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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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영적 성장의 길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항상 어디론가 가고 있는 방랑객으로 산다. 항상 앞으로 가야만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항상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해 가길 원하는 방랑자는 지금 있는 자리에 만족하지 않는다. 만일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는 자라면, 이미 그는 방랑자가 아니다. 만일 ‘이것으로 충분해’라고 말하고 있다면 다음에 갈 곳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방랑자는 계속 걸어 앞으로 나가, 목표로 향해 가려고 시도한다.” - 어거스틴
당신은 영적으로 만족하십니까?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렸던 솔로몬이었지만, 그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내적인 만족을 느낄 방법이 전혀 없다고 고백합니다. 지식(전 12:12), 인간적인 지혜(1:16-18, 2:12-15), 엄청난 노력과 성공(2:17-23), 쾌락(2:1-2, 7:4), 성적인 만족(2:8), 재물(2:8, 5:10-16), 집과 땅(2:4-6) 같은 것들로도 사람의 내적 공허함을 채워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미국의 가장 부자 중의 한 사람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돈이 있어야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아주 조금만 더 있으면 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전도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있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바람을 쫓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전도서는 이것을 아홉 번이나 강조합니다. 1:1, 2:11, 4:4). 하나님은 인간 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311) 한순간의 쾌락으로는 영원을 추구하는 인간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인자가 생명 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시 63:3, 5).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하늘의 떡’입니다(시 105:40). 그 떡이 바로 예수님이며(요 6:41),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가르치시고 의지하도록 가르친 대로 할 때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채워지게 됩니다.
당신도 채워지길 원하십니까?
영적으로 갈증을 느끼고 있다면 그 영혼은 아직 살아있으며 희망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젊은 프란시스는 초라하고 다 무너져 가는 아시시의 성 데미안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그는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느꼈고, “나의 교회를 새롭게 하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당시 무명 인사였던 프란시스는 들었던 음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서, 무너져 가는 교회당부터 복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이 단순히 교회 건물을 보수하라는 수준에 머물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늘로부터의 사명을 받아들여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그리스도 중심적인 개혁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교회와 세상의 담을 허물어 가난한 자들과, 중세 유럽사회에서 ‘접촉해서는 안될 사람’으로 취급되었던 문둥병자들을 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프란시스의 믿기 전 모습은 타락한 망나니, 놀기 좋아하는 청년, 그의 아버지가 어렵게 번 돈을 게으른 술친구들과 낭비하는 청년이었습니다. 프란시스는 처음부터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시스의 삶은 영적인 갈증이 채워지길 원하는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보여주는 몇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1. 영적 갱신은 특별한 소수, 특히 목회자, 수도사 같은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닙니다. 영적 갱신은 아주 평범한 신앙인도 누리도록 되어있는 특권입니다. 모든 성도는 멍에의 땅, 애굽을 떠나 축복과 풍성한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2. 기독교 영성은 인간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칩니다.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영적 회복을 경험한 사람은 이웃을 섬기고 싶은 의욕이 강해집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회복된 사람은 자신을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영적 갱신을 추구하다 보면 당연히 사회의 필요와 실천까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3. 영적 갱신은 자기 부인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과 프란시스의 모습으로 계속 성장하기 원하는 성도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자기 삶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4-25).
4. 영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변화에 긍정적인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분은 살아 계시고, 역동적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입니다. 하나님께서 프란시스를 깨닫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항상 새롭고 의외의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따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신앙인은 하나님을 따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영적 세계에도 발을 딛어야 합니다. 변화는 편안하지 않지만, 진보에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5. 영적 회복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영적인 신앙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세심하게 준비되면서도,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바람직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때, 성령님의 역사는 제한됩니다. 아빌라의 테라사는 이렇게 도전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용기 있는 영혼을 찾고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내적 욕구에 대해 너무 조심스럽고, 겁을 내면 자신의 영적 운명을 다 경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적은 것만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6. 진정한 영적 변화는 공동체 안에서 일어납니다. 서구문화는 개인주의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성도간의 교제’라는 신앙 성장의 가장 중요한 기초를 무시해왔습니다.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1-22).
사랑하는 영적 지도자 여러분!
하나님과 만족한 관계를 가지고자 하는 갈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당신만의 영성 훈련 계획을 세워보십시오. 목표가 없는 사람은 성취할 것도 없습니다. 주님과 보다 깊은 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침묵, 성경 묵상, 다양한 기도 훈련, 영적 일기 쓰기를 위해 매일 삼십분 정도를 구별해보십시오. 영적 헬퍼나 친구, 멘토에게 계획을 자문 받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제 축복의 시간이 바로 여러분 앞에 와 있습니다.
