의 신비성을 약간 내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것을 세례자차에 있는 것이 아니요 말씀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루터의 생각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없이는 하나님에 관한 사람의 일반적인 지식은 다만 거짓된 종교화 우상숭배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그의 말씀을 말씀하지 않으신 적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외부적인 어떤 표적을 주셔서 그것으로 사람들이 믿게하신다. 이러한 표적은 노아홍수 이후에 무지개 아브라함의 할례 오늘 우리에게는 세례와 성찬이라고 하였다.[(9)P.S.왓슨 "프러테스탄트 신앙원리"" 이장식역. 컨콜디아사 1977.6.pp 288-289]

    루터의 이같은 주장에서 우리는 루터의 중요한 사상을 볼 수 있으니 그것은 말씀의 중요성 못지않게 외적표시인 성례전의 중요성을 볼 수 있으니 그것은 말씀의 중요성 못지않게 외적표시인 성레전의 중요성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구원의 외적표시로서의 작용으로 우리 구원과 중요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성례전은 사람의 행하는 단순한 기념행사 의식이 아니고 오직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역사이다.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하나님의 위엄이 직접 임재하셔서 하나님 자신의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다. 말하자면 사식하는 성직자는 하나님의 마스크 즉 베일에 불과하다.[(10)ibid.pp 290-291]

    이와같은 점은 쯔빙글리,칼빈의 기념설과 대조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세례의 신비성을 주장한 것이다. 이런점은 세례중생설 같은 사상을 어느정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3) 쯔빙글리의 세례관

    쯔빙글리에게 있어서는 "외부의식에 사용되는 표는 진리의 표상이다. 그 자체에 아무런 효과도 갖지 않는다. 효과라고 하면 다만 진리에 의한 영적효과이다" 쯔빙들리의 세례에 관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ㄱ) 세례는 그 자체가 중생의 은혜를 수여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세레에 요구되는 것은 신앙이고 이 신앙은 중생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고로 세례에 앞서(신앙과 회개) 즉 중생의 경험이 있을 것을 원칙으로 한다(행2:3810:4711:17)

    (ㄴ) 세례적 중생을 주장하여 형식 주의에 흘러가는 것은 바리새적 의식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이를 책망하셨다 (마 23)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를 자랑할 것이 없다 (갈 5:5,롬2:25).

    (ㄷ) 세례는 유일의 또는 일반적인 중생의 수단이 되지 않는다. 다만 믿음이없는 것이 정죄를 받는다 (행 16:31,막16:16).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 피조물이다 (행 5;6,6:15,롬2:25-29).

    (ㄹ) 복음의 방법과 정신은 어디까지나 윤리적이고 의식적이 아니다. 신자는 주앞에서 의를 얻는다는 것은 그 열매에 의한다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마 7:20). [(11)최인원 op.cit pp 476-477]

    이상과 같은 쯔빙글리의 신학은 그의 윤리적인면을 강조한데 기인하고 있다. 쯔빙글리는 루터와 같은 심각한 신앙체험은 없었으나 루터보다 지식적 논리적인 인물이므로 루터보다 넓은 전문지식이 풍부했다. 루터는 기록중심인데 비하여 쯔빙글리는 신의 의지요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자의 윤리면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성찬이나 세례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요 믿음과 영적 변화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4) 칼빈의 세례관

    죤 칼빈은 세례의 의미에 대하여 말하기를 "세례관 교회라는 공동체에로의 입문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세례를 받기 위하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하며 그러므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즉 세례를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첫째, 하나님께 대한 우리 신앙의 상징이며 둘째 사람들 앞에서 우리를 드러내고자 함이다" 하였고 세례의 효과에 대하여서는 "첫째 주 하나님께서 성결의 표적으로 삼으시고 증거로 삼으시기 위하여 "그리고"이 세례를 우리의 죄가 전부 사해지고 도말되고 간과되어서 결코 하나님의 목전에 죄가 사해진것을 확산시키는 증명서라고 했다.

