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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학교 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이한수 박사, 화제의 책/ 신약 성경에 담긴 십자가 영성을 찾아서... 펴내
<편집자 주>
하비 콕스는 21세기를 가리켜 영성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굳이 콕스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최근 교계에서 주목받는 최고의 화두는 단연 영성이라는 단어다. 이런 시대적인 흐름에 부응해서 영성신학의 방향성을 제시해줄만한 귀한 책이 나와 학계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화제의 책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인 이한수 박사께서 발간한 <신양 성경에 담긴 십자가 영성을 찾아서>(솔로몬)이다.
본서에서 돋보인 것은 개신교에서 아직도 용어 채용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는 영성이란 말을 서슴없이 사용함으로써 영성신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개혁신학에 입각해서 설립된 본보에서는 저자 인터뷰를 통해서 개신교의 영성을 성경적으로 정립하는데 도움을 주려고 한다. 한편으로 개혁주의 영성이 학계에 자리잡는데 기여하기 위해 인터뷰 시간을 마련했다/ 세상의 빛, C-포커스/ 편집인
<저자 프로필>
중앙대학교 철학과를 거쳐, 총신신학대학원 석사과정을 받았다. 영국 Aberdeen 대학 신약학 석사.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취득를 취득하였다. 현재 총신신학대학원 교수로 있다. 그리고 현재 목회신학전문대학원 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브라질 아마존 우너주민 복음화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왔고 수년전부터 '아마존개혁신학교'를 설립하여 현지 목회자 후보생들을 양성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비유와 해석학>, <불트만의 신약해석학>, <바울신학연구>, <그리스도인과 성령>, <바울서신의 메시지>, <누가 예수의 제자인가>, <갈라디아서>, <신약은 성령을 어떻게 말하는가>, <로마서1>, <언약신학에서 본 복음과 율법> 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신약신학>, <바울과 예수>가 있다.
송삼용 목사/
이번에 너무 귀한 책을 출간하시게 되어 축하드립니다. 흔히 한국교회에 십자가가 사라졌다고들 합니다. 부흥을 사모하는데 십자가가 없고, 십자가가 사라지고나니까 영향력도 사라졌다고도 합니다. 이 박사님께서 십자가 영성을 신학적으로 조명하게 되신 배경이나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한수박사/
백여년 간 한국교회는 세계의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해왔지만 최근 주변에선 한국교회가 세속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번에 출간한 제 책에서 저는 한국교회의 위기를 ‘십자가 복음의 부재현상’이라고 진단한 바 있습니다. 십자가는 세상과 기독교, 참 기독교와 거짓 기독교를 구분 짓는 정체성을 가늠하는 핵심적인 표지입니다. 제가 최근에 출간한 [십자가 영성을 찾아서]란 책은 성경 저자들이 기독교인의 영적 생활의 근본 성격을 십자가 사건과 관련해서 어떻게 해설하는지를 밝히고자 했습니다. 초대교회가 이런 저런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성경 저자들이 십자가 복음을 통해 어떻게 그것을 돌파하고 극복하고자 했는지가 이 책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필자는 이점에서 최근 세속화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교회가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해서 책을 출간하게 된 것입니다.
송삼용 목사/
한국 교회에서 <십자가 영성>이란 말은 아직은 생소한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끔 영성을 강조하는 분들이 <십자가 영성>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만, 이 박사님께서는 <십자가 영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지요?
이한수 박사/
모든 단어는 역사성을 갖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영적 생활과 관련하여 성경에서 자주 쓰이는 술어는 영성이 아니라 경건이란 단어이지요. 영성이란 단어가 최근에 한국교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세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경건이라고 하면 어딘지 좀 시대에 뒤떨어진 술어인 것처럼 느껴질 만큼 최근 교회들도, 심지어 신학교도 경건대신 영성이라는 단어를 앞다투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성훈련이니 영성신학이니 하는 말까지 유행을 타고 있습니다.
