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예배관

1. 예수님의 예배관 :
① 예수는 유대인으로서 그 시대의 신앙과 경건의 전통에 따라 살았다. 그리고 성전 예배와 그리고 회당 예베에 참여하기도 하 였다. 그러나 그는 성전 제물 제사의 제거를 암시하는 {성전 청결 사건}(막&nbsp11:15-17)을 시도하심으로 예배 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와 기능에 대하여 말씀해 교훈해 주시고 있습니다. 즉 에수님께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사&nbsp56:7)고 언급하신 것은 성전 예배의 본질적인 변화에 대한 의미를 규정하는 것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다.  또한 예수님은 회당 예배에 참여하여 {성경을 읽었고 ,해석하였으며, 거기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병자에 대한 치유도 하 셨고(막&nbsp1:23-&nbsp28,&nbsp3:1-6),눅&nbsp4:16-21의 말씀은 구체적 으로 예수님께서 회당예배에 참여했음을 말씀해 주고 있는데,이것은 예배의 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교훈하시는 것이다.

② 예수는 그의 말과 행동에서 예배의 이해와 모습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구체적으로 구제하는 것,기도하는 것,금식하는 것 에 대한 표현(마&nbsp61-18)과 식사 공동체에 대하여여 언급하였다 (막&nbsp2:15-17,&nbsp6:35-44,눅&nbsp7:36 이하,마&nbsp11:19, 눅&nbsp7:34) 즉 예수는 떡과 잔의 나눔을 통하여 새 언약과 결부시켜(29절) 새로운 예배의 의미를 부여하셨는 데, 이것은 초대교회 예배를 위한 결정적인 시발점이 되었다.

③ 예수는 유대교 예배의 남용(성전 예배&nbsp- 제물,회당&nbsp- 기도)을 지적하셨다. 즉 하나님 은 제물이 아니라 자비를 원하신다(마&nbsp9:13)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기독교 예배의 본질과 의미를 규정하는 말이 다. 또한 {인자는 안식의 주인이다}(마&nbsp12:8)라는 말씀은 예배 생활에서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예배는 거 짓임을 지적하는 것이며, 이웃에 대한 사랑의 봉사를 외면한 예배는 대해서는 강력한 비판을 가하셨다.

④ 예배의 성격과 그 모습을 이해하는 말씀으로서 예배의 형태에대한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데, {두셋아라도 내 이름으로 모 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nbsp18:20)는 말씀은 첫째로 예배의 규모(두 셋이라도) 둘째로 내이름으로(예 수님의 이름으로) 세째로 함게하심(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⑤ 예수님은 신령과 신정 곧 성령과 진리(요&nbsp4:22&nbsp-24)로 예배드릴 것을 말씀하시면서 이것을 주기도문(마&nbsp6:9-11),세례,성만찬의 교훈을 통하여 적용하시고 있다.
첫째로, 주기도문(마&nbsp6:9&nbsp-11)&nbsp-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함(이름/거룩/뜻/하나님의 나라), 영육 필요성(양식/악),찬양(나라/권세/영원)에 대하여 교훈하시고 있다.
둘째로, 세례(마&nbsp28:19-20,요&nbsp4:1-3,막&nbsp1616)을 명하시고 있는데 이것은 예전의 중요한 요소를 발견하는 것이다.
세째로, 성만찬을 말씀하시고 교훈하시고 있는데, 이것은 식사공동체와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청년(눅&nbsp24:13-35)을 통하여 교훈하시고 있다.

결론적으로 성전 예배는 제물 중심의 예배요, 회중 예배는 기도 중심의 예배이지만, 예수님의 예배관은 말씀 중심의 예배(마음을 뜨겁게 하는 것)이며, 동시에 성만찬 중심의 예배이다(주님을 만나는 것)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 초대교회의 예배관
초대교회 예배의 근본 바탕은 첫째로 예수의 종말론적인 사명에 근거하고 있으며, 둘째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근거하고 있으 며,세째로 오순절 사건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것의 기본적인 요소는 (행&nbsp2:42,46,&nbsp5:42) 다 음과 같다.

① 가르침&nbsp- 성경 낭독 / 복음 선포 / 설교의 형태 등을 생각할 수 있는데, 부활하시고 높이 들리신 주님 의 임재를 아는데서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마&nbsp1820,28:20) 그러므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 과 이스라엘의 성경은 예배하는 신앙에 근본 바탕이 된 것이다.

② 교제(공동생활)&nbsp- 예배는 바로 교제하는 일을 그 중심점을 두었다고 할 정도로 성도의 교제는 중요한 의미 를 갖는다.(행&nbsp2:44-45, 모든 것을 서로 통용,재산과 소유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는 사랑의 실 천적 모습을 성도의 교제관계로 이해하는 것이다) 즉 성도의 교제는 사랑의 교제로서 이웃과 삶의 고난에 공참하는 일로 강조되기도 하 고 있다.

③ 떡을 떼며&nbsp- 유대종교의 유월절 예식과의 관련에서 볼 때에 주님의 만찬은 식사 시간과 연결된 것은 사실인 데, 떡을 떼며 잔을 나누는 성찬의 의미는 첫째는 그리스도의 현재적 임재이며,둘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구원)이었으며,세째는 하나님 의 나라에서의 주님과 나누게 될 영원한 만찬에 대한 성취행위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고전&nbsp1123, 막&nbsp14:22,22:14-30)

