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예배신학
성경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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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의 주요맥락 (3)
강사: 조병수 교수
제3강. 사도 바울
우리는 사도 바울에 관하여 두개의 자료로부터 알 수가 있다. 바울서신과 사도행전이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바울의 글과 누가의 글은 서로 보완적이라는 점이다.
1. 바울의 신상
바울은 베냐민 지파의 일원으로서 (빌 3:5) 정통 유대인이었다 (고후 11:22). 바울 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하여 성장하였고 - 바울의 유일한 약점은 예루살렘 또는 유대에서 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 -, 가말리엘에게서 수학하였다 (행 22:3). 바울은 엄격한 바리새인으로 서 (빌 3:5) 유대교를 신봉하였다 (갈 1:14). 이것이 바로 바울이 기독교회를 극심하게 핍박하 는 원인이 되었다 (갈 1:13 빌 3:6 딤전 1:13).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그리 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하여 길을 가던 중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나주셨다 (행 9장, 22 장, 26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주신 이후에 그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유대교적 유산 과 헬라주의적 유산을 모두 버렸다 (빌 3:7-8). 바울은 다메섹 사건을 체험한 후에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부르심 을 받은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갈 1:15).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 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딤전 1:14). 바울은 다메섹 사건 이후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일군으로 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고전 4:1), 그리스도를 위한 사신 (고후 5:20)이 되었다. 바울 은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가 되었다는 자기의식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다 (딤후 1:11).
2. 바울의 여행
바울은 먼저 바나바의 인도로 안디옥교회에서 목회를 하였다 (행 11:19-26). 바나바는 바울과 같은 훌륭 한 인물이 오해로 말미암아 사장될 위험에서 구원해냈다. 바나바는 바울을 면밀히 관찰한 후에 바울의 예수체험과 신학내용과 전도방법 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여 환영하게 하였다 (행 9:27). 바나바가 없었더라면 바울도 없었을 것이다. 이후에 바 울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복음을 전도하기 위하여 여행을 하게 되었다 (행 13:1). 중요한 것은 바울의 선교 가 목회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1) 세 번의 전도여행
바울의 일차 전도여행은 주로 소아시아를 대상으로 하였다 (행 13:1-14:28). 바울은 이차 전도여행에 서 소아시아를 넘어 그리스 반도로 나아갔다 (행 15:36-18:22). 삼차 전도여행은 이미 전도한 교회들의 상황 을 확인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행 18:23-21:16). 바울은 세 번에 걸친 자신의 전도여행을 총결산하기를 "예 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롬 15:19) 여행하였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드디어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나아 갈 결심을 하게 된다 (롬 15:23,28). 군선을 타고서라도!
2) 예루살렘
바울의 전도여행에서 나타나는 중요점 가운데 하나는 자주 예루살렘을 전도여행의 최종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전 도여행을 마치면서 거의 언제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이차 전도여행 행 18: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 의 안부를 물은 후에" 삼차 전도여행 행 21:17 "예루살렘에 이르니"). 이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으 로 올라갔던 사실 (갈 1:18 2:1)과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계획 (롬 15:25 고 전 16:3 고후 1:16)에 대하여 여러 차례 언급한다. 사실상 바울의 예루살렘 지향성은 그의 사 역 아주 초기부터 나타난다. 바울은 예루살렘을 위하여 부조금을 가지고 갔다 (행 11:27-30). 바울은 예루살 렘 사도회의에도 참석을 하였다 (행 15장). 말하자면 바울은 예루살렘 모교회 및 원사도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고 했던 것이다. 예루살렘없이는 세계선교도 없고, 원사도가 없이는 이방교회도 없다. 바울은 이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독립하여 자기 의 추종자들을 모으지 않았다. 여기에서 한가지 덧붙일 것은 바울의 사역과 원사도들의 사역에는 내용상의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바 울은 이방인 선교에 주력하였고, 원사도들은 유대인 전도에 관심하였다 (갈 2:7-8).
3) 전도방식
바울은 전도여행중에 바울은 우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서 전도를 하였다. 구약성경을 가지고 쉽게 유대인들에게 접근하였 다. 바울은 소아시아와 유럽에 많은 교회를 세웠다. 바울은 교회를 설립한 후에 직분자들을 세움으로써 교회를 조직화하였다 (참 조. 빌 1:1). 이렇게 하여 교회는 외부적인 핍박을 당해도 쉽게 와해되지 않는 든든한 조칙체가 되었다. 바울 의 전도전략은 대도시중심적 사역이었다. 우선 대도시에서 전도를 하여 교회를 설립하면 여기에서 동역자들을 다른 곳으로 파송하여 전도 하게 하였다 (아래 동역자들을 보라).
3. 바울의 편지
1) 종류
바울은 많은 편지를 기술하였다. 바울은 편지의 사람이다. 바울의 편지는 눈물어린 편지이다 (고 후 2:4). 그의 서신은 13편이 남아있다 (로마서에서 빌레몬서까지). 히브리서는 고래로부터 자 주 바울의 서신으로 인정되지만, 실제로 히브리서에는 바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저작권이 아직도 논쟁 중에 있다. 물론 잃 어버린 편지도 있다 (고린도전편지? 고전 5:9 라오디게아서 골 4:16). 이것들이 사도 바울의 분 실된 편지일 경우에 혹 언젠가 뒤늦게 이것들이 발견된다 할지라도 더 이상 다른 하나님의 계시를 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의 섭리가운데 바울의 13서신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들로부터 다른 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충분하게 하나님의 계시 를 알 수가 있다.
