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nbsp6:12,눅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기도는 주기도문의 다섯 번째의 기원으로 서 우리 자신과 이웃의 죄 용서를 위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give)라는 청원 다음에 뒤따라 나옴으로 써 기도의 순서에 합당한 은혜 받은 자의 태도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일상 생활 속의 온갖 종류의 은혜 를 받은 자와 그 풍성한 은혜를 깨닫는 자만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받기에 는 얼마나 감당할 수 없는 죄인(罪人)인가 하는 사실을 인식(認識)하고야 비로소 아버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게(forgive) 됩니다. 따라서 이 기도를 드릴 때는 단순히 자신의 죄의 용서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자신과 이웃과의 올바 른 관계 속에서 유지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신앙고백이며, 이러한 태도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삶 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겠다는 신앙적 자세인 것입니다. 

&nbsp1. 왜 우리는 죄 용서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하는가?
주기도문의 죄 용서에 대한 기도는 어떤 면에서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보다 더 중요한 기도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에 인간에게 떡보다 용서가 훨씬 더 소중한 것입니다. 용서받음이 없이 우리가 아무리 많은 떡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 다. 그것은 마치 용서받지 못한 죄인이 감옥에서 아무리 많은 떡을 먹어도 조금의 위로도 되지 못하고 단지 감옥에서 해방되는 용서 와 자유를 원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양식과 용서 중에 하나의 선택을 요구한다면 그들은 양식보다 자유함 받는 용서 를 선택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인간에게 있어서 일용할 양식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도 내 양심의 평안과 양심 의 자유는 우리 인간에게 절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기도가 오늘날 은혜 안에 살고 있는 이 시대 에의 성도들에게는 합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주기도문을 부정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⑴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죄 사함을 받아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입었기 때문에 이 기도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참으로 어리석은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기도문에서 언급되는 죄(罪)란 낱말은 "부채들" 혹은 "빛들"이란 뜻으로 복수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근본적 인 죄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 날마다 일어날 수 있는 일상 범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입니 다. 물론 이에 대해서 한글 성경은 [죄(罪)]라는 표현을 마&nbsp6:12이나 눅&nbsp11:4이나 같은 단어 로 쓰고 있으나 헬라어 성경을 보면 각각 다른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 마태복음에서의 죄(오페일레마타)의 의미는 "본래 갚아야만 하는 빚(debt), 부채, 의무" 등을 나타내는 말로서 넓 은 의미로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종교적.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표현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좁은 의미로는 남에 게 반드시 갚아야만 하는 부채(빚, 돈)를 표현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신약 성경에 별로 나타나지 않는 말인데 롬&nbsp4:4에서 "은혜(恩惠)"의 반대의 개념으로서 "빚"으 로 사용되었고, 신&nbsp24:10에서도 역시 갚아야 할 빚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인간의 첫 번 째 의무는 하나님께 대한 복종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만약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께 빚(debt)을 지는 것이라고 생 각하였으며,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마태가 왜 죄(罪)라는 의미를 표현을 "빚"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까? 그것은 마태복음의 수신자는 대부분 유대인이 거나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마태는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죄의 개념을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함으로써 모 든 경우의 빚 곧 반드시 갚아야 의무로서의 빚으로 묘사했던 것입니다.