④ 기도&nbsp- 신약성경의 공동의 관심사는 기도의 내용인데, 이것은 마&nbsp6:33에 기도에 대하 여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더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특별히 초대교회는 갈&nbsp46, 롬&nbsp8:15의 같은 언어 사용과의 관련에서 생각하여 볼 때에 예배 속에 {주님의 가르치신 기도} (마&nbsp6:9-11/ 하나님의 나라의 간구(영광)과 인간의 영육의 삶에 필요되는 것을 구하게 함)가 사용되었음을 추측 할 수 있다.
그런데 기도의 중심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인 구원을 위한 은혜의 감사이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 (빌&nbsp46,골&nbsp4:2,&nbsp2:7)이 있었다. 또한 중보적인 기도로서 병자,간한 자와 신앙 적 곤경 가운데 있는지를 위한 기도(마&nbsp18190가 예전에 행하여졌다. 그리고 복음 사역자와 사역을 위한 기도(살 후&nbsp3:1)와 사도를 위한 기도(골&nbsp4:3, 엡&nbsp619),형제를 위한 기도 (약&nbsp5:13),세상 통치자를 위한 기도가 있었다.(딤전&nbsp21)  초대교회의 기도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도의 독특성이 처음부터 부터 부여 되었는데 에수는 요&nbsp14:13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그의 이름으 로 기도하면의 약속이다. 이 때문에 예수의 이름의 부름으로 기도를 끝내는 풍습이 형성되었던 것이다.(고후&nbsp1:20)

⑤ 신앙고백&nbsp- 신앙고백은 초대교회 예배 자체를 뜻한다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찬양하는 영 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특별히 베드로의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주님이라는 고백}의 신앙고백 은 초대교회의 원형이 되었다.(행&nbsp236,롬&nbsp10:9,고전&nbsp12:3, 빌&nbsp2:11)

⑥ 찬송의 노래&nbsp- 유대인의 회당예배처럼 성경낭독과 설교외의 그리스도인들의 예배 모임에는 기도와 찬송의 노래 가 확실히 설정되어 있었다.(주기도문송) 특히 예배와 관련하여 볼 때 그리스도의 교회는 처음부터 노래하는 교회였던 것을 알게되는데 (골&nbsp3:16,엡&nbsp519), 시(구약의 시편,마리아의 노래, 등),찬미,신령한 노래 들이 있었다.
즉 초대교회는 그들의 예배 생활으리 한 요소로서 노래하는 것을 알고 행하였다는 것 그리고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들을 확실 이 다양한 형태의 노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노래하는 것은 예배 생활의 가장자리가 아니라,개체 그리스도인과 온 회중의 본질적이며 필 수적인 표현을 묘사하는 것,노래 없이는 기독교의 예배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노래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동 일한 것이다.(그리스도를 찬양,구원의 행위를 찬양) 또한 초대교회는 하나님께 다만 그 영광을 노래할 뿐만 아니라 역시 경건과 유익 을 위하여 이웃을 위해서도 노래하는 것이다.

⑦ 세례&nbsp- 세례는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단 한번의 일회적 사건으로 이루어졌는데(고 전&nbsp12:13) 세례의 행위는 요한의 세례를 전제하게 되는데, 세례는 인간의 회개를 준비함에 근거하여 한 세례자 에 대하여 시행되었으며 마지막 시대의 구원에 대한 보증의 표현이었다.(막5&nbsp14,마&nbsp311, 눅&nbsp3:16) 이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것이며,후에 아버지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마&nbsp28:19,행&nbsp2:38) 또한 세례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 근거하여 죄의 용서를 의미하며 더 우기 죄의 권세에서의 해방을 뜻하는 것이다.(행&nbsp2:38,롬&nbsp6:6) 즉 기독교 세례는 그리스도의 인 격과 사역에 참옇를 보증하는 것이며(롬&nbsp6:3-50), 성령의 선물과 결부 된 것이다.(행&nbsp2:38, 롬&nbsp7:6, 갈&nbsp3:27&nbsp-&nbsp4:7)

⑧ 에배 시간&nbsp- 주님의 날 즉 부활절에 모였다. 그런데 이 날을 예배로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 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신데,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첫날에 빛을 창조하신 것과 같이 서로 일치하는데서 의미를찾는 다. 빌의 날인 일요일에 그리스도인들은 축제일로 행사 즉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또한 그날이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 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주일 축하는 그리스도의 부활 승리에 대한 기억이다.(행&nbsp20:7계1:10,고 전&nbsp16:2)

⑨ 예배 장소 &nbsp- 초대교회는 먼저 가정에서 시작되었다(행&nbsp1:12-13) 물론 그 후에도 섣 전에 모임이 개최되기도 하였다.(행&nbsp2:46)  예수님은 솔로론의 행각(요&nbsp10:23)에서 가르치셨 다.

⑨ 헌금과 연보, 예물 드림&nbsp- 초대교회의 모임에는 오늘날 우리가 두리는 헌금(십일조) 같은 것을 드렸는지 에 대한 역사적 문헌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 가운데서 그들이 모일 때에 헌금이나 예물을 드리도 록 권고한 것으로 보인다.(고후&nbsp8:2-4,고후&nbsp9장,고전&nbsp16:2) 따라서 예배 시간 에 드리는 예물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초대 기독교 예배의 본질적인 특징은
① {그리스도와의 관련성}을 통하여 표현되고 있음을 대하여 명심해야 할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언제나 설교되어 야 하며 찬양되어야 한다. 교회 회중에게서 축하된 것은 바로 주의 만찬,세례에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것은 신앙고백 가운데서 나 타나고 있는데, 메시아요,주님이시요,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에 대한 고백이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시자로서 인간을 구원하시 기 위하여 세상에 보내시고,돌아가시고.부활하신 예수에 대한 고백이었다.  이러한 뜻에서 에배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를 통하여 계속 이룰질 것에 대한 약속이요, 감사하는 찬송으로서의 응답인 것이다.

