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울   의     인   간   론   
      (들어가는 말) 
신약성경에 있어서 창조적 질서 중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지는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것인데, 이 견해는 구약성경의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를 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신약의 인간관은 본질적으로 광범위한 물질적인 영역으로부터 추론되어져야 한다. 사실상 신약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서 다양한 말로 나타나 있지않으며, 심리학적인 설명을 보충하지 않아도 되는데, 바울은 이것에 대한 가장 가까운 접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바울에게 있어서 {육체}이란 말은 {그리스도 없는 인간성에 깃들어 있는 모든 연약함,부적당함,죄에의 경향을 대표하 는 것}인데, 그것은 유혹 앞에서 무력한 그리스도가 없는 인간성이며, 그것은 유혹 앞에서 무력한 그리스도가 없는 인간성이다. {육 신}은 죄에 대해 전율하는 것이다. {육신}은 {인간 죄성}에 대한 암시적인 의미를 가지고 않는 경우에 있어서도 항상 제한성,연약 성과 무상성을 갖고 있는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며, 죄와 육(육신)은 서로 동일시 되고 있다.
때문에 {육신 안에 있다는 것}, {육신적}이 되는 것은 바로 죄를 짓는 것이며, 죄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진실로 {죄}는 바로 {참된 인간성의 위반}이며, {부패}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칼빈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울이 육신이라고 하였다}고 말하고 있 고,&nbspC.H. 다드는 {육신이란 우리가 상속받은 인간성의 일반적인 소지품이다.바울은&nbsp.... 그것 을 필연적인 악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덕적인 목적에 대해서는 무력한 것이라고 보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 의 인간론은 {죄(罪)의 부패}교리는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고, 이것에 대한 상관적인 관련에 대해서 살펴봄이 바울의 인간론 에 대한 바른 접근이라고 필자는 사료하는 바이다.
그러면 바울이 인간의 다양한 측면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주요한 개념들은 ① {혼과 영} (Soul&nbspand&nbspspirit) ② {마음}(Heart) ③ {정신} ④ 육(Sarx) ⑤{몸} (Body) 등에 대한 것들인데, 이것을 우선적으로 살펴보고 , 또한 이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 죄(罪)의 부패에 대하여 고찰해 보 고자 한다.

             &nbsp1. 혼(    )과 영(      ) 
바울에게 있어서 {혼}이라는 용어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아니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목숨을 가르키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롬&nbsp11:3,16:4,빌&nbsp2:30)
살전&nbsp2:8에서는 {자아}를 의미하고 있는 것처럼 나타나고 있다. 진실로 {혼}이란 말은 {목숨}을 나타내고 있음이 분명하다.(고전&nbsp14:7)
그런데 바울에게 있어서 {혼}이란 {영}(퓨뉴마)와 밀접히 연관을 짖고 있어서 바울이 {영}을 구별하여 사용하는 것은 분명 히 그가 {혼}이란 말을 변형시켜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바울은 인간의 혼을 악을 행하는 대리자로 연관시 키고 있지만(롬&nbsp2:9), 그가 {혼}을 필수적으로 악을 함축하는데 사용하지는 아니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이 {혼}(살전&nbsp5:23)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그가 혹 인간을 {삼분설}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 로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그가 이 용어를 계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강조를 {강조}를 위한 것이지,{정의}를 내리려는 것이 아님 을 기억해야 한다. 이 경우에 있어서 그는 인간을 통일체로 보는 견해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에게 있어 서 {혼}(    )은 그리이스 및 헬라 사상에에서 말하는 곧 몸(    )과는 구별되는 인간 안에 내재하는 불명성을 뜻하거나 혹 은 물질과 구별되는 정신적인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헬라인인들은 혼에 대한 고결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반면 에 바울은 언제나 열등한 우치에서 혼과 인간을 연결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은 인간의 자연적인 생명을 가리키고 있는데(롬&nbsp11:3,16:4,살 전&nbsp2:8), 이러한 사실은 고전&nbsp15:44에서 {산영(혼)으로서의 첫 사람 아담을 육의 몸울 부활하 게 될 신령한 몸과 구별하고 있다.
