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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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616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3:16)
여러분 중에 이런 질문을 받으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닭이 먼저입니까? 알이 먼저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의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닭이 먼저라고 말하면 알의 과정도 없이 어떻게 닭이 생길 수 있냐고 말할 것이고, 알이 먼저라고 한다면 닭이 있어야 알이 생기지 않느냐고 반박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믿는 사람들이라면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닭이 먼저라고 대답해야할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다 자란 성인(成人)으로 지음 받았음과 같이 모든 육축도 자란 상태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어린 초등학생들이 이런 어려운 철학적인 질문을 할까요? 이것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본능적으로 내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근본(根本)을 알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언론을 보면 어려서 해외로 입양되었던 아이들이 큰 다음에 모국에 있는 부모를 찾아오는 것이 아주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의 근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만물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요? 만물(萬物)의 시작을 알려면 어디에서부터 추적해 나가야 합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가야합니다. 왜냐하면 쫒고 쫒아 위로 올라가다 보면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작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창 1:1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의 유익의 위해서 세상을 만들어졌을까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이 땅에, 바로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도구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창조된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매혹적으로 들려오는 말들이 있습니다. 휴머니즘(humanism)입니다.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인본주의(人本主義)로 자기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말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꿈을 생각하라, 가치관을 명확히 하라, 목표를 설정하라,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라, 목표를 높이 설정하라,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공을 하려면 그런 말들을 반드시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말들은 성공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말들입니다.
▶ 그러면 성공한다는 것과 삶의 목표를 이룬다는 것이 한 방향(方向)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目的)을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부자와 잘 산다는 것이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돈 많이 버는 사람을 우리는 부자라고 하고, 잘 산다는 것은 돈과 상관없이 주어진 형편 안에서 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자족(自足)할 수 있는 비결을 아는 사람은 잘 살 수 있습니다. 가난(家難)해도 자족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잘 사는 사람입니다.
▶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창조된 목적에 따라서 잘 살아갈 수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어야합니다.(1절 하) 본문 1절 하반 절에서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안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안경은 사물을 더 잘 보기위해 쓰는 창입니다. 제가 안경을 벗으면 여러분이 잘 보이지 않지만 안경을 쓰면 누가 누구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영적(靈的)으로 믿음의 안경을 쓰고 있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을 위해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안경을 벗으면 어디가 동서남북(東西南北)인지 방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믿음의 강약(强弱)은 안경의 도수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려면 믿음의 안경의 도수를 정확하게 맞춰야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강약은 어떻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고 계십니까?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고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것이 믿어질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적대로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합니다.(딤후 3:14) 딤후 3:14의 말씀처럼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된 목적을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민 생활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일본 문화와 언어와 생활에 하루빨리 적응하는 것입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했습니다. 왜 빨리 일본에 적응하지 못하고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할까요? 일본에 대해 알려고 하는 마음이 적기 때문이고, 직접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알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실력자는 누구일까요? 어디에 머무르든지 빨리 적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깨달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말씀을 많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열정을 갖고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계신가요? 내 머리카락까지 세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마 10:30) 나의 과거와 현재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까지도 다 알고 계신다고 하십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내가 혼자 있을 때에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다 알고 계신다고 하십니다.(시 1391-3) 이 얼마나 대단한 사랑과 관심입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아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이해하고 계십니까? 말씀을 알아갈수록 부족하고 갈급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내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고, 훈련의 과정을 다 마쳤고, 어느 정도 직분을 갖고 있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말씀의 생수를 깊이 사모하는 자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품이 되려면 말씀과 삶이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물(創造物)로서 진정한 걸작품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해 비추어져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 속에서 묻어나오는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된 목적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마치 몸에 향수를 뿌린 사람과도 같습니다. 풍겨 나오는 향기를 막을 수 없듯이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비춰지고 예수의 향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 자체가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합니다. 마이크가 소리를 멀리까지 들리게 해주는 기능을 상실하면 더 이상 마이크가 아니고 고철덩어리가 되듯이 우리가 아무리 말씀을 많이 알아도 삶이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 기능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창조된 처음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 삶으로 떠나는 질문
1. 지금까지 당신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2. 그 목적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하나님의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인가?)
