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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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의 처를 생각하라”(눅 17:22-32)
다음달 12월 1일(2002년)부터 “개인워크 아웃”제도가 실시될 예정이어서 여기에 많은 사람 들이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 사회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최근 나온 대법원 자료에 의하면 올 들어 지 난 7월까지 서울지법 등 각급 법원에 접수된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총 548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런데 참으로 심각한 것은 서울지법 파산부 윤강열(尹鋼悅) 판사는 “개인파산 신청자 10명 중 7명 은 카드 빚을 돌려 막다 못 버티고 찾아오는 사람들”이라며 “1년 전만 해도 개인파산 신청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는 분위기(雰圍 氣)였으나, 요즘엔 다들 당당한 표정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빚보증을 서줬다가 덤터기 쓴 경우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반면 에, 개중엔 도박이나 사치성 소비 등에 의한 파산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재정적인 면에서 파산되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파산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파산 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위험 경고판과 같은 말씀입니다. 과거의 역사는 그 시대의 사건으로써 끝나는 것 이 아니라 후대에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살아 있는 교과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역 사라 할지라도 그 역사는 우리들에게 오늘을 돌아보게 하고, 보다 더 발전적인 처방을 내리도록 하는데 그 중요성이 있습니다. 이러 한 중요성을 성경도 언급을 하고 있는데 고린도전서 10장 11절에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 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지나간 역사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실패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됨을 경고하며 교훈 해주고 있고, 과거의 성공은 우리로 하여금 더 욱 더 하나님의 뜻에 살 수 있도록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게 합니다. 특별히 언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지 모르는 긴장된 시대 에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 시기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 "롯의 처를 생각하라"에서 '생각하라'(므네모뉴오)는 말은 '기억하다', '마음에 불러일으키다'의 뜻으로 단순히 기억 하라는 의미보다는 '마음을 쓰다', '조심하다'의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말은 롯의 처가 당한 파멸 을 기억하고 조심하라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신 위험지역에 세워 놓은 경고판과 도 같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롯의 때에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세상 향락에 취하여 자기 자 신만을 위하여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일]들에만 집착(執着)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지 못하고 결국 하나 님으로부터 불 심판을 받아 멸망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창19:15-25)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롯의 때와 같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시한부 (時限附) 종말론자들과 같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현실의 삶을 도피하는 삶을 살아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어떤 사람들 처럼 [종말(終末) 불감증(不感症)]을 가지고 현실 생활에만 집착한 나머지 영적 안일함과 영적 나태함에 빠져있어서는 안됩니다. 물 론 우리가 세상일에 힘쓰는 것은 육신(肉身)을 가진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에 충실하고 최선 을 다하는 참으로 바람직한 태도이며,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종말(終末) 의식]을 갖지 못하고 자기 자신 의 쾌락과 만족만을 위해서 세상에 몰두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모습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오늘날 세상은 사람들과 육신 에 얽매여 사는 교인들은 마치 롯의 때처럼 그저 먹고 마시는 일에 골몰하고 세상의 쾌락과 세상의 풍요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26-30절)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들이 소망하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은 마냥 지체되고, 지연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 다. 주님은 "사람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기습적으로 담은 넘는 도적의 경우처럼 모든 사람들이 육체의 일에 젖어 영혼이 깊이 잠들 어 있는 바로 그 순간에 갑작스럽게 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살전 5:1-3) 이러한 갑작스런 주님의 오심 을 맞이해야 하는 우리는 비록 이 땅에서 여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의 일을 충실하되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 주님의 오 심을 언제라도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밤중에 찾아온 신랑을 기쁨을 맞이했던 지혜로 운 다섯 처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마25:1-13)
둘째로, 교회에 출석하며 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진 자 중에서도 멸망(滅亡) 받을 자가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양 과 염소의비유에서, 알곡과 쭉정이의 비유에서 교회 안에도 양과 염소, 알곡과 쭉정이가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 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롯의 처를 생각하라"(32절)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준엄한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야 할 것입니다. 롯의 처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말미암아 소돔과 고모라 성을 향한 하나님의 불 심판 속에서 구원을 받았지 만, 소돔성에서 급히 도피해 나오는 중에 하나님의 엄히 명한 경고의 말씀의 말씀을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 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우리 한국식 표현을 쓴다면 "벼락맞아 죽은 여자"입니다. 이는 비록 하나님의 천국 초대를 받은 자일이라 도 세상에 주는 만족과 세상에 대한 미련에 재차 마음을 빼앗긴다면 더 이상 소망이 있을 수 없음을 힘있게 교훈 하시는 것입니 다. 예기치 못할 순간에 임할 주님의 재림의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롯의 아내처럼 여전히 세상에 눈을 돌리 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는 끝나는 날에 그 생명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본문 30-31절에서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 날에 만일 사람 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안에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돌리키지 말 것이니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결코 세상에 대하여 감상적인 생각을 갖고 미련을 갖고 돌아보아서는 안됩니 다. 눅 9:62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 시니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것은 물자(物資)의 부족 때문도, 기술(技術) 부족 때문도, 지 식(知識) 부족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죄(罪)로 인해 망한 것입니다. 물론 죄(罪)가 있다고 다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 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悔改)는 성경의 중심적인 주제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 서 선포하신 복음의 첫 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영적 건강 상태는 어떠합니 까? 여러분의 영적 상태는 건강합니까? 아니면 병들어 있습니까?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롯의 처는 어떤 사람이었으 며, 왜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권면하셨는지 그 교훈을 함깨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 롯의 처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 롯의 처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창 13:10)
창 13:10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롯의 처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한 사람입니 다 . 롯의 처는 여호와의 동산같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 같아서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롯 의 처는 창 19장의 말씀을 볼 때에 ① 신앙적으로 원만한 환경에 처해 있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 면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향하여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불렀고(창23:6),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고 부르시면서 (사 41:8.대하20:7,약 2:23)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창 12:2) 그런데 롯의 처는 이렇게 신앙이 좋은 아브라함을 작은 아버지로 모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 그리고 롯의 처는 신앙적으로 좋은 집안의 한 사람이었기에 좋은 신앙의 분위기 속에서 살았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 다. 본래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여러 우상들을 섬기는 환경 속에서 살았으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하 나님을 바로 모시며, 섬기면서 철저한 믿음을 중심 하여 살고 있는 터였는데, 롯과 그의 아내는 그 집안에서 함께 살았으니 신앙 의 좋은 감화를 받으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③ 뿐만 아니라 롯의 처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입으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모신 것만 아니라, 날마 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면서 힘써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생활을 하였는데, 롯의 처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조카 며느리(姪婦)로서 살았 으니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입으면서 산 여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의 처는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유리한 환경과 상황 속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믿음의 성공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 입니다. 오히려 진정 참 성도의 모습은 환경적 특권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환난과 핍박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성장할 수 있 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게하시는 선지자 엘리사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데마는 사도 바울 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좋다고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도 예수의 제자였지만 돈 때문에 자기 스승을 배반하고 자살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롯의 처가 왜 실패하였습니까?