여기에서     와 육적인 것은 죽음과 파멸에 예속 당할 수 없는 자연적이고 지상적인 생명을 가리킨다.  또한 이러한 의미 에서 바울은 고전&nbsp214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깨닫을 수 없는 {육의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고 전&nbsp31에서는     적인 것을 육적인 것과 동등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맥에서 혼적인 것은 하나님이 특별한 알림의 대상 하나님의 지혜를 그 자체 이해하거나 움켜잡을 수 없는 유일 한 인간성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한 것이다.  따라서 혼적인 것과 육적인 것은 여기서 서로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즉 여기서 둘 다 신적인 가능성과 실제와 대립되는 제한성과 연약성을 가지고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혼적 인 것과     가 그 자체 무슨 결격 사항을 지니고 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진실로 이것은 육과는 달리 하나님으로부터 전도 되어 있는 특별하 자연적인 의미,곧 죄 안에 있는 인간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 지는 않다. 심지어 그것이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와 대립되 있지 않는 경우에도 그것은 자연상태에 있는 인간을 가리키 는 것이다.
특별히 그것이 인간의 내적 실존에 따른 자연적 생명을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 론의},{혼과 같이},{혼의 기쁨}(=기쁜 :빌&nbsp2:19) 등의 합성어로부터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영}(      ,Sprit)이란 말은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바울은 영을 혼과 똑같은 의미로 사용하고있다. 물론 그가 신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영이 아닌 인간의 영을 뜻하는 경우에 있어서이다.
이와같은 명확한 증거를 고후&nbsp2:13,7:5의 병행 구절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이것의 경우에 있어서 육 과 영이 지칭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자연적 조건 상태에 있는 인간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 안에 내재하는 초감각적인 신적 원리로서 의 영에 대한 여하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바울은 그 밖에  다른 곳에서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갈&nbsp618,빌&nbsp4:23,몬&nbsp25)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 게} 있을지어다(롬&nbsp1620,엡&nbsp6:24)의 경우와 똑같은 의미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 것이 다.  그는 {한 혼} 등과 똑같은 의미에서 {한 영 안에서}(빌&nbsp1:27),{영의 교제} (빌&nbsp2:1) 등의 말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자연상태에 있는 인간, 곧 인간의 실존일 뿐이다. 따라서 살 전&nbsp523의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이 보존되기를 원하노라}의 경우 에 있어서도 인간을 구별하는 일종의&nbsp3분설을 대변해 주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생명은 두 가 지 다른 방법으로 표시될 수 있다고 보는 전통적인 전인적 표현 양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에서 어떤 특수한 심리학적,혹은 인간학적 의미를 찾으려고 해서는 아니된다. 진실로 바울은 속 사람을 다방면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영}를 {바람}이나 {호흡}의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으며, 동물이 프뉴마라는 의미로도 사용하지 아니했다.  그 것은 고귀한 본성 그 자체는 어떠한 선이나 악도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혼}과 {영}을 병행해서 사용하 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있어서 기술적으로 양자를 각각 독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구분하기가 가능하지는 않다.
그런데 바울이 {혼}보다 {영}를 더 광범위하게 상요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신 그의 회심 경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과 관련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부패의 특수한 성질}은 인간 안에 있는 일체의 올바른 지식과 의욕을 소 멸시켜, 그 결과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죄를 짓도록 하는 점이다. 즉 마음과     의 부패가 겉 사람을 통해 드러났고, 그래 서 그의 생활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수치스럽고 비난받을 수 밖에 없는 생활로 전락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것은 엡&nbsp4:17 이하에도 발견되는 사상이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생명 미련하시고,자기를 행하도록 하 시고,자기 안에서만 그 완전에 도달하게 되는 참 생명으로부터 떠나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되어진 이유를 거듭 무지함,참된 지 식의 결여, 그리그 그 마음의 허망하여진 것과 관련하여 마음이 전도된 탓에 돌리고 있다. 즉 이방인은 인간 자아 중심이라 고 볼 수 있는 그 마음이 완고해져 있다.
그는 롬&nbsp1장에서 거듭 거듭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로 하여금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 모든 종류의 악 을 행하도록 하게 하셨다고 말해지고 있는 것과 똑같이 에베소서에서도 이방인들이 스스로 방종하여 이와 같은 일들을 자행하게 되었다 고 말하고 있다. 진실로 이와 같은 인간의 행위가 동시에 일종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nbsp2. 마음(Heart) 
{마음(心情)}을 표현은 구약적 사고 방식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바울은 {카르디아}(마음)를 육의 심비(고후&nbsp3:3,삶의 중심)로 표현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그것은 은유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 마음은 전체 속 사람으로 사용되고도 하는데, 그는 마음을 믿음의 수행자(롬&nbsp1):10)로 서 보고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전인(全人)의 서약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전인(全人)을 새롭 게 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마음은 하나님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의 부패에 대한 구절을 발견한다고 할지라도 놀라 운 것은 아니다.
