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 “의로우신 재판장

시편 7

의로우신 재판장

오늘은 시편 7편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다른 시편과는 달리 시편 7편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황에서 쓰여진 시라는 것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시편 7편은 다윗이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대하여 여호와께 한 노래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냐민 사람 구시는 성경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추측컨대 아마도 시편 7편의 분위기를 봐서는 사무엘하 165절 이하의 상황과 연결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16장의 상황은 그야말로 다윗의 일생에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아들인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고 다윗은 맨발로 감람산으로 도망쳤고, 요단 계곡으로 향했습니다. 아들에게 쫓기면서 목숨까지도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다윗의 심정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바후림이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베냐민 지파의 시므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다윗을 저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초대 이스라엘 왕인 사울왕이 속한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는 다윗이 사울의 나라를 빼앗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시므이는 사무엘하 167절부터 8절까지 이렇게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이러한 상황에서 비록 아들에게 쫓겨서 도망치던 다윗의 일행이었지만 부하들이 다윗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죽이겠다고 나서자 다윗은 나서서 말렸습니다. 자신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했습니다. 사무엘하 1610절 이하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아마도 시편 7편의 상황은 이렇게 자신을 저주하는 상황에 처한 다윗이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돌아보면서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신앙 속에서 쓴 시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1612절에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원통함을 감찰하실 것이라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시편 7편은 바로 이러한 다윗의 신앙심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무엘하 16장의 상황을 생각하면 시편 71절부터 5절까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절과 2절은 바로 자신을 추격하는 아들 압살롬의 손길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다윗의 일행의 절박한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3절부터 5절까지를 읽어보면 시므이라는 베냐민 사람이 다윗을 저주한 내용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시므이라는 사람은 다윗이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해서 사울의 집안이 다스리던 나라를 빼앗았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3절부터 5절까지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5절에서 만약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자신이 결백하지 않다면 자신을 처벌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결백하지 않다면 원수로 하여금 자신의 영혼을 쫓아 잡아 생명을 짓밟고 자신의 영광을 진토에 떨어뜨려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므이가 주장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스스로 형벌을 받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결백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서 자신이 어떤 잘못이나 악을 행하여 다른 사람을 해롭게 했거나 그들에게 손해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현재 당하고 있는 고초는 무죄한 사람이 의롭지 못한 상대방 때문에 억울하게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담대하게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죄를 저질렀거나 잘못을 저질렀다면 원수가 자기 생명을 짓밟고 자기 영광을 진토에 굴러 떨어지게 해도 아무 대꾸도, 반항도 하지 않겠다는 담대한 주장을 감히 하고 있습니다.

시편 7편을 쓴 다윗은, 세상적인 가치관과 분쟁 가운데에서 오해받고 저주까지 받는 자신에 대해서 오로지 자신의 결백함을 밝혀주실 분은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가진 위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이제 6절부터 8절까지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역사 속에 친히 개입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여호와는 자신을 위해서 일어나시고,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고, 나를 위해서 깨어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6절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는 그 심판의 기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인인 다윗의 의와 성실함을 따라 판단해 주실 것입니다. 9절에서 악인의 악을 끊어버리고, 의인을 세우시는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방패가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1절에서는 하나님을 의로우신 재판장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편 7편의 6절부터 11절까지를 읽으면서 이 시를 쓴 다윗의 신앙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섭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대담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런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의와 성실함을 따라 판단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각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한 하나님 앞에 우리가 과연 당당하게 나설 수 있을까요? 그러한 하나님이 과연 나의 모습을 보시고 나를 인정하시고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나의 편이 되어주실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의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성실함이 하나님 보시기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심장이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지기 전에 저는 제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해 봤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서 이러한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해 보았을 때 나의 모습은 상당히 부끄럽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바라기는 이제부터 우리는 시편 76절부터 11절까지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읽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담대하게 고백한 다윗의 신앙고백이 오늘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결백과 의로움을 위해서 깨어 일어날 수 있는 신실한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세상 사람이 모두 나를 대적하여도 하나님께서는 내 편이 되실 것이라는 신앙을 가지는 동시에 내 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아무개의 심장을 감찰해 보니 그에게는 한 치의 거짓이 없고 나를 위한 신앙도 흠이 없다고 인정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재판장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선한 사람에게 의로운 재판장인 하나님은 구원의 방패가 되지만, 악한 사람에게 의로운 재판장은 진노의 대상입니다. 따라서 다윗은 12절에서 16절까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과 오늘날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속이는 사람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것을 자주 봅니다. 법 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도 있지만, 요즘의 세상은 법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것이 아니라 돈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을 구분해서 법이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커다란 잘못을 저질러도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고, 돈 없고 빽없는 사람은 조그만 잘못을 저질러도 무거운 처벌을 받는 다는 것이 상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무리 정직하게 살려고 해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사람, 올바른 삶을 살고 싶어도 주변의 상황이 자신을 비참하게 몰고 가고, 억울하게 오해받고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들에게 시편 7편은 위로와 위안을 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자신이 죄 없이 고난을 당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까지 받는 상황 속에서 시편 7편을 썼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과정 속에서 널리 사랑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 속에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시편은 한 사람의 신앙고백으로 출발했지만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여진 노래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신앙고백인 시편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또 다시 우리 각 사람 개인의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여지고 우리의 삶 속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의 개인적인 상황 속에서 위로와 위안이 되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7편의 말씀을 붙잡고 진정 하나님이 세상 속에서 나의 편이 되어주시고 나의 의로움과 성실함으로 판단하시는 의로운 재판장이라는 것을 믿고 담대하게 사는 하루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