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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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616
성령의 인침을 받은 자
에베소서 1:13~14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헬, 참혹 약속의 성령에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가끔 우리 믿음의 진실여부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됩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신 분들도 같은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검토하여 두 가지 문제를 도전하려 합니다.
첫째로 도전되는 문제는 13절에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라고 했는데, 과연 나의 믿음이 '구원의 복음'에 근거한 믿음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듣고 믿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자는 형통의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습니다. 내 자신의 축복과 안녕에만 관심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또 어떤 자는 신유의 복음을 가지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를 병 고치는 의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혹자는 기도의 응답자로서 예수를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는 성경이 말하는 참 믿음은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은 예수를 믿는 동기로서는 작용할 수 있으나 복음의 진수는 아닙니다. "구원의 복음"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말씀가운데서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죄 속에서 구속할 구원자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구원자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 또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나를 위해 모든 죄를 담당하셨고 이제 믿기만 하면 죄인에서 의인이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또 하나의 도전은 같은 절 하반부에 있습니다.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확신이 있는가?’ 하는 도전입니다. 이것은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는 도중 믿음이 흔들리는 경우를 겪습니다. 그 때 극복하는 방법은 3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논리적 방법으로 성경말씀을 세밀히 검토하면서 의심을 믿음으로 정립하는 방법입니다. 또 하나는 시험적 논증을 통해서 확신을 갖는 길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확실한 체험을 상기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재확인하는 방법입니다.
이 두 방법은 참으로 기본적이며 중요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법 외에 또 하나 필요한 방법이 있습니다. 본문이 제시하는 "성령의 인치심"을 직관적으로 체험하는 길입니다. 앞에서 제시한 두 가지 방법은 나의 이성과 의지를 작용하여 확증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3번째 방법인 직관적 체험은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 자신이 나에게 직접 해 주시는 일입니다. 내가 지쳐서 어떻게 하지 못할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큰 손이 나를 안아 높이 들어 올려주는 초자연적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 자신을 스스로 설득해서 얻는 확신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이요 광대한 인격자이므로 그가 친히 우리의 마음에 인치듯이 확증을 주실 때 정서적인 체험을 무시해도 좋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음 바 되었다(롬 5:5)는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사랑을 가득 부어 주신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에게 우리의 이성과 감정을 온통 사로잡는 체험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역사를 체험하려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누구의 도움이 필요합니까? 모두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들은 가만히 있어도 됩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누가복음 11장 11절~1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구하는 자'에게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인치심"을 받고 감격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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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13~14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헬, 참혹 약속의 성령에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가끔 우리 믿음의 진실여부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됩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신 분들도 같은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검토하여 두 가지 문제를 도전하려 합니다.
첫째로 도전되는 문제는 13절에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라고 했는데, 과연 나의 믿음이 '구원의 복음'에 근거한 믿음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듣고 믿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자는 형통의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습니다. 내 자신의 축복과 안녕에만 관심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또 어떤 자는 신유의 복음을 가지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를 병 고치는 의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혹자는 기도의 응답자로서 예수를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는 성경이 말하는 참 믿음은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은 예수를 믿는 동기로서는 작용할 수 있으나 복음의 진수는 아닙니다. "구원의 복음"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말씀가운데서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죄 속에서 구속할 구원자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구원자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 또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나를 위해 모든 죄를 담당하셨고 이제 믿기만 하면 죄인에서 의인이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또 하나의 도전은 같은 절 하반부에 있습니다.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확신이 있는가?’ 하는 도전입니다. 이것은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는 도중 믿음이 흔들리는 경우를 겪습니다. 그 때 극복하는 방법은 3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논리적 방법으로 성경말씀을 세밀히 검토하면서 의심을 믿음으로 정립하는 방법입니다. 또 하나는 시험적 논증을 통해서 확신을 갖는 길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확실한 체험을 상기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재확인하는 방법입니다.
이 두 방법은 참으로 기본적이며 중요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법 외에 또 하나 필요한 방법이 있습니다. 본문이 제시하는 "성령의 인치심"을 직관적으로 체험하는 길입니다. 앞에서 제시한 두 가지 방법은 나의 이성과 의지를 작용하여 확증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3번째 방법인 직관적 체험은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 자신이 나에게 직접 해 주시는 일입니다. 내가 지쳐서 어떻게 하지 못할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큰 손이 나를 안아 높이 들어 올려주는 초자연적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 자신을 스스로 설득해서 얻는 확신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이요 광대한 인격자이므로 그가 친히 우리의 마음에 인치듯이 확증을 주실 때 정서적인 체험을 무시해도 좋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음 바 되었다(롬 5:5)는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사랑을 가득 부어 주신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에게 우리의 이성과 감정을 온통 사로잡는 체험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역사를 체험하려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누구의 도움이 필요합니까? 모두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들은 가만히 있어도 됩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누가복음 11장 11절~1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구하는 자'에게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인치심"을 받고 감격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