바울이 은유적인 방법으로 신체적인 용어를 사용하는데 제한을 두고 않았음을 충분히 살필 수 있는데, 그 용어들은 정서적 측면과 의지적인 측면을 설명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정신적 활동을 의미하는     와는 대조적인데, 이 용어는     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데, 인간이 자신의 사고, 애정,열망,결단을 통해 나타나는 자아를 지칭하고 있다. 즉 신학적으로 말하면 {마음}은 종교적&nbsp-도덕적 자질을 갖 고 있는 인간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에 {마음}과 {정신}은 어떠한 의미에서는 같은 계열에 속하고 있으 며, 이 사실은 두 용어가 서로 병행해서 사용되고 있는 구절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빌&nbsp4:7,고 후&nbsp3:14 이하) 회심, 곧     의 전환은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진실로     는 일종의 지성적 능력만으로 결코 생각되어 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사고의 관심으로부터 보는 인간 자아를 가리 킨다고 할 수 있으며, 반면에 애정,열정,감정,욕구가 마음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참조 할 때 마음은     보다 휠씬 더 포괄적인으로 말할 수 는 있다. 즉 마음이 정신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갖 고 있다는 점이다.
바울은 롬&nbsp2:14 이하에서 이방인들에 대하여 비록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의 마음 안에 쓰여진 대로 율법의 사역에 대한 증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심지어 하나님의 율법의 계시 없이도 인간이 그 자신의 법칙이거나 그의 마음 안에 거하고 있는 일종의 내적 조명 의 도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을 반영할 수 있고, 그 결과 마음은 사실상 인간안에 내재하는 높은 차원의 것 혹은 신적인 것 으로 간주되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와 관련하여 명백하게 드러난 바와 같이 같이 마음은 하나님께 서 그의 사역을 통해서 보여지는 그의 계시로 말미암아 자신을 인간에게 알리는 장소로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는 그들이 주께 돌아올 때까지 수건이 그들의 마음을 덮고 있다고 말해지 고 있다(고후&nbsp3:15 이하) 그런데 여기의 이들의 마음을 덮고 있는 그 수건은 하나님에 대한 계시가 마음을 비 출 때 참다운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고후&nbsp4:6)
진실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시를 통하여 스스로를 인잔 존재의 실재적인 중심인 인간의 마음에 알리기 때문에 이 마음은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에 대하여 긍정적이든 부정이든 응답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이 마음을 감찰하시고 그것을 밝히 드러내신다 (롬&nbsp8:27,살전&nbsp2:4,고 전&nbsp4:5) 인간은 마음으로 믿기도 하고(롬&nbsp10:10),정욕에 이끌리기도 하고 (롬&nbsp1:24),순종하기도 하고(롬&nbsp6:17),하나님의 뜻을 향하기도 한다. (엡&nbsp6:6)  즉 인간은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수용에 있어서나 그의 사고,의지 그리고 행위에 있어서 의 책임성에 있어서 그 자신의 참된 인간성을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nbsp3.정신(    )  
{정신}(    )이라는 말은 헬라에서는 매우 한정된 뜻을 가지고 있으나 바울이 그것을 사용할 때는 그는 그것을 전형적 인 히브리식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바울에 의하면 정신은 인간 자체로부터 구별되어지는 것으로 이해되어지 않는다.  진실로 그가 사용 하는 일련의 개념들 가운데 그가 특별히 {속 사람}을 가리켜서 {정신},{마음},{뜻},{혼},}{영},{양심} 등으로 정의하 고 있는데, 여기에 나타나 있는     와 마음의 두 개념은 이 모든 것들 중에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성경에서     로 말할 때에 사람들은 자신의 {온전한 정신}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데(고후&nbsp513) 전&nbsp1414), 하나님은 평강은 모든     를 초월한다고 말하고 있다(빌&nbsp4:7) 다시 말하면 하나 님의 평강은 인간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에게 줄 수 있다고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주신다.
