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5:13 소금의 사명이 무엇인가

조성모 목사

 

찬송: 172, 208, 210,

서론:

 

소금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인체 생리학적인 면에서 보아도 혈액의 필수적인 요소이기에 인간의 몸에 생명이 됩니다.

소금은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필요한 것입니다. 사치스러운 귀중품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소금이 없다면 살기가 어려운 환경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소금은 인간들에게 매우 유익을 주는 가치 있는 생필품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신 것은 타락 하고 범죄 하는 세상에서 부패를 방지하고 복음으로 변화시키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현대는 윤리 도덕도 붕괴되어 가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소망 없이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오직 복음만이 그들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금의 사명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하며 은혜나누기를 원합니다.

 

소금의 짠맛을 그리스도인이 보여주어야 합니다. 13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욥기66절에도 보면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 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소금은 단 맛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시거나 쓴 맛을 내는 것이 물론 아닙니다. 짠 맛을 내야 소금이 소금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음식에 소금이 들어갑니다. 소금이 들어가기 전에는 맛을 내지를 못합니다.

 

고기 국 에도 꼭 소금이 필수적으로 사용됩니다. 음식에 짠 맛을 내 주어야 음식의 가치를 얻게 됩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도 양들에게 필수적인 양식은 소금 입니다. 양들에게도 소금을 먹여야 양들이 생기를 얻고 활동합니다.

 

소금은 그 어떤 비싼 금이나 보석 보다 도 소중합니다. 소금이 생명에도 필수적인 요소인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소금처럼 신앙의 맛을 보여주는 생활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소금처럼 세상 속으로 침투하여야 합니다. 어둡고 죄로 얼룩진 세상 속에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변화 받도록 해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소금의 맛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소금이 소금 노릇만 한다면 썩어지는 세상 부정과 불의가 가득한 세상을 막아주며 선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보존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소금은 하얗고 작으며 가루로 빻아지는 것이지만 매우 강렬합니다. 소금이 침투하여 녹아지기만 하면 부패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뻣뻣한 배추나 생선에도 소금이 들어가면 부패되지 아니합니다. 소금이 녹아지기만 하면 소금의 효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소금처럼 녹아져야 합니다. 소금처럼 썩어지고 냄새 나는 곳에 침투하여야 합니다. 더 이상 부패되지 아니하도록 소금 역할을 하여야만 합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424절에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고 증언합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한 넓은 의미에서는 우리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소금이 되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모습을 본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소금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소금의 짠 맛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소금이 그 맛을 잃게 되면 밟혀서 아무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1434절로 35절에 보면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어 버리느니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소금은 싱거운 것을 짜게 하는 것이 특징인데 짠 맛이 없다면 그런 소금은 전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 소금이 제 효능과 자극성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가 아닙니다. 생명입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아직도 신앙의 짠 맛을 내지 못한다면 해를 끼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금의 짠 맛을 나타내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소금처럼 은밀하게 복음을 전파하여야 합니다.

소금의 영향력은 누룩처럼 퍼지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오늘날 현대는 물질문명이 극도로 팽창한 시대입니다.

 

스펄전 목사가 목회하던 당시에는 주로 빈곤층에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길거리에서 술에 취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스펄전 목사의 복음을 듣고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납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소금처럼 조용히 복음을 전하면 믿는 자들이나 불신자들 모두가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패한 세상에 총과 칼을 가지고 개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움큼의 작은 소금이라 할지라도 조용히 복음 전파의 사역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이 가르침은 마치 소금과 같은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면 심령이 살아나고 마비된 양심이 회개하고 나태한 심령이 부지런하게 됩니다.

 

주님의 열 두 제자들은 *가룟유다*를 제외하고 모두 주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복음 때문에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주님의 증인이 된 자들입니다.

 

한 마디로 소금과 같이 녹아지는 사명을 다하고 간 자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소금처럼 복음을 은밀하게 증거하고 순교 정신을 각오하고 사명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고린도 후서214절에 보면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바울은 증언합니다. 복음의 향기와 그리스의 향기는 복음 전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여 생이 얼마가 되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살아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소금은 화목하게 하는 사명입니다.

마가복음950절에 보면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 하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화목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소금은 물리적인 변화만이 아니고 영적인 변혁을 이루는 것입니다. 화목 하는 삶을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말로도 화목하여야 합니다.

 

골로새서46절에 보면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 게 함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화목을 유지하기 위하여 은혜로운 말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기쁨인데 상대방에게 기쁨을 준다면 대인관계에서도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녹아지지 아니하는 소금은 소금의 효능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화목함이 없는 신앙은 어떤 유익도 없는 것입니다. 소금처럼 녹아지는 삶이 일어날 때에 온유하고 부드러운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결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소금입니다. 소금은 맛 그대로 짠 맛을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세상 속으로 침투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 하여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국가가 주님의 복음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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