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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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사는 사람
- 류철량목사/ 부천동광교회
에베소서 2 : 8~10
여행을 좋아하는 류시화 씨가 인도를 여행하며 경험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되고 형편없이 낡은 여인숙에 들어갔습니다. 여인숙 주인 노인네가 손님을 맞으며, 숙박을 결정하기 전에 방부터 둘러보라고 했습니다. 노인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는데 보여 주는 방에서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나왔습니다. 몸은 지쳐 있고 날은 저물었으니 어디 가서 방을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50루피 우리 돈으로 1,500원하는 방 값을 주고 할 수 없이 그 방에서 웅크리고 잠을 잤습니다. 자고 일어나 배낭을 열어 보니 쥐가 들어와 들쑤셔 놓았습니다. 배낭에 구멍을 내고 스웨터를 갉아 놓은 것입니다. 주인에게 항의를 할 수밖에요. 주인은 “신이 주신 성스러운 아침을 불평으로 시작하지 마시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불평한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가 있겠소.
당신이 할 일은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것이오. 나는 지금까지 20년 넘게 여인숙을 운영해 왔는데 늘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소. 한쪽은 언제나 불평을 해대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늘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요. 당신이 인도에 온 것은 여행을 온 것이지 불평을 하려고 온 건 아니잖소”라고 했습니다. 여행자는 그 노인의 말을 듣고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외국인 투숙객들은 옥상에 올라가 일광욕까지 즐기고 있는데 자기는 하루저녁 묵으면서도 불평이 많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불평꾼이 문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로 사시기 바랍니다. 은혜로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1. 은혜와 믿음
은혜로 사는 사람은 예수를 믿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8절).” 은혜란 우리가 지금 예수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믿음도 하나님께서 주셔서 믿는 것이므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혜를 받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게 된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은혜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나의 죄를 대신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것이지 나의 의로운 행위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5절)”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믿는 나로 인해서가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에 의해서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구원이고 나의 믿음은 도구입니다.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은혜도 선물이고 믿음도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믿음이 나를 구원하고 내가 믿는 대로 되게 합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예수를 안 믿고 세상을 떠나셨지만 참 착한 분이었습니다. 천당에 가셨겠지요? 여기서 분명한 것은 자기의 의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행함으로 의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셔서 의롭다고 여겨 주시면 구원을 얻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디(D.L moody)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예? 嗤?시원찮게 믿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천당에 가셨을까요?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전도는 많이 했지만 예수님 앞에 있는 생명책을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8절).” 우리는 은혜로 구원 얻은 것을 믿습니다. 그 은총을 입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 9:22).”
2. 은혜와 행복
은혜로 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은혜를 헬라어로 ‘카리스(charis)’라고 합니다. 카리스란 즐거움, 아름다움, 만족,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은혜 받은 자의 행복과 즐거움을 누린 다는 것을 단적으로 입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 은혜로 사는 사람은 실패와 좌절, 절망과 비애 같은 불운에 처하더라도 소망과 실존의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는 행복의 샘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눅 1:28)”라고 했습니다. “평안할지어다”라는 말은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기뻐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엘리사벳이 세례요한을 임신하고 마리아를 방문하고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를 영접한 사람, 예수를 잘 믿는 것입니다. 은혜 받아 은혜로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의 삶이 최상의 삶입니다. 은혜란 제한 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죄의 용서를 받고, 생명에 들어가고 기쁨과 평안을 맛보고,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하나로 묶는 힘이 있습니다. 주님과 연합하고 형제와 하나가 되게 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 3).” 은혜는 연합하게 합니다. 의견과 판단이 하나가 되게 합니다. 동일한 생각을 하지 못해도 한 마음이 되게 합니다. 함께 의무를 지게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고 스루광야를 삼일 동안 걸어갔습니다. 마실 물을 얻지 못하다가 마라에 이르러 물이 있었으나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하는 백성들이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나뭇가지를 꺾어 물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나뭇가지를 쓴 물에 던졌더니 쓴 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독소를 해독? 構? 병균을 치료했습니다. 물을 고치는 은혜의 나무였습니다(출 15:2225). 마라 같은 고행의 인생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는 쓴 물을 단물로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은혜가 왕 노릇합니다. 은혜가 그 사람을 다스리니 행복합니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 5:21).” 은혜는 신비한 정복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십니다. 은혜가 나를 다스리면 어떠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행복하게 합니다.
