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nbsp3계명"(출&nbsp20:4-6)     
                                             
들어가는 말
1계명은 예배의 대상에 대한 것이고,제2계명은 예배의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즉 제1계명은 그 예배가 신령과 신정일 것 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요&nbsp4:24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찌니라"고 말씀했습니 다. 이 말씀은 예배드릴 때 의식이나 형식으로 하지 말고 눈가림이나 거짓으로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게명 즉 참 하나님을 참되게 섬 기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아 다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예배하도 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배 없이 우리의 믿음이 자랄 수 있겠습니까?  얘배 없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 영으 로 예배할 때만이 피조물된 우리는 가장 큰 의무를 다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행&nbsp10:25-26에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 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예배의 대상이 없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성령이 활 동하시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제2계명이 금하는 것은 우상입니다. "우상"은 허무하다,텅비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꼭 있어야 할 생명이 없습니다. 알맹이 나 내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은 어떻습니까?  우상 숭배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우상을 섬기는 자에게 자신 뿐 아니 라 삼사대까지 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신학자 오리겐과 유대 역사가 요세프스는 십계명의 골자가 '우상 곧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거기에 절하지도 말고 섬기지 도 말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종교적 그림이나 조각을 금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에서는 법궤에 상징적인 그림 을 그렸고 성막 안에 장식을 많이 했습니다.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이 금하는 것은 그것들을 예배의 대 상으로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아론이 금 송아지를 만들어서 그것을 여호와라고 햇습니다. 여러보암 왕 때에는 하나님을 송 아지로 만들어 섬기다가 그후로 바알을 우상으로 섬겼고 여인들은 담무스 앞에서 애곡하였습니다. 천주교회에서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경 배하는 것도 우상입니다. 레&nbsp261에 보면 십자가를 향해 기도 들는 것도 우상입니다. 에스 겔&nbsp8:7 이하에서 보면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 담에 구멍이 나 헐고 보니 우상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 이 각각 그 우상에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령과 진정을 떠나면 예수를 믿으면서 점을 치러 다니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제물의 신을 섬깁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사랑하시는 것을 질투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신이십니다. 남녀의 경우처럼 우상 숭배는 영적인 간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분노가 질투로 표현되고 있습니 다. 슥&nbsp2:8에서 "하나님은 택한 자녀를 눈동자 같이 사랑하십니다."고 했고,아가서 전부가 신랑되신 하나님이 우리 를 신부처럼 사랑하시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호&nbsp3:3에서는 "다른 남자를 좆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내 의 순결이 더럽혀질까 염려하는 남편의 질투입니다. 왜 질투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를 너무도 뜨겁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과 성도의 관계는 신랑 신부의 관계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에서 떠날 때 하나님은 노하시고 질투하십니다. 이 질투는 사랑에 대 한 하나님의 아픔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상선 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상 숭배하면 벌하시고 하나님만 사랑하면 축복해 주십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르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 지 이르게 하거니와"라고 말씀하고 있고,"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 다. "천대까지의 은혜"에서 우리는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멘튜헨리는 "하난미으 진노의 잔은 물방울 같지만 하나님의 자비의 샘은 넘쳐 흐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왓 슨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하여 많은 종류로 나뉘고 있습니다. 막ㄷ아주시는 자비,아껴 주시는 자비,공급해 주시는 자비,인도해 주시 는 자비,고쳐 주시는 자비,살려 주시는 자비,용서해 주시는 자비,위로해 주시는 자비,건져 주시는 자비,축복해 주시는 자비입니다. 

그런데 이 자비와 은혜를 받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곧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서도는 천대 자손까지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구제보다 강하고 이적보다 강하고 죽음보다도 강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디는 "고전&nbsp13장대로만 살면 세계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사랑이 그 토록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고전&nbsp13장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방언은 굉장하고 천사의 말 은 얼마나 신비스럽습니까?  그러나 방언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올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했습니 다.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오래 참을 수 있는 힘이고,사랑은 온유한 사람 으로 만드는 힘이고,사랑은 자랑하지도 않고,교만하지도 않고,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 유익을 구치 않고 성내지 않고 약한 것을 생각 치 않게 만드는 힘입니다. 불의한 것을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게 기뻐합니다. 

물론 우리의 힘으로는 계명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부족하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을 행할만한 힘이 없 고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만,하나님의 능력으로 만 선을 사랑하고 전도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상의 형상들은 많은 방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로마의 박해로 카타콤에 숨어 살면서 성경에서 빌어온 기호를 많이 사요하였는데 예를 들면 순진 무죄를 표 시하기 위하여 비둘기를 그렸고,교회는 배로,승리는 종려나무 가지로,소망은 닻으로,갈급한 심령은 사슴으로,성도의 교제는 포도나무 와 열매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점차 이러한 습성이 인간의 감정에 호소하고자 하는 폐단이 생깁니다. 즉 금욕자들은 가슴에 심자가를 붙이고 다니며 숭 배하였고,중세 때에는 십자가 위에 마리아와 요한의 상까지 섞어 그렸습니다. 이렇듯 인류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많 은 제단을 만들며 죄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만 죄는 미워하며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의 백성이 되려면 먼저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롬&nbsp6:23에서 "죄 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즉 흑암이요,절벽이요,죽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 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복음이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괴테는 "인간은 신으로부터 선하게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만물 중에서 인간을 가장 사랑하셨습니다. 그리 고 땅을 정복하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 고 창&nbsp3:6에 의하면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고 기록되어 있습 니다. 롬&nbsp512에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 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 때문에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되었습 니다. 롬&nbsp3:10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 있고,롬&nbsp3:23에서는 "모든 사 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의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나 선악과를 따 먹은 것입니다. 행&nbsp17장에서 바울이 아덴으로 갔을 때 분을 품었던 이유도 아덴시대에 우상이 너무도 많았기 떼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으로 인간의 죄를 깨끗케 할 줄로 알았습니다. 우상이 그들에게 신령한 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 나 바울은 행&nbsp17:25에서 "하나님만이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라고 외쳤습니다. 
물론 구약 시대에는 그 하나님께 직접 예배할 수가 없었고 하나님께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 나 히&nbsp10:19-20에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 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라고 있는데,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감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사랑도 구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 은 에수님을 중심한 순수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에 예수 대신에 그 어떤 것도 끼어서는 안됩니다. 신령과 진정 대신에 외식이 있 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중생 문제,구원 문제는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참아도 못하고 오직 구주 예수를 믿음으로 이루어지 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계&nbsp3:2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 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할 때는 예수님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어 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더불어 먹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먹어야 합니까?  생명의 꽃과 영혼의 양식입니 다. 히&nbsp4:12에도 살아 있고 운동이 있고 혼과 영과 관절,골수를 찌르고 쪼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고 말 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예배는 강연이나 집회 는 될 수 있어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nbsp3:5에서 "탐심은 우상 숭배니 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탐심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정욕,쾌락,명예,물질 등등.... 위선도 일종의 탐심입니다. 선한 것처럼 꾸미고 은혜받은 것처럼 꾸미고 경건한 생활을 하 는 것처럼 꾸밉니다. 성도들의 가장 혼한 질병이 딤후&nbsp3:5에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된다"라 고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능력없는 모양 뿐인 생활입니다. 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능력이 되게 예배드려야 합니 다. 내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 보좌를 움직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