그런데     가 종종 영어의 {Understanding}으로 대변할 수 없는 더 함축적이고 중요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 을 우리는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에를 들면 롬&nbsp122에서     를 새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를 분별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경우를 들면 이방인에 대한 바 울의 선언 곧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의 사역으로부터     (롬&nbsp1:20)를 통해 알여지고 있다고 하는 경 우가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는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자연적인 혹은 선천적인 지식의 자리, 이른바 인간 안에 내재하는 한가닥 희미한 신적 인 빛이나 혹은 그와 유사한 어떤 종류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외부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게시를 수납하거나 지 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가 단지 일종의 수납적인 면에서만 알려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시 에     는 자신의 내적인 자기 결단을 통해서 나타나는 인간 그 자신이기도 한다. 이것을 종교적으로 말하면     는 자신에 게 임하는 계시에 대하여 응답하는 능력인 동시에 그것에 대하여 가지는 책임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는 일종의 이론적인 수용 능력은 물론이고 인간 그 자신의 활동의 출발점이며, 결정적인 {중심}이기도 하 다. 예를 들면 바울은 롬&nbsp14:5에서     의 효력에 대하여 {각각 자기 마음(    ,판단,자기 결단)에 확정 할지니라}고 언급하고 있고, 롬&nbsp7:23에서는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    )의 법과 싸우는 것 을 보는도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도덕적 행위에 대한 출발점으로써     가 복종 당할 수 밖에 없는 한 법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다. 이 점에서     는 선(善)과 관련하여 인간이 자신의 가장 깊은 자기 결단에 따라 알고 의욕하는 것을 대변하는 있다.  그 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염두에 둘것은 인간 그 자신의 개별적인 결단뿐만 아니라 또한 그 자신의 계속적인 도적적 자세이기 때문 에     는 보다 일반적으로 경향성,마음(고전&nbsp1:10,골&nbsp2:18ff)을 의미할 수도 있다. 진실 로 인간의 책임성과 관련하여     에 돌려지는 이와같은 중요한 우치는     나 혹은     로 부터 근원하는 복합개념들에 있어 서도 드러나고 있다. {생각}(고후&nbsp314,44,고후&nbsp10:5,11,3),{생각한 순간}은 그 스스로 를 의욕과 행위 가운데서 들어내고 있는 {경향성의 순간}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한 바울서신에서 좀처럼 찾아 볼 수 힘든 단어 {회심}은     의 바꾸어짐, 곧 모든 사고와 의욕과 행위에 있어서 인 간 그 자신의 철저한 전환(딤후&nbsp225,고후&nbsp1221)이나 {후회}와 함께 하나님께로의 전환에 놓 여 있는 비밀(고후&nbsp7:9)을 가리킨다. 이것은 죄로부터의 전환 가운데서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똑같은 종류에 대 한 다른 개념들 곧 인간으니 {생각}은 자신의 도덕적 결단과 생에 대한 자신의 전번적인 종교적,도적 태도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 어 있다는 사실도 지적되어 질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바울에게 있어서     는 사고하는 책임을 지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계시에 응답하는 인간의 기관,가능성을 가리키며, 인간의 사고와 행위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어떤 것이다.

             &nbsp4. 육(Sarx)
{인간}의 기본욕을 이해하자면 바울이 사용하는 단어지 {사르크스}(Sarx)를 연구하는 일이 필수불가결한 일인데, 사람 과 물고기는 모두 {사르크스}룰 소유하고 있으나, 바울은 그들 사이에 구별을 하고 있다.(고전&nbsp15:39)이 경우 에 사르크스는 단순히 육체를 말하고 있으며, 그 용어는 이 땅에서 태어난 자연인을 의미하는 것이다.(고전&nbsp1:29, 롬&nbsp1:3,3:20,갈&nbsp1:16) 이와같이 그 의미는 피조물인 의미가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사르크스 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약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울에 의하면 {육}은 {영}의 반대로 쓰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에 대한 기독교적 개념에만 적용이 되는 것이다. (갈&nbsp5:17) 자연인의 기준으로 하여,사르크스는 고귀한 것과 대조되는 인간의 비천한 본질을 말할 뿐 아니라, 하나 님과 구별되는 저인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바울 서신서에는 사르크스의 용례에 있어서 죄와 관련된 이중적 측면을 보이고 있는데, 육은 여전히 그리스도인의 활동 영역이 나, 그러나 그의 행위를 지배하는 귀감은 아닌 것이다. 여기서 바울의 견해와 속 사람과 겉 사람을 대조시키는 당시대의 헬라 사상과 는 구별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속 사람에 대한 바울의 생각은 날로 새로와지는 인간인 것이다.(고 후&nbsp4:16), 더구나 게속적인 과정이다. 그것은 또한 바울이 헬라의 이원론의 용어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역사적 사실로서 사르크스가 그 본질적인 상태로는 죄와 밀접히 연결되고 있는 것을 넘어서서 {육}을 죄를 짓 게 만들게 하는 ,심지어 죄를 짓도록 고무시키는 활동 영역으로서 보고 있다. 롬&nbsp7:22에서 {육}(肉)은 그 자체 가 아니라고 할지라도{육}은 선을 방해하고 악을 고취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육}은 또한 속 사람과 대조를 이루고 있음이 확 실하다. 왜냐하면 죄가 육을 이용하여 죄를 범하게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르크스를 가진 인간은 그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져 야 하는 것이다.
