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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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음 받은 사람들
정성진목사/ 일산 광성교회
고린도후서 5:16∼17
사람은 흙으로 지음받았습니다. 그래서 첫 사람의 이름이 아담입니다. ‘아담’은 ‘아다마’ 즉 흙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를 때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 하고 흙으로 덮어 줍니다.
사람이 흙으로 지음받았다고 값어치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닷새 동안 하루가 끝날 때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는데 사람을 창조하신 여섯째 날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할 만큼 우주창조의 주인공으로 태어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던 인간이 죄로 인하여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존귀함을 잃고 추악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을 보면 “짐승만도 못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악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발동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제물로 보내 주셔서 죄의 값을 치르시므로 죄 사함을 얻도록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복귀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 구원받은 사람들을 ‘거듭났다’고 말하고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을 통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 말씀하면서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1. 속사람을 중시합니다(16절 상).
석가의 이마에 큰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눈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를 심안(心眼)이라고 하는데 ‘사물을 살펴 분별하는 마음의 힘이나 그 작용’을 말합니다. 육안은 아무리 밝아도 옷으로 감싸고 있는 마음을 알 수가 없으며, 미소 뒤에 감춰진 흉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된 그리스도인은 영의 눈이 열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겉모습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허례, 허식, 허명, 허영을 멀리합니다. 보이는 것으로는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보이는 것을 꾸미고, 쌓고, 누리는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대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보화를 쌓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기도 생활에 힘쓰며 영혼이 부요해지기 위해 생명의 양식인 성경 말씀을 사모하며 읽고, 듣고, 주야로 묵상합니다. 영안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겉사람을 보지 않습니다. 외모의 수려함과 수사에 능한 말과 소유한 물질과 누리는 권세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중심을 보게 됩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집을 찾아가서 왕재를 구할 때 인물이 좋은 큰아들 엘리압을 보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임명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겉사람을 보고 택했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개인적으로도 그런 일을 당한 적은 없습니까?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56).”
우리는 새로 지음 받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이제부터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겉사람을 중시하다 낭패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영의 눈을 가지고 속사람을 중시하므로 생명과 평안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16절 하).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알았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해하고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단순히 세상적이요, 인간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서 이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를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려다 실패한 열혈 랍비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헬라인들은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른 철인 정도로 생각을 하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것을 보고는 도무지 왜 십자가를 지는지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미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 1:23)” 라고 당시 사람들의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도 크게 달리진 것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학교에서는 예수님을 석가, 공자, 마호메트와 함께 4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훌륭한 가르침을 남긴 사람들 중에 하나 정도로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거듭나 새로 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늘 본문에 있는 대로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는 이 말씀의 뜻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교회생활을 아무리 잘 해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하는 고백이 없이는 윤리적 신앙에 머무르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신앙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믿는 신앙입니다. 이 고백을 하는 자라야 새로 지음받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분명히 고백해 봅시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새로 지음받은 영적인 사람됨을 확실히 인식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17절).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로마 시민권을 갖지 못하고 태어난 사람이 로마 시민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로마를 위해 큰 공을 세운다든지, 많은 돈을 내고 사든지 해야 됐습니다.
지금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돈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얻기 위위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데미무어’라는 할리우드 여배우는 관능미를 자랑하는 배우인데 40세가 되어 새 영화의 주연을 맡고 새롭게 모양을 내느라 성형수술을 했습니다. 여기에 든 비용이 자그마치 4억 9,000만 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이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든지’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라는 말이 복음을 복음되게 한 은혜로운 말입니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나라와 민족끼리 차별하고 신분에 따라 차별이 엄격하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로마서 10:11∼13에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신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전에 죄의 크기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기쁨으로 새 사람됨을 힘껏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로 지음 받은 사람입니까? 영의 눈을 열고 속사람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요 하나님의 아들로 분명히 고백하는 영적인 신앙을 갖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 받은 은혜를 누리며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복음을 널리 널리 전하는 새 사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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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목사/ 일산 광성교회
고린도후서 5:16∼17
사람은 흙으로 지음받았습니다. 그래서 첫 사람의 이름이 아담입니다. ‘아담’은 ‘아다마’ 즉 흙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를 때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 하고 흙으로 덮어 줍니다.