그것은 롯의 처가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소돔 고모라의 멸망과 심판에 대한 하나님 의 경고의 말씀에 별로 관심(觀心)을 갖지 않았고, 그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롯의 처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농 담으로 여겼던" 롯의 두 사위들과 같이 소돔 성을 빠져 나오는 가운데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하고 뒤 를 돌아보다가 결국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창19:17,26)
왜 롯의 처가 소돔과 고로라 성을 나오다가 뒤를 돌아보았습니까? 그것은 물질주의(物質主義)적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 다. 물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서 "신앙이 전연 없었다"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녀는 확실한 믿음을 갖 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나마 있는 믿음도 자기 자신의 의지적인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천사의 손에 붙들 려 나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억지로 끌려 나왔지만 롯의 처의 마음은 여전히 소돔성에 있었던 것입니다. 롯의 처 는 일단 구원을 받았으나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므로 종내는 구원을 완성하지는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은 빌 2:12에서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 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찾아 볼 것)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교인들 중에 몸은 신자가 되어서 교회에 출석하지만 그 심령은 여전히 옛 사람대로 있고, 세상 에서 매여 있는 성도가 있습니다. 마치 이삭이야곱에게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예서의 손이로다"고 말하였듯이(창 27:22) 겉모습은 분명히 성도인데, 그 중심을 보면 아직도 성도가 아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 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넜지만 마음은 여전히 애굽 생활을 그리워하였던 사람처럼 세속적인 일에 대해서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 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몸은 분명히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복지를 향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당시의 문명국 이었던 애굽의 화려한 음식과 생활에 끌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때를 따라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하면서 애굽을 그리다가 마침내는 가나안 복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던 것처럼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롯의 처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物質)에 대한 집요한 애착이나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면 물질주의적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물질은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은 관리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 은 아닙니다. 만약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롯의 아내처럼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돈 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딤전 610) 물론 물질의 유혹을 극복한다는 것은 보 통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신앙의 힘으로 물질의 유혹이나 애착 그리고 미련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국 물 질주의적 신앙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에 얽매이는 신앙은 능력이 없는 신앙이며 구원에도 이르지 못할 신앙일 수 있는 것입 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 318,19에서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물질주의적 신앙의 사람은 십자가의 원수가 되 고, 멸망을 받고야 말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배로 하나님을 삼고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다"라 고 하면서 물질주의(物質主義)적 신앙을 철저히 경계하도록 하였습니다. 만약 신령한 일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만 관심이 있을 뿐이며,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면에서는 감사할 줄을 알지만, 신령한 면에서는 감사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자 기 배로 하나님을 삼고, 땅을 일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조건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부자가 되었으니 감사하고, 취직하였으니 감사하고, 결혼하였으니 감 사하지만, 신령한 은혜와 축복에 대하여는 감사가 없으며, 역경에서의 감사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대단히 위험한 신앙 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하시는 신앙이며 세상을 이길 수 없는 신앙이며,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할 신앙이며, 구원 을 얻지 못할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이제라도빨리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힘입어서 물질주의적 신앙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만약 이 시간에 우 리의 몸은 성전에 와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다른 곳에 가있는 분이 있다면, 겉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인데 마음은 아직도 세상 욕심 에 연연하고 있다면, 한발은 교회에 있지만 나머지 한발은 여전히 세상에 놓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러한 사람은 롯 의 처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제라도 빨리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아니하면 생각지도 않는 때 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결국 실패자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 거리 지 말아야 합니다.
2. 롯의 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사람이었습니다.(창 19:17)
롯의 처는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은 자였습니다. 롯의 처는 미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 다. 그녀는 하나님의 명백한 말씀 앞에 순종하기를 즐겨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분명히 롯의 처는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 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명령을 받았습니다. (창 19:17 하) 그러나 롯의 처는 "설마 뒤를 돌아본다고 멸망하겠느냐?" 하면서 뒤를 돌아보았고, 그 결과 는 그녀는 소금 기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롯의 처와 같이 "우리가 '설마'할 때에 주님의심판이 임할는지"는 아무 도 모릅니다. 이것은 천사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서 기 도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코 "설마... 설마"하면서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恩惠)는 온전히 순종하는자에게 역사 하는 것이지 이렇게 불순종하는 자에게 임하지 않습 니다. 그러기에 롯의 소금 기둥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불순종함으로 결국 구원을 얻을 기회를 잃어 버렸습니다. 왜냐 하면 신앙의 위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순종으로 화답할 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롯의 처와 같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은 효력을 나타날 수 없습니다. 말씀 자체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씀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믿음 은 가시밭과 같은 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는 기쁨으로 받으나 곧 시드는 것은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 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확신이 없기 때문에 세상 염려 재리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자는 모래위 에 집을 짓는 자는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그 집에 부딪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은 항상 순종하는 믿음과 통하는 것입니다. 물론 순종하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았기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어떠한 위기적인 상황에서도 순종을 잘 하는 신앙이라야 구원을 얻는 귀한 믿음인 것 입니다. 그러나 롯의 처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롯의 처는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탈출하여 나왔으나, 도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에 불순종하여 죽어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영적 상태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합니 다. 특히 우리는 매주일 우리의 영적(靈的) 건강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치 건강을 위해서 병원에 입원하여 정밀 검사를 받 듯, 영적 병원인 교회에서 우리의 생활을 좀 더 세세하게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순종하기를 힘쓰고 있습니 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보다는 불순종하는 자세가 더 강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 보다 오히려 불순 종하는 일이 더 많지는 아니합니까? 우리들은 우리의 생활을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하며,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생활을 진지하게 살 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기에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거 나 약이 되는 경우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실패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인 과 그 후예들의 모든 죄스러운 행동들을 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서 온 것입니다. 성경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 과 실패를 상기시키시면서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 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 아 니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3:18). 이스라엘은 애굽에서는 나왔어도 광야에서 다 멸망을 당하였고 가나안에는 하나도 들어가 지 못하였습니다(민 14:22-24)(성경을 찾아볼 것)
