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설교] 명품(행13:22)
백동조 목사(목포 사랑의교회)
2009년 03월 02일 (월) 18:28:25 기독신문 발췌 기독신문 ekd@kidok.com


자신의 가치를 가꾸어 나갑시다

빈들에서 자기 혁신 게을리하지 않았던 다윗 배워야


▲ 백동조 목사
여성들 사회에서 만들어진 유머입니다. 여성을 공으로 비유했습니다. 10대 여성은 축구공과 같다고 합니다. 그 축구공 하나를 쟁취하기 위해서 20명의 장정들이 필사적으로 달라붙는다고 했습니다. 20대가 되면 그 축구공은 농구공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이제 그 공 하나를 쟁취하기 위해서 10명의 장정들이 필사적으로 달라붙는다고 합니다. 30대가 되면 그 농구공은 골프공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어느 장정 한 사람이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친다고 합니다. 30대 여성들은 이제 한 남자의 소유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40대가 되면 그 골프공은 이제 탁구공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공이 넘어 오는 것을 무서워하며 넘어오기가 무섭게 받아 넘긴다고 합니다. 50대가 되면 그 탁구공은 피구 공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공에 맞으면 무조건 죽기 때문에 공을 필사적으로 피한다는 것입니다.

60대가 되면 피구공은 드디어 오자미로 바뀐다고 합니다. 자기는 공이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공이라고 하지 않고 오자미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저 공입니다’하면 다른 사람들은 ‘오자미구만’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하냐는 뜻입니다. 여성들 사회에서 자신들을 공으로 비유하면서 이 유머를 만들어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성들이여, 오자미 취급받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하고 자신을 개발하자’라는 것입니다.

나는 목포 사랑의 교회를 시무하는 목사입니다. 나이가 들어 ‘저는 목포 사랑의 교회 백동조 목사입니다’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오자미라고 한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오자미 취급 받지 않으려고 만학도가 되어 월요일이면 대학원에 갑니다. 오늘의 내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를 혁신하고 개발하기 위해서입니다. 끊임없이 인터넷과 유선TV방송을 통해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습니다. 틈만 나면 책을 읽습니다. 다른 분들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철없이 젊었을 때 나는 명품을 좋아했습니다. 메이커가 아니면 입지도, 신지도, 들고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명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인가 문득 이런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입고, 신고, 들고 다니는 것은 명품인데 내 자신이 짝퉁이라면 나는 입고, 신고, 들고 다니는 물건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 순간 마음을 굳게 먹고 다짐했습니다. ‘나는 내 자신을 명품으로 만들리라.’ 그리고 끊임없이 내 자신의 영향력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내 고향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면 삼포리 670번지입니다. 서울에 올라와 어느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전라도 사투리가 나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하, 전라도 촌놈이 왔구나’라고 생각하며 한 자리 깔고 나를 보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논리가 있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하 촌놈인 것 같은데 뼈다구가 있는 놈이구나’라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아마 시골 출신이거나, 특히 전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입니다. 전라도 사투리를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내 자신을 당당한 명품으로 업그레이드 시키고 싶었습니다. 끊임없이 내 자신을 혁신하고 개발해 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내 자신을 명품으로 개발하다보니 탁월한 명품은 아니라도 쓸모가 있는 연장이 되었나 봅니다. 지금도 많은 부분이 부족하지만 전국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학교와 교회, 그리고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지금은 목포에 있는 날이 별로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내 이야기를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있는 곳이 지방이든 시골이든 서울이든 간에 내 자신을 명품으로 개발한다면 세계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광야에 양을 치고 있는 다윗을 보십시오. 비록 빈들에 있어도 명품이니, 하나님이 그를 빈들에서 이끌어내어 민족의 등불로 세우지 않습니까? 이 사실을 꼭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혁신시키고 개발하는데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주인 되신 나의 하나님이 쓰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도구로 준비되자는 것입니다.

오늘의 냉혹한 현실을 보십시오. 아내가 아내답지 못하면 그의 남편이라도 그 아내를 무시합니다. 남편이 남편답지 못하면 그의 아내라도 남편을 무시합니다. 아니 자기를 낳아 준 부모가 부모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의 자식들도 그 부모를 무시합니다. 이것이 현실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직장에서야 오죽하겠습니까? 세상에서야 오죽하겠습니까? 교회에서는 어떻습니까. 용량이 부족한 목사가 설 곳이 있나요?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저는 부교역자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목사가 그 교회를 담당할 용량이 부족하면 그의 처자식들은 교인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어디에 있어도 다이아몬드로서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가 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하고 개발하여 자신을 명품으로 가꾸어 갑시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명품,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명품, 전문인으로서의 명품, 남편으로서의 명품, 아내로서의 명품, 부모로서의 명품이 됩시다. 주인이 쓰실 때에 마음껏 쓰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오자미가 되지 않도록.

설교노트
다윗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없는 빈들에서 다윗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 자기혁신과 자기 개발에 주력한 인물입니다. 한 마리 양이라도 맹수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돌을 던졌던 그 실력이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민족을 구했습니다. 비록 빈들에 묻혀 살았지만 그는 명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