{육}과 {몸}(Bady)은 신체적인 의미에서 보면 이 말들 사이에는 어떠한 구별도 없지만,윤리적인 의미에서는 다르게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몸}은 육에 지배되는 것으로서 생각되어진다고 주장되지만, 바울의 사상에 의하면 그것을 확대해서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몸 의 의미로 보기에는 옳지 못하다고 사료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이라는 말의 의미를 윤리적인 면에 함축시켜 본다면 목까지를 포함 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롬&nbsp8:1&nbsp-12)
진실로 {육}으로 표현되는 인간은 이 악에 세대에 속하는 한 사람이다.(갈&nbsp1:4) 이 말은 그의 근본적 인 본성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에 대한 바울의 견해는 이 세대를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육}의 인간의 개념으로부터 영으로 서의 인간의 개념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독같이 육의 불리한 영향으로부터 당연하게 자동적으로 구출되는 것은 아니 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바울의 설명은 {육}의 불리한 영향을 계속적으로 과정인 것이다. 이 {육} 안에서 구원과 성화가 함 께 이루어 지는 것이다.
             &nbsp5. 몸(Bady) 
바울에게 있어서 몸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아주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몸은 여러 지체들 이 구분되어지는 유형적이고,가시적인 기관을 지칭하고 하는데, 변형이 가능하다.  더욱이 몸 자체는 더러운 것이 아니며(고 전&nbsp6:13),더러운 죄를 범하는 자는 누구나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다.(고전&nbsp6:18) 몸 의 진정한 목적은 성령의 전이 되는 것이다.(고전&nbsp6:19) 그런즉 하나님은 이 몸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수 있 는 것이다.(고전&nbsp6:20)
그리고 몸은  육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그 우월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여러 면에서 몸의 진정한 상태는 {주를 위하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자기 몸에 에수의 흔적을 가지고 있으며(갈&nbsp6:17,고 후&nbsp410),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수 있으며(고전&nbsp13:3),몸이 성생활의 자리가 되고 있으며 (몸&nbsp4:19,고전&nbsp7:4,롬&nbsp1:24),몸이 개인적,육체적 현존의 기관인 것으로(고 후&nbsp10:10)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이러한 의미에서 몸은 종종 육체가 인간의 유형적인 신체를 가리키고 있 는 한에 있어서 {육신}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몸}과 {육}은 인간의 실제적 속 사람을 감싸고 있는 유형적 기관으로서의 인간의 외적인 구성요소를 가르키고 있다기 보다 오히려 인간이 그 자신의 어떤 실존 양식에 따라 서있는 인간 그 자신을 가르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종종 {몸} 을 구체적인 실존양식,인간 그 자신과 동일한 양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몸}(bady)에 대한 똑같은 포괄적인 용법을 옴을 대개 죽음을 포함한 지상적 인간 삶을 뜻하고 있는 구절 에게서 찾고 있는데, 고후&nbsp4:10에서 바울이 항상 예수 죽인 것을 그의 몸에 짊어지며 예수의 생명 역시 그의 몸 에 나타난다고 말할 때와, 혹은 빌&nbsp120에서 바울이 살든지 죽든지 그의 몸 안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기를 바라 는 간절한 소망을 표현할 때(골&nbsp122)이다. 더우기 바울이 게속해서 인간 지체를 말하는 경우에는 똑같은 요소가 표 현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체는 보다 더 구체적으로 인간이 그의 육체적 실존 안에서 소유하고 있는 행위,순종,범죄의 다른 가능성을 가리키 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골&nbsp3:5) 진실로 인격적인 의미에서 {육체} 역시 자주 {몸}과 {지체}의 공의어로 사용 되고 있는 것이다.(고후&nbsp4:10,11)  그렇지만 {몸}과 {육체}의 이러한 동등성과 함께 이 두용어가 인간의 지 상적 실존 양식과 관련하여 가지는 상이한 관점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즉 육은 심지어 인간 죄성에 대한 암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 지 않는 경우에 있어서도 향상 {연약성}과 {무상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반면에 {몸}은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하나님을 위해 게획되어졌고, 그리하여 하나님에 의해 사망으로부터 구언받 게 될 인간의 형상을 대변하고 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육}은 특별히 인간 실존의 현세적 그리고 지상적 특 성을 가르키고 있는 반면에,{몸}은 그와 함께 또는 힌간 실존의 미래적 그리고 천상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상의 것들을 통하 여 우리는 한 측면으로는 {속 사람},{마음}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몸}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몸은 육체적,현세적 기관 일 뿐만 아니라 자기 실현에 있어서 나타나는 인간 자신,내면으로부터 규정을 받아야만 하는 인간 자신이기도 한 것이다. (롬&nbsp6:12ff,골&nbsp3:5,롬&nbsp12:1f)
또한 {몸}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그의 책임성을 느끼는 기관 혹은 수단으로 묘사될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고후&nbsp5:10에서 각자가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받게 될 것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또한 고전&nbsp6:13에서는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주님을 위하여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살 전&nbsp523에서는 독자들의 영과 혼과 몸이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몸 은 그들의 신체적 안위나 건강에 관련되기 보다 오히려 그들의 신체를 통하여 그리고 그 신체 안에서 행하고 그리고 자신들을 입증해 야 할 면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구절에서 {몸}은 한편으로 마치 그것이 오로지 물질적 감각기관에만 관련된 것처럼 인간 그자신으로 분리되는 것으 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한 몸을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그 자신이 몸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는 바로 이 몸의 존재 안에 인간과 그 자신 사이에 {나}와 사고 행위를 통한 그것의 자기 실현 사이에 구분되어지는 가능성이 있다 는 점이다.