그러므로 우리들은 순종하는 믿음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믿음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항 상 순종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순종하는 믿음은 어리석은 믿음이거나 바보 신앙인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 하는 믿음은 결코 어리석은 신앙도 바보 신앙도 아니라, 진정으로 복스러운 믿음이요, 능력 있는 믿음이요 구원을 얻는 믿음인 것입니 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 말씀대로 따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지시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그리 하면 하나님께서 자신과 가정과 하는 모든 일들에 형통(亨通)하는 축복(祝福)을 누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대 로 지키고 살면 어떤 축복을 받습니까? 이에 대하여 잠 3:1-2에서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 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 고, 신 4:40에서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 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롯의 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창 19:29)
창 19:29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천사가 롯의 처를 구원하고자 그녀를 억지로 이끌어 낸 것은 그녀의 의 (義)나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닌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받은 의(義)로 말미암아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 가 주어진 것입니다. 창18:22절에 아브라함이 소돔을 멸망시키러 가는 천사를 붙들고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은 "주께서 의인을 악인 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라고 간청합니 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의인(義人) 오십을 찾으면 소돔과고모라를 용서하시겠다"라고 하십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 오십(50) 에 오(5)인이 모자라는 45명, 40명, 30면,20명, 마지막으로 한 번 더 10명을 찾으시면 어찌하시겠습니까?"라고 간청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내가 10인을 인하여 도 멸하지 아니 하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이 아브라함의 간절한 기도는 소돔 안에 사는 조카 롯을 위한 기 도인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기에 마침내 창19:29절에 보면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 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 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하셨습니 다. 아브라함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롯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자녀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 은 요 3:16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 을 얻게 하심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 의 믿음과 의가 롯에게로 전가(轉嫁)되고, 롯의 딸들과 롯과 그의 처에게 전가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감 사 또 감사해서 줄달음쳐야 할 이때에 롯의 처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의 처는 하나님께 감사(感謝)는 커녕 두고 온 금은 보화로 인해 불평하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돌아보다가 결국 소금 기둥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감격과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감사 없는 신앙은 돌밭과 같아서 곧 시들게 되고 멸망 받게 됩니다. 우리 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크고 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라 고 말씀하고 있으며(히2:3),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시49:8)
그런데 롯의 처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일을 큰일로나 귀한 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의 신앙생활에서 실패하 고 마는 것입니다. 사실 구원을 소중히 여기는 믿음이 없이는 믿음을 바로 지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롯의 처는 모든 사람 이 다 유황불에 죽어 가는 속에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입어 살게 되었으니 다시 무엇을 바랄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또 특별하 신 은혜(恩惠)를 베푸셔서 생명을 건져 주신 하나님께서 필요를 따라서 모든 물질적인 축복을 더하실 것이니, 죄악의 도성에 두 고 온 물질이나 재산에 미련이나 애착을 가질 때 필요가 없었는데 그것들을 돌아보다가 멸망을 받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救援)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 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스러운 기업을 소유할 자가 되었습니 다. 그러기에 만유의 대주재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필요를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우리의 모든 것을 채워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므 로 이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으니, 이것을 놓치지 아니하고자 하여서 삼가며, 조심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 구원의 은총 을 값진 보화요. 진주로 알아서 다른 모든 것은 다 버려도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는 보물로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믿음을 소유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고후 4:7) 주 신 구원에 감사하는 삶을 살되 말로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구속의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마리아 문둥병자 와 같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엎드려 사례하는 감사의 믿음"을 갖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눅17장) 네 눈이 보는 것 을 조심해! 네 귀가 듣는 것을 조심해! 네 손이 하는 것을 조심해!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II. 그렇다면 주님께서 본문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 이 세상에만 집착하며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27절)
본문 27절에서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 를 다 멸하였으며"라고 하였고, 본문 28절에서는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 을 짓더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대에 메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소돔과 고모라 시대 에 살았던 롯의 처(妻)"와 같이 현실 세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영적 안일함과 영적 나태함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 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여기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짓더니"라는 단어는 미완료형으로 계속된 행위를 나타내 는 동사들입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단순히 정상적인 삶이 아니라 탐욕과 쾌락추구의 비정상적인 삶의 형태임을 나타내고 있기에 경각심 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온통 이러한 세상의 일들에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만을 생각했 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생활 속에서 먹 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집을 짓는 것은 죄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때나 롯의 때의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것 이 상의 그 어떤 삶도 없다고 여기며, 세속적이고 불신앙적인 삶에 빠져 영적인 일에는 관심도 가져보지 못하였습니다. 더 높은 명 성, 더 많은 재물, 보다 더 감각적인 쾌락과 향락을 추구하니 진리가 저들의 귓가를 울려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 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아의 때나 롯의 때에는 성적인 타락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요즘 신문이나, T.V 연속극들이 남편과 아 내를 두고 애인을 가져야 만이 센스 있는 사람이요, 무언가 인생을 즐기는 사람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참으로 매스컴이 우리 시대를 혼 돈으로 몰아세우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정상적인 가정을 파탄으로 이끄는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송두리 째 앗아가고 결국 인생을 파탄시키는 것은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단의 전략임을 알아야 합니다.
노아의 시대는 한마디로 '죄악의 관영함'(창6:5)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탐했던 시대(창 6:2)였습니다. 롯의 때에도 남색을 도모하는 성적 타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 결과 노아 시대에는 물로 심판을 받았고, 롯의 때 에는 불과 유황으로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들이는 퇴폐적인 성문화(性文化)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만연 되어 있다는데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사회가 온통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외설적인 것들로 가득 차고 있는데도 우리는 속수무책입니 다.