② 또한 예배는 {교회의 회중과의 관련성}을 통하여 특징지어진다. 즉 인간들의  구원에의 참여와 나타남과 등장이 중요한 것 이다. 그것은 서로 서로 연결된 것이다. 개체가 은혜의 선물에 참여로서 일컬어지는 {코이노니아}(공동성,연합성)는 삶의 실재를 위 한 근본적인 표시인 것이다. (고전&nbsp1016) 이것을 통하여 역시 교회의 세움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고 전&nbsp14:3,5,12) 왜냐하면 교회라는 개념이 지역에 있는 구체적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표시하는데 사용된 것처럼,여 기에 그리스도의 몸이란 것이 공동체의 우주적인 교제를 표시하는데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롬&nbsp12:4,고 전&nbsp12:12,14-17)

③ 초대교회의 예배는 {세계와의 관련성}을 통하여 특징지어진다. 즉 예배하는 생활과 일상 생활의 책임에 관하여 공동적 예속 성을 표현하는 데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모습 스스로에서 발견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성찬을 포함하여)
초대교회부터 예배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었다. 물론 결과는 제한적이었다. 신약의 윤리적인 가르침은 하나 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는데 그것은 교회 밖에는 있는 자들과 그 어떤 대리적인 충돌을 일으켜서는 안되며, 더 많이 그리스도 인의 방식을 통하여 선교적인 섬김이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고전&nbsp10:32,벧 전&nbsp313&nbsp-17)

④ 초대교회의 예배는 {역사의 종말과의 관련성}을 통하여 특징되어지고 있다. 현세에서 받아들인 구원과 믿는자들과 지상에서 의 교제에 대한 감사이다. 그러나 완성과 구원의 실재에 대하여 논난의 여지가 없는 참여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자의식 안에서 나누 는 교제인 것이다(계&nbsp21:22&nbsp-&nbsp225)  그러므로 지상에서의 예배는 영원을 향하 여 나아가는 배회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예배인 것이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언젠가는 함께 축하하게 될 하늘의 예배에 대한 내적 인 준비가 중요한 것이다.(히&nbsp4:3-16, 계&nbsp4:&nbsp14:1-5)

3. 종교 개혁주의자들의 예배관 :
1) 루터의 예배관&nbsp- 루터는 종교개혁을 통하여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고 기보다는 로마 카톨릭에서의 분리되 어 루터파 교회를 형성하였는데, 그가 로마교회의 예전을 갱신하기 위한 신악적인 기준은 복음에 의한 칭의적 가르침 (Sola&nbspide)에서 연유되었다.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한 인간의 준비로서 공로적인 행위를 강조한 제 사 예배를 거절한 것은 그의 지대한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① 로마 카톨릭이 예전이 성경만 읽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만 집중되야 있음을 지적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설교해야 함을 강 조하면서,주일 오전에는 복음서를  설교하고, 오후 예베에서는 신약의 서신들이나 그외 택스트의 연속 강해가 이루어지는 설교 중심 의 예배를 강조하였다.
② 비긱독교적인 전설은 성경적인 근거를 갖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것을 용납될 수 없으되 성경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용납될 수 있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③ 예배를 공로적 행위로 인식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지적하면서 예배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 는 것은 칭의적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즉 루터는&nbsp7성례를 주장하는 로마교회의 주장을 거절하고 세례, 성찬,소해성사 그리고 성경에 분명한 근거를 가진 성례로 인정하였다. 그런데 성찬은 다시 빵과 잔에 의하여 나누어져야 함을 강조했 다.
④ 예배는 각 나라의 언어로 들려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⑤ 예배 순서는 기독교의 산 예배를 도우는 것이지 그것이 법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즉 루터는 회중이 구경하 던 자리에서 적극적인 참여자로 자유롭게 해 주었다. 예배에서는 설교를 포기할 수 없는 확고한 구성요소로 만들었으며,예수님의 성 찬 제정의 말씀만을 유효하게 함으로서 전에슨 침묵 속에서 기도되었으나 이제는 그 말씀을 이해적으로 인용,낭독했다.

결론적으로 루터는 말씀 중심의 예배와 성찬 중심의 예전을 하나의 예배로 연결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의 한계점은 고대예배 그리고 초대교회의 예배의 의미와 연결되지 못하는 것에 있다.

2) 쯔빙그리의 예배관&nbsp- ① 로마교회의 미사의 전통을 급진적으로 발전시켰으며,매주일은 말씀 중심의 설교 를 예배의 중심에 두었으며,성례는&nbsp1년에&nbsp4번하게하였다. ②쯔빙글리는 설교중심의 예배에 역점을 두었으 며 설교는 성서안에 신앙의 원천으로 인도하는 것과 그것을 통하여 효력있는 종교교육의 작업을 뒷받침해야 하는 것을 생각했다. ③ 그 는 루터에서처럼 성찬을 은혜의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예배는 재물이 아니라 항상 기억해야 하는 일 즉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루어 진 구원사역에 대한 상기 또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이 예전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④ 말씀 예배와 성찬 예배를 나누어 시행하 게 하였다. ⑤ 그는 교회의 음악은 회중들의 찬송으로 대신하고 성가대와 악기 사용을 금지하였다.

3) 칼벵의 예배관&nbsp- 칼빈은 미사 중심의 예배를 제거하고,미사대신에 아침 일찍 설교 중심의 예배를 진행하였 다. 성찬은 간단한 형식으로 일년에&nbsp3차례에 진행시켰는데 특별히 성만찬의 이해에 있어서는 루터(그리스도의 실재적 임 재)나 쯔빙글리(오직 말씀에 의한 기념설)의 입장과는 근본적으로 달리 쯔빙글리의 기념설을 수용하면서도 기념에만 머문것이 아니라 성 령의 임재로 보았기 때문에 루터처럼 말씀과 성령이 함께 어우러지는 예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쯔빙글리의 성찬이해와 그의 제안이 었던 년&nbsp4차례의 정치적 영향을 극복할 수 없었다. 마침내 칼빈도 년&nbsp4회 이상으로 동의하고 만 다. 칼빈과 쯔빙글리의 성찬에 대한 입장의 차이는 쯔빙글리는 성찬을 은혜전달의 수단으로 보지 않고 오직 성경으로란 명제에 국한 시 키는 반면에 칼빈은 성찬이 성령을 통한 은혜 전달의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4.기독교 예배란 무엇인가?
1) 개혁주의 예배의 신학적 기초&nbsp- ①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한 예배 ② 예배의 기독론적 기초(그리스도 중심의 예배) ③ 성령 안에서의 예배 ④ 종말론적 사건으로서의 예배