     &nbsp6. 바울의 인간론과 죄(罪)와의 관계에 대한 고찰   
바울의 {구원교리}는 인간과 세계가 죄 아래 떨어져 있으며, 그래서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구속의 필요성을 요청하고있는 그 방 면에 대한 통찰을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는 바울의 죄에 대한 교리를 인간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구속사적}이고, {집단적}인 관점 에서 접근해야 할 것인데, 바울에 있어서 {죄}란 따로따로 고려되어질 수 있는 개별적인 행위나 상황인 아니라, 그것은 초 개인적 인 실존양식으로서 한 개인은 인간으로서의 삶의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는 한 가지의 사실 때문에 여기에 함께하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 서 계시된 새로운 삶의 상황으로 옮겨짐으로써만이 이 실존에서 구속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골&nbsp2:13)  진실 로 인간의 죄는 개별적인 죄가 아니라, 오히려 죄의 엄청난 권세(롬&nbsp3:9,갈&nbsp3:22) 사실에 대 한 부수적인 표현이 거듭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에 있어서도 바울은 죄 아래 있는 이 연대성에 대한 성질과 기원에 대 하여서는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 실존}의 보편성 양식으로서의 이러한 {죄}(罪)에 대한 가장 특징적인 것들이 나타나 있는 것 은 {육}의 규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육은 인간적인 연약함,하나님께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그리고 그 자체가 소멸될 수 밖에 없 는 그 인간성을 뜻하고 있다.  육은 인간 죄성에 대한 암시적인 의미를 가지고 않는 경우에 있어서도 항상 제한성,연약성과 무상성 을 갖고 있는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며, 죄와 육(육신)은 서로 동일시 되고 있다.   때문에 {육신 안에 있다는 것}, {육신적} 이 되는 것은 바로 죄를 짓는 것이며, 죄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죄}는 바로 {참된 인간성의 위반}이며, {부 패}이다. 바로 이 점에서 죄는 어리석은 것(롬&nbsp123),무가치한 것,허영,어두움,참된 생명으로부터 단절되어 있 는 것(엡&nbsp4:18),하나님도 없고 그래서 소망도 없는 것(엡&nbsp2:2),죽은 것 (엡&nbsp2:1,골&nbsp2:13,롬&nbsp7:10)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과 선 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놓여 있는 것처럼, 죄는 인간의 죽음에로 방향 전환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 다. (롬&nbsp7:12ff)
바울은 {죄의 부패}는 인간의 마음과 정신 이른바 인간이 자신의 삶을 통하여 선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할 그 마음과 정신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입증해 주는 것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은 신자들에게 그들이 바로 이와같은 부태로부터 구원 받았음을 주지시키고 있다.(엡&nbsp21, 딛&nbsp33)  바로 이 점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요청되는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몸(즉 그 들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로 하나님께 바치려는 모든 자들에게 요청되는 것임을 발기 드러난다. (롬&nbsp12:2, 엡&nbsp4:23) 그거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신자들 안에서 역사하 시는 구원을 그들이 이루어가는 것은 행위의 문제뿐만 아니라 또한 의지의 문제라고 한 사실(빌&nbsp2:13)과 연결된다 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죄}(罪)에 대한 바울의 모든 가르침은 속 사람의 부패와 관련하여 획일화시키지 않도록 하는 요구이다. 이 방 세계에 나타나고 있는 이와같은 철저한 부태에 대한 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모든 것을 인간의 전적부패와 곤련하여 각 개개인에 게 일괄적인 판결로 적용시킬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방인 그들 가운데서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상기에서 우리는 {죄} 와 {몸} 사이에 두어져 있는 직접적인 연결에 대하여 살펴 보았는데, 인간이 예속되고 있는 죄의 멍에, 하나님의 진노를 인한 죽음 의 상태는 속 사람의 부패와 {몸}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그것의 결과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반대의 개념이 바울의 인간학적 개념에 결정적인 특징이 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않된다. {죄}는 외부로부터 들어와 {육체를 점령하고 있으며 이리하여 전인을 자기 노예로 삼고 있다.
