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사&nbsp63:16,마&nbsp6:9)
 
주기도문의 첫 부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기도의 모델로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가 하나 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은 기도의 대상 하나님과 기도하는 그의 백성과의 관계를 선언하는 중대한 의미가 있 습니다. 즉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모든 죄와 형벌(刑罰)이 가려지고 하나님 나라 의 의로운 백성을 새롭게 탄생된 거듭난 대상뿐입니다(요&nbsp3:1-8)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을 하나 님의 자녀로 호칭하면서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는 호격 명사)라고 부를 수 있다고 강조하였 습니다(롬&nbsp8:15-16)
따라서 주기도문은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과 자신과의 정상적인 관계 곧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만이 구원받은 사실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생명, 재산, 명예 등)이 달려 있음을 고백하는 진실한 찬양이요, 신앙 표 시인 것입니다. 

&nbsp1.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 확인해 합니다.
주기도문의 첫 시작이 "우리 아버지"로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위치 확인인 동시에 모든 기도의 내용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첫째 부분은 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청원"과 ②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이 루어지기를 소원하는 청원과 ③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결국 첫째 부분은 아버 지 되신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을 생애 최고의 기쁨으로 삼겠다는 하나님 자녀들의 진실된 삶의 자세가 내포되 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의 둘째 부분의 세 가지 청원 역시 하나님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① 현재의 삶에 필요한 양식이 아 버지로부터 공급됨을 고백하며 ② 과거의 허물과 죄의 용서가 아버지로부터 이루어지며 ③ 장차 미래의 삶에 있어서의 모든 시험과 악으 로부터 구해 주시고 안전하게 돌보아 주실 분도 역시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주기도문의 둘째 부분의 내용입니다. 
이처럼 주기도문의 여섯 가지 청원(기원)은 자신의 삶이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 손에 달려 있으며,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 혜와 자지를 통하여 자신의 삶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웃에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알리는 생애가 되기 를 소망한다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막연히 기도 시간이나 예배 시간에만 암송하는 암송 어귀나 주문이 아니라 자 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고백하며 사는 실재적인 삶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의 첫 부분의 시작이 "우리 아버지"로 구성된 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심의 부분에 올바르 게 위치해 놓음으로써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향하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써 자신의 모든 기도와 간구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이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반대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성령 의 다스림을 받는 자신의 생활 속에서 성취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거룩한 삶이 계속되기를 소원하는 의지적인 신앙고백인 동시 에 하나님의 모든 다스림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순종과 복종의 표시인 것입니다. 

2. 기도는 능력과 권세가 충만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으시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시작하신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이것 은 기도란 하나님을 향해서 드리는 것임을 교훈 하시는 것입니다. 이방 종교는 태양, 달, 자연현상이 기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 만 우리는 모든 기도의 대상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늘에 계시지만 하늘에만 계신 분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 나님은 전 우주에 충만히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역대하&nbsp2:6에서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 여 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치 못하겠거든..."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하늘 에 계신다"라는 하나님께서 거처(居處)하시는 장소의 말씀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 편&nbsp115:1-4의 말씀은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표시하는 말을 "하늘에 계신"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 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초월하시어 피조물 위에 계시며 인간에게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으로서 능력과 권세가 충만하신 하나님이 심을 "하늘에 계신"이라고 표현하여, 이 전지 전능(全知全能)하신 분이 우리의 기도의 대상임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의 의미는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 서 이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끔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대통령에게 역사의 주권 이 잡혀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때로는 아 주 앞선 과학이, 경제가 역사의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세상 의 역사, 이 세상의 생명은 어떤 철학도, 어떤 사 상도, 어떤 이데올로기도 아닌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전체의 내용을 역사의 주인이, 이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란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주기도의 제일 마 지막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는 말인데 현재가 드리는 주기도문의 형태에는 있습니다. "(대개) 나라 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즉 이것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하나님의 것이란 말입니다. 나라와 권세 와 영광이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절대 신앙을 의미합 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생은 나의 손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생명, 나의 삶, 우리의 생명, 우리의 삶, 이 역사와 인류의 미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에게 그 권위가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인간의 큰 착각은 역사가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의 큰 착각은 우리의 역사가 인 간의 손에 달려 있다는 착각입니다. 예수 님은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불렀습니 다.

 사실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을 향해서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예 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죄인(罪人)임으로 하나님께 감히 기도 드리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贖罪)에 의 해 우리가 용서함을 받았으므로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결국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 린다는 말이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근원이요 역사의 주인이시다"란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3. 기도는 우리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버지"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가 "생명의 기원으로서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이것 은 한 아이의 출생과 그 출생의 결과로 성립되는 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우리 기독교만이 갖는 독특한 신 (God)에 대한 개념은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고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아버지 사상입니다.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 로 인한 불편한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회복되어 화목과 친밀함과 사랑의 영원한 관계가 이루어져 이제는 하나님과 인간 이 함께 만나고 긴밀한 교제를 나눈다는 차원에서 하나님은 구원받은 사람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의 랍비들은 이스 라엘의 진정한 아버지는 이스라엘 백성은 낳은 조상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고 양육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쳤 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육을 창조하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창&nbsp27)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의 아버지가 되셨다는 사상은 구약 성경의 한 주제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가장 큰 긍지와 자랑으로 여기고 그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헌신을 다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사&nbsp64:8)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시라"(렘&nbsp31:9)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의 자녀들이라"(신&nbsp14:1)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냐"(신&nbsp32: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nbsp...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사63:16)

첫째,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 세계를 자신으니 삶 속에 연결하는 친밀감 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천국에 계시지만 또한 땅과 하늘을 포함하여 어디든 그의 영광으로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의 아버지로서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 계셔서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심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구하 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아시고 우리의 간구에 의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다정하신 아버지이십니다(마 6:7) 

둘째,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다는 믿음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심판과 용서(회개하는 자에 대한)를 확신케 해 줍니다.  죄 에 대해 심판하시는 아버지는 회개에 대해 용서해 주시는 자비의 아버지이십니다. 탕자의 비유(눅&nbsp15장)에 나타난 하 나님의 모습 곧 집을 나간 아들이 집에 돌아오기를 매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 니다. 

셋째,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다는 생각은 하나님께 자녀된 도리로서 마땅히 순종해야 할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 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게 됩니다(요일&nbsp5:2) 

넷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고백은 인류의 형제애(兄弟愛)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 신 "나의 아버지"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이웃에 대해 관심을 나 타내야 할 의무를 가르쳐 줍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우리의 이웃들도 모두 우리의 형제인 것입니다. 따라서 주기도문 을 시작하는 순간 편협한 민족주의, 인종주의, 계급 차별, 출빈지방,선호사상,파벌주의 등은 분명하게 배격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 가 주기도문을 따라 기도하면서 이웃과 형제와 특정인을 미워한다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하여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기 확인을 해야 합니다. 아물러 기도는 권세와 영광이 충만하신 하나님 께 드리는 것이며,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의 주인이시며, 삶의 주인이 신 아버지의 통치를 받는 존재임을 고백하되 기도의 내용대로 살 수 있도록 몸부림이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