2) 예배의 의미와 그 본질&nbsp- 하나님을 믿고 그를 경배하며 그를 섬기는 봉사적 행위를 말하는데, 기독교 예 배는 기독교적 신앙과 삶의 총체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예배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우리 인간에게 있 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부터 출발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기독교 예배는 계시의존적 관계에 있는 것이며, 그 중심 이 삼위일체적 관계 속에 있는 하나님에게로 향하는 믿음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 예배는 하나니을 위한 봉사 요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섬김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런데 그 섬김은 예배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으로 귀결되는 것이 다. 따라서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되는 것이며,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봉사와 하나님 앞에서 행 하는 교회의 봉사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사건이다.  이로써 예배의 중심에는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과의 화목의 복음이 선포됨 을 통하여 하나님은 인간을 섬기며 예배에 참여한 회중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다. 감사와 찬양과 영광의 드림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3) 예배의 기능 :&nbspD.Rossler는 {예배란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본에 대한 관계의 표현이요,묘사이다}라 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적인 삶의 근본은 하나님을 뜻하는 것이며, 그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인 표현으로 서 즉 감사와 찬송과 기도를 의미하며 그 러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배}(禮拜) 이해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신앙적인 삶의 근원이 하나님이 이루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이며,칭의적 선언 바로 그것인데 기독교의 예배는 이러한 은혜를 깨닫은 자의 새생명 으로서의 삶이 되는 것이다.

   ① 예배의 교육적인 기능 
종교 개혁자 루터(M.Luther)는 예배의 교육적인 의도와 본질을 인식하고 그의 예배에 관한 글인 {독일 미사} (Deutsche&nbspMesse)에서 밝히기를 {예배는 우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도울 있어야 하는 데, 먼저 하나님에 대한 자의식을 일깨우고,신앙을 강화시켜주며, 믿음을 도우는 역활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루 터는 먼저 기독교 예배란 순전히 교육적 기능을 가진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교육적 기능으로서의 예배에 대한 이해는 교회의 역사 속에서 정통주의 시대를 거쳐서 슐라이어막허 (Schleirmacher) 시대에까지 잘 이어져 왔다고 할 것이다.   특히 종교 개혁시대에 발전의 극치를 이루었던 {요리문 답 교육}(Katechismus)과의 관계에서 예배의 교육적 기능은 잘 전수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예배의 교욱적 이해는 후 에&nbspF.Niebrgall에 의하여 새로운 발전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소위 그가 말하는 신앙적 교화(敎 化,Erbauung)에 있었다.  여기서 {교화}(敎化)란 가르침을 통하여 감동을 받게되고 그리스도인로서의 신앙적인 자의식에 사로 잡히게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배의 교화적 성격은 바로 교육적인 기능을 대변하는 것으로서 경건주의 시대의 예배 적 이해는 바로 예배 참여자자들의 교화에 그 목적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진실로 이러한 예배의 교육적 기능은 종교 개혁자들의 인 식 속에서도 강하게 반영되고 있었다고 하겠는데, 특히 칼빈과 개혁파 교회의 전통에서는 처음부터 강한 교육적 이해와 기능이 그 중심 을 이루고 있다고 할 것이다. 즉 예배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를 통한 가르침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고 백이 중심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예배의 기능은 역사적으로 종교개혁에서 경건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예배의 중심에서 빼 놓 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 되었는데, 개신교 예배의 설교는 그것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의 교육적 기 능은 다시금 후에 부흥 운동과 부흥설교나 전도 설교의 결정적인 역활로 전환하게 되는데, 이것은 교육적 기능만을 발전시킨 역사적 단 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경건주의적인 예배 이해인 교화적인 성격은 한국 교회의 예배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고 할 것인데, 역시 예 배 에서 가장 큰 비중을 갖는 순서 삶의 새로운 원리를 강화하는 장소요, 그 속에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인 가르침으로서 항상 기독 교 윤리적 관점하에서 삶의 지표로서 선포되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의 종속관게에서 이해되었으며, 개개인의 신앙강화에 교육적인 영향 을 끼치고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② 예배의 기도적 기능 
기독교 예배의 기도적 특징은 역시 종교 개혁자 루터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기도에 관한 것이다. 루터는 {우리 주님 께서 예배에서 그의 거룩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는 다시금 그 예배 에서 기도와 찬양을 통하여 그에게 말한다} 고 강조하고 있다. 예배는 공중의 기도생활인 것이다. 예배는 근본적으로 개개인의 기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공적인 교회의 예배 는 바로 공동체의 공동적인 기도의 장이 되는 것이다. 예배 중에 함께 기도하는 것은 것만큼 강하고 능력적인 것은 그 어느 곳에 도 존재하지 않는다.(마&nbsp20:19-20, 행&nbsp114,2:1-4) 이것은 역시 개체 신앙인의 신앙 적 교화와도 깊은 관련을 갖는데 이러한 이해는 역사적으로 경건주의적 교회 내에서의 예배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들은 예배 를 바로 교화의 주일축제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과 함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우리는 흔히 기도할 때에 우리의 영육의 필요를 간구하는 요청의 내용이 전 부인 것으로 생각하나 그 중심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찬양하고 감사하는 영광 돌림이 그 중심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의 영육의 필 요에 대한 간구는 기도의 한 부분인 것이다. 기도의 본질은 영광을 들어내는 도구로서 찬양(Doxologie)을 의미한다. 이것 은 인간이 하나님께 말하는 표현의 양식이다. 그리고 그 기도 가운데는 적어도 감사와 찬양,회개와 도고와 간구 등이 포함되어 야 할 것이다.