그리고 이러한 음란 문화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우리에게 친근히 다가오고 있다는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 다. 오늘의 시대가 노아의 시대나 롯의 시대와 흡사하다는 사실에 성도는 경각심을 가져야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오늘만을 위하여 사 는 쾌락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라고 하는 삶속에 깊이 안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 사는 성도는 시대가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는 방임주의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성도는 이 시대 를 역행하면서 말씀을 따라 건전한 윤리관을 가르쳐 주며 삶으로서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 속에 있는 성도의 사명이 요, 의무입니다. 세상 속의 빛으로서, 세상 속의 소금으로서 부패하고 어두운 세상에 영향력을 주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29절)
본문 29절에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불과 유황의 멸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심판의 장소를 나가던 롯의 식구들이 있었습니다. 홍수 심판 속에서도 방주로 들어 가는 은혜를 입은 노아 식구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에게는 멸망이지만 성도에게는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 게 합니다.
두 천사는 롯의 식구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 나 하지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창19:17). 그러나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창 19:26). 롯의 아내는 이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기보다는 소돔에 두고 온 온갖 세상적인 것들에 마음이 빼앗겨 있 었습니다. 구원의 반열에 끼어 걸음을 옮기고는 있었으나 마음은 물질과 세상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도 알았 고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도 들었습니다. 그녀는 천사를 만나는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 신자였습니다. 그녀는 천사들의 강권적인 권유 로 멸망할 소돔에서 도망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뒤를 돌아봄으로 소금 기둥이 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물질만능주의, 황금만능주의를 추구하는 인생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물질, 곧 두 주인을 섬기 는 인생의 결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히 여기는 인생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뒤돌 아보는 것이 나쁠까요? 그 이유를 누가복음 9장 62절에는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 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야고보서 4장 4절에서 도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 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멸망 가운데서 구원을 얻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여김으 로 도중에 소돔을 향해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어 죽는 비참한 롯의 처를 생각해야 합니다. 심판과 진노 속에서도 은혜 로 구원을 얻게 되는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세상에 메여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롯의 처는 우리에게 웅변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 다.
3. 마지막 날을 준비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30절)
본문 30절에서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마지막 날을 준비하 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것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결코 사람들 이 꿈꾸고 있는 유토피아는 닙니다. 죄악으로 인해 반드시 멸망하고야 말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해서도 안되고, 여기에 인생의 목적을 두어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이 멸망 은 온 우주 역사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성경은 이 마지막 때 예수를 믿는 자는 천국이요, 믿지 않 는 자는 지옥뿐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6절에 "노아의 때에..."라는 말씀이 있 고, 28절에도 "또 롯의 때..."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역사적 사건을 언급하시면서 예수님의 재 림 때 즉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고 종말의 시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다'(아포칼륖토)는 말은 '폭 로하다', '드러내다'라는 의미로 감추어졌던 것이 사람들의 눈에 공개됨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완전하게 공개적으로 임 할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종말론적 시대의 징조 중의 하나가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본문 23절에 "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 다. 예수님의 재림은 한편 구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인이 보는 앞에서(계1:7)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며, 예수님의 재 림은 지역적으로 임하는 재림이 아니라 세계적이며, 동시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24절).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단들은 예수님의 재림 을 이용해 날짜까지 들먹이며 성도들을 미혹하고 재산을 헌납하게 하고, 직장도 포기하도록 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게 하는 등 비정상적 인 생활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재림의 시기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기에 성도는 그 날이 임할 때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 됨을 오 늘 본문 34절과 35절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일시적이요, 세계 적이기에 어떤 나라에서는 밤에 잠을 자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고, 어떤 곳에서는 일을 하다가 영접하게 됨을 본문 말씀이 보여줌으 로써 정상적인 생활 가운데서 종말론적 신앙으로 살아야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숨쉬고 있는 이 시대는 하나님을 모르는 시대입니다. 타락과 방종의 시대요(창6:3), 인본주의가 팽배한 시대입니 다. 멸망이 눈앞에 다다랐어도 깨닫지 못하는 무지한 시대입니다. 지극히 현세적이요, 향락적이요, 세속적인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 에 주님은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이 시대를 영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 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의 말씀을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경고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임으로 세속에 메이 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심판 속에서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도록 두렵고 떨리는 마음 으로 주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온갖 좋은 것들로 성도를 미혹하며, 정욕과 탐욕의 줄로 우리를 묶어 놓아주지 않으려고 하 고 있습니다.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세상에 성도가 눈을 돌릴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소금 기둥처럼 점점 굳어져 죽어 갈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경계하기 위해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 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 록 하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 이것은 위험한 세상에 노출된 성도를 구원하시기 위한 주님의 음성입니다. 우리 모두는 현실에 눈 이 어두워 결국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는 비참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자로서 영원한 것을 위해 세상을 등지고 오늘 도 묵묵히 진리의 길로만 걸어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 매우 교만하고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느 때보다 "롯의 처 를 생각하라"는 예수님의 권면은 귀중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중에서 이러한 사람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기회 를 따라서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끌려서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의 신앙이 아직도 물질주의적 신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 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구원의 은총(恩寵)을 깨닫지 못하고 구원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 한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몸은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우리의 심령은 여전히 세상을 향하고 있지나 아니합니까? 이제라 도 물질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신령한 깊은 은혜에서 사는 우리가 되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항상 순종하는 우리가 되며 구원의 은 총의 감격과 구원의 은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며 육체와 영혼이 아울러 참 신자가 되어서 신령한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힘차 게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수의 불신앙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는가에 상관할 필요는 없습니 다. 또 다수의 소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믿음 없는 무리들이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서 상관할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롯의 처와 같은 잘못된 신앙을 고쳐서 참되고, 신령하고, 생명력(生命力)이 있고, 역사가 있 는 믿음으로써 세상에서도 보람차고 복스러운 삶을 영위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광스러운 소망이 확신 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 야 하겠습니다. 