    그리고 세례의 효력은 말씀없이 물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점은 루터의 견해에 따른듯하다. 그는 "교회는 신랑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물의 씻음을 통하여 생명의 말씀으로 거룩해지고 깨끗해진다(엡5:26) 했고 또다른 곳에는 "우리는 그의 긍휼하심을 쫓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다(딤전3;5). 또한 베드로는 "세례는 우리를 구원한다고 말한다(벧전 3:21)고 말한 뒤에 이것은 물이 우리를 깨끗케 하거나 성결케함이 아니라고 하였다.[(12) 죤 칼빈 긷고교강요 제4권 pp 488-489] 그리고 세례가 전생을 통해서 성결의 증거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때 세례를 받든지 우리는 오직 한번 전생애를 통한 씻음과 성결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죄에 빠질때마다 세례을 받은 기억으로 되돌아가서 영혼의 무장을 더욱 굳게하여 자기 죄의 용서를 항상 확신하고 평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우리에게 세례가 집행되는 것은 오직 한번 뿐이며 그것은 영원한 효력을 가지며 어떠한 오점에 의해서도 소멸되지 않는다고 하였다.[(13)ibid.pp 490-491] 그리고 그는 세례와 회개의 합계에 대하여 말하기를 죄인들이 교회의 신비를 통하여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지만 그것은 복음의 설교없이는 행해질 수 없는 것이다.[(14)ibid.pp492-493] 하였고 또 "세례는 또다른 은혜를 가져온다. 즉 세례에서는 그리스도안에 잇는 우리의 죽음과 함께 또한 그분안에 있는 우리의 새로운 삶이 나타난다고 하는 사실이다"고 하면서 롬 6:1-6 의 말씀을 해석하기를 "이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할 것을 권고하는 것 뿐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자신의 정욕을 죽이고 그의 부활을 본받아 의로 부활하도록 교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 함께 참여케 하신다(롬 6:5) 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접목된 눈이 대목의 뿌리로 부터 수분과 영양을 빨아올리는 것처럼 믿음을 가지고 세례를 받는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효과를 자신의 육을 죽게함으로서 받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효과를 주님의 영으로서 살게되므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롬 6:8) 하였다.[(15) ibid.p 493]

    (5) 침례교회 세례관

    대부분의 개혁교회들은 세례의 의미를 속죄의 씻음받은 표로서 인치는 것으로 해석하나 침례교회의 주장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무론 침례교회도 중생의 씻음을 포확하고 있으나 그들의 주장은 세례의 근본목표는 씻음이 아니요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죽음과 부활의 표시로 침례를 주장하며 그 근거로서 롬 6:3-5 ,골2:11-21,고전15:19을 들고 있다.[(16) 크레인 op.cit p 710]

    이와같은 침례교회의 견해는 구원관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개혁교회와 근본적인 차이를 두고 있는 것이다. 즉 대부분의 개혁교회 구원관은 칭의의 바탕에서 성화의 과정으로 구원의 완성을 목표하고 있으나 침례교회는 구원받은 중생안에 칭의와 성화가 다 포함된다 (롬 8:30) . 그리고 대부분의 개혁교회는 기독교 "구원교리인 십자가와 부활의 구속이 믿는자에게 칭의로 적용되고 회개와 사죄와 씻음의 효과가 수반되는 것으로 여기나 침례교회 구원관은 사죄와 씻음뿐이 아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음과 영적부활 곧 중생을 통한 구원안에는 성화까지 원칙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침례교회에서는 씻음의 표시인 세례가 아니요 죽음과 부활의 표시인 침례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엄밀한 의미에서 침례교회는 일반개혁 교회에서 받는 세례가 회개와 씻음만을 내포한 세례라하여 이는 세례요한의 세례에 불과하므로 복음적 구원관에 입각한 성령의 세례로 말미암은 확실한 중생이 있어야 하며 그후 침례를 다시받고 침례교회로 개종해야 하는 것이 침례교회의 근본 이념이다. 그러므로 침례교회를 재세례파라 칭한다.

    (나) 성만찬에 관한 견해

    성만찬 교리에 있어서 루터는 로마교회의 화체설을 배척했으나 임재설은 주장했다. 그는 말씀이 전파되는 곳에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는 것과 같이 성례전도 사람이 행하는 것의 단순한 기념의식이 아니고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역사요 임재라고 한다.

    쯔빙글리는 부활하여 영광스럽게된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므로 그몸이 지상에 성례전에 국한하여 계실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만 국한하여 계실 수 없으니 그 까닭은 마치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시다고 대답했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피조물안에서 끊임없이 활동하신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므로 루터는 하나님의 성육신을 하나님이 그 자신을 떡과 포두주 안에서 또 그것과 함께 우리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성례전의 단순한 기계적인 행동이 아니라 "우리가 성례전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약속의 말씀을 믿을 때에만 축복을 받게되는데 그 약속의 말씀이 없이는 성례전이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17) 이장식 op.cit.pp.290-296.]