     ③ 예배의 축제와 축하 행위로서의 기능 
이러한 예배의 이해는 슐라이어막허(Schleiermacher)에게서 결정으로 대두되었던 문제인데, 예배의 인간적 이해로서 의 기능적 성찰은 오늘날&nbsp20세기에까지 기독교 예배에 지배적인 관점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축제로서의 이해는 기독 교의 종교적 인식 속에서, 교회를 신앙공동체로 보며, 예배는 공동체의 공동적 신앙심의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성만 찬 예식의 관점에서 더욱 두렷이 부각되는 것이다.&nbspG.V.Zezschwitiz는 {예배를 가리켜서 성찬을 위한 교회 의 축제}라고 불렸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를 제공한 슐라이어막허의 근본적인 의도는 정통주의와 경건주의 그리고 계몽주의 시대의 예배가 참여한 회중에 게  무엇인가 그 어떤 영향을 주려고만 하는 행위로 이해되던 예배의 문제성을 극복하는데 있는 것이다. 또한 부루너 (P.Bruner)는 {창조와 종말 사이에 구원의 실현으로서 종말적 사건으로서 예배 즉 그 예배에서 과거와 새로운 시작,죄와 용서 가 동시에 현제적 현재성으로 나타나는 종말론적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고,&nbspE.Lange도 그리스도인 개체와 교회 의 생명을 위한 기능관계에서 예배를 하나님의 언약 갱신의 잔치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언약관 계에서 본 것이며, 매 예배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믿는 자에게 보증하는 구원 사건에 대한 언약의 새롭게 함의 축제 로 이해한 것이다.
그런데 예배를 축제나 잔치로 이해하는 것은 바로 성찬의 본질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에 있다면 그것은 다만 과거의 사건 에 대한 회상의 의미 뿐만 아니라 휠씬 더 성령으로 임재하는 그리스도의 현존과 함께 나아가서 영원한 하늘 나라의 만찬을 믿음으 로 소망하는 관계에서 기뻐하고 축하애햐 할 의미있는 사건으로 본 것이다.  이와같이 예배와 성찬은 기쁨과 감가와 희망이 넘치는 축 제와 잔치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예배의 축제적이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잔치와의 관계는 성만찬에서 만의 의미 는 아니다. 역시 말씀 중심의 예배 자체에서도 축제적 관계를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인가를 드려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그 어떤 보상을 받는 것으로서 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베푸신 은혜의 상기와 신뢰의 회복과 말씀의 들음 안에서의 감사와 찬양과 영광 을 그에게 나타냄이요,드림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에서의 매주일의 예배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영으로의 만남이요,죄 용서와 의롭다하심,영원한 나라의 약속의 확인 과 함께  부활의 찬양이요,기쁨과 감사로서의 예배는 그러한 기쁨의 은혜를 함께 나눔으로서의 축제가 되는 것이다. 예배의 축제와 잔 치적 의미는 슐라이어막허 이해로 오늘까지 서구에서는 예배 갱신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으며, 오늘 한국교회의 예배에 있어서도 주목되어 야 할 중요한 관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4) 성격&nbsp- 개혁파교회의 예배의 특징을 브라이너는 {①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 ②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높임 ③ 순서의 단순화 ④ 공동체로서의 예배}등이 있다.
첫째로 기독교 예배는 말씀 중심의 예배인데, 이것의 특징은 설교만을 극한시켜서 생각하기 보다는 설교와 함께 성경낭독의 순서도 역시 말씀 중심의 예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높이는 예배인데, 이것은 삼위일체적인 예배로서 예전 순서의 전반부에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 는 부분이 형성되고 있는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높이는 예배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의 ㄱ욱 과 위엄과 영광을 높이는 것이다.
세째로,기독교 예배는 자유적 예배인데, 우리는 의식에 의존하되 그 의식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아니하는 자유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서 결코 순서를 무시한 무질서한 예배를 뜻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네째로, 기독교 예배는 공동성의 예배인데, 예배는 언제나 공동체와 만남에 의해서 이루지는 것이다. 때문에 예배는 공동의 역 활자를 필요로 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즉 예배의 참여자인 회중,사회자,설교자,기도자,성가대,지휘자,반주자,예배 안내자,헌금 위원 등의 여러 봉사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사회자나 회중이나 어떤 역활을 맡은자도 모두 예배 드리는 자란 사실 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로, 기독교 예배는 조화적 특징을 가진 예배인데, 예배 순서 각각은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나타내며 그의 인자 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며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우리와 교제하시는 하나니으로서 조화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어 떤 순서가 더 가치있고,덜 가치적이란 종속적인 의미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전체에 하나님의 말씀에 직,간접적인 표현으로서 통일성 을 이루면서도 개개의 순서는 독립성을 지닌면서 하나의 화음으로 즉 하나님의 영광에 조화되어야 할 과제를 뜻하는 거이다. 이것은 어 디까지나 각자의 역활에 준비되고 다듬어진 것으로 정성을 다하여 역활을 하게 될 때에 성령의 은혜 안에서 이루어질 조화를 뜻한다 고 할 수 있는 것이다.

5. 예배의 구성 요소와 순서에 배열에 대한 원리
1) 예배의 구성 요소&nbsp-  핸들러(O.Haendler)는 {예배의 요소란 예배 의식을 통하여 예배가 이루어 지게 해야 하는 기능을 뜻하며, 그 의식의 유기적 결합을 위한 예배 사건을 구성시켜주는 형식과 기능을 뜻한다}고 말하고 있는 데, 개혁주의 교회는 예배의 구성 요소에 대하여 하이델베르그 신앙 문답서&nbsp103문의 대답에서 밝혀주고 있는 것처 럼  ,{말씀}과 {성찬},{기도와 봉사(구제)}등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이것은 종교 개혁자 칼빈의 제네바 신앙문 서 제&nbsp183문에서도 비슷한 것을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비슷한 것들이 제시되고 있다.