이제라도 종말의식을 가진 성도답게 긴장하고 더욱 깨어있는 가운데 갑작스런 순간, 예기치 못하는 때에 주님을 기쁨으 로 맞이할 수 있는 믿음의 성공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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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2월 1일(2002년)부터 “개인워크 아웃”제도가 실시될 예정이어서 여기에 많은 사람 들이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 사회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최근 나온 대법원 자료에 의하면 올 들어 지 난 7월까지 서울지법 등 각급 법원에 접수된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총 548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런데 참으로 심각한 것은 서울지법 파산부 윤강열(尹鋼悅) 판사는 “개인파산 신청자 10명 중 7명 은 카드 빚을 돌려 막다 못 버티고 찾아오는 사람들”이라며 “1년 전만 해도 개인파산 신청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는 분위기(雰圍 氣)였으나, 요즘엔 다들 당당한 표정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빚보증을 서줬다가 덤터기 쓴 경우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반면 에, 개중엔 도박이나 사치성 소비 등에 의한 파산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재정적인 면에서 파산되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파산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파산 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위험 경고판과 같은 말씀입니다. 과거의 역사는 그 시대의 사건으로써 끝나는 것 이 아니라 후대에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살아 있는 교과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역 사라 할지라도 그 역사는 우리들에게 오늘을 돌아보게 하고, 보다 더 발전적인 처방을 내리도록 하는데 그 중요성이 있습니다. 이러 한 중요성을 성경도 언급을 하고 있는데 고린도전서 10장 11절에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 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지나간 역사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실패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됨을 경고하며 교훈 해주고 있고, 과거의 성공은 우리로 하여금 더 욱 더 하나님의 뜻에 살 수 있도록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게 합니다. 특별히 언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지 모르는 긴장된 시대 에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 시기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 "롯의 처를 생각하라"에서 '생각하라'(므네모뉴오)는 말은 '기억하다', '마음에 불러일으키다'의 뜻으로 단순히 기억 하라는 의미보다는 '마음을 쓰다', '조심하다'의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말은 롯의 처가 당한 파멸 을 기억하고 조심하라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신 위험지역에 세워 놓은 경고판과 도 같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롯의 때에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세상 향락에 취하여 자기 자 신만을 위하여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일]들에만 집착(執着)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지 못하고 결국 하나 님으로부터 불 심판을 받아 멸망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창19:15-25)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롯의 때와 같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시한부 (時限附) 종말론자들과 같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현실의 삶을 도피하는 삶을 살아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어떤 사람들 처럼 [종말(終末) 불감증(不感症)]을 가지고 현실 생활에만 집착한 나머지 영적 안일함과 영적 나태함에 빠져있어서는 안됩니다. 물 론 우리가 세상일에 힘쓰는 것은 육신(肉身)을 가진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에 충실하고 최선 을 다하는 참으로 바람직한 태도이며,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종말(終末) 의식]을 갖지 못하고 자기 자신 의 쾌락과 만족만을 위해서 세상에 몰두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모습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오늘날 세상은 사람들과 육신 에 얽매여 사는 교인들은 마치 롯의 때처럼 그저 먹고 마시는 일에 골몰하고 세상의 쾌락과 세상의 풍요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26-30절)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들이 소망하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은 마냥 지체되고, 지연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 다. 주님은 "사람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기습적으로 담은 넘는 도적의 경우처럼 모든 사람들이 육체의 일에 젖어 영혼이 깊이 잠들 어 있는 바로 그 순간에 갑작스럽게 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살전 5:1-3) 이러한 갑작스런 주님의 오심 을 맞이해야 하는 우리는 비록 이 땅에서 여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의 일을 충실하되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 주님의 오 심을 언제라도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밤중에 찾아온 신랑을 기쁨을 맞이했던 지혜로 운 다섯 처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마25:1-13)
둘째로, 교회에 출석하며 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진 자 중에서도 멸망(滅亡) 받을 자가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양 과 염소의비유에서, 알곡과 쭉정이의 비유에서 교회 안에도 양과 염소, 알곡과 쭉정이가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 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롯의 처를 생각하라"(32절)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준엄한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야 할 것입니다. 롯의 처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말미암아 소돔과 고모라 성을 향한 하나님의 불 심판 속에서 구원을 받았지 만, 소돔성에서 급히 도피해 나오는 중에 하나님의 엄히 명한 경고의 말씀의 말씀을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 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우리 한국식 표현을 쓴다면 "벼락맞아 죽은 여자"입니다. 이는 비록 하나님의 천국 초대를 받은 자일이라 도 세상에 주는 만족과 세상에 대한 미련에 재차 마음을 빼앗긴다면 더 이상 소망이 있을 수 없음을 힘있게 교훈 하시는 것입니 다. 예기치 못할 순간에 임할 주님의 재림의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롯의 아내처럼 여전히 세상에 눈을 돌리 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는 끝나는 날에 그 생명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본문 30-31절에서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 날에 만일 사람 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안에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돌리키지 말 것이니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결코 세상에 대하여 감상적인 생각을 갖고 미련을 갖고 돌아보아서는 안됩니 다. 눅 9:62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 시니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것은 물자(物資)의 부족 때문도, 기술(技術) 부족 때문도, 지 식(知識) 부족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죄(罪)로 인해 망한 것입니다. 물론 죄(罪)가 있다고 다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 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悔改)는 성경의 중심적인 주제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 서 선포하신 복음의 첫 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영적 건강 상태는 어떠합니 까? 여러분의 영적 상태는 건강합니까? 아니면 병들어 있습니까?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롯의 처는 어떤 사람이었으 며, 왜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권면하셨는지 그 교훈을 함깨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 롯의 처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 롯의 처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창 13:10)
창 13:10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롯의 처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한 사람입니 다 . 롯의 처는 여호와의 동산같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 같아서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롯 의 처는 창 19장의 말씀을 볼 때에 ① 신앙적으로 원만한 환경에 처해 있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 면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향하여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불렀고(창23:6),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고 부르시면서 (사 41:8.대하20:7,약 2:23)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창 12:2) 그런데 롯의 처는 이렇게 신앙이 좋은 아브라함을 작은 아버지로 모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 그리고 롯의 처는 신앙적으로 좋은 집안의 한 사람이었기에 좋은 신앙의 분위기 속에서 살았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 다. 본래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여러 우상들을 섬기는 환경 속에서 살았으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하 나님을 바로 모시며, 섬기면서 철저한 믿음을 중심 하여 살고 있는 터였는데, 롯과 그의 아내는 그 집안에서 함께 살았으니 신앙 의 좋은 감화를 받으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③ 뿐만 아니라 롯의 처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입으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모신 것만 아니라, 날마 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면서 힘써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생활을 하였는데, 롯의 처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조카 며느리(姪婦)로서 살았 으니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입으면서 산 여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의 처는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유리한 환경과 상황 속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믿음의 성공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 입니다. 오히려 진정 참 성도의 모습은 환경적 특권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환난과 핍박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성장할 수 있 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게하시는 선지자 엘리사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데마는 사도 바울 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좋다고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도 예수의 제자였지만 돈 때문에 자기 스승을 배반하고 자살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롯의 처가 왜 실패하였습니까?