바울이 살아있는 동안에 그의 이름을 빙자한 서신들이 있었다. 살후 2:2에 보면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 는 편지"라는 표현이 나온다. 바울이 살아있는 동안에도 그의 이름을 사칭하는 거짓 편지들이 나돌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약성경에 들어있는 바울의 편지들은 연대에 따라 이른 편지에서 늦은 편지 순으로 배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규모에 따라 큰 편지에서 작은 편지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2) 분류
바울의 서신들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1) 발신자와 수신자의 성격에 따라
바울의 서신들은 발신자와 수신자의 성격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발신자 쪽에서 볼 때 개인적인 발신과 공동적인 발신이 있다. 개인적 발신은 사도 바울이 혼자서 발신한 서신들이 다. 여기에는 로마서, 갈라디아서, 엡베소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가 있다. 공동적 발신은 사도 바울이 다른이와 함 께 발신한 서신들이다. 여기에는 고린도전서 (바울 + 소스데네), 고린도후서 (바울 + 디모데), 빌립보서 (바울 + 디모 데), 골로새서 (바울 + 디모데), 데살로니가전서 (바울 + 실루아노 + 디모데), 데살로니가후서 (바울 + 실루아노 + 디모 데), 빌레몬서 (바울 + 디모데)가 있다.
둘째로 수신자 쪽에서 볼 때 공신과 사신이 있다. 공신은 교회가 받은 서신이다. 이것들은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 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이다. 이 가운데서 특히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라 는 넓은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가 받은 서신이다. 사신은 개인이 받은 서신이다. 이것들은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 서이다. 그러나 딤전, 딤후, 딛은 목회와 관련된 서신이기에 어느 정도 공신의 의미를 가진다.
(2) 발신자의 상황에 따라
옥중서신은 바울이 옥중에서 쓴 편지들이다 (엡, 빌, 골, 몬). 목회서신은 바울이 제자들에게 목회를 맡기면서 쓴 편지들이 다 (딤전, 딤후, 딛). 여행서신은 바울이 여행을 하는 동안에 쓴 편지들이다 (롬, 고전, 고후, 갈, 살전, 살후). 바울 은 전도여행 중에 한 체류지에서 편지를 쓰기도 하였고 (고린도전서는 에베소에서 기록 고전 16:8), 한 경유지에 서 편지를 쓰기도 하였고 (고린도후서는 마게도니아에서 고후 2:13 7:5), 옥중에서 편지를 쓰기 도 하였다 (옥중서신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엡 6:20). 초기서신으로는 갈라디아서와 데살로니 가전서를 들 수 있고, 후기서신으로는 디모데후서를 말할 수 있다.
3) 구조
바울의 편지는 대체로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교리를 말하고 후반부에서는 윤리를 말한다. 바울이 진술하 는 교리는 하나님, 인간, 구원, 교회, 종말과 관련한다. 바울이 편지를 쓴 목적은 구원의 도리를 설명해주기 위하여 (로마 서 롬 15:15), 교회가 제출한 여러가지 질문에 관하여 답변하기 위하여 (고린도전서 고 전 7:1), 이단적인 교리를 막기 위하여 (갈라디아서), 교회의 조직을 세우기 위하여 (목회서신인 디모데전서, 디 모데후서, 디도서) 등등 여러 가지 면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4) 상황
우리는 바울의 편지들을 통하여 바울이 싸웠던 문제들을 엿볼 수가 있다. 바울에게는 두개의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안과 밖 의 문제였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적으로 설명한다.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7:5하 참 조. 고후 11:23-27,28). 사도 바울은 "밖으로는"이라는 말로 교회 밖에서 침투하는 문제점을 가리키며, " 안으로는"이라는 말로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시한다. 실제로 그는 세상적인 고통과 교회적인 고통을 분리한다 (고 후 11:28 참조). 사도 바울은 세상과의 관계에서도 교회와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 지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1) 밖의 상황
우선 사도 바울은 세상과의 관계에서 심각한 환난에 처해 있었다. 복음을 전하는 중에 당하는 핍박이 있었다 (살 전 2:1-2). 사도 바울은 이것을 "우리의 모든 환난" (1:4 7:4)이라고 표현한다. 예를 들 면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 (1:8)의 정도가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말로 설명한다. "힘에 지나 도록 심한 고생" (고후 1:8), "살 소망까지 끊어짐" (고후 1:8), "마음에 사형선고 (직역 하면, 사망선고)를 받음" (고후 1:9), "큰 사망" (고후 1:10). 사도 바울이 당한 환난 은 끝없는 것이었다. 그가 당한 환난의 내용을 열거하는 것을 읽노라면 문득 몸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 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과..." (고후 6:4이하).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도적의 위험과...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 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이하). 사도 바울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있으며 답답한 일 을 만나고 있으며 핍박을 받고 있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하고 있다 (고후 4:8-9 현재시제! 고 후 7:5 참조). 그러나 사도 바울은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싸임당하지 않는다. 낙심하지 않는다. 곤경에 빠지 지 않는다.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환난을 기뻐한다 (고후 12:10). 왜 그런가? 사도 바울은 본서 의 중간에서 그 이유를 밝힌다. 왜냐하면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기" (고 후 4:17) 때문이다.
(2) 안의 상황
또한 사도 바울은 교회와의 관계에서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었다.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세상 에서 당한 수많은 환난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 라" (고후 11:28)고 고백하였다.