   ① 하나님의 말씀 
예배의 전체적인 요소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말씀 중심 예배라고 할 때에 그것 은 모든 순서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가지고 직접 또는 간접적 으로 표현되는 것을 뜻하는데, 성경 봉독,설교,사죄의 선언과  시 편 찬송, 신앙고백, 그리고 송영 등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성경 낭독은 설교 내용의 본문 낭독이기 보다는 초대교회에서부터 행하였던 사복음서 가운데서와 사도 서신서 가운데 서 발췌 형식에  의존하여 순수한 예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청을 순서를 갖어야 한다}고 정일웅 교수는 강하게 강조하고 있 다.  이것과 관련하여 폰 알렌(Von&nbspAllmen)은 이 모든 순서들은 교육적 선포라고 말하고 있다.

   ② 성찬(주의 만찬) 
주의 만찬은 원래 초대교회 예배의 중심적인 사건이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유발시키고 믿음을 강화하 는 수단이라면 성찬은 주님과의 교통과 연합을 나타내는 예배의 실제적인 목표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말씀은 지적인  이해 의 접근이 중심이라면 성찬은 정서적이며.신비적인 그러면서 신앙의 실제적이며,동적인것을 이끌어 내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 로 로마카톨릭이 성찬을 예전의 중심에 세웠던 것은 옳았다. 다만 그들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말씀의 들음없이 행하려한 것의 실수라 고 할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고 다시금 에전의 중심이 되게 했다는데 역사적 의의를 갖는 것이 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다시금 말슴의 종교개혁적인 의의를 지나치게 설교하나에만 국한시킴으로서 또 다시 에전에서 말씀 과 성찬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딜레마를 앉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③  기 도 
예배에서 기도는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 할 것이다. 기도의 신학적인 본질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영광 을 높이는 일에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기도라고 할 때 흔히 단순한 우리의 인간적인 필요를 하나님께 간구하고 아뢰는 것으로 생각한 다.  그러나 기도는 인간의 간구만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를 위한 찬양과 감사로서의 영광의 찬양이 포함된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도의 이해를 우리는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에서 예를 찾을 수 있는데, 주기도문은 기독교의 예배 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본보기적인 것이라고 할 것이다.

   ④ 교제(친교) 
예배에서 교제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요, 하나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의 순서는 크게 두 가지 말씀과 성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말씀 중심의 예전에서 요구되는 교제의 부분은 역시 봉헌과 광고의 그 중심을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봉헌 은 우리의 가진 모든것이 주의 것임을 인정하고 우리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에 대한 작은 표현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헌신 의 결단,주님에 대한 자기 헌신의 적극적인 표현으로 본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이러한 정신을 상실할 때 그 헌금은 의미를 잃어버리 게 되는 것이다.  광고시간은 역시 성도의 범사의 소식을 나눔으로서 한 마음이 되고 서로 기쁨과 고난에 참여하는 주요한 교제의 요 소가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 시간에 등록한 교인이나 그 주일 예배에 새로운 신자들을 환영하는 순서를 행하고 있는 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친교와 교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고 할 수 있다.

2) 예배 순서 배열의 원리
첫째로 말씀 중심의 예배의 형식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예배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전제할 때에 말씀 중심 의 예배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즉 하나님과 인간과의 만남과 대화인데 인간의 찬송,감사,간구를 통하여 반응하 는 것이다.
특별히&nbspE.Lang의 예배 구성의 이론에 따르면 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죄의 사면이 있는 데, 예전의 참여자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행위를 인식하고(죄고백/용서의 선언)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와 영광을 찬양하는 것으로 묘사 되어야 될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예배는 먼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하며 그 죄의 용서에 대한 은혜 아래서 하 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② 언약의 청위의 관계인데,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변함없 는 사랑에 감사하는 것과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 씀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며, 그 말씀의 위로와 언약을 청취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위로와 은혜 안 에서 우리의 영호니 새롭게 되며 믿음이 강화되어 새로운 삶의 희망을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③ 헌신에 의한 선교의 사명에 대한 것 인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실천적 사역에 자신을 헌신함과 봉사의 결단을 갖도록 다짐하는 것으로 묘사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그의 도우심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와 간구가 요청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삶 속에서 향상 동행하심 의 확신과 신뢰를 가지게 해야 한다. 그리고 예전의 순서들은 이러한 요소의 기본 원리에 적합하게 배열하고 순서의 근거구조는 객관 적 요소와 주관적 요소(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관계)의 조화있는 관계로 나타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nbsp61-11과 눅&nbsp5:1-11의 내용을 근거로 해서 말씀 중심 예배의 목표오하 그 구성 요소형태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설망한 것이다.

둘째로, 성례 중심의 예배가 있는데, 세례와 성찬이 함께 진행되는 예전을 말한다. 성찬 예배의 신학적인 중요성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임재와 구원의 은혜의 기억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고 영원한 만찬의 관계에서 의미가 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말씀 중심의 예배와 함께 진행될 때에는 예배의 세번째 부분인 헌신과 감사의 부분에 연결하여 진행하는 것이 이상적이 다. 특히 예배에서의 헌금의 순서를 진행하고 난 후에 사도신경의 고백과 함께 성찬의 찬송을 부르고 성찬제정을 대한 말씀을읽고 성찬 의 의미를 인식하도록 강론,권면한 수 설령 임재의 간구와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에 분명 분잔을 시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 론 그때마다 기도를 드리는 것은 당연하다. 집례할 때마다 적절한 말씀으로 적절한 성귀와 말씀으로 낭독하는 것이 좋다. 집례 후 에 그리스도의 희생적 은혜에 대하열 감사하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참여한 모두가 어떤 삶을 살야할 것인지에 대한 각오와 결단 을 갖도록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아울러 세례 및 유아세례는 언제든지 베풀도록 하는 것이 좋고 성인 세례는 성찬을 베풀 떼 맞추 어 거행한다. 정규예배 시간 전에 시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회중이 모인 시간에 거행해야 한다.

