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nbsp20:1-17)

헷셀 포도의 십계명 강해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흑인 하인과 같이 바다 낚시를 갔습니다. 저녁나절, 돌아오면 서 피곤해진 주인은 그 하인에게 말하기를 "모터보트의 키를 잡고 있으라, 그리고 저기 보이는 북극성만 보고 달리면 우리 집에 당도 하게 된다. 그동안 난 잡좁 자야겠다" 그러면서 방향타를 하인에게 잡게 했습니다. 한참 있다가 하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주인을 깨우 며 말하기를, "주인님, 주인님, 이 보트가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북극성을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다른 별을 가르쳐 주세요!"
이처럼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이 십계명을 오랜 옛날 사천 여 년 전에 주신 말씀이라 지금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렇 게 말을 합니다. 이런 움직임은 교회의 세속화에 심각한 부채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배도 북극성을 앞질러 갈 수 없는 것 처럼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주신 십계명을 앞질러 갈 윤리와 도덕은 없습니다.
유명한 신학자이며 설교가인 [크리소스톰]은 말하기를 "성경은 정원이며 십계명은 그 안에 있는 최고의 꽃이다. 성경이 연회장이라면 십계명은 그 안에 있는 큰 접시다."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은 율법의 핵심으로 선민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께 대한 가장 깊은 종교적 계율과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도덕적 의무 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또한 십계명은 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오고 오는 세대의 만민에게 선포하신 것으로 인간이 준수해 야 할 근본적인 계율(戒律)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을 바르게 이해하고 믿는 것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풍요함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산 위에서 주신 율법으로서 시내산에서 직접 모에세게 주셨고 영화 [십계]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불 가 운데서, 구름 가운데서, 흑암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주셨습니다. 또 모든 회중에게 주셨고 하나님이 직접 두  돌 판에 써서 주셨습 니다.
그런데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 (신&nbsp5:6)라고 하시면서 먼저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특별한 관계를 갖고 계심 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여 선민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 은 우리에게 칭하시기 전에 먼저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을 주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1. 십계명을 주신 때와 장소
400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아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향해 행군을 계속하였습니 다. 출애굽 직후에 하나님이 베푸신 초자연적인 홍해의 이적을 체험하고, 만나와 메추라기의 은혜를 받으며, 므리바의 갈증을 호렙 산 반석을 통하여 해갈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아말렉 전투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체험하며 고된 행진 을&nbsp3개월 째 계속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르비딤을 떠나 시내광야에 이르러 시내산 앞에 장막을 쳤습니다.(출 19:2,3)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시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그 산에서&nbsp40일 동안 지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두 돌비에 새겨진 십계명을 받았습니다.(출19:18)

2. 십계명을 주신 분
모세는 누구로부터 두 돌 비에 새겨진 십계명을 받았습니까? 본문&nbsp1절에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 라사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라고 하는 이 말씀은 십계명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 이 주신 것임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⑴ 자존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본문&nbsp2절에 "여호와"라는 말은 "자존자", "영원자"라는 의미로 그 참뜻은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로 영원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계4:8)
출애굽기&nbsp3장&nbsp13절에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데, 이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고 하였습니다.
이 십계명은 바로 자존자가 되시는 스스로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상대적인 존재라면 하나님 의 윤리와 법도 상대적일 젓이며, 영원한 법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영원히 계시는 절대하신 분이므로 하나님 이 주신 십계명도 절대한 윤리요 법도입니다.

⑵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본문&nbsp2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고 하였습니 다. 이 표현은 십계명이 구속사적인 기초를 갖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십계명은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법으로 얽어매고 구속하 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법이요, 사랑의 윤리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십계명은 구원받기 위 한 자들에게 주시는 법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주시는 삶의 규범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명에 앞서 그 풍성한 구속을 주신 구 원자이십니다.

⑶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본문&nbsp2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고 하였습니다. 이 는 창세기&nbsp15장&nbsp13절과&nbsp14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 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 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 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성취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나',와 '너'라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종되었던 우리 사이를 개인적인, 그리고 인격적 인, 계약의 당사자로 인정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다"라고 언약하시며 십계명을 주 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은혜의 계명이며, 사랑의 계명입니다.

3. 하나님이 계명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⑴ 구속받은 백성의 새 삶을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나왔지만 영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나 도덕적으로 살아갈 표준이 없었습니 다. 그래서 이들은 광야생활 가운데서 거듭 거듭 애굽을 동경하여 생각하고 과거 종의 생활 습관에 젖어서 새 백성의 삶을 살지 못하 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우뢰와 번개, 나팔소리, 연기, 지축을 흔드는 진동, 불꽃가운데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십계명은 애굽 의 산물이 아니고, 시내산에서 그들의 새 삶을 위해서 주신 삶의 규범인 것입니다. 죄악의 곳에서 탈출을 했지만 갈 바를 알지 못하 는 연약하고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은 가나안을 향해 가는 새 백성의 지침서이며 생의 나침반 과 같은 것입니다.