사도 바울은 물질적인 부족으로 고난을 당하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교회들 때문에 상심하고 있었다. 또한 마게도냐 교회들이 "힘 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고후 8:3) 예루살렘과 유다의 교회들을 위하여 연보에 참여하였 을 때, 이 일은 사도 바울에게 한 편으로 예루살렘과 유다의 교회들이 보충을 받는다는 점때문에는 기쁨이 되면서도, 한 편으로 마게 도냐 교회들이 가난해진다는 점때문에는 근심이 되었을 것이다.
교회가 사도 바울을 괴롭힌 문제들은 다양했다. 첫째로 교회에는 불의를 행한 자가 있었다 (고 후 7:12). 사도 바울은 이 사람 때문에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근심에 빠졌다 (고 후 2:1-12 7:5-16). 둘째로 교회는 사도 바울을 오해하고 있었다. 교회는 사도 바울에 대하 여 손해감정과 박탈감정에 사로잡혀 있어서 (고후 7:2 12:14) 마음이 굳게 닫혀 있었다 (고 후 6:11-12 7:2). 셋째로 교회에는 사도 바울에 대한 대적자들이 있었다. 대적자들은 진리 를 어지럽히는 행위 (고후 2:17 4:2)와 사도를 공격하는 행위 (고후 10-12 장)를 하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교회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교회를 위하여 자신까지 허비할 것을 각오한다 (고 후 12:15). 왜 그런가? 사도 바울은 그 까닭을 밝혔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 (고 후 1:1)이기 때문이다.
4. 바울의 동역자와 대적자
1) 바울의 동역자
바울에게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다. 바울을 일군으로 세운 동역자가 있었고 (바나바), 실제로 함께 전도여행을 하면서 파송 을 받는 동역자들이 있었고 (실라와 디모데), 바울과 줄곳 동행하는 동역자들이 있었고 (누가), 지역교회에 머물면서 바울을 지원하 는 동역자들이 있었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롬 16:3-4), 지역교회가 파송하여 바울을 돕는 동역자 들이 있었 다 (에바브로디도 빌 2:25-30 에바브라 골 1:7). 바울의 동역자가운데는 뵈배와 같은 여자 도 있었다. 뵈배는 바울의 "보호자"가 되었다 (롬 16:1-2). 뵈배는 무명의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서 유명 한 로마교회에 추천을 받은 여자였다.
2) 바울의 대적자
사도 바울은 빌레몬서를 제외하고는 모든 서신에서 대적자들을 언급한다. 사도 바울에게는 여러 종류의 대적자들이 있었다. 로마 서에는 교회를 망치는 자들 (롬 16:17-20), 고린도전서에는 교회의 질서를 망가뜨리는 분리주의자들과 부활을 부 인하는 자들 (고전 15장), 고린도후서에는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 (고후 10장), 갈라디아서에는 거 짓 형제들 (갈 2:4)과 구원의 방도를 혼돈시키는 유대주의자들, 에베소서에는 불순종의 아들 들 (엡 5:6), 빌립보서에는 십자가의 원수 (3:18-19), 골로새서에는 그리스도를 떠난 자 들 (골 2:10), 데살로니가전서에는 평안주의자들 (살전 5:3), 데살로니후서에는 사칭자들 (살 후 2:2), 디모데전서에는 다른 교훈을 전하는 자들 (딤전 6:20), 디모데후서에는 믿음에 파선 한 사람들 (딤후 2:18), 디도서에는 이단자들 (딛 3:10)이 언급된다.
5. 바울의 신학: 하나님과 인간
1) 하나님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었다. 삼위일체도식은 성령, 그리스도, 하나님 순서로 나타나기도 하며 (고 전 12:4-6), 그리스도, 하나님, 성령 순서로 보여지기도 하고 (고후 13:13), 하나님, 그 리스도, 성령 순서로 표현되기도 한다 (엡 1:3-14).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고전 8:6 엡 4:6). 하나님은 창조조이시다. 바울은 하나님이 창조 주라는 사실을 자주 아버지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하나님은 만물의 아버지이시다. 만물은 하나님에 의하여 섭리된다. "이는 만물 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롬 11:36). 아버지로서 하나님은 사랑과 책망을 공유하 신다. 하나님은 유일한 의지의 대상이시다. 그분은 부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다. 부활 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죽음가운데서 구속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신성과 인성이 완벽하게 조화된다. 예수는 부요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롬 1:2). 그 분에게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 있다 (골 2:3). 그러나 예수는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오셔서 고난과 죽음 을 당하신 연약한 분이시다.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신 것은 그의 가난하게 되심으로 사람을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다 (고 후 8:9). 예수는 중보자이시다 (고전 8:6), 중보자로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 을 이루시는 구속주가 되셨다 (엡 2:14). 이것을 위하여 예수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피를 흘리는 화목제물이 되셨 다 (롬 3:25). 승천하여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으신 예수는 만물의 주가 되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 다 (엡 1:22-23).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롬 8:9). 따라서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아신다 (고 전 2:10). 또한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롬 8:9). 그래서 오직 성령으로만 예수를 그리스 도라고 고백할 수 있다 (고전 12:3). 성령은 생명과 자유의 영이시다 (롬 8:2 고 전 3:17). 성령은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매인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 성령은 우리의 영혼에게 하나님의 자 녀인 것을 증거하시는 중보의 역활로써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시는 분이다. 신자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된 후 에 (고전 12:13), 항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며 (엡 5:18), 한 가지 이상의 은사를 가지 고 (롬 12:3이하 고전 12:7이하),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 다 (갈 5:22-23).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 (갈 5:25).