국제제자훈련원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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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항상 어디론가 가고 있는 방랑객으로 산다. 항상 앞으로 가야만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항상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해 가길 원하는 방랑자는 지금 있는 자리에 만족하지 않는다. 만일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는 자라면, 이미 그는 방랑자가 아니다. 만일 ‘이것으로 충분해’라고 말하고 있다면 다음에 갈 곳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방랑자는 계속 걸어 앞으로 나가, 목표로 향해 가려고 시도한다.” - 어거스틴
당신은 영적으로 만족하십니까?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렸던 솔로몬이었지만, 그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내적인 만족을 느낄 방법이 전혀 없다고 고백합니다. 지식(전 12:12), 인간적인 지혜(1:16-18, 2:12-15), 엄청난 노력과 성공(2:17-23), 쾌락(2:1-2, 7:4), 성적인 만족(2:8), 재물(2:8, 5:10-16), 집과 땅(2:4-6) 같은 것들로도 사람의 내적 공허함을 채워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미국의 가장 부자 중의 한 사람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돈이 있어야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아주 조금만 더 있으면 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전도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있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바람을 쫓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전도서는 이것을 아홉 번이나 강조합니다. 1:1, 2:11, 4:4). 하나님은 인간 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311) 한순간의 쾌락으로는 영원을 추구하는 인간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인자가 생명 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시 63:3, 5).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하늘의 떡’입니다(시 105:40). 그 떡이 바로 예수님이며(요 6:41),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가르치시고 의지하도록 가르친 대로 할 때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채워지게 됩니다.
당신도 채워지길 원하십니까?
영적으로 갈증을 느끼고 있다면 그 영혼은 아직 살아있으며 희망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젊은 프란시스는 초라하고 다 무너져 가는 아시시의 성 데미안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그는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느꼈고, “나의 교회를 새롭게 하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당시 무명 인사였던 프란시스는 들었던 음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서, 무너져 가는 교회당부터 복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이 단순히 교회 건물을 보수하라는 수준에 머물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늘로부터의 사명을 받아들여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그리스도 중심적인 개혁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교회와 세상의 담을 허물어 가난한 자들과, 중세 유럽사회에서 ‘접촉해서는 안될 사람’으로 취급되었던 문둥병자들을 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프란시스의 믿기 전 모습은 타락한 망나니, 놀기 좋아하는 청년, 그의 아버지가 어렵게 번 돈을 게으른 술친구들과 낭비하는 청년이었습니다. 프란시스는 처음부터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시스의 삶은 영적인 갈증이 채워지길 원하는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보여주는 몇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1. 영적 갱신은 특별한 소수, 특히 목회자, 수도사 같은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닙니다. 영적 갱신은 아주 평범한 신앙인도 누리도록 되어있는 특권입니다. 모든 성도는 멍에의 땅, 애굽을 떠나 축복과 풍성한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2. 기독교 영성은 인간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칩니다.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영적 회복을 경험한 사람은 이웃을 섬기고 싶은 의욕이 강해집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회복된 사람은 자신을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영적 갱신을 추구하다 보면 당연히 사회의 필요와 실천까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3. 영적 갱신은 자기 부인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과 프란시스의 모습으로 계속 성장하기 원하는 성도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자기 삶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4-25).
4. 영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변화에 긍정적인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분은 살아 계시고, 역동적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입니다. 하나님께서 프란시스를 깨닫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항상 새롭고 의외의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따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신앙인은 하나님을 따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영적 세계에도 발을 딛어야 합니다. 변화는 편안하지 않지만, 진보에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5. 영적 회복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영적인 신앙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세심하게 준비되면서도,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바람직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때, 성령님의 역사는 제한됩니다. 아빌라의 테라사는 이렇게 도전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용기 있는 영혼을 찾고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내적 욕구에 대해 너무 조심스럽고, 겁을 내면 자신의 영적 운명을 다 경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적은 것만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6. 진정한 영적 변화는 공동체 안에서 일어납니다. 서구문화는 개인주의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성도간의 교제’라는 신앙 성장의 가장 중요한 기초를 무시해왔습니다.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1-22).
사랑하는 영적 지도자 여러분!
하나님과 만족한 관계를 가지고자 하는 갈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당신만의 영성 훈련 계획을 세워보십시오. 목표가 없는 사람은 성취할 것도 없습니다. 주님과 보다 깊은 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침묵, 성경 묵상, 다양한 기도 훈련, 영적 일기 쓰기를 위해 매일 삼십분 정도를 구별해보십시오. 영적 헬퍼나 친구, 멘토에게 계획을 자문 받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제 축복의 시간이 바로 여러분 앞에 와 있습니다.
국제제자훈련원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