3. 어떻게 하면 삶이 내 것임을 주장하는 어지러운 광고들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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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3:16)
여러분 중에 이런 질문을 받으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닭이 먼저입니까? 알이 먼저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의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닭이 먼저라고 말하면 알의 과정도 없이 어떻게 닭이 생길 수 있냐고 말할 것이고, 알이 먼저라고 한다면 닭이 있어야 알이 생기지 않느냐고 반박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믿는 사람들이라면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닭이 먼저라고 대답해야할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다 자란 성인(成人)으로 지음 받았음과 같이 모든 육축도 자란 상태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어린 초등학생들이 이런 어려운 철학적인 질문을 할까요? 이것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본능적으로 내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근본(根本)을 알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언론을 보면 어려서 해외로 입양되었던 아이들이 큰 다음에 모국에 있는 부모를 찾아오는 것이 아주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의 근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만물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요? 만물(萬物)의 시작을 알려면 어디에서부터 추적해 나가야 합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가야합니다. 왜냐하면 쫒고 쫒아 위로 올라가다 보면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작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창 1:1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의 유익의 위해서 세상을 만들어졌을까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이 땅에, 바로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도구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창조된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매혹적으로 들려오는 말들이 있습니다. 휴머니즘(humanism)입니다.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인본주의(人本主義)로 자기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말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꿈을 생각하라, 가치관을 명확히 하라, 목표를 설정하라,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라, 목표를 높이 설정하라,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공을 하려면 그런 말들을 반드시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말들은 성공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말들입니다.
▶ 그러면 성공한다는 것과 삶의 목표를 이룬다는 것이 한 방향(方向)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目的)을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부자와 잘 산다는 것이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돈 많이 버는 사람을 우리는 부자라고 하고, 잘 산다는 것은 돈과 상관없이 주어진 형편 안에서 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자족(自足)할 수 있는 비결을 아는 사람은 잘 살 수 있습니다. 가난(家難)해도 자족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잘 사는 사람입니다.
▶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창조된 목적에 따라서 잘 살아갈 수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어야합니다.(1절 하) 본문 1절 하반 절에서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안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안경은 사물을 더 잘 보기위해 쓰는 창입니다. 제가 안경을 벗으면 여러분이 잘 보이지 않지만 안경을 쓰면 누가 누구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영적(靈的)으로 믿음의 안경을 쓰고 있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을 위해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안경을 벗으면 어디가 동서남북(東西南北)인지 방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믿음의 강약(强弱)은 안경의 도수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려면 믿음의 안경의 도수를 정확하게 맞춰야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강약은 어떻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고 계십니까?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고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것이 믿어질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적대로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합니다.(딤후 3:14) 딤후 3:14의 말씀처럼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된 목적을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민 생활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일본 문화와 언어와 생활에 하루빨리 적응하는 것입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했습니다. 왜 빨리 일본에 적응하지 못하고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할까요? 일본에 대해 알려고 하는 마음이 적기 때문이고, 직접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알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실력자는 누구일까요? 어디에 머무르든지 빨리 적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깨달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말씀을 많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열정을 갖고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계신가요? 내 머리카락까지 세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마 10:30) 나의 과거와 현재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까지도 다 알고 계신다고 하십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내가 혼자 있을 때에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다 알고 계신다고 하십니다.(시 1391-3) 이 얼마나 대단한 사랑과 관심입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아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이해하고 계십니까? 말씀을 알아갈수록 부족하고 갈급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내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고, 훈련의 과정을 다 마쳤고, 어느 정도 직분을 갖고 있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말씀의 생수를 깊이 사모하는 자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품이 되려면 말씀과 삶이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물(創造物)로서 진정한 걸작품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해 비추어져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 속에서 묻어나오는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된 목적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마치 몸에 향수를 뿌린 사람과도 같습니다. 풍겨 나오는 향기를 막을 수 없듯이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비춰지고 예수의 향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 자체가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합니다. 마이크가 소리를 멀리까지 들리게 해주는 기능을 상실하면 더 이상 마이크가 아니고 고철덩어리가 되듯이 우리가 아무리 말씀을 많이 알아도 삶이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 기능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창조된 처음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 삶으로 떠나는 질문
1. 지금까지 당신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2. 그 목적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하나님의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인가?)
3. 어떻게 하면 삶이 내 것임을 주장하는 어지러운 광고들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