6.세례와 성찬의 신학적 의미
세례와 성찬을 성례라고 하는데, 이것은 {신비 또는 비밀}이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① 하나님의 임재에 있 다. 즉 예수는 그리스도로 오신 성육신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성례는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의 표시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이것 은 성령의 임재를 뜻하는 것이다. ② 은혜의 수단이라는데 있다. 즉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여기서 경험하는데, 그것은 독생자 그 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경험이다. 그러므로 성례는 가시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③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는 공동 체적 의미이다. 즉 성례는 하나님의 역사와 활동의 상징적인 수단으로서 참여한 모두는 그리스도와 하나님됨에 동참하는 것이며, 하나님 과 연합하는 신비로운 은혜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1) 세례의 본질적인 의미와 신학 : ① 예수님의 가르침에 있는데다(마&nbsp2819, 눅&nbsp16:16),② 세례의 전제 조건은 {내적인 회개와 예수와 그의 복음을 믿어야 하는 일이다} 즉 세례는 물로 씻 음을 의미하는 것인데, 인간의 죄에 대한 씻음이다. 물론 물 자체가 죄를 씻는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례에 임하는 자 는 자신이 죄임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피가 죄인으로서 자신을 용서하셨음을 받아들이고 그가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믿음 안에서 신 뢰로 응답으로 그 세례에 임하는 것이다. ③ 이것과 함께 세례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 몸에 연합함을 뜻하는 것이다. 세례에 임하 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이며, 택한 바든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새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 님의 부르심과 택함을 입은 자로서 역시 그리스도의 몸에 지체의 관계로서 연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례는 신비적인 사건이다 (골&nbsp2:11,고전&nbsp12:13) ④ 그리스도인 됨의 증표와 공동체(교회)에 속함의 의미를 지니고 있 다. 이것은 개인의 영적인 돌봄과 상담적인 의미에 있다. 즉 세례 받은 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공동체에 하나되는 자격을 얻게되는 것 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증거가 된다. 따라서 세례를 받지 아니하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며 교회를 통한 권 리와 의무수행에 책임이 부여되지 못한다.

2) 유아세례&nbsp- 유아세례는 부모의 신앙에 근거하여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알고 믿음 안에서 자라도록 기독 교 신앙의 가르침과 양육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계약의 원리(언약)에 근거하고 있으며,예정(선택) 혹은 중생 의 교리를 전제아래에서 유아세례를 주되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가르쳐야 하며,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과 함께 자 주 기도회와 주일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신앙의 본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모로서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 고 유아세례를 받게 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아울러 교회에서는 이들을 신앙으로 교육시켜야 한다.

3) 입교(견신례)&nbsp- 견신례는 성찬의 접근에 대한 준비이다. 그리고 성찬에 대한 각자의 준비는 작은 모습으로서 견시의 반복적인 것이다.

4) 성찬&nbsp-  주의 만찬은 원래 초대교회 예배의 중심적인 사건이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 을 유발시키고 믿음을 강화하는 수단이라면 성찬은 주님과의 교통과 연합을 나타내는 예배의 실제적인 목표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 로 말씀은 지적인  이해의 접근이 중심이라면 성찬은 정서적이며.신비적인 그러면서 신앙의 실제적이며,동적인것을 이끌어 내는 수단 이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로마카톨릭이 성찬을 예전의 중심에 세웠던 것은 옳았다. 다만 그들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말씀의 들음없 이 행하려한 것의 실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고 다시금 에전의 중심이 되게 했다는데 역사적 의의를 갖는 것이 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다시금 말슴의 종교개혁적인 의의를 지나치게 설교하나에만 국한시킴으로서 또 다시 에전에서 말씀 과 성찬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딜레마를 앉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7.교회력 사용에 대한 의미와 가치
첫째로, 기독교 예배는 교회력과 깊은 관계가 있는데, 교회력은 그리스도인들의 규칙적인 신앙생활의 시간표로서 의미를 가지 고 있다. 즉 교회력은 교회의 에배를 통하여 유기적으로 성장하였는데, 교회력의 생성과 의미들은 아직도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 것 도 많이 있지만, 그리스도 중심의 월력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의 출생(강림)의 준비와 함께 시 작되어 마지막 종말의 심판의 주일에 끝나도록 되어있다.
① 주일(7일의 시작)&nbsp- 매주일은 부활 예배인데 이것은 년중에 한 번 맞이하는 부활절과 관계된다. 우리 는 주일의 반복되는 주간의 리듬 안에서 먼저 예수의 부화의 사건은 기억되는 것이며, 동시에 부활의 주님이 말씀과 성찬을 통하여 그 의 회중 가운데 함께 임하심으로 그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즉 주일은 주님의 날인데, 이 날을 예배로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 가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신데,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첫날에 빛을 창조하신 것과 같이 서로 일치하는데서 의미를찾는 다. 빌의 날인 일요일에 그리스도인들은 축제일로 행사 즉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또한 그날이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 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주일 축하는 그리스도의 부활 승리에 대한 기억이다.(행&nbsp20:7계1:10,고 전&nbsp16:2)
② 사순절(40일 금식기도) 및 고난 주간&nbsp- 부활절을 기준으로 해서 그 전날들은 예수의 죽음의 기억과 함께 금식하는 절기가 전개된다.
③ 부활절(부활절의 년중 축제 / 예수의 대속의 죽음의 기억과 그의 부활을 통한 죽음의 승리)&nbsp- 유대인 은 유월절로 지키지만 개신교회에는 춘분이 지난 만월 첫 주일(3월&nbsp22일에서&nbsp4월&nbsp25 일 사이에 지킨다)
④ 승천일&nbsp- 예수의 승천일
⑤ 오순절(성령의 강림절/&nbsp50일간)&nbsp- 부활의 축제
⑥ 삼위일체(28주간)&nbsp- 종교개혁 / 추수감사절(10월 첫째주) / 회개의 날 / 영생의
   주일(죽음/심판/영생)
⑦ 대강절&nbsp- 성탄일의&nbsp4주전에 매주일마다 강림의 의미를 살려 주님의 초림과 재림을 준비하 는 의미의 날로 지킨다. 첫번 강림은 대개&nbsp11월 마지막 주일부터 시작하는데 두번째,세번째 강림 주일로 부른 다. 이 네번째 강림 주일이 지나면 성탄을 맞이한다.
⑧ 그리스도의 탄생(12월&nbsp25일)  / 서방교회에서는&nbsp1월&nbsp6일을 현월주일(동방박사들이 방문한 날)로 지키고 있다.