② 누가복음에서의 죄(하마르티아)의 의미는 "과녁에서 상태"라는 말로서 죄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삶의 진정한 목표에서 어긋난 것"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누가복음에 기록된 죄란 종교적. 윤리적인 모든 올바른 삶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어긋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마태복음 에서 기록된 죄란 빚의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이 두 단어는 근본적으로 같은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죄"란 우리가 잘못하 고 실수한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마땅히 보답하는 삶에 이르지 못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의 은 혜와 사랑에 보답하기는커녕 반항하고 무시한 경우, 알고도 행치 아니한 경우(약4:17),율법의 완성인 최고의 사랑과 용서에 이르 지 못한 상태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nbsp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가의 다락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에 제자들의 발을 씻 기시며 베드로와 하신 대화를 통해 우리가 왜 죄 용서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필요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주님 께서 베드로 자신의 발을 씻는 것을 거부하는(6절)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8절) 이때 베드로는 내 발뿐만 아니라 목욕을 시켜 달라고 합니다(9절) 그러자 주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 가 없다"가 말씀하십니다(10절)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두 가지 씻음 곧 목욕과 발 씻음을 구분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목욕 은 되풀이 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에서 중생의 체험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 리는 거듭나며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단 한번의 구속의 사역에 근거하여 영원 히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았고, 영생을 얻었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죄악과의 투쟁을 계속하 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목욕을 하였지만 발씻음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비록 목욕은 하였지만 하루종일 거리 를 걷다가 저녁 때 집에 돌아오면 어느새 더럽혀진 우리의 발을 씻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보배로운 피로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세상과 접촉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영혼 가운데 더럽혀 져 있는 부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원죄(原罪)를 구속하신 주님을 믿고 영접할 때에 구원, 중생, 칭의(稱義)의 문제 는 단 한번의 사건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미 구원받은 자들도 끊임없이 죄악 생활을 통하여 도전을 받기 때문에 의식(意識) 중 에나 무의식(無意識) 중에 짓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날마다 죄의 자백을 해야 합 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 일&nbsp1:9) 그러나 만일 죄의 자백을 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고 진리가 그 속에 없는 것입니다(요 일&nbsp1:8) 

따라서 주기도문의 죄 용서에 대한 기도는 불신자들의 범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버지의 자녀들의 범죄를 다루고 있 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의 범죄는 정죄함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죄는 이 불신자들의 죄의 성격과 는 구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죄란 법정에서 다루어지고 죄 문제와는 다른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들의 죄 를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기도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아버지 앞에 나와 자백해야 할 자녀들의 범죄 문제를 다루 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기도가 그리스도인만이 드릴 수 있는 기도만은 아닙니다. 모든 죄인이 마땅 히 기도해야 할 기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기가 죄인 이 아니라고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죄가 없다고 까불대는 바래새인들에게 주님께서는 죄가 없다고 말 한 그 자체가 죄가 있는 것이고 선언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은 죄인(롬3:23,5:12)이라는 말씀 이외에 "너희 중 에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요8:7)는 주님의 말씀은 모든 인간은 죄인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따라서 다섯 번째의 죄 용서의 간구 는 도적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남을 미워한 자만의 전용적인 기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항상" 고백해야 할 겸손한 삶 의 한 부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에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할 죄인이라면 이웃도 역시 하나님의 용서와 더불어 자신으로부터 도 마땅히 용서받아야 할 대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허물과 실수(失手)와 빚을 탕감 받을 수 있지만 자신 이 이웃의 죄를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나(자신)처럼 죄를 범한 자 곧 "죄 지은 자"인 이웃을 자신이 용서받아 야 할 것처럼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며 그 죄인은 죄지은 자를 이웃으로서 용서받은 자신처럼 용납하고 이해하며 관용의 마음으로 받아들 여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죄의 용서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고유의 권한입니다. 다만 우리는 "죄지은 자"인 이웃을 용납하고 관 용으로 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의 합당한 자세로 살아갈 때 우리의 이웃들도 우리의 그러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 과 용서가 어떠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도 속에서 우리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아야 하지만 내 가 용서하는 것은 이웃이 아니라 죄지은 자 곧 범죄한 이웃을 용납하고 용서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⑵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성령 체험을 통하여 거룩하게 성화(聖化)되고 내 속의 모든 죄악의 성품은 완전히 제 거되었으므로 죄의 자백이 필요 없다고 하는 완전주의자((完全主義者)들이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요일&nbsp1:10에서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 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을 볼 때에 범죄(犯罪)하지 않는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인격 을 닮아 가면 갈수록, 거룩한 성자가 되어 갈수록 자기의 마음과 생활 속의 죄 문제를 더욱 민감하게 성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완전주의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불완전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하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죄 를 범하고도 그 죄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인해 더욱 더 불완전한 더움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 다. 이들은 자기 자신을 진리의 빛 앞에 솔직히 드러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빛 앞에 우리를 자신을 드러내면 낼수 록 우리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엄청난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더 주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 을 수 없는 것입니다.