그것은 롯의 처가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소돔 고모라의 멸망과 심판에 대한 하나님 의 경고의 말씀에 별로 관심(觀心)을 갖지 않았고, 그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롯의 처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농 담으로 여겼던" 롯의 두 사위들과 같이 소돔 성을 빠져 나오는 가운데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하고 뒤 를 돌아보다가 결국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창19:17,26)
왜 롯의 처가 소돔과 고로라 성을 나오다가 뒤를 돌아보았습니까? 그것은 물질주의(物質主義)적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 다. 물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서 "신앙이 전연 없었다"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녀는 확실한 믿음을 갖 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나마 있는 믿음도 자기 자신의 의지적인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천사의 손에 붙들 려 나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억지로 끌려 나왔지만 롯의 처의 마음은 여전히 소돔성에 있었던 것입니다. 롯의 처 는 일단 구원을 받았으나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므로 종내는 구원을 완성하지는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은 빌 2:12에서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 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찾아 볼 것)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교인들 중에 몸은 신자가 되어서 교회에 출석하지만 그 심령은 여전히 옛 사람대로 있고, 세상 에서 매여 있는 성도가 있습니다. 마치 이삭이야곱에게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예서의 손이로다"고 말하였듯이(창 27:22) 겉모습은 분명히 성도인데, 그 중심을 보면 아직도 성도가 아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 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넜지만 마음은 여전히 애굽 생활을 그리워하였던 사람처럼 세속적인 일에 대해서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 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몸은 분명히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복지를 향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당시의 문명국 이었던 애굽의 화려한 음식과 생활에 끌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때를 따라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하면서 애굽을 그리다가 마침내는 가나안 복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던 것처럼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롯의 처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物質)에 대한 집요한 애착이나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면 물질주의적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물질은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은 관리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 은 아닙니다. 만약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롯의 아내처럼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돈 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딤전 610) 물론 물질의 유혹을 극복한다는 것은 보 통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신앙의 힘으로 물질의 유혹이나 애착 그리고 미련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국 물 질주의적 신앙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에 얽매이는 신앙은 능력이 없는 신앙이며 구원에도 이르지 못할 신앙일 수 있는 것입 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 318,19에서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물질주의적 신앙의 사람은 십자가의 원수가 되 고, 멸망을 받고야 말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배로 하나님을 삼고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다"라 고 하면서 물질주의(物質主義)적 신앙을 철저히 경계하도록 하였습니다. 만약 신령한 일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만 관심이 있을 뿐이며,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면에서는 감사할 줄을 알지만, 신령한 면에서는 감사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자 기 배로 하나님을 삼고, 땅을 일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조건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부자가 되었으니 감사하고, 취직하였으니 감사하고, 결혼하였으니 감 사하지만, 신령한 은혜와 축복에 대하여는 감사가 없으며, 역경에서의 감사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대단히 위험한 신앙 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하시는 신앙이며 세상을 이길 수 없는 신앙이며,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할 신앙이며, 구원 을 얻지 못할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이제라도빨리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힘입어서 물질주의적 신앙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만약 이 시간에 우 리의 몸은 성전에 와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다른 곳에 가있는 분이 있다면, 겉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인데 마음은 아직도 세상 욕심 에 연연하고 있다면, 한발은 교회에 있지만 나머지 한발은 여전히 세상에 놓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러한 사람은 롯 의 처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제라도 빨리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아니하면 생각지도 않는 때 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결국 실패자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 거리 지 말아야 합니다.
2. 롯의 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사람이었습니다.(창 19:17)
롯의 처는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은 자였습니다. 롯의 처는 미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 다. 그녀는 하나님의 명백한 말씀 앞에 순종하기를 즐겨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분명히 롯의 처는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 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명령을 받았습니다. (창 19:17 하) 그러나 롯의 처는 "설마 뒤를 돌아본다고 멸망하겠느냐?" 하면서 뒤를 돌아보았고, 그 결과 는 그녀는 소금 기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롯의 처와 같이 "우리가 '설마'할 때에 주님의심판이 임할는지"는 아무 도 모릅니다. 이것은 천사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서 기 도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코 "설마... 설마"하면서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恩惠)는 온전히 순종하는자에게 역사 하는 것이지 이렇게 불순종하는 자에게 임하지 않습 니다. 그러기에 롯의 소금 기둥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불순종함으로 결국 구원을 얻을 기회를 잃어 버렸습니다. 왜냐 하면 신앙의 위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순종으로 화답할 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롯의 처와 같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은 효력을 나타날 수 없습니다. 말씀 자체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씀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믿음 은 가시밭과 같은 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는 기쁨으로 받으나 곧 시드는 것은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 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확신이 없기 때문에 세상 염려 재리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자는 모래위 에 집을 짓는 자는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그 집에 부딪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은 항상 순종하는 믿음과 통하는 것입니다. 물론 순종하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았기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어떠한 위기적인 상황에서도 순종을 잘 하는 신앙이라야 구원을 얻는 귀한 믿음인 것 입니다. 그러나 롯의 처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롯의 처는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탈출하여 나왔으나, 도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에 불순종하여 죽어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영적 상태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합니 다. 특히 우리는 매주일 우리의 영적(靈的) 건강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치 건강을 위해서 병원에 입원하여 정밀 검사를 받 듯, 영적 병원인 교회에서 우리의 생활을 좀 더 세세하게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순종하기를 힘쓰고 있습니 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보다는 불순종하는 자세가 더 강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 보다 오히려 불순 종하는 일이 더 많지는 아니합니까? 우리들은 우리의 생활을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하며,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생활을 진지하게 살 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기에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거 나 약이 되는 경우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실패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인 과 그 후예들의 모든 죄스러운 행동들을 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서 온 것입니다. 성경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 과 실패를 상기시키시면서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 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 아 니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3:18). 이스라엘은 애굽에서는 나왔어도 광야에서 다 멸망을 당하였고 가나안에는 하나도 들어가 지 못하였습니다(민 14:22-24)(성경을 찾아볼 것)