3. 은혜와 선행
은혜로 사는 사람은 선한 일을 합니다. 은혜의 삶은 감동의 삶이요 봉사의 삶입니다. 10절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받은 은혜를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더 많은 수고를 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의 봉사와 헌신은 의무적으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빚진 자의 심정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에 압도되어 은혜의 강권하심으로 수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봉사의 열매를 맺습니다. 은혜의 삶은 자신에게는 보람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감동을 줍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이라야 봉사할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양보하고, 사랑하고, 희생합니다. 진리를 향한 용기도 관대한 포용도 소망의 담력도 발휘하게 됩니다. 은혜는 인생의! 온갖 선행의 토대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810)”라고 하셨습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찬송 141장).”“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은혜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조건 없이 다만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의 속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은혜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정신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6에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 지니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에 대해 예언하기를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사 11:3)”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으신다는 말입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히 12:15)”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쓴 뿌리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은 호전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것에도 만족이 없고 방해를 일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교회 출입은 하지만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은혜는 받았으나 은혜에 대해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은혜에 대하여 바르게 응답하여 자신에게 복이 되고 교회에 덕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롬 2:10).” 선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선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광도 명예도 평강도 누리지 못합니다. 그 마음에서는 은혜가 역사하지 못합니다. “너 선한 마음 가진 자 남 용서하며 살아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우리는 ‘참(Charm)하다’고 말합니다.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뜻입니다. ‘Charming’ 그러면 매혹적인, 마음이 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모두 은혜가 넘쳐서 챠밍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는 관대합니다.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데도 거저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관대하게 포용합니다. 은혜는 분리되고 나뉘었던 것을 결합합니다. 통일과 조화를 이루고 적대감을 화해로 일치시켜 줍니다.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마음의 부요함입니다. 그 은혜를 받아 풍요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여러분은 형통할 것입니다. 은혜 안에서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불행은 없습니다. 은혜 안에서 선한 일을 많이 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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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철량목사/ 부천동광교회
에베소서 2 : 8~10
여행을 좋아하는 류시화 씨가 인도를 여행하며 경험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되고 형편없이 낡은 여인숙에 들어갔습니다. 여인숙 주인 노인네가 손님을 맞으며, 숙박을 결정하기 전에 방부터 둘러보라고 했습니다. 노인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는데 보여 주는 방에서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나왔습니다. 몸은 지쳐 있고 날은 저물었으니 어디 가서 방을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50루피 우리 돈으로 1,500원하는 방 값을 주고 할 수 없이 그 방에서 웅크리고 잠을 잤습니다. 자고 일어나 배낭을 열어 보니 쥐가 들어와 들쑤셔 놓았습니다. 배낭에 구멍을 내고 스웨터를 갉아 놓은 것입니다. 주인에게 항의를 할 수밖에요. 주인은 “신이 주신 성스러운 아침을 불평으로 시작하지 마시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불평한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가 있겠소.
당신이 할 일은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것이오. 나는 지금까지 20년 넘게 여인숙을 운영해 왔는데 늘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소. 한쪽은 언제나 불평을 해대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늘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요. 당신이 인도에 온 것은 여행을 온 것이지 불평을 하려고 온 건 아니잖소”라고 했습니다. 여행자는 그 노인의 말을 듣고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외국인 투숙객들은 옥상에 올라가 일광욕까지 즐기고 있는데 자기는 하루저녁 묵으면서도 불평이 많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불평꾼이 문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로 사시기 바랍니다. 은혜로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1. 은혜와 믿음
은혜로 사는 사람은 예수를 믿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8절).” 은혜란 우리가 지금 예수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믿음도 하나님께서 주셔서 믿는 것이므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혜를 받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게 된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은혜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나의 죄를 대신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것이지 나의 의로운 행위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5절)”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믿는 나로 인해서가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에 의해서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구원이고 나의 믿음은 도구입니다.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은혜도 선물이고 믿음도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믿음이 나를 구원하고 내가 믿는 대로 되게 합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예수를 안 믿고 세상을 떠나셨지만 참 착한 분이었습니다. 천당에 가셨겠지요? 여기서 분명한 것은 자기의 의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행함으로 의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셔서 의롭다고 여겨 주시면 구원을 얻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디(D.L moody)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예? 嗤?시원찮게 믿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천당에 가셨을까요?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전도는 많이 했지만 예수님 앞에 있는 생명책을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8절).” 우리는 은혜로 구원 얻은 것을 믿습니다. 그 은총을 입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 9:22).”
