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짖으며 간구하는도다

-서정오목사/ 동숭교회

시편 142 : 1~7



본문 시의 표제어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마스길, 곧 기도.’ 정확히 어떤 상황에 이 시가 쓰여졌는지에 대하여는 말할 수 없어도, 적어도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고생하던 때에 울부짖던 기도였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목숨이 경각간에 달려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면서 떨고 있던 어두컴컴한 굴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 기도입니다. 



1.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다윗이 울부짖는 첫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억울하게 죽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입니다. 병으로 죽든 사고로 죽든, 우리 인생들은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죽음은 기정사실이기에 버틸 수도 변론하고 따질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한 번은 죽는 죽음이지만, 그 죽음에는 분명한 이유, 정당한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한 번 밖에 못사는 삶이고, 한 번 죽으면 이 세상에서는 끝이기에, 그 죽음의 이유가 정당하지 못하거나, 그 죽음의 모습이 깨끗지 못하다면, 그처럼 억울할 데가 또다시 없는 것입니다. 같은 죽음이라도 아름다운 죽음이 있고, 파리 목숨처럼 의미 없이 죽는 죽음도 있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소리 내어 부르짖고, 소리 내어 간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죽지 않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영원히 살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부끄럽게 죄인의 모습으로 억울하게 죽을 수는 없지 않는가?’ 그 말입니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남을 해친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드러내고 승리하되, 현왕이 사울보다 더 찬란한 승리를 얻었다는 죄밖에 없지 않는가 그 말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도망자의 몸으로 죽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2절).”



2. 내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윗이 울부짖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아무도(nobody), 아무것도(nothing)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 우편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4절).” 인생의 역경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 모든 일을 나 혼자 다 감당해야 한다는 이 철저한 ‘고독’이 인생을 절망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승승장구, 백전백승할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주위에 몰려들었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노래하고 높여 주던 그 수많은 팬들이 이제는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물러가 버렸습니다. 이제는 내 목숨을 돌아보고, 내 문제를 풀어내야 할 사람은 나 밖에 없습니다. 조언을 해 줄 사람도, 힘을 거들어 줄 사람도 없고, 나만 남았습니다. 갈멜 산의 대승리를 거두고 난 후의 엘리야처럼, 그렇게 철저하게 나락으로 떨어져 짐승의 굴 속에서 절망한 다윗은 그래서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도움의 손길을 기대할 수 없을 때, ‘이 천지 간에 나밖에는 없다! ’고 느낄 때, 우리는 울부짖게 됩니다.



3. 갈 길을 모르겠습니다.



다윗이 울부짖는 세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이제 살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길이 막혀 버렸습니다. 나갈 수 있는 모든 길목마다에 원수들은 올무를 놓고 걸려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포위망은 점점 좁혀들고, 자기를 잡으려는 군사들의 함성소리는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도저히 살 길을 찾을 수 없는, 아무런 길도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컴컴한 동굴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나의 행하는 길에 저희가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3절).” 여기 놀라운 고백이 있습니다. ‘하나님만은 내 길을 아셨습니다(3절 상).’ 아무리 살 길을 찾고 찾아보아도 그저 올무가 놓인 죽을 길만 보이지 살 길은 보이지 않는데, 주님만은 나의 살 길을 아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는 다윗의 고백과 희원이 여기 있습니다.



4.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다윗은 자기의 처지가 아무리 절망적이고, 억울하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심지어 아무도 자신을 돕지 않고, 살 길조차 눈에 보이지 않고,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 만큼은 결코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후대(후하게 대접)하시리라’는 사실, 그래서 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셔서 장차 그 분의 선하심을 노래할 수 있도록 지켜 주시리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크게 외칩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입니다(5절).’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백성들을 붙잡으시고, 건지시고, 새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절망하지 마십시오. 내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내 길을 아시고, 그 길로 나를 인도해 주실 줄 믿고 기도의 줄을 놓지 마십시오. 주께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