바울 서신에 나타나고 있는 여러 종류의 표현들과 선언들이 죄와 육체 사이의 이와같은 직접적인 연결에 대한 증거를 반영하 고 있는데(롬&nbsp66,12), 여기에서 우리가 계속해서 분명하게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내부로부터 외부에로가 아니 라}, 오히려 그 반대임을 알 수 있다. 즉 죄는 몸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려고 하며, 몸 안에 죄의 사욕을 불러 일으키고 그리하 여 {나}를 죄의  지배 안으로 이끌어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자들이 성령에 의해 죽여야 할 몸의 행실들(롬&nbsp8:13),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구절 (골&nbsp3:15)은 똑같은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몸은 자아와 대립되는 일종의 어떤 독립 관계를 통해 죄를 주 관하고 또 죄를 짊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별히 우리는 롬&nbsp7:14&nbsp-&nbsp27에서 시사적인 형식을 살펴볼 수 있는데, 자 아,정신,속 사람에 대한 죄의 영향력과 몸,지체에 대한 영향력 사이의 불일치에 떨어져 있는 싸움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즉 죄 가 몸,지체,육신을 자신의 권세 아래 둠으로써 인간 자아가 뜻하는 선을 행할 수 없도록 자아,속 사람,마음을 무능력하게 만든다 는 것이다.(롬&nbsp7:22&nbsp-&nbsp25)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여기에서 몸은 죄의 자리이며,그래서 보다 낮은,감각적 원리로서 보다 높은 인간의 정신적인 요소 곧 영 혼의 감옥이라는 희랍 사상에서 유래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조금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임을 곧 알 수 있다. 왜냐하 면 무엇 보다도 먼저 몸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그래서 몸이 죄에게 드려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는 사실 에서 뿐만 아니라(고전&nbsp1228,2415) 또한 바울의 설교에서 몸이 철저히 그리스도의 구속하시는 사역 안에 포함되 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몸은 죽은 자의 부활에 참여한다.(고전&nbsp1513) 그리고 몸은 그 현세적인 존재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보 존하시고 새롭게 하신는 관점에서 고려되고 있다.(고전&nbsp12:9,고후&nbsp4:7,12:7)   그러므로 육 체적- 감각적 본성에 있어서 몸과 정신,겉 사람과 속 사람 사이에 두어져 있는 윤리적 반위 관계에 대해 하등 문제를 삼을 필요 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몸은 단순히 인간의 어떤 구성 요소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구체적인 육체적 존재 양식 에 있어서의 인간 자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바울이 속 사람과 몸(육신,지체) 사이에 있는 갈등을 말한다고 해서 그것 을 근거로 해서 그가 속 사람의 지체는 선을 대변하고 겉 사람은 인간 안에 있는 악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이해해서는 아니된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인간은 스스로 전쟁 상태에 있으며 그리고 그러한 갈등에서 인간은 성령의 능력 없이는 바울이 {몸} 과 더불어 후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그것이 정신적인 것과 관련하여 물질적 인간의 어떤 가치 절하를 동반하고 있는 것은 아니 다. 그것은 다만 인간은 마땅히 그 육체적 존재 안에서 자아 실현을을 이루어야 하며,따라서 그러한 존재 안에서 죄의 멍에의 분명 한 모델이 발견 되어진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인간이 선을 행하려는 경향성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부룩하고 인간은 육신으로 있으며, 죄 아래 있 는 전체의 연대성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좌절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실로 우리는 바울 의 죄 교리의 특성은 선을 행함에 있어서 그러나는 몸(지체,육신)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결정적 장애물에 대한 바울의 진술 안에 있다 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죄를 무엇 보다도 우선적으로 개별적이거나 사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집합적이거나 초개인적인 관점에서 보 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죄 개념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연대적으로 죄(罪) 아래 넘겨져 있다는 사실과,육신에 있다는 사실 과 모든 방면으로부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죄의 권세 아래 떨어져 있다는 사실, 말하자면 죄의 권세가 인간을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 에 있는 것이다. 죄와 몸 사이의 연결 관계에 그토록 강조점이 주어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와같은 이유에서 연유된 것이다.