2) 인간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존재한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하나님에게서 시작된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또는 사람과 하나님 의 관계는 하나님에게서 시작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관계하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지,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하기 때 문에 하나님이 사람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다. 연속성을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다. 이것은 바울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에 대한 근본적인 내용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인간론은 신론적 인간론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의미를 가지 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은 본래 범죄한 존재이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나,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간은 하나님께 의미 가 있게 되었다. 인간은 영과 육, 또는 속사람과 겉사람의 이분법으로 설명된다 (고후 4:16 참 조. 롬 7:22). 그런데 모든 인간은 영과 육에 있어서 전적으로 타락하였다 (롬 3:23). 인간 의 타락은 아담의 범죄에 기인한다 (롬 5:12). 아담의 범죄가 모든 인간의 범죄의 기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 면 범죄에 있어서 아담은 모든 인간을 대표한다. 아담에게서는 범죄의 행위가 범죄의 존재를 결정했고, 모든 사람에게서는 범죄의 존재 가 범죄의 행위를 결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회복한다. 연속성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하나님은 다시 시작하며, 인간은 다시 시작된 다 (딛 3:5). 하나님은 사람을 새 피조물로 회복한다 (고후 5:17).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의 요청 앞에 서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요청을 신앙으로 받아들인다. 이와 같이 신앙가운데서 새 피조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세례이 다. 세례는 인간이 아담적인 존재를 결별하고, 새로운 기원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것을 표하는 행위이 다 (롬 6:1ff.. 참조. 딛 3:5). 이렇게 하여 바울에게서 인간에 관한 또 다른 방식의 분류 법이 성립된다. 바울은 "옛 사람"과 "새 사람"을 철저하게 구분한 다 (롬 6:6 엡 4:22,24 골 3:9). 이 같은 구분은 "이전"과 "그러나 지 금"이라는 시간적 표현에 따른 종말론적인 존재의 변화에 기초한 다 (엡 2:11-13 골 1:21-22 3:7-8).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설정한 구분 이다.
새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살려내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처럼 고전 15:45 성령처럼 고 후 3:6). 바울에게 새로운 인간에 대한 이해는 존재적인 것에서 활동적인 것으로 전진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인간 은 활동개념이다. 인간은 능력이다. 인간은 행동하는 인격이다. 인간은 능동적이다. 새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는 인간"에서 "하 는 인간"로 나아간다.
3) 구원
바울은 구원을 일차적으로 죄사함이라고 생각한다 (엡 1:7). 그러나 구원은 사죄의 단계에만 머물지 않는 다. 구원은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이며 (칭의), 하나님의 거룩함에 도달하는 것이며 (성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다 (영화) (롬 8:29-30).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영원에서의 행위와 시간에서의 활동 을 구성하셨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구속은 확실하고 안전하다 (롬 8:39).
5) 교회
구속받은 신자들은 교회를 이룬다.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교회를 소개한다. 가정교회와 지역교회와 보편교회이다. 바 울은 교회를 위하여 다양한 용어를 사용한다. 교회는 에클레시아이다. 이것은 신자들의 모임이라는 영적 의미와 지역에 위치한다는 사회 적 의미를 가진다.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체들이 연결된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전도하기와 가르치기를 중 요한 기능으로 가진다. 또한 교회는 코이노니아이며 디아코니아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임무를 가진다. 그것은 예배와 봉사이 다. 또한 교회는 성도를 향한 교제와 섬김을 이룬다. 이것은 인격과 물질의 사귐과 나눔으로 구성된다. 이때 성찬과 애찬은 중요 한 기능을 한다. 교회는 사회를 향한 사명을 가진다. 또한 교회는 플레로마이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 회에 전달되어 교회를 충만하게 한다. 이 때문에 교회는 세상과 만물에 대하여 충만함을 전달하게 된 다 (엡 1:22-23).
6) 종말
사도 바울은 두 가지 종말기대가운데 살았다. 첫째로 개인의 종말에 대한 기대이다. 바울은 삶을 죽음과 연관시켜 이해했 다. 그는 살든지 죽든지 그의 인생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함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생각하였 다 (빌 1:20-21). 그러므로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고 고백하였 다 (롬 14:8).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죽지 않는다는 것이 다. 따라서 바울은 날마다 죽는 것을 체험하였다 (고전 15:31). 사실상 이런 신앙은 부활에 대한 소망에서 나 온 것이다 (고전 15장). 이 때문에 바울은 죽음을 바라보면서 살았다.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딤 후 4:6). 그는 죽음 후에 주어질 면류관을 바라보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살아있는 동안 선한 싸움을 최선을 다해 서 싸웠던 것이다. 사도 바울의 다른 종말기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된다. 현세에는 불법과 불의가 지배하지만 결국 예수께 서 재림하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을 기대하였다 (살후 2:1-12). 예수의 재림은 놀라운 광경가운데 이루어 질 것으로서 밤에 도적같이 갑자기, 잉태한 여인의 산통같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재림 날은 빛의 아들과 낮의 아들 된 하나님의 성도들에게는 경성하고 근신하여 그 날을 예비하고 있으므로 구원의 날이 될 것이다 (살 전 4:13-5:11).
바울은 모든 환난에도 불구하고 전도를 굽히지 않은 위대한 전도자였으며,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위 대한 신학자였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라" (고후 13:8). "우리 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 서 말하노라" (고후 2:17). 바울은 전도자였으며 신학자였다. 바울은 결코 이 둘 중에 하나 만을 선택하는 우 를 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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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조병수 교수
제3강. 사도 바울
우리는 사도 바울에 관하여 두개의 자료로부터 알 수가 있다. 바울서신과 사도행전이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바울의 글과 누가의 글은 서로 보완적이라는 점이다.