사람이 흙으로 지음받았다고 값어치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닷새 동안 하루가 끝날 때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는데 사람을 창조하신 여섯째 날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할 만큼 우주창조의 주인공으로 태어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던 인간이 죄로 인하여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존귀함을 잃고 추악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을 보면 “짐승만도 못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악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발동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제물로 보내 주셔서 죄의 값을 치르시므로 죄 사함을 얻도록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복귀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 구원받은 사람들을 ‘거듭났다’고 말하고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을 통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 말씀하면서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1. 속사람을 중시합니다(16절 상).
석가의 이마에 큰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눈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를 심안(心眼)이라고 하는데 ‘사물을 살펴 분별하는 마음의 힘이나 그 작용’을 말합니다. 육안은 아무리 밝아도 옷으로 감싸고 있는 마음을 알 수가 없으며, 미소 뒤에 감춰진 흉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된 그리스도인은 영의 눈이 열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겉모습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허례, 허식, 허명, 허영을 멀리합니다. 보이는 것으로는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보이는 것을 꾸미고, 쌓고, 누리는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대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보화를 쌓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기도 생활에 힘쓰며 영혼이 부요해지기 위해 생명의 양식인 성경 말씀을 사모하며 읽고, 듣고, 주야로 묵상합니다. 영안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겉사람을 보지 않습니다. 외모의 수려함과 수사에 능한 말과 소유한 물질과 누리는 권세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중심을 보게 됩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집을 찾아가서 왕재를 구할 때 인물이 좋은 큰아들 엘리압을 보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임명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겉사람을 보고 택했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개인적으로도 그런 일을 당한 적은 없습니까?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56).”
우리는 새로 지음 받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이제부터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겉사람을 중시하다 낭패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영의 눈을 가지고 속사람을 중시하므로 생명과 평안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16절 하).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알았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해하고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단순히 세상적이요, 인간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서 이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를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려다 실패한 열혈 랍비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헬라인들은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른 철인 정도로 생각을 하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것을 보고는 도무지 왜 십자가를 지는지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미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 1:23)” 라고 당시 사람들의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도 크게 달리진 것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학교에서는 예수님을 석가, 공자, 마호메트와 함께 4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훌륭한 가르침을 남긴 사람들 중에 하나 정도로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거듭나 새로 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늘 본문에 있는 대로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는 이 말씀의 뜻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교회생활을 아무리 잘 해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하는 고백이 없이는 윤리적 신앙에 머무르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신앙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믿는 신앙입니다. 이 고백을 하는 자라야 새로 지음받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분명히 고백해 봅시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새로 지음받은 영적인 사람됨을 확실히 인식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17절).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로마 시민권을 갖지 못하고 태어난 사람이 로마 시민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로마를 위해 큰 공을 세운다든지, 많은 돈을 내고 사든지 해야 됐습니다.
지금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돈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얻기 위위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데미무어’라는 할리우드 여배우는 관능미를 자랑하는 배우인데 40세가 되어 새 영화의 주연을 맡고 새롭게 모양을 내느라 성형수술을 했습니다. 여기에 든 비용이 자그마치 4억 9,000만 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이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든지’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라는 말이 복음을 복음되게 한 은혜로운 말입니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나라와 민족끼리 차별하고 신분에 따라 차별이 엄격하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로마서 10:11∼13에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신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전에 죄의 크기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기쁨으로 새 사람됨을 힘껏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로 지음 받은 사람입니까? 영의 눈을 열고 속사람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요 하나님의 아들로 분명히 고백하는 영적인 신앙을 갖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 받은 은혜를 누리며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복음을 널리 널리 전하는 새 사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