문제는 신약 저술들 가운데 사용되는 경건이란 단어도 본래는 세속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던 술어였는데 신약 저자들이 그것을 기독교화시켜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생활을 정의하는 독특한 술어로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일전에 국립묘지에 갔더니 그곳에서도 ‘호국영령들에게 엄숙하고 경건하게’란 표어를 쓴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세속 사회에서도 경건이란 단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어떤 단어가 성경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보다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 저자들이 세속 헬레니즘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던 경건이라는 단어를 기독교화시켜 기독교인의 존재와 삶을 정의하는 중요한 술어로 사용한 것처럼, 영성이란 단어도 한국교회가 어떻게 기독교화시켜 기독교인의 존재와 삶을 정의하는 중요한 단어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역사는 무수한 단어들이 생성하고 발전하다가 쇠퇴의 과정을 겪는 시간적 공간이고, 단어들마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면 영향력을 확대하여 널리 사용되다가도 사람들에게 덜 사랑을 받으면 도태하고 사라져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영성이란 술어가 경건 개념보다 좀 더 폭넓은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상응하는 새로운 삶을 지칭한다면, 영성은 하나님을 올바로 체험하는 삶,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인격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신자의 내적인 삶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그런데 경건이든 영성이든 그것이 기독교인의 존재와 삶을 나타내는 참 개념이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 사건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만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그와 올바른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성령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 속에 재현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의 모습을 닮지 않은 신자의 생활을 영성의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송삼용 목사/
장로교 신학 특히 칼빈 신학에서는 "영성"이란 말 자체를 사용하기 꺼려하는 입장인데 이 박사님께서 개혁신학에 바탕을 둔 학자로써 "영성"이란 용어를 사용하셨다는 점에서 한국교회의 영성신학의 방향성에 이정표가 될 만한 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 박사님께서는 개혁신학에 있어서 영성신학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한수 박사/
한 때 총신 신대원 교수회도 학생들의 신앙훈련을 책임진 부처를 ‘경건훈련원’으로 할까 아니면 ‘영성훈련원’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영성이란 말이 아무래도 중세 수도원의 신비주의적이고 체험적인 색채가 많다고 생각해서 전자로 명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회가 그런 고민을 한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요즘 중세 수도원에서 유행했던 영성 수련방식이 무분별하게 도입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중세 시대에 관상기도가 수도승들의 영성 수련방식으로 널리 사용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영성이란 술어는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좀 일방적입니다.
단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미 한국교회가 영성이라는 말을 널리 사용하여 보편화된 상황에서 경건이란 술어만이 성경적 술어라고 하는 것은 경건 개념의 세속적 배경을 모르는 처사입니다. 신약 성경의 수많은 단어들이 세속 헬레니즘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던 단아들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단어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가, 그 의미가 성경의 핵심적 교훈에 부합하는가에 있지 않을까요?
물론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경건 개념을 선호하고 영성 개념을 기피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런 기피 현상은 당대의 그릇된 중세 수도원적 영성 개념의 배경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칼빈은 한 때 인문주의 공부를 한 자로서 기독교 신학을 정립할 때 인문주의적 학문방식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성이란 단어가 최근 한국교회에서 기독교인의 존재와 삶을 정의하는 중요한 단어로 부상을 했다면 그것이 개혁주의 신학전통에 부합하도록 의미 부여를 해서 사용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이 본래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지식과 그것에 기초한 새로운 신자의 삶을 지향한다면, 십자가 사건이 개혁주의적 영성을 기초하는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계시된 가장 결정적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예수의 십자가 죽음 속에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계시되었다면 그것을 체험하는 것이 신자의 영적 생활의 출발점이요 그 사랑의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신자의 영적 생활의 지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혁주의는 본래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지식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그 지식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의 변화를 창출하는 원동력이라고 믿는 신학입니다. 참된 지식과 변화된 삶의 균형성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종교개혁자들이 지향했던 비전이요 꿈이었습니다.
송삼용 목사/
<신약 성경에 담긴 십자가 영성을 찾아서>에서 이박사님께서 한국 교회에 말씀하시고자 하신 핵심적인 내용을 몇가지로 요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한수 박사/
신약의 저자들은 십자가 사건을 단순한 과거사건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전적인 십자가 신앙은 예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2천 년 전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지만, 그들은 십자가 사건이 어떻게 나의 현재적 구원과 삶을 가능케 하는 실존적인 사건인가를 설명하는 데 더 관심이 많습니다.