⑵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의 실천을 위해서입니다.
십계명은 친히 하나님께서 두 돌 판에 기록해서 주신 것입니다.(출24:12,&nbsp31:18) 그래서 십계명 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집니다. 첫째부분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의무이며, 둘째 부분은 인간이 인간에 대한 의무를 강조하는 계명입 니다. 십계명의 대략적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 둘째 계명에서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요 그 하나님은 영이신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넷째 계명에서는 하나니은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는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계명에서는 손아래 사람은 손윗사람을 존경 곧 자녀들이 부모님을 공경해야 함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계명에서 아홉째 계명까지는 이웃의 생명, 정조, 재산, 명예를 소중히 여겨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열째 계명에서는 행위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이웃을 침해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다시 요약하면,&nbsp1계명에서&nbsp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종교상 성도의 의무이 며,&nbsp5계명에서&nbsp10계명까지는 인간에 대한 윤리상 율법을 지키라는 성도의 의무입니 다. 이&nbsp10계명 속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가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멸의 신앙이 있습니다. 곧 첫째 돌 판 은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의무이고, 둘째 돌 판은 인간이 인간에 대한 의무입니다. 

그런데 칼빈은 말하기를 "첫째부분은 하나님께 경배하는데 관계되는 것, 즉 종교적인 책임들을 말하였고, 둘째 부분은 인간 관 계에 있어서 구제와 사랑의 책임을 말한 것이다. 그 첫째 돌 판은 인간에 있어서 경건성을 개발하는 방법을 가르치며, 둘째 돌 판에 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함으로써 인간이 이웃과 동포와 인류 전체에 관계함에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를 가르처 주고 있다"고 하였습 니다.
[칼빈]의 말대로 이 십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 교과서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선지자와 율법의 대 강령입니다.(마22:37) 이 율법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완성되었는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순 종과 택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래서 이 십계명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 스도를 닮아 가는 것은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에 순복하며 그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것입니다.

4. 십계명은 받은 대상 
십계명을 받은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을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 나님의 선민이 될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이며 인구도 많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이 이스라엘 을 택해서 구속해 주시고 속량해 주시고 축복해 주셔서 아브라함을 주시고 그 자손이 바닷가 모래알 같이 많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도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과 비밀에 의한 것입니다. 요&nbsp15:16에 의하면 "너 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 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 굽 시키신 하나니은 물론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낸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모세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노 예 생활에서 자유를 주신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 자신을 왜 이렇게 소개하신 것입니까? 그들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 를 회상케 하고 그 은혜에 보답케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십계명을 왜 두 돌 판에 주셨습니까?
하나님은 왜&nbsp10계명을 두 돌 판에 주셨습니까?  기독교는 오래된 종교로서 우리의 의무가 양면성인 것을 말 해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인생은 누구에게나 하나님을 향한 종교적 의무가 있고, 인간을 향한 도덕적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 도들은 성령을 통하여 교통하고 서로 사랑하며 빛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nbsp7:21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 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빛이 언제 나타납니까? 십자가가 있는 곳에만 빛이 있고, 수직과 수평이 만날 때와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 가 통할 때입니다. 그러나 십계명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없이 선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윤 리는 마치 화병의 꽃과 같고 또 하나님을 떠난 법은 힘이 되지 못합니다.  
세상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는데&nbsp3가지 는 삼각함수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것은 ① 양심과 ② 법과 ③ 하나님 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의 양심만 깨끗하면 법이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양심이 무시당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법권이 없 는 검사와 같습니다. 또 법이 강력하기만 하면 사회의 모든 악을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은 어떻습니까? 악은 법 보다 더 영리하여 온갖 꾀와 수단으로 법망을 뚫고 나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없는 양심은 힘이 없고, 하나님이 없는 법은 눈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이시 고 하나님은 공의의 재판장이십니다. 그래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또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심 는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둡니다. 의를 심는 자는 의 를 거두고, 죄를 심는 자는 죄를 거둡니다.(갈&nbsp6:8)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듯이 상선벌악은 하나님 의 제정하신 심판의 법입니다. 

4. 십계명을 받은 우리의 자세
⑴ 우리가 십계명을 지킬 당위성은 무엇입니까? 
십계명은 성도가 지킬 법입니다. 법은 혼돈이 아니라 질서입니다. 창세기에서 천지창조 이전의 모든 것은 혼돈이고 시간입니 다. 하나님은 위로 궁창을 만드시고 아래로 바다와 육지로 정돈하셨습니다. 공허한 하늘에 해, 달, 별, 새들, 육지에는 생물로 바 다는 물고기로 채우시고 어둠을 밤, 빛을 낮이라 칭하셨으며 마지막에 있는 인간을 지으시고 이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래 서 혼돈과 흑암이 없어지고 빛과 질서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정돈, 분별, 질서, 법입니다. 그러므로 법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입니 다. 
마&nbsp7:23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불법이라는 말은 헬라어 로 "아노미야"(      )란 말인데 "죄"라는 뜻입니다.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불법을 행하 는 이스라엘을 그래도 사랑하사 법을 주셨습니다.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시고 갈보리 산에서 예수님을 통해 십계명을 주셨 습니다. 