그러므로 우리들은 순종하는 믿음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믿음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항 상 순종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순종하는 믿음은 어리석은 믿음이거나 바보 신앙인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 하는 믿음은 결코 어리석은 신앙도 바보 신앙도 아니라, 진정으로 복스러운 믿음이요, 능력 있는 믿음이요 구원을 얻는 믿음인 것입니 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 말씀대로 따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지시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그리 하면 하나님께서 자신과 가정과 하는 모든 일들에 형통(亨通)하는 축복(祝福)을 누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대 로 지키고 살면 어떤 축복을 받습니까? 이에 대하여 잠 3:1-2에서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 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 고, 신 4:40에서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 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롯의 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창 19:29)
창 19:29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천사가 롯의 처를 구원하고자 그녀를 억지로 이끌어 낸 것은 그녀의 의 (義)나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닌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받은 의(義)로 말미암아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 가 주어진 것입니다. 창18:22절에 아브라함이 소돔을 멸망시키러 가는 천사를 붙들고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은 "주께서 의인을 악인 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라고 간청합니 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의인(義人) 오십을 찾으면 소돔과고모라를 용서하시겠다"라고 하십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 오십(50) 에 오(5)인이 모자라는 45명, 40명, 30면,20명, 마지막으로 한 번 더 10명을 찾으시면 어찌하시겠습니까?"라고 간청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내가 10인을 인하여 도 멸하지 아니 하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이 아브라함의 간절한 기도는 소돔 안에 사는 조카 롯을 위한 기 도인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기에 마침내 창19:29절에 보면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 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 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하셨습니 다. 아브라함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롯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자녀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 은 요 3:16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 을 얻게 하심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 의 믿음과 의가 롯에게로 전가(轉嫁)되고, 롯의 딸들과 롯과 그의 처에게 전가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감 사 또 감사해서 줄달음쳐야 할 이때에 롯의 처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의 처는 하나님께 감사(感謝)는 커녕 두고 온 금은 보화로 인해 불평하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돌아보다가 결국 소금 기둥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감격과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감사 없는 신앙은 돌밭과 같아서 곧 시들게 되고 멸망 받게 됩니다. 우리 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크고 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라 고 말씀하고 있으며(히2:3),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시49:8)
그런데 롯의 처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일을 큰일로나 귀한 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의 신앙생활에서 실패하 고 마는 것입니다. 사실 구원을 소중히 여기는 믿음이 없이는 믿음을 바로 지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롯의 처는 모든 사람 이 다 유황불에 죽어 가는 속에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입어 살게 되었으니 다시 무엇을 바랄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또 특별하 신 은혜(恩惠)를 베푸셔서 생명을 건져 주신 하나님께서 필요를 따라서 모든 물질적인 축복을 더하실 것이니, 죄악의 도성에 두 고 온 물질이나 재산에 미련이나 애착을 가질 때 필요가 없었는데 그것들을 돌아보다가 멸망을 받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救援)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 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스러운 기업을 소유할 자가 되었습니 다. 그러기에 만유의 대주재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필요를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우리의 모든 것을 채워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므 로 이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으니, 이것을 놓치지 아니하고자 하여서 삼가며, 조심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 구원의 은총 을 값진 보화요. 진주로 알아서 다른 모든 것은 다 버려도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는 보물로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믿음을 소유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고후 4:7) 주 신 구원에 감사하는 삶을 살되 말로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구속의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마리아 문둥병자 와 같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엎드려 사례하는 감사의 믿음"을 갖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눅17장) 네 눈이 보는 것 을 조심해! 네 귀가 듣는 것을 조심해! 네 손이 하는 것을 조심해!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II. 그렇다면 주님께서 본문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 이 세상에만 집착하며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27절)
본문 27절에서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 를 다 멸하였으며"라고 하였고, 본문 28절에서는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 을 짓더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대에 메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소돔과 고모라 시대 에 살았던 롯의 처(妻)"와 같이 현실 세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영적 안일함과 영적 나태함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 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여기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짓더니"라는 단어는 미완료형으로 계속된 행위를 나타내 는 동사들입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단순히 정상적인 삶이 아니라 탐욕과 쾌락추구의 비정상적인 삶의 형태임을 나타내고 있기에 경각심 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온통 이러한 세상의 일들에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만을 생각했 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생활 속에서 먹 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집을 짓는 것은 죄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때나 롯의 때의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것 이 상의 그 어떤 삶도 없다고 여기며, 세속적이고 불신앙적인 삶에 빠져 영적인 일에는 관심도 가져보지 못하였습니다. 더 높은 명 성, 더 많은 재물, 보다 더 감각적인 쾌락과 향락을 추구하니 진리가 저들의 귓가를 울려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 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아의 때나 롯의 때에는 성적인 타락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요즘 신문이나, T.V 연속극들이 남편과 아 내를 두고 애인을 가져야 만이 센스 있는 사람이요, 무언가 인생을 즐기는 사람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참으로 매스컴이 우리 시대를 혼 돈으로 몰아세우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정상적인 가정을 파탄으로 이끄는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송두리 째 앗아가고 결국 인생을 파탄시키는 것은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단의 전략임을 알아야 합니다.
노아의 시대는 한마디로 '죄악의 관영함'(창6:5)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탐했던 시대(창 6:2)였습니다. 롯의 때에도 남색을 도모하는 성적 타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 결과 노아 시대에는 물로 심판을 받았고, 롯의 때 에는 불과 유황으로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들이는 퇴폐적인 성문화(性文化)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만연 되어 있다는데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사회가 온통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외설적인 것들로 가득 차고 있는데도 우리는 속수무책입니 다.