신약 저자들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 속에서 발견해낸 영적 의미들은 매우 다양하지요. 마가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신자들이 본받아 할 섬김의 표상을 발견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십자가 사건에서 나의 옛 사람의 죽음과 하나님을 향한 새 삶의 시작을 발견했구요, 요한은 십자가 사건을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된 사건으로 이해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십자가 지혜야말로 세상의 지혜를 무효화시키는 논쟁의 무기라고 생각했으며, 그는 또한 십자가 복음에서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는 유대교의 무익성을 분쇄하는 영적 논리를 발견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 사건을 세상의 헛된 삶의 방식에서 대속한 구원사건으로 이해했습니다. 요한 사도는 십자가 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살아가는 것이 십자가 공동체의 핵심 표지로 생각했으며,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고난 속에서 세상 세력들과 싸워 이기는 참된 승리의 공식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신약 저자들이 십자가를 이해하는 방식이 어찌 이것뿐이겠습니까? 다만 위에서 열거한 내용들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여전히 귀담아 들어야 하고 본받아야 할 교훈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약 저자들의 이러한 십자가 교훈들을 제쳐두고 어떻게 참된 영성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송삼용 목사/
한국교회의 신학 현실은 연구에 집중할 형편이 아니라는 것은 공공할만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박사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집필 활동을 해 오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할 일이구요, 앞으로 다른 집필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한수 박사/
당분간 쉬려고 합니다. 다만 앞으로 더 쓰고 싶은 책들이 있다면 이제는 학술적인 글들이 아니라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글들을 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송삼용 목사/
한국교회의 영성의 현실을 보시면서 한 말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한수 박사/
요즈음 한국교회에는 중세 수도원적 영성 수련방식을 좋아하는 복고주의적 현상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중세 수도원적 영성 수련방식에는 오늘날 한국교회도 본받음직한 요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때로 중세 수도승들처럼 너무 신비주의적인 신과의 합일체험을 추구하다보면 주관적 체험주의에 빠져 오히려 영적 생활을 위축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비한 경험이 있으면 무언가 얻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그런 경험이 없으면 참된 영적 생활이 금방 위축이 되어 감정의 파고에 따라 사람의 영적 생활이 흔들릴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지식이며, 그것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둔 지식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체험하는 사람의 삶에는 반드시 그에 부합한 삶의 변화가 동반되어 나타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삶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사변적 지식은 공허한 것입니다.
성경은 늘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사람에게 삶의 새로운 변화를 나타내도록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삶에는 감성의 새로운 변화도 동반되어 나타나게끔 되어 있지요. 참된 영성은 감성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체험하는 데서 나타나는 기쁨과 감격의 감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 정, 의의 균형이 잘 담보된 영성의 모습이 한국교회에 나타났으면 하는 것이 본인의 바램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편집자 주>
하비 콕스는 21세기를 가리켜 영성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굳이 콕스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최근 교계에서 주목받는 최고의 화두는 단연 영성이라는 단어다. 이런 시대적인 흐름에 부응해서 영성신학의 방향성을 제시해줄만한 귀한 책이 나와 학계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화제의 책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인 이한수 박사께서 발간한 <신양 성경에 담긴 십자가 영성을 찾아서>(솔로몬)이다.
본서에서 돋보인 것은 개신교에서 아직도 용어 채용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는 영성이란 말을 서슴없이 사용함으로써 영성신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개혁신학에 입각해서 설립된 본보에서는 저자 인터뷰를 통해서 개신교의 영성을 성경적으로 정립하는데 도움을 주려고 한다. 한편으로 개혁주의 영성이 학계에 자리잡는데 기여하기 위해 인터뷰 시간을 마련했다/ 세상의 빛, C-포커스/ 편집인
<저자 프로필>
중앙대학교 철학과를 거쳐, 총신신학대학원 석사과정을 받았다. 영국 Aberdeen 대학 신약학 석사.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취득를 취득하였다. 현재 총신신학대학원 교수로 있다. 그리고 현재 목회신학전문대학원 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브라질 아마존 우너주민 복음화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왔고 수년전부터 '아마존개혁신학교'를 설립하여 현지 목회자 후보생들을 양성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비유와 해석학>, <불트만의 신약해석학>, <바울신학연구>, <그리스도인과 성령>, <바울서신의 메시지>, <누가 예수의 제자인가>, <갈라디아서>, <신약은 성령을 어떻게 말하는가>, <로마서1>, <언약신학에서 본 복음과 율법> 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신약신학>, <바울과 예수>가 있다.