1. 바울의 신상
바울은 베냐민 지파의 일원으로서 (빌 3:5) 정통 유대인이었다 (고후 11:22). 바울 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하여 성장하였고 - 바울의 유일한 약점은 예루살렘 또는 유대에서 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 -, 가말리엘에게서 수학하였다 (행 22:3). 바울은 엄격한 바리새인으로 서 (빌 3:5) 유대교를 신봉하였다 (갈 1:14). 이것이 바로 바울이 기독교회를 극심하게 핍박하 는 원인이 되었다 (갈 1:13 빌 3:6 딤전 1:13).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그리 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하여 길을 가던 중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나주셨다 (행 9장, 22 장, 26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주신 이후에 그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유대교적 유산 과 헬라주의적 유산을 모두 버렸다 (빌 3:7-8). 바울은 다메섹 사건을 체험한 후에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부르심 을 받은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갈 1:15).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 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딤전 1:14). 바울은 다메섹 사건 이후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일군으로 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고전 4:1), 그리스도를 위한 사신 (고후 5:20)이 되었다. 바울 은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가 되었다는 자기의식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다 (딤후 1:11).
2. 바울의 여행
바울은 먼저 바나바의 인도로 안디옥교회에서 목회를 하였다 (행 11:19-26). 바나바는 바울과 같은 훌륭 한 인물이 오해로 말미암아 사장될 위험에서 구원해냈다. 바나바는 바울을 면밀히 관찰한 후에 바울의 예수체험과 신학내용과 전도방법 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여 환영하게 하였다 (행 9:27). 바나바가 없었더라면 바울도 없었을 것이다. 이후에 바 울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복음을 전도하기 위하여 여행을 하게 되었다 (행 13:1). 중요한 것은 바울의 선교 가 목회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1) 세 번의 전도여행
바울의 일차 전도여행은 주로 소아시아를 대상으로 하였다 (행 13:1-14:28). 바울은 이차 전도여행에 서 소아시아를 넘어 그리스 반도로 나아갔다 (행 15:36-18:22). 삼차 전도여행은 이미 전도한 교회들의 상황 을 확인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행 18:23-21:16). 바울은 세 번에 걸친 자신의 전도여행을 총결산하기를 "예 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롬 15:19) 여행하였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드디어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나아 갈 결심을 하게 된다 (롬 15:23,28). 군선을 타고서라도!
2) 예루살렘
바울의 전도여행에서 나타나는 중요점 가운데 하나는 자주 예루살렘을 전도여행의 최종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전 도여행을 마치면서 거의 언제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이차 전도여행 행 18: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 의 안부를 물은 후에" 삼차 전도여행 행 21:17 "예루살렘에 이르니"). 이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으 로 올라갔던 사실 (갈 1:18 2:1)과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계획 (롬 15:25 고 전 16:3 고후 1:16)에 대하여 여러 차례 언급한다. 사실상 바울의 예루살렘 지향성은 그의 사 역 아주 초기부터 나타난다. 바울은 예루살렘을 위하여 부조금을 가지고 갔다 (행 11:27-30). 바울은 예루살 렘 사도회의에도 참석을 하였다 (행 15장). 말하자면 바울은 예루살렘 모교회 및 원사도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고 했던 것이다. 예루살렘없이는 세계선교도 없고, 원사도가 없이는 이방교회도 없다. 바울은 이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독립하여 자기 의 추종자들을 모으지 않았다. 여기에서 한가지 덧붙일 것은 바울의 사역과 원사도들의 사역에는 내용상의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바 울은 이방인 선교에 주력하였고, 원사도들은 유대인 전도에 관심하였다 (갈 2:7-8).
3) 전도방식
바울은 전도여행중에 바울은 우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서 전도를 하였다. 구약성경을 가지고 쉽게 유대인들에게 접근하였 다. 바울은 소아시아와 유럽에 많은 교회를 세웠다. 바울은 교회를 설립한 후에 직분자들을 세움으로써 교회를 조직화하였다 (참 조. 빌 1:1). 이렇게 하여 교회는 외부적인 핍박을 당해도 쉽게 와해되지 않는 든든한 조칙체가 되었다. 바울 의 전도전략은 대도시중심적 사역이었다. 우선 대도시에서 전도를 하여 교회를 설립하면 여기에서 동역자들을 다른 곳으로 파송하여 전도 하게 하였다 (아래 동역자들을 보라).
3. 바울의 편지
1) 종류
바울은 많은 편지를 기술하였다. 바울은 편지의 사람이다. 바울의 편지는 눈물어린 편지이다 (고 후 2:4). 그의 서신은 13편이 남아있다 (로마서에서 빌레몬서까지). 히브리서는 고래로부터 자 주 바울의 서신으로 인정되지만, 실제로 히브리서에는 바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저작권이 아직도 논쟁 중에 있다. 물론 잃 어버린 편지도 있다 (고린도전편지? 고전 5:9 라오디게아서 골 4:16). 이것들이 사도 바울의 분 실된 편지일 경우에 혹 언젠가 뒤늦게 이것들이 발견된다 할지라도 더 이상 다른 하나님의 계시를 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의 섭리가운데 바울의 13서신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들로부터 다른 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충분하게 하나님의 계시 를 알 수가 있다.