그리고 이러한 음란 문화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우리에게 친근히 다가오고 있다는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 다. 오늘의 시대가 노아의 시대나 롯의 시대와 흡사하다는 사실에 성도는 경각심을 가져야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오늘만을 위하여 사 는 쾌락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라고 하는 삶속에 깊이 안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 사는 성도는 시대가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는 방임주의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성도는 이 시대 를 역행하면서 말씀을 따라 건전한 윤리관을 가르쳐 주며 삶으로서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 속에 있는 성도의 사명이 요, 의무입니다. 세상 속의 빛으로서, 세상 속의 소금으로서 부패하고 어두운 세상에 영향력을 주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29절)
본문 29절에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불과 유황의 멸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심판의 장소를 나가던 롯의 식구들이 있었습니다. 홍수 심판 속에서도 방주로 들어 가는 은혜를 입은 노아 식구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에게는 멸망이지만 성도에게는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 게 합니다.
두 천사는 롯의 식구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 나 하지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창19:17). 그러나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창 19:26). 롯의 아내는 이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기보다는 소돔에 두고 온 온갖 세상적인 것들에 마음이 빼앗겨 있 었습니다. 구원의 반열에 끼어 걸음을 옮기고는 있었으나 마음은 물질과 세상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도 알았 고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도 들었습니다. 그녀는 천사를 만나는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 신자였습니다. 그녀는 천사들의 강권적인 권유 로 멸망할 소돔에서 도망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뒤를 돌아봄으로 소금 기둥이 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물질만능주의, 황금만능주의를 추구하는 인생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물질, 곧 두 주인을 섬기 는 인생의 결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히 여기는 인생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뒤돌 아보는 것이 나쁠까요? 그 이유를 누가복음 9장 62절에는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 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야고보서 4장 4절에서 도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 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멸망 가운데서 구원을 얻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여김으 로 도중에 소돔을 향해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어 죽는 비참한 롯의 처를 생각해야 합니다. 심판과 진노 속에서도 은혜 로 구원을 얻게 되는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세상에 메여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롯의 처는 우리에게 웅변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 다.
3. 마지막 날을 준비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30절)
본문 30절에서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마지막 날을 준비하 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것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결코 사람들 이 꿈꾸고 있는 유토피아는 닙니다. 죄악으로 인해 반드시 멸망하고야 말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해서도 안되고, 여기에 인생의 목적을 두어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이 멸망 은 온 우주 역사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성경은 이 마지막 때 예수를 믿는 자는 천국이요, 믿지 않 는 자는 지옥뿐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6절에 "노아의 때에..."라는 말씀이 있 고, 28절에도 "또 롯의 때..."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역사적 사건을 언급하시면서 예수님의 재 림 때 즉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고 종말의 시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다'(아포칼륖토)는 말은 '폭 로하다', '드러내다'라는 의미로 감추어졌던 것이 사람들의 눈에 공개됨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완전하게 공개적으로 임 할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종말론적 시대의 징조 중의 하나가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본문 23절에 "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 다. 예수님의 재림은 한편 구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인이 보는 앞에서(계1:7)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며, 예수님의 재 림은 지역적으로 임하는 재림이 아니라 세계적이며, 동시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24절).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단들은 예수님의 재림 을 이용해 날짜까지 들먹이며 성도들을 미혹하고 재산을 헌납하게 하고, 직장도 포기하도록 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게 하는 등 비정상적 인 생활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재림의 시기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기에 성도는 그 날이 임할 때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 됨을 오 늘 본문 34절과 35절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일시적이요, 세계 적이기에 어떤 나라에서는 밤에 잠을 자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고, 어떤 곳에서는 일을 하다가 영접하게 됨을 본문 말씀이 보여줌으 로써 정상적인 생활 가운데서 종말론적 신앙으로 살아야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숨쉬고 있는 이 시대는 하나님을 모르는 시대입니다. 타락과 방종의 시대요(창6:3), 인본주의가 팽배한 시대입니 다. 멸망이 눈앞에 다다랐어도 깨닫지 못하는 무지한 시대입니다. 지극히 현세적이요, 향락적이요, 세속적인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 에 주님은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이 시대를 영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 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의 말씀을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경고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임으로 세속에 메이 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심판 속에서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도록 두렵고 떨리는 마음 으로 주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온갖 좋은 것들로 성도를 미혹하며, 정욕과 탐욕의 줄로 우리를 묶어 놓아주지 않으려고 하 고 있습니다.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세상에 성도가 눈을 돌릴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소금 기둥처럼 점점 굳어져 죽어 갈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경계하기 위해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 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 록 하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 이것은 위험한 세상에 노출된 성도를 구원하시기 위한 주님의 음성입니다. 우리 모두는 현실에 눈 이 어두워 결국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는 비참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자로서 영원한 것을 위해 세상을 등지고 오늘 도 묵묵히 진리의 길로만 걸어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 매우 교만하고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느 때보다 "롯의 처 를 생각하라"는 예수님의 권면은 귀중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중에서 이러한 사람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기회 를 따라서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끌려서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의 신앙이 아직도 물질주의적 신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 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구원의 은총(恩寵)을 깨닫지 못하고 구원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 한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몸은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우리의 심령은 여전히 세상을 향하고 있지나 아니합니까? 이제라 도 물질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신령한 깊은 은혜에서 사는 우리가 되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항상 순종하는 우리가 되며 구원의 은 총의 감격과 구원의 은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며 육체와 영혼이 아울러 참 신자가 되어서 신령한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힘차 게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수의 불신앙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는가에 상관할 필요는 없습니 다. 또 다수의 소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믿음 없는 무리들이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서 상관할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롯의 처와 같은 잘못된 신앙을 고쳐서 참되고, 신령하고, 생명력(生命力)이 있고, 역사가 있 는 믿음으로써 세상에서도 보람차고 복스러운 삶을 영위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광스러운 소망이 확신 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 야 하겠습니다. 이제라도 종말의식을 가진 성도답게 긴장하고 더욱 깨어있는 가운데 갑작스런 순간, 예기치 못하는 때에 주님을 기쁨으 로 맞이할 수 있는 믿음의 성공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