송삼용 목사/
이번에 너무 귀한 책을 출간하시게 되어 축하드립니다. 흔히 한국교회에 십자가가 사라졌다고들 합니다. 부흥을 사모하는데 십자가가 없고, 십자가가 사라지고나니까 영향력도 사라졌다고도 합니다. 이 박사님께서 십자가 영성을 신학적으로 조명하게 되신 배경이나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한수박사/
백여년 간 한국교회는 세계의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해왔지만 최근 주변에선 한국교회가 세속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번에 출간한 제 책에서 저는 한국교회의 위기를 ‘십자가 복음의 부재현상’이라고 진단한 바 있습니다. 십자가는 세상과 기독교, 참 기독교와 거짓 기독교를 구분 짓는 정체성을 가늠하는 핵심적인 표지입니다. 제가 최근에 출간한 [십자가 영성을 찾아서]란 책은 성경 저자들이 기독교인의 영적 생활의 근본 성격을 십자가 사건과 관련해서 어떻게 해설하는지를 밝히고자 했습니다. 초대교회가 이런 저런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성경 저자들이 십자가 복음을 통해 어떻게 그것을 돌파하고 극복하고자 했는지가 이 책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필자는 이점에서 최근 세속화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교회가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해서 책을 출간하게 된 것입니다.
송삼용 목사/
한국 교회에서 <십자가 영성>이란 말은 아직은 생소한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끔 영성을 강조하는 분들이 <십자가 영성>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만, 이 박사님께서는 <십자가 영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지요?
이한수 박사/
모든 단어는 역사성을 갖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영적 생활과 관련하여 성경에서 자주 쓰이는 술어는 영성이 아니라 경건이란 단어이지요. 영성이란 단어가 최근에 한국교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세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경건이라고 하면 어딘지 좀 시대에 뒤떨어진 술어인 것처럼 느껴질 만큼 최근 교회들도, 심지어 신학교도 경건대신 영성이라는 단어를 앞다투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성훈련이니 영성신학이니 하는 말까지 유행을 타고 있습니다.
문제는 신약 저술들 가운데 사용되는 경건이란 단어도 본래는 세속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던 술어였는데 신약 저자들이 그것을 기독교화시켜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생활을 정의하는 독특한 술어로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일전에 국립묘지에 갔더니 그곳에서도 ‘호국영령들에게 엄숙하고 경건하게’란 표어를 쓴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세속 사회에서도 경건이란 단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어떤 단어가 성경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보다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 저자들이 세속 헬레니즘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던 경건이라는 단어를 기독교화시켜 기독교인의 존재와 삶을 정의하는 중요한 술어로 사용한 것처럼, 영성이란 단어도 한국교회가 어떻게 기독교화시켜 기독교인의 존재와 삶을 정의하는 중요한 단어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역사는 무수한 단어들이 생성하고 발전하다가 쇠퇴의 과정을 겪는 시간적 공간이고, 단어들마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면 영향력을 확대하여 널리 사용되다가도 사람들에게 덜 사랑을 받으면 도태하고 사라져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영성이란 술어가 경건 개념보다 좀 더 폭넓은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상응하는 새로운 삶을 지칭한다면, 영성은 하나님을 올바로 체험하는 삶,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인격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신자의 내적인 삶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그런데 경건이든 영성이든 그것이 기독교인의 존재와 삶을 나타내는 참 개념이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 사건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만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그와 올바른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성령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 속에 재현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의 모습을 닮지 않은 신자의 생활을 영성의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송삼용 목사/
장로교 신학 특히 칼빈 신학에서는 "영성"이란 말 자체를 사용하기 꺼려하는 입장인데 이 박사님께서 개혁신학에 바탕을 둔 학자로써 "영성"이란 용어를 사용하셨다는 점에서 한국교회의 영성신학의 방향성에 이정표가 될 만한 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 박사님께서는 개혁신학에 있어서 영성신학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한수 박사/
한 때 총신 신대원 교수회도 학생들의 신앙훈련을 책임진 부처를 ‘경건훈련원’으로 할까 아니면 ‘영성훈련원’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영성이란 말이 아무래도 중세 수도원의 신비주의적이고 체험적인 색채가 많다고 생각해서 전자로 명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회가 그런 고민을 한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요즘 중세 수도원에서 유행했던 영성 수련방식이 무분별하게 도입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중세 시대에 관상기도가 수도승들의 영성 수련방식으로 널리 사용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영성이란 술어는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좀 일방적입니다.
단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미 한국교회가 영성이라는 말을 널리 사용하여 보편화된 상황에서 경건이란 술어만이 성경적 술어라고 하는 것은 경건 개념의 세속적 배경을 모르는 처사입니다. 신약 성경의 수많은 단어들이 세속 헬레니즘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던 단아들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단어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가, 그 의미가 성경의 핵심적 교훈에 부합하는가에 있지 않을까요?