⑶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함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조건부의 기도는 율 법 시대에나 적용될 수 있는 기도이지 은혜 안에 살고 오늘의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이 기도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 데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자신이 하 나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인하여 나의 죄가 무조건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았기에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할 수밖에 없는 것 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내가 하나님께로서 참된 용서를 받았다면 우리에게 잘못한 어떠한 사람들의 허물과 죄라도 용서할 수 있 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것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결과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만약 이 기도를 조건부의 기도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만의 고유의 권한 곧 죄 용서함에 대한 주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임을 기 억해야 합니다. 
 
2. 죄 용서를 위한 기도를 통한 주님은 교훈은 무엇입니까?
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직도 범죄하고 있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마땅히 갚아야 할 빚을 지고 사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갚지 않고 있는 빚 들 곧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갚아야 할 빚이 있음에도 갚지 못하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이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 도는 약&nbsp4:17에서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 회를 향해, 이웃을 향해, 가족을 향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온갖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분 명히 빚이며 성경은 그 빚들이 바로 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 럼 큰 죄는 없습니다. 
파스칼(Pascal)이 말한 것처럼 세상에는 죄를 범하고도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죄를 범한 후에 자 신의 죄를 깨닫는 사람이 있는데, 깨닫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죄 용서함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영 적 성숙과 인격적인 성화 그리고 하나님의 귀한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내 삶 속에 들어오는 온갖 부조리하고 범죄한 것들을 솔직 히 주님 앞에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오는 순간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과 함께 아직도 우리는 죄악 의 세력과 싸우고 있으며 우리의 영혼 속에 침투하고 있는 죄악과 싸워야 할 필요가 있는 존재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은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이라"고 말한 마틴 루터(M.Luther)의 말을 영원히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⑵ 이 기도는 어느 특정한 대상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항상","고백해야 할 기도의 내용"으로서 기도할 때마다 간구해야 할 것을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칼빈(J.Calvin)은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자백하지 않는 것은 갚아야 할 빚을 갚고 있지 않는 것과 같 다"고 했으며, 마틴 루터(M.Luther)는 "사람들이 죄를 자백하지 않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겸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 니다. 죄의 자백을 포기하는 것은 더 큰 범죄 속에 빠지는 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죄의 자백은 영혼을 청결히 보호하 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합니다. 그래서 시&nbsp32:1-5에서 죄를 자백하지 않을 때의 영혼의 피곤과 침체 상태 를 여름 가뭄에 비유하여 고백하고 있으며, 죄의 자백으로 얻는 것은 인생에 위대하게 변화시키는 힘인 것입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나타나는 현상은 자신의 죄성(罪性)에 대한 고백입니다(눅58,딤전1:15)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 면 그것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악한 범죄자로 드러나지만 죄를 고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 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요일1:8,9) 자신은 남들처럼 죄를 범치 않았다고 감사드리는 바리새인 의 외식을 주님께서는 책망하셨으나 자신의 죄 때문에 슬피 울며 통회하는 세리에 대해 주님은 정죄치 않으셨습니다(눅 18:9-14) 계명을 다 지켰다고(죄를 짓지 않았음을 의미함) 자랑하던 청년이 주님 앞에서 근심하며 슬픔을 안고 떠나갔습니다(마 19:16-22) 
따라서 주님께서 이 기도를 가르치신 것은 이 기도를 드리기 전, 또는 드릴 때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것 입니다. 죄 가운데 가장 크고 무서운 죄악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께 대한 책임 곧 하나님의 형상 을 따라 지음 받은 자신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만을 사랑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둘째, 동료나 이웃이나 다른 사람에 게 마땅히 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셋째, 육체의 건강을 비롯하여 자신의 정신과 영혼을 올바르게 깨 끗하게 보존할 책임에 있어서 부족함이나 잘못은 없었는지 살펴야 합니다. 만약 있다면 이 기도를 드릴 때에 뉘우치고 용서받아 새로 운 삶에로의 결단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이 기원을 드리는 올바른 자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 값으로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마땅한 책임과 의무를 비롯하여 성령님을 근심시키지 않아 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부여받은 의무와 책임을 다할 때 공부원으로 서, 직장인으로서, 남편과 아내로서, 자녀로서, 학생으로서, 군인으로서 책임 완수에 "부족"이 드러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고 다짐하는 것이 이 기도의 진정한 의미인  것입니다.