또한 이것과 관련하여 바울의 인간론에서 본 로마서&nbsp7장에 나타나 있는 {죄의 부패}에 관한 묘사가 바울 의 죄 아래 있는 인간론의 일반적인 구조를 벗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에 대하여 질문을 던질 수는 있겠으나 ,이것에 대한 올바 른 대답은 그렇 수 없다이다. 오히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 절정을 형성하고 있다. 즉 그것은 죄의 부패가 근본적으로 온갖 형태 의 사악에 넘겨진 우둔한 이교들에게서만 찾아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율법의 능력 아래 살고 있는 한 율법 안에서 자신 의 이상과 도덕적 힘을 추구하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죄 아래 팔려졌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나는 곤고한 사 람이로다. 누가 나를 구원하랴}라고 절규할 수 없는 자들에게서도 찾아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저해 주고 있다.
이상의 내용에서 우리는 바울에게 있어서 {육신}(肉身)이란 말은 {죄}(罪)와 불가분리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살 펴 보았고, {육신}(肉身)에 자리잡고 있는 {죄}(罪)는 {육체적인 죄(罪)}만이 아니고, {영적인 죄}도 육신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근원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맺은 말) 
바울에게 있어서 {육체}은 {죄}(罪)에 대해 전율하는 것인데, {육체}는 {인간 죄성}에 대한 암시적인 의미를 가지고 않는 경우에 있어서도 항상 제한성,연약성과 무상성
을 갖고 있는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며, 죄와 육(육신)은 서로 동일시 되고 있다.
때문에 {육신 안에 있다는 것}, {육신적}이 되는 것은 바로 죄를 짓는 것이며, 죄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 다.  진실로 {죄}는 바로 {참된 인간성의 위반}이며, {부패}을 뜻함을 살펴 보았다.  진실로 그에게 있어서 육신이란 말 은 {죄}(罪)와 불가분리의 연관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육신}(肉身)이란 말은 {신체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윤리적인 의 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롬&nbsp7:14,23&nbsp- 25,8:6,7,&nbsp12,13,&nbsp13:14, 갈&nbsp5:13,&nbsp17, 고 후&nbsp7:1)
{육신}(肉身)에 자리잡고 있는 {죄}(罪)는 {육체적인 죄}만이 아니고, 여기에는 {영적인 죄}도 육신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근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과 관련하여 바울이 {육신}(肉身)과 {죄}(罪)를 결부시켰을 때, {모든 물질적 육체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 며,영적인 것만이 본질적으로 우수한 것이라는 헬라적인 개념을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대한 답변은 이미 살펴본 것과 같 이 철저하게 {아니다}이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있어서 몸이란 고상한 것을 위해 만들어진 고상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 은 인간적인 각도에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을 때에 {육신}(肉身)이란 말은 사용하였는데, 그는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학적 인 관점에서 사물을 생각하고자 할 때에 {육신}(肉身)이란 말을 사용하다. 진실로 그는 {육신}(肉身)이란 말을 두 가지의 경우에 서 사용한 것을 살펴볼 수 있는데, 첫번째 경우에는 {그리스도 이전}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롬&nbsp7:5 에서 그는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쓸데없는 싸움을 싸우고 있을 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평화와 능력을 발견하기 이전을 의미하 는 것인데, 마치 바울은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하는 처리하려고 하는 인생의 첫번째 단계와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해서 오는 승리 의 축복을 경험하는 두 단계러 인생을 구분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두번째 경우에는 {육신}(肉身)에 속한 자} 즉 {그리스도인 이하}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고 전&nbsp3:3에서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힐문하기를 {너희는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냐?} 여기에서 바울이 그런 힐문 을 하는 까닭은 그들이 여전히 분쟁과 분열과 분파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이 살아야 할 표준에 서 휠씬 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이하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진실로 바울이 육신에 대해서 말 했을 때에 그의 마음 속에 몸이란 모든 지적,감정적,생리적인 본능과 함께 죄가 최대의 성공의 가능성을 가지고 공격을 개시할 수 있 는 교두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죄의 몸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롬&nbsp6:6), 또 죽음의 몸이라 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롬&nbsp7:24), {그리스도가 없는 인간}은 그의 몸 안에 죄가 쉽게 달라붙을 수 있는 교두 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의 옛 자아가 죽고,그리스도께서 그 사람 안에 살아나시게 될 때,그의 영혼만이 구 원 얻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몸 역시 성령의 전이 되고, 인간의 가장 {내적인 존재}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시게 되 면, 그 사람은 몸과 영혼이 아울러 구속함을 받게 되고, 한 때는 {죄(罪)의 도구}였던 그의 몸이 {의(義)를 위한 무기}가 됨 을 그의 인간론에서 중심적으로 언급하고 있다고 사료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