바울이 살아있는 동안에 그의 이름을 빙자한 서신들이 있었다. 살후 2:2에 보면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 는 편지"라는 표현이 나온다. 바울이 살아있는 동안에도 그의 이름을 사칭하는 거짓 편지들이 나돌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약성경에 들어있는 바울의 편지들은 연대에 따라 이른 편지에서 늦은 편지 순으로 배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규모에 따라 큰 편지에서 작은 편지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2) 분류
바울의 서신들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1) 발신자와 수신자의 성격에 따라
바울의 서신들은 발신자와 수신자의 성격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발신자 쪽에서 볼 때 개인적인 발신과 공동적인 발신이 있다. 개인적 발신은 사도 바울이 혼자서 발신한 서신들이 다. 여기에는 로마서, 갈라디아서, 엡베소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가 있다. 공동적 발신은 사도 바울이 다른이와 함 께 발신한 서신들이다. 여기에는 고린도전서 (바울 + 소스데네), 고린도후서 (바울 + 디모데), 빌립보서 (바울 + 디모 데), 골로새서 (바울 + 디모데), 데살로니가전서 (바울 + 실루아노 + 디모데), 데살로니가후서 (바울 + 실루아노 + 디모 데), 빌레몬서 (바울 + 디모데)가 있다.
둘째로 수신자 쪽에서 볼 때 공신과 사신이 있다. 공신은 교회가 받은 서신이다. 이것들은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 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이다. 이 가운데서 특히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라 는 넓은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가 받은 서신이다. 사신은 개인이 받은 서신이다. 이것들은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 서이다. 그러나 딤전, 딤후, 딛은 목회와 관련된 서신이기에 어느 정도 공신의 의미를 가진다.
(2) 발신자의 상황에 따라
옥중서신은 바울이 옥중에서 쓴 편지들이다 (엡, 빌, 골, 몬). 목회서신은 바울이 제자들에게 목회를 맡기면서 쓴 편지들이 다 (딤전, 딤후, 딛). 여행서신은 바울이 여행을 하는 동안에 쓴 편지들이다 (롬, 고전, 고후, 갈, 살전, 살후). 바울 은 전도여행 중에 한 체류지에서 편지를 쓰기도 하였고 (고린도전서는 에베소에서 기록 고전 16:8), 한 경유지에 서 편지를 쓰기도 하였고 (고린도후서는 마게도니아에서 고후 2:13 7:5), 옥중에서 편지를 쓰기 도 하였다 (옥중서신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엡 6:20). 초기서신으로는 갈라디아서와 데살로니 가전서를 들 수 있고, 후기서신으로는 디모데후서를 말할 수 있다.
3) 구조
바울의 편지는 대체로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교리를 말하고 후반부에서는 윤리를 말한다. 바울이 진술하 는 교리는 하나님, 인간, 구원, 교회, 종말과 관련한다. 바울이 편지를 쓴 목적은 구원의 도리를 설명해주기 위하여 (로마 서 롬 15:15), 교회가 제출한 여러가지 질문에 관하여 답변하기 위하여 (고린도전서 고 전 7:1), 이단적인 교리를 막기 위하여 (갈라디아서), 교회의 조직을 세우기 위하여 (목회서신인 디모데전서, 디 모데후서, 디도서) 등등 여러 가지 면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4) 상황
우리는 바울의 편지들을 통하여 바울이 싸웠던 문제들을 엿볼 수가 있다. 바울에게는 두개의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안과 밖 의 문제였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적으로 설명한다.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7:5하 참 조. 고후 11:23-27,28). 사도 바울은 "밖으로는"이라는 말로 교회 밖에서 침투하는 문제점을 가리키며, " 안으로는"이라는 말로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시한다. 실제로 그는 세상적인 고통과 교회적인 고통을 분리한다 (고 후 11:28 참조). 사도 바울은 세상과의 관계에서도 교회와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 지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1) 밖의 상황
우선 사도 바울은 세상과의 관계에서 심각한 환난에 처해 있었다. 복음을 전하는 중에 당하는 핍박이 있었다 (살 전 2:1-2). 사도 바울은 이것을 "우리의 모든 환난" (1:4 7:4)이라고 표현한다. 예를 들 면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 (1:8)의 정도가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말로 설명한다. "힘에 지나 도록 심한 고생" (고후 1:8), "살 소망까지 끊어짐" (고후 1:8), "마음에 사형선고 (직역 하면, 사망선고)를 받음" (고후 1:9), "큰 사망" (고후 1:10). 사도 바울이 당한 환난 은 끝없는 것이었다. 그가 당한 환난의 내용을 열거하는 것을 읽노라면 문득 몸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 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과..." (고후 6:4이하).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도적의 위험과...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 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이하). 사도 바울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있으며 답답한 일 을 만나고 있으며 핍박을 받고 있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하고 있다 (고후 4:8-9 현재시제! 고 후 7:5 참조). 그러나 사도 바울은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싸임당하지 않는다. 낙심하지 않는다. 곤경에 빠지 지 않는다.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환난을 기뻐한다 (고후 12:10). 왜 그런가? 사도 바울은 본서 의 중간에서 그 이유를 밝힌다. 왜냐하면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기" (고 후 4:17) 때문이다.
(2) 안의 상황
또한 사도 바울은 교회와의 관계에서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었다.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세상 에서 당한 수많은 환난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 라" (고후 11:28)고 고백하였다.
