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음
김근수 목사(한울교회)

  
 ▲ 김근수 목사 
요절: 야고보서 1장 5~8절

야고보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는 의심의 기도(6절)와 정욕의 기도(약 4:3)가 아니라 반드시 응답받는 “믿음의 기도(약 5:15)”를 하라고 계속하여 교훈 한다. 두마음을 품고 기도한들 주께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다. 이를 위하여 “두 마음(8절)”을 경계한다.


1. 두 마음 
바리새적인 이중인격자, 이중생활자에게는 기도의 응답이 없다. 마음에 믿음과 의심이 공존하는 사람은 “믿음이 적은 자(마 6:30)”이다. 이같은 사람은 항상 밤잠을 설치며 세상의 염려에 사로잡힌다. 뿐만 아니라, 마음에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는 사람도 있다. 곧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이 같이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두 주인을 섬기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두 세계의 공존을 부정하셨다. 하나님과 재물의 신인 “맘몬”을 섬길 수는 없다. 바울 사도께서도 신앙과 불신앙, 순종과 불순종이 공존할 수 없으며, 진실과 거짓, 성전과 우상은 같이 설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이 두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요동하는 물결”같이 정함이 없는 사람이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 같은 사람을 정죄하였다.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호 10:2)”고 말씀하였다. 그러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두 마음을 버리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2. 단 마음 
두 마음을 버리고, “단 마음(엡 6:7)” 곧 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하여 신앙적 결단을 분명히 해야 한다. 여호수아는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든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고 신앙의 대상을 분명하게 했다. 엘리야 선지자는 기회주의 신앙인들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왕상 18:21)”고 신앙의 결단을 요구했다. 야고보는 언행일치를 언제나 강조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약 4:8)”고 먼저 마음의 세계를 다스리도록 권고 한다. 악한 모든 것이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고 하였다.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실천하지 않으면 회칠한 무덤같이 안팎의 다른 바리새적 인격의 소유자가 되고 만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7)”고 하였다.

신앙생활은 언제나 이것이냐 저것이냐 결단이 요구된다. 두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상대할 수는 없다. 신앙의 대상과 목적, 신앙의 인격과 활동을 한결같이 함으로써 “단 마음”을 소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