둘째로, 교회력에 사용된 색갈은 절기를 상징하는 의미을 지니고 있다.
① 흰색(순결,거룩,위험,영광,즐거움 : 신성한 색갈로서 성탄절일 밤에서 시작하여&nbsp1월&nbsp6 일 현현절까지,고난주간의 예수가 잡히신 날,부활절에세 승천일까지 그리고 삼위일체 주일고 그후 세번째 주일까지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 져 있다),빨강색(하나님을 향한 열심,충성,자기 희생,순교,감사,찬양,기도, 성령 등을 상징하는 색상으로서 성령강림절,종교개혁일 (주일), 교회 봉헌일,선교사 파송일 등에 사용되었다)
② 녹색(번영과 성장,훈련과 교육을 상징하는 생명의 풍성함을 나타낸 색상으로 이해한다. 현현절 이후에서 금식주일 전전주일까지 그리고 삼위일체 후 추수감사절까지 사용한 것이다.)
③ 보라색(애도,참회,절제,경건,준비 등을 상징하는 색상으로서 성탄전 강림주일(대강절),사순절,고난주간,회개와 기도일 등에 사용된 것임)
④ 검정색(슬픔과 저주와 죽음을 나타내는 상징의 색상으로 사용되었다. 고난주간 금요일과 토요일에 사용함)

* 참고 / 일주일간의 매일에 대한 예전적 의미
1. 일요일 : 빛의 창조의 날/주님의 부활의 날
2. 월요일 : 세상의 일터로 나아감(파송)
3. 화요일 : 시험의 날,영적 투쟁의 날
4. 수요일 : 주간의 중심일,삶의 주변과 이웃을 생각함
5. 목요일 : 성만찬과 하나님의 백성
6. 금요일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생각함 /고난의 기억
7. 토요일 : 그리스도의 무덤에서 쉼을 기억/ 심판과 구원과 삶과 세상의 마지막을
            기억.

8.한국교회 예배의 문제점에 대한 자세와
  대한
한국교회는 모이는 일에 열심일 뿐만 아니라 예배하는 일에 열심을 가진 교회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모임은 언제나 예배 와 함께 시작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너무 자주 행하는 예배 때문에 실제로는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하겠는데, 항상 하는 일 이기에 우리의 예배는 습관화되고 형식화되는 경향을 지니며,예배 본래의 의도와 목적에서 벗어난 모습을 지니게 되는 위험을 가지고 있 는 것도 사실인데, 첫째로,한국교회는 예배관의 문제이다. 즉 주일 공 예배만이 예배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예배라는 것 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롬&nbsp12:1-2)  둘째로,예배와 예배 요소의 불균형이다. 즉 말씀으로서 예배와 성 례로서의 예배가 서로 균형이 맞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째로, 예배의 공동성의 결여 문제가 있는데, 성직자나 평신도,예배 인도자 나 설교자,그리고 회중 모두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자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가 대두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예배신학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거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배 순서의 기본적 인 형태와 구조의 문제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갖고 갱신할 수 있어야 한다.
{랑에}(E.Lange)는 언약 갱신의 축제 또는 축하 행위라고 전제하면서 주일의 공예배와 일상생활로의 삶의 예배와 연결시 키기 위해 예배의 기본구성 요소를 신앙의 증언과  신앙 고백으로 규정(증언과 고백은 말씀 중심과 성찬 중심의 에배를 뜻함)하고 말 씀 중심의 예배 순서 진행의 기본 구조라고 할 수 있는 예배 형태의 틀을&nbsp3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 다. 즉 ① 죄의 사면의 부분 ② 하나님의 말씀의 언약의 부분 ③ 파송의 부분이 있다. 이것은 에배의 전반부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 양하는 부분으로서 이  부분에는 죄고백과 용서의 선언이 중심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두번째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 곧 그의 언약 가 운데서 말씀을 들음과 함께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시간이 이루어짐을 뜻한다. 세번째 부분은 그 말씀 가운데서 우리가 세상에서 행해 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상기하고 실천을 위한 우리의 헌신의 결단이 그 중심을 이루어야 하며, 동시에 모든 성도들을 세상 가운데 로 파송하는 의미가 표현되는 부분이다.(사&nbsp6장 )

{랑에}(E.Lange)는 그의 글에서 기독교의 예배를 언약의 새롭게 함의 사건으로 강조하면서 예배는 기능적 관계에서 이해해야 하는 두가지 근본요소를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는 증거요, 둘째는 신앙고백이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증거란 예배의 중심을 이루는 설교를 뜻하는 것이며, 신앙고백은 성찬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동시에 성찬은 그 자체가 또한 그리스도를 증거한다고 한다고 사실을 밝히고 있다.
랑에는 예배의 의미와 그 본질을 지금까지 교회의 공적사건으로만 이해하던 관점을 뛰어넘어 일상의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된 것 으로 곧 삶으로서의 예배를 이해하게 하려하고 있다. 주일 예배와 그리스도인의 일상과의 관계엣 보는 예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 에 의하면 예배의 기능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리스도 언약의 빛 속에서 인간의 삶의 일상적 실제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능역을 갖게 해주 는데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이해는 오늘날 우리의 예배가 공예배와 삶의 예배에 일치점을 갖지 못하는 문제 극복에 지혜를 줄 뿐 아 니라 예배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