⑵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습니까? 
감사와 사랑을 가지고 십계명을 지킴으로 보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는 그들의 태도 는 출&nbsp20:18에 말씀하시고 "떨며 멀리 서서","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라는 심정으로 십계명을 받아야 합니 다. 그렇다면 감사와 사랑으로 십계명을 받아야 할 그들이 왜 두려워하고 떨었습니까?  여기에서 죄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공 포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공포는 죄의 산물이며 또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롬&nbsp623)  하나님의 권능 앞에 서 죄는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로 "주여 나를 사망에서 건지소서!"라고 고백하고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 도 출&nbsp20:19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길 두려 워하며, 또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면 죽을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복음에서는 어떻습니까? 떨면서 듣는 복음이 아 니라 감사하면서 받아들이는 복음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누리는 축복은 어떻습니까? 히&nbsp10:19-22에서 처 럼 우리는 예수님의 힘을 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습니다. 엘리사처럼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 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만민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는 은총 의 복음인 것입니다. 
첫째로, 거룩함과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의 선포에 앞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목전에 나아가기 전 이틀동안 모든 외부적인 더러움을 성결케 하라 고 하였습니다.(출19:20) 이 사실은 하나님의 율법을 대하기 위해 우리 자신이 얼마나 성결케 해야만 하는지를 교훈해 주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산은 거룩한 산으로 누구도 삼가 가까이 나오지 못하도록 경계를 두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율법을 주시 려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경외심과 율법의 거룩성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 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이 하나님의 거룩성 앞에 감히 설 수도 없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불러 그 들의 중재자와 해석자가 되어 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출20:18,19). 중재자 모세가 필요했듯이 우리도 율법의 중재자이시오 완성자 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을 듣고 준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마음의 돌 비에 새겨야 합니다.
모세가 산으로 올라갈 때 하나님은 두 돌판에 친히 손가락으로 쓰신 율법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이 돌 판은 우리의 마음을 의 미하는 것입니다. 아더 핑크는 이에 대해서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은 본성적으로 너무나 단단하여 하나님의 손가락 외에 어떤 것 도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율법을 새길 수 없는 것임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 두 돌 판이 모세의 거룩한 분노에 의하여 깨뜨려져(출 32:19) 하나님께서 재차 그 돌 판을 쓰셔서 만드셨습니다.(출34:1) 이는 창조 시에 우리의 마음속에 새겨진 자연적 율법 이 아담 안에서 우리가 타락할 때 깨어지고, 중생할 때에 우리의 마음속에 다시 쓰여짐을 나타낸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새로 태어날 때마다 율법을 그들의 마음 속에 직접 쓰셨습니다(렘31:33, 겔 36:26-27). 예수님은 이 십계명에 대한 언급에서 구약의 돌 비에 새겨진 율법이 신약시대에는 더 깊은 우리 마음의 문제로 취 급하시면서 율법의 고귀한 정신을 강조하셨습니다. 오늘의 시대에 십계명을 받은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이 말씀을 기록하여 되새김질하 면서 살아야 합니다.

셋째로, 순종해야 합니다.
때때로 현대의 많은 신자들이 율법에 대한 순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이유는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심으로 이 율법이 완 전히 폐지되지 아니했는가? 왜 구약의 캐캐묵은 율법으로 은혜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우려 하는가? 하는 것입니 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 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안에서 율법의 도덕법이 폐지되었습니다. 칭의에 있어서 계명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 로 됩니다. 도덕법의 저주와 정죄도 폐지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다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요 19:30, 갈3:13)

그러면 율법에 대한 순종이 필요 없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도덕법으로는 구원에 이르지는 않으나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으 로 구원을 얻은 자는 이제 적극적으로 계명이 요구하는 도덕법을 준행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행위계약이나 정죄 역할로서의 율 법의 순종이 아니라 생활의 규율과 성결의 수단으로서의 율법의 순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은 십계명을 시대에 맞지 않은 골동품과 우리를 얽어매는 쇠사슬 같이 생각하고 이 십계명을 무시하거나 멀 리합니다. 그러나 이 십계명은 신학자 [우드]의 말처럼 소극적으로는 인간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의 자녀들의 온전한 삶 의 규범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현대 교회와 성도들의 타락은 십계명을 사랑하고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십계명은 세 상 속에 성도의 바른 삶을 제시해 주며,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봉사자로 우리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계명 을 거룩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마음의 돌 비에 새겨 날마다 되새김질하여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계명은 새로운 법으로서 은총의 법이요, 생명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 없이 구원은 없습니 다. 십계명을 주신 이유가 바로 구원에 있습니다. 따라서 십계명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판단이며 교훈, 규례, 법도로서 성도의 본분 을 나타내 줍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산상 수훈을 주시고 모세를 통해서&nbsp10계명을 주셨으므로&nbsp10계명은 구약의 산상수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는&nbsp10계명을 잘 지켜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