사도 바울은 물질적인 부족으로 고난을 당하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교회들 때문에 상심하고 있었다. 또한 마게도냐 교회들이 "힘 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고후 8:3) 예루살렘과 유다의 교회들을 위하여 연보에 참여하였 을 때, 이 일은 사도 바울에게 한 편으로 예루살렘과 유다의 교회들이 보충을 받는다는 점때문에는 기쁨이 되면서도, 한 편으로 마게 도냐 교회들이 가난해진다는 점때문에는 근심이 되었을 것이다.
교회가 사도 바울을 괴롭힌 문제들은 다양했다. 첫째로 교회에는 불의를 행한 자가 있었다 (고 후 7:12). 사도 바울은 이 사람 때문에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근심에 빠졌다 (고 후 2:1-12 7:5-16). 둘째로 교회는 사도 바울을 오해하고 있었다. 교회는 사도 바울에 대하 여 손해감정과 박탈감정에 사로잡혀 있어서 (고후 7:2 12:14) 마음이 굳게 닫혀 있었다 (고 후 6:11-12 7:2). 셋째로 교회에는 사도 바울에 대한 대적자들이 있었다. 대적자들은 진리 를 어지럽히는 행위 (고후 2:17 4:2)와 사도를 공격하는 행위 (고후 10-12 장)를 하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교회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교회를 위하여 자신까지 허비할 것을 각오한다 (고 후 12:15). 왜 그런가? 사도 바울은 그 까닭을 밝혔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 (고 후 1:1)이기 때문이다.
4. 바울의 동역자와 대적자
1) 바울의 동역자
바울에게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다. 바울을 일군으로 세운 동역자가 있었고 (바나바), 실제로 함께 전도여행을 하면서 파송 을 받는 동역자들이 있었고 (실라와 디모데), 바울과 줄곳 동행하는 동역자들이 있었고 (누가), 지역교회에 머물면서 바울을 지원하 는 동역자들이 있었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롬 16:3-4), 지역교회가 파송하여 바울을 돕는 동역자 들이 있었 다 (에바브로디도 빌 2:25-30 에바브라 골 1:7). 바울의 동역자가운데는 뵈배와 같은 여자 도 있었다. 뵈배는 바울의 "보호자"가 되었다 (롬 16:1-2). 뵈배는 무명의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서 유명 한 로마교회에 추천을 받은 여자였다.
2) 바울의 대적자
사도 바울은 빌레몬서를 제외하고는 모든 서신에서 대적자들을 언급한다. 사도 바울에게는 여러 종류의 대적자들이 있었다. 로마 서에는 교회를 망치는 자들 (롬 16:17-20), 고린도전서에는 교회의 질서를 망가뜨리는 분리주의자들과 부활을 부 인하는 자들 (고전 15장), 고린도후서에는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 (고후 10장), 갈라디아서에는 거 짓 형제들 (갈 2:4)과 구원의 방도를 혼돈시키는 유대주의자들, 에베소서에는 불순종의 아들 들 (엡 5:6), 빌립보서에는 십자가의 원수 (3:18-19), 골로새서에는 그리스도를 떠난 자 들 (골 2:10), 데살로니가전서에는 평안주의자들 (살전 5:3), 데살로니후서에는 사칭자들 (살 후 2:2), 디모데전서에는 다른 교훈을 전하는 자들 (딤전 6:20), 디모데후서에는 믿음에 파선 한 사람들 (딤후 2:18), 디도서에는 이단자들 (딛 3:10)이 언급된다.
5. 바울의 신학: 하나님과 인간
1) 하나님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었다. 삼위일체도식은 성령, 그리스도, 하나님 순서로 나타나기도 하며 (고 전 12:4-6), 그리스도, 하나님, 성령 순서로 보여지기도 하고 (고후 13:13), 하나님, 그 리스도, 성령 순서로 표현되기도 한다 (엡 1:3-14).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고전 8:6 엡 4:6). 하나님은 창조조이시다. 바울은 하나님이 창조 주라는 사실을 자주 아버지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하나님은 만물의 아버지이시다. 만물은 하나님에 의하여 섭리된다. "이는 만물 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롬 11:36). 아버지로서 하나님은 사랑과 책망을 공유하 신다. 하나님은 유일한 의지의 대상이시다. 그분은 부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다. 부활 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죽음가운데서 구속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신성과 인성이 완벽하게 조화된다. 예수는 부요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롬 1:2). 그 분에게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 있다 (골 2:3). 그러나 예수는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오셔서 고난과 죽음 을 당하신 연약한 분이시다.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신 것은 그의 가난하게 되심으로 사람을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다 (고 후 8:9). 예수는 중보자이시다 (고전 8:6), 중보자로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 을 이루시는 구속주가 되셨다 (엡 2:14). 이것을 위하여 예수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피를 흘리는 화목제물이 되셨 다 (롬 3:25). 승천하여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으신 예수는 만물의 주가 되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 다 (엡 1:22-23).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롬 8:9). 따라서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아신다 (고 전 2:10). 또한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롬 8:9). 그래서 오직 성령으로만 예수를 그리스 도라고 고백할 수 있다 (고전 12:3). 성령은 생명과 자유의 영이시다 (롬 8:2 고 전 3:17). 성령은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매인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 성령은 우리의 영혼에게 하나님의 자 녀인 것을 증거하시는 중보의 역활로써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시는 분이다. 신자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된 후 에 (고전 12:13), 항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며 (엡 5:18), 한 가지 이상의 은사를 가지 고 (롬 12:3이하 고전 12:7이하),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 다 (갈 5:22-23).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 (갈 5:25).