물론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경건 개념을 선호하고 영성 개념을 기피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런 기피 현상은 당대의 그릇된 중세 수도원적 영성 개념의 배경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칼빈은 한 때 인문주의 공부를 한 자로서 기독교 신학을 정립할 때 인문주의적 학문방식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성이란 단어가 최근 한국교회에서 기독교인의 존재와 삶을 정의하는 중요한 단어로 부상을 했다면 그것이 개혁주의 신학전통에 부합하도록 의미 부여를 해서 사용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이 본래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지식과 그것에 기초한 새로운 신자의 삶을 지향한다면, 십자가 사건이 개혁주의적 영성을 기초하는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계시된 가장 결정적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예수의 십자가 죽음 속에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계시되었다면 그것을 체험하는 것이 신자의 영적 생활의 출발점이요 그 사랑의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신자의 영적 생활의 지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혁주의는 본래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지식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그 지식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의 변화를 창출하는 원동력이라고 믿는 신학입니다. 참된 지식과 변화된 삶의 균형성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종교개혁자들이 지향했던 비전이요 꿈이었습니다.
송삼용 목사/
<신약 성경에 담긴 십자가 영성을 찾아서>에서 이박사님께서 한국 교회에 말씀하시고자 하신 핵심적인 내용을 몇가지로 요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한수 박사/
신약의 저자들은 십자가 사건을 단순한 과거사건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전적인 십자가 신앙은 예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2천 년 전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지만, 그들은 십자가 사건이 어떻게 나의 현재적 구원과 삶을 가능케 하는 실존적인 사건인가를 설명하는 데 더 관심이 많습니다.
신약 저자들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 속에서 발견해낸 영적 의미들은 매우 다양하지요. 마가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신자들이 본받아 할 섬김의 표상을 발견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십자가 사건에서 나의 옛 사람의 죽음과 하나님을 향한 새 삶의 시작을 발견했구요, 요한은 십자가 사건을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된 사건으로 이해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십자가 지혜야말로 세상의 지혜를 무효화시키는 논쟁의 무기라고 생각했으며, 그는 또한 십자가 복음에서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는 유대교의 무익성을 분쇄하는 영적 논리를 발견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 사건을 세상의 헛된 삶의 방식에서 대속한 구원사건으로 이해했습니다. 요한 사도는 십자가 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살아가는 것이 십자가 공동체의 핵심 표지로 생각했으며,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고난 속에서 세상 세력들과 싸워 이기는 참된 승리의 공식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신약 저자들이 십자가를 이해하는 방식이 어찌 이것뿐이겠습니까? 다만 위에서 열거한 내용들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여전히 귀담아 들어야 하고 본받아야 할 교훈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약 저자들의 이러한 십자가 교훈들을 제쳐두고 어떻게 참된 영성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송삼용 목사/
한국교회의 신학 현실은 연구에 집중할 형편이 아니라는 것은 공공할만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박사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집필 활동을 해 오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할 일이구요, 앞으로 다른 집필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한수 박사/
당분간 쉬려고 합니다. 다만 앞으로 더 쓰고 싶은 책들이 있다면 이제는 학술적인 글들이 아니라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글들을 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송삼용 목사/
한국교회의 영성의 현실을 보시면서 한 말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한수 박사/
요즈음 한국교회에는 중세 수도원적 영성 수련방식을 좋아하는 복고주의적 현상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중세 수도원적 영성 수련방식에는 오늘날 한국교회도 본받음직한 요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때로 중세 수도승들처럼 너무 신비주의적인 신과의 합일체험을 추구하다보면 주관적 체험주의에 빠져 오히려 영적 생활을 위축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비한 경험이 있으면 무언가 얻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그런 경험이 없으면 참된 영적 생활이 금방 위축이 되어 감정의 파고에 따라 사람의 영적 생활이 흔들릴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지식이며, 그것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둔 지식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체험하는 사람의 삶에는 반드시 그에 부합한 삶의 변화가 동반되어 나타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삶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사변적 지식은 공허한 것입니다.
성경은 늘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사람에게 삶의 새로운 변화를 나타내도록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삶에는 감성의 새로운 변화도 동반되어 나타나게끔 되어 있지요. 참된 영성은 감성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체험하는 데서 나타나는 기쁨과 감격의 감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 정, 의의 균형이 잘 담보된 영성의 모습이 한국교회에 나타났으면 하는 것이 본인의 바램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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