2. 은혜와 행복
은혜로 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은혜를 헬라어로 ‘카리스(charis)’라고 합니다. 카리스란 즐거움, 아름다움, 만족,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은혜 받은 자의 행복과 즐거움을 누린 다는 것을 단적으로 입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 은혜로 사는 사람은 실패와 좌절, 절망과 비애 같은 불운에 처하더라도 소망과 실존의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는 행복의 샘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눅 1:28)”라고 했습니다. “평안할지어다”라는 말은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기뻐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엘리사벳이 세례요한을 임신하고 마리아를 방문하고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를 영접한 사람, 예수를 잘 믿는 것입니다. 은혜 받아 은혜로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의 삶이 최상의 삶입니다. 은혜란 제한 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죄의 용서를 받고, 생명에 들어가고 기쁨과 평안을 맛보고,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하나로 묶는 힘이 있습니다. 주님과 연합하고 형제와 하나가 되게 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 3).” 은혜는 연합하게 합니다. 의견과 판단이 하나가 되게 합니다. 동일한 생각을 하지 못해도 한 마음이 되게 합니다. 함께 의무를 지게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고 스루광야를 삼일 동안 걸어갔습니다. 마실 물을 얻지 못하다가 마라에 이르러 물이 있었으나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하는 백성들이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나뭇가지를 꺾어 물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나뭇가지를 쓴 물에 던졌더니 쓴 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독소를 해독? 構? 병균을 치료했습니다. 물을 고치는 은혜의 나무였습니다(출 15:2225). 마라 같은 고행의 인생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는 쓴 물을 단물로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은혜가 왕 노릇합니다. 은혜가 그 사람을 다스리니 행복합니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 5:21).” 은혜는 신비한 정복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십니다. 은혜가 나를 다스리면 어떠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행복하게 합니다.
3. 은혜와 선행
은혜로 사는 사람은 선한 일을 합니다. 은혜의 삶은 감동의 삶이요 봉사의 삶입니다. 10절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받은 은혜를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더 많은 수고를 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의 봉사와 헌신은 의무적으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빚진 자의 심정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에 압도되어 은혜의 강권하심으로 수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봉사의 열매를 맺습니다. 은혜의 삶은 자신에게는 보람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감동을 줍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이라야 봉사할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양보하고, 사랑하고, 희생합니다. 진리를 향한 용기도 관대한 포용도 소망의 담력도 발휘하게 됩니다. 은혜는 인생의! 온갖 선행의 토대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810)”라고 하셨습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찬송 141장).”“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은혜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조건 없이 다만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의 속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은혜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정신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6에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 지니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에 대해 예언하기를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사 11:3)”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으신다는 말입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히 12:15)”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쓴 뿌리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은 호전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것에도 만족이 없고 방해를 일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교회 출입은 하지만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은혜는 받았으나 은혜에 대해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은혜에 대하여 바르게 응답하여 자신에게 복이 되고 교회에 덕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롬 2:10).” 선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선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광도 명예도 평강도 누리지 못합니다. 그 마음에서는 은혜가 역사하지 못합니다. “너 선한 마음 가진 자 남 용서하며 살아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우리는 ‘참(Charm)하다’고 말합니다.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뜻입니다. ‘Charming’ 그러면 매혹적인, 마음이 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모두 은혜가 넘쳐서 챠밍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는 관대합니다.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데도 거저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관대하게 포용합니다. 은혜는 분리되고 나뉘었던 것을 결합합니다. 통일과 조화를 이루고 적대감을 화해로 일치시켜 줍니다.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마음의 부요함입니다. 그 은혜를 받아 풍요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여러분은 형통할 것입니다. 은혜 안에서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불행은 없습니다. 은혜 안에서 선한 일을 많이 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