    칼빈은 루터와 쯔빙글리의 중간입장을 취했다.그는 성찬의 상징적 의미와 동시에 영적 은혜의 병행을 믿었다. 그러므로 그 시행은 실질적으로 영적 능력을 수찬자에게 성령의 역사에 의하여 전해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신의 은혜의 표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성찬은 하나님이 제정하시는 은혜의 방편으로 인간에게 신령한 덕을 끼쳐주는 거룩한 제도라 하였다.[(27)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몸이 떡에 내려오시는 것이 아니요 우리가 올리워진 것이라고 하므로서 루터의 주장을 역설적으로 적응하고 있다.그리고 그는 성찬을 행할때 포도주와 떡을 섬기는 미신 행위는 배제 되어야 한다고 주장 하였다.]


    결 론

    구약은 하나님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을 주는 신학이며 첫 창조에 속한 모든 것에 관하여 신관및 인생관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구약종교(십계명을 중심하여)는 옛창조에 속한 인생에게 말씀하시는 종교와 도덕의 법칙이다. 그런고로 구약의 모든 말씀은 자연인 그대로 부름받은 사람들을 상대로 말씀하신 계시이다. 그러나 구약에서도 메시야 대한 예언으로 장차올 새 창조의 세계를 예언 하였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래적인 것이요 장차올 세계였다. 그러나 그 세계가 지금 우리에게는 이미 임하였다. 아니 벌써 2천년전에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그 세계는 첫창조에 속한 자연인 그대로는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는 것이다. 비록 옛언약과 그 종교적 경건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는 첫 창조에 속해 있으므로 그의 상식적 범위가 첫창조에 속한 육신주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비록 종교적 비죤이 있기는 하여도 그 영역과 구속력에서 도저히 탈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구약종교는 자연인에게 그 타락한 첫 창조의 세계에서 구원을 향하여 나오기를 기도하도록 시도된 신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종교 자치내에서는 그 세계에서 해방을 가져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신학은 자연인인 인생들이 그들의 타락상을 여실히 볼 수 있도록 인도하며 구원의 길을 찾고 애쓰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신학은 이와같이 옛 창조에 속한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구원을 갈망하는 인생들을 위하여 준비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롬 8:4).

    십자가의 신학 곧 신약의 신학이요 개혁의 신학은 이와같은 옛창조 속에서 약속하신 새로운 창조의 세례로 들어오게 하는 관문이다. 십자가는 그러므로 양의 문이라 칭했다(요 10;9). 그러나 육적인 인간은 그대로는 들어가지 못하는고로 주께서는 "너희는 성령을 구하라" 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같이 거룩한 인간이 되기를 구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가르침은 종종 우리로 완전케 되기를 구하라고 역설하고 있다 (히 6:1-2,골1:28,마5:48,요일3:9.5:18,엡4:13).

    그길이 주와 하나가 될 수 있는데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길은 십자가로 인도하는 것이다.신약의 신학은 십자가의 신학이며 그 해석이며 적용이며 그 성취이다. 십자가의 신학은 옛창조에 속한 것을 멸하고 신적인 새창조의 세계에로 우리를 재창조한다. 그리하며 십자가의 신학은 옛창조에 속했던 우리를 변화시켜 새창조의 세례로 들어가게 하는 관문인 것이다. 누구든지 이 십자가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지 않은자는 기독교 세계에서 그는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의 신학을 개혁신학이라 칭하는 것도 이와같이 옛것을 새것으로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있을 때 진정한 개혁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개혁신학은 십자가의 신학인 것이다. 십자가의 신학을 통과하므로 신관 세계관 인생관 및 모든 전반에 걸친 사물에 대한 이해가 새로워지는 것이다. 옛 창조에 속한 사고방식은 율법적이며 육신적이며 공의관념적이며 그러한 인생관은 진노와 저주에 봉착하는 세계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 십자가안의 새 세계느니 은헤적이며 영적(신령적)이며 인애관념적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새하늘과 새 땅의 새세계요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에 거하는 것이다. 옛창조에 속한 인생에게는 수고와 고통의 저주가 선고되었다.

    그러므로 구약신학의 종교 (율법)는 인생으로 끊임없는 수고와 고통(죄책) 과 진노가 극심한 학대아래 놓이나 십자가의 신학은 인생으로 저주대신 은혜와 축복을 고통대신 평강과 희락을 수고대신 안식(쉼)을 주시는 영원한 은혜의 신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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