⑶ 이 기도는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용서했다는 진실한 감사와 구원에 대한 감격이 없거나 부족한 상태임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에 앞서 타인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겸허한 아량이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 는데, 만약 이것은 조건부가 아닌 자연스러워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용서하는 삶의 필요성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받는 삶 을 살고 있다는 은혜를 깊이 인식한다면 마땅히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에 대한 죄 용서와 우리의 죄 사함 받은 것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용납)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소서"(눅11:4)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이웃에 대한 용서는 자신 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과 직결되어 있다는 의식으로 살아갈 때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나(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 다. 이웃을 용서할 줄 모르는 무정한 빚쟁이는 하나님의 용서받고 있는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마18:23-35) 이웃의 정죄(定 罪)는 바로 자신의 정죄(定罪)이며, 이웃을 긍휼히 여길 줄 모른 자가 긍휼없는 심판(마7:1,2,5:7,약2:13)을 받는 것 은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그래서 유대 랍비들은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 "내게 모욕이나 잘못을 범한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서 용서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 속에 대속죄일에는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죄를 지었으나 모르고 그 냥 지나쳐 버린 죄, 개인의 죄, 공동체(共同體)의 죄 등 모든 죄악을 하나님의 전에 가지고 나가서 용서를 받아야 할 날로서 규정 하고 있습니다. 즉 이웃의 죄까지도 자신의 죄로 여기고 함께 용서를 구하는 구약 시대의 제사 제도는 오늘날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 를 통해 자신과 이웃이 죄 용서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되는 일 곧 선교 사역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까지 도 이 기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⑷ 이 기도는 반드시 이웃의 죄를 용서해야 하며 만약 용서하지 않고 이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범죄자로 드러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님은 마&nbsp18:35에서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 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편&nbsp107:7에서 악한 자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 니다. 월리암 바클레이(W.Barclay) 만약 "나는 범죄한 이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자는 다음과 같 은 기도가 되고 만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당신께 죄를 지었으나 또한 내게 죄를 지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 나 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오니 나의 죄도 용서하지 마소서. 당신은 나에게 그들을 용서하라고 명령하셨지만 나는 차 라리 천국을 포기하고 지옥에 갈지라도 그 말씀에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라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를 용서해 주시지 않아도 된다는 이 기도는 너무나 끔찍해서 생각하기조차 몸서리치는 일입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가 이와 같은 태도 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죄 용서함을 받은 자답게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시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기도문을 아무 생각 없이 주문처럼 암송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는 불신앙적인 태도입니 다. 주기도문의 기원은 그 내용처럼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며, 또 그렇지 살지 못했음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진실한 "하나님 앞에서 의 자세"인 것입니다. 죄의 용서는 하나님의 본성이며, 아버지 하나님의 고유 특권입니다.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해 주며 하나 님 앞에서 죄인 아닌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자신의 죄(罪)가 용서받아야 하듯이 죄지은 자 곧 이웃을 용서할 때 비로 소 자신의 죄 용서의 은총도 기쁘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것을 가리키 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용서를 대가없이 받은 자처럼 그렇게 죄지은 이웃을 무조건 용서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입니 다. 이 기도를 통하여 용서받은 삶! 용서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체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