2) 인간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존재한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하나님에게서 시작된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또는 사람과 하나님 의 관계는 하나님에게서 시작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관계하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지,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하기 때 문에 하나님이 사람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다. 연속성을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다. 이것은 바울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에 대한 근본적인 내용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인간론은 신론적 인간론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의미를 가지 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은 본래 범죄한 존재이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나,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간은 하나님께 의미 가 있게 되었다. 인간은 영과 육, 또는 속사람과 겉사람의 이분법으로 설명된다 (고후 4:16 참 조. 롬 7:22). 그런데 모든 인간은 영과 육에 있어서 전적으로 타락하였다 (롬 3:23). 인간 의 타락은 아담의 범죄에 기인한다 (롬 5:12). 아담의 범죄가 모든 인간의 범죄의 기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 면 범죄에 있어서 아담은 모든 인간을 대표한다. 아담에게서는 범죄의 행위가 범죄의 존재를 결정했고, 모든 사람에게서는 범죄의 존재 가 범죄의 행위를 결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회복한다. 연속성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하나님은 다시 시작하며, 인간은 다시 시작된 다 (딛 3:5). 하나님은 사람을 새 피조물로 회복한다 (고후 5:17).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의 요청 앞에 서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요청을 신앙으로 받아들인다. 이와 같이 신앙가운데서 새 피조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세례이 다. 세례는 인간이 아담적인 존재를 결별하고, 새로운 기원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것을 표하는 행위이 다 (롬 6:1ff.. 참조. 딛 3:5). 이렇게 하여 바울에게서 인간에 관한 또 다른 방식의 분류 법이 성립된다. 바울은 "옛 사람"과 "새 사람"을 철저하게 구분한 다 (롬 6:6 엡 4:22,24 골 3:9). 이 같은 구분은 "이전"과 "그러나 지 금"이라는 시간적 표현에 따른 종말론적인 존재의 변화에 기초한 다 (엡 2:11-13 골 1:21-22 3:7-8).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설정한 구분 이다.
새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살려내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처럼 고전 15:45 성령처럼 고 후 3:6). 바울에게 새로운 인간에 대한 이해는 존재적인 것에서 활동적인 것으로 전진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인간 은 활동개념이다. 인간은 능력이다. 인간은 행동하는 인격이다. 인간은 능동적이다. 새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는 인간"에서 "하 는 인간"로 나아간다.
3) 구원
바울은 구원을 일차적으로 죄사함이라고 생각한다 (엡 1:7). 그러나 구원은 사죄의 단계에만 머물지 않는 다. 구원은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이며 (칭의), 하나님의 거룩함에 도달하는 것이며 (성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다 (영화) (롬 8:29-30).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영원에서의 행위와 시간에서의 활동 을 구성하셨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구속은 확실하고 안전하다 (롬 8:39).
5) 교회
구속받은 신자들은 교회를 이룬다.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교회를 소개한다. 가정교회와 지역교회와 보편교회이다. 바 울은 교회를 위하여 다양한 용어를 사용한다. 교회는 에클레시아이다. 이것은 신자들의 모임이라는 영적 의미와 지역에 위치한다는 사회 적 의미를 가진다.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체들이 연결된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전도하기와 가르치기를 중 요한 기능으로 가진다. 또한 교회는 코이노니아이며 디아코니아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임무를 가진다. 그것은 예배와 봉사이 다. 또한 교회는 성도를 향한 교제와 섬김을 이룬다. 이것은 인격과 물질의 사귐과 나눔으로 구성된다. 이때 성찬과 애찬은 중요 한 기능을 한다. 교회는 사회를 향한 사명을 가진다. 또한 교회는 플레로마이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 회에 전달되어 교회를 충만하게 한다. 이 때문에 교회는 세상과 만물에 대하여 충만함을 전달하게 된 다 (엡 1:22-23).
6) 종말
사도 바울은 두 가지 종말기대가운데 살았다. 첫째로 개인의 종말에 대한 기대이다. 바울은 삶을 죽음과 연관시켜 이해했 다. 그는 살든지 죽든지 그의 인생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함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생각하였 다 (빌 1:20-21). 그러므로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고 고백하였 다 (롬 14:8).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죽지 않는다는 것이 다. 따라서 바울은 날마다 죽는 것을 체험하였다 (고전 15:31). 사실상 이런 신앙은 부활에 대한 소망에서 나 온 것이다 (고전 15장). 이 때문에 바울은 죽음을 바라보면서 살았다.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딤 후 4:6). 그는 죽음 후에 주어질 면류관을 바라보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살아있는 동안 선한 싸움을 최선을 다해 서 싸웠던 것이다. 사도 바울의 다른 종말기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된다. 현세에는 불법과 불의가 지배하지만 결국 예수께 서 재림하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을 기대하였다 (살후 2:1-12). 예수의 재림은 놀라운 광경가운데 이루어 질 것으로서 밤에 도적같이 갑자기, 잉태한 여인의 산통같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재림 날은 빛의 아들과 낮의 아들 된 하나님의 성도들에게는 경성하고 근신하여 그 날을 예비하고 있으므로 구원의 날이 될 것이다 (살 전 4:13-5:11).
바울은 모든 환난에도 불구하고 전도를 굽히지 않은 위대한 전도자였으며,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위 대한 신학자였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라" (고후 13:8). "우리 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 서 말하노라" (고후 2:17). 바울은 전도자였으며 신학자였다. 바울은 결코 이 둘 중에 하나 만을 선택하는 우 를 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