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보의 언어학적 배경 및 용어  

 1). 언어학적 배경  
중보자의 의미인 영어 성경의 'mediator'는 '중간'이라는 뜻의 라틴어 '메디우스'(medius)에서 온 것으로 '중보자', '중재자', '화해시키는 자'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헬라어 중보의 뜻인 '메시테스'(mesites)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헬라어 신약성경안에는 '중보자(메시테스)'라는 용어가 6회(갈 3:19, 20 딤전 2:5 히 8:6, 9:15, 12:24) 사용되어 있고 동사  '메시튜오'의 1과거 직설 3인칭 단수 '에메시투세'가 하나님을 주어로 한번 사용되었다(히 6:17).  

 2) 중보자의 의미 
이 중보자는 양자간을 중재함으로써 양편의 대리자가 되며 또한 양자간에 합의가 이루어지고 정의가 실행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보증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헬라어(에메시투세)가 사용되어 있는 신약성경안에는 화해의 의미가 한층더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3) 중보자의 강조점 
여기서의 강조점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의 효율성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또한 히브리어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화해시킨 시로운 중재자라는 의미를 한층 더 강하게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학적인 의미에 있어서 이 용어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적용되기도 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이셨는데 이는 항상 '이질적인것', '사이의 화해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으로서 이 용어는 흔히 그리스도의 존재성에 대한 이미에 있어서 대화의 통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기독교에 있어서의 중보 
 1) 죄인에게 필수적 요청인 중보 
  죄로 타락하여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에게는 필수적으로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가 요청된다. 예언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보하지 못한 것은 본질적으로 마음과 행위가 악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었으나 율법으로 의로울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격을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를 인간에게 보내셔야만 했다. 

중보자나 중보의 뜻은 '사이에 들다', '중재하다'라는 의미로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과 하나님이 인간에게로 내려 오시는 것은 납득이 되긴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인간의 죄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성경적이 용례로 중보자와 중보는 인간편이이 아니라 하나님편에서의 활동의 필연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성경적인 의미에서 중보자나 중보는 매우 특수한 의미를 지닌 연구의 대상이라 하겠다.  

 2) 중보란 무엇인가?  
중보의 문자적인 개념을 살펴보면 먼저 웹스터 사전에 의하면 중보하다(intersecede)는 "사이로 들어가거나 통과하다", "서로 다투거나 사람들을 화해시킬 목적으로 당사들 사이에서 활동하다", "중재하다", "조정하거나 중재하다"의 조정을 의미한다.  

조정한다(mediate)는  
(1) 양 극단 사이에서 양자 모두의 친구로서 당사자들을 중재하다.  
(2) 화해시킬 목적으로 적대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협상하다. 
(3) 화평을 조정하는 중보의 뜻으로 나타난다.  

즉 조정(mediation)을 정의하고 중보가 조정을 정의하고 있다. 이런 정의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중보의 개념은 조정하고 양자 사이에 들어가고 서로를 위해 변론하고 법적인 상황에서 상대방에 대해 한 쪽을 대표하지만 그러나 한쪽에 국한되지는 않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영어 mediator는 '중간'이란 뜻의 라틴어 '메디우스'(medius)에서 온 것으로 '중보자', '중재자' , '화해시키는 자'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헬라어  중보의 뜻인 '메시테스'(mesites)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중보의 히브리어 '파가(paga)'는 '만나다, 언약을 맺다, 화해하다"라는 뜻이다. 시 85:10 에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니프가슈, nipgashu),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라고 했다. 이는 '만나다'의 다른 동사인 '파가쉬(pagash)에서 왔다. 긍휼과 진리와 의와 화평의 하나님은 죄인에게 접촉될 수 없다. 죄를 멸하시는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야만 우리는 하나님과 만날 수 있고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만 죄인인 우리가 의 자체가 되고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요 14:6 에 보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오 올 자가 없느니라"한 말씀과 딤전 2:5 에 "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였다. 이로 보건데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누구도 중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3. 중보기도란 무엇인가?  
딤전 2:1-2 에 보면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한 미 말씀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를 섬기려는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는 기도의 네가지 종류인데 그 중 세번째 도고하는 용어는 별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도고(intercession prayer)는 글자 그대로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기도이다.  

딤전 2 장 5 절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하여 예수님만이 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중보기도의 능력>이란 책에 보면 (35p)  
중보기도에 관련된 용어로 첫째 합심을 말한다. 합심기도의 중요서에 대해서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18:19)"고 설명한다. 이러한 내용을 중보기도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한 표현이 아니고 행 1 에 나타난 120 명의 성도들이 합심기도하여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것이지, 이것을 중보기도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은 표현인 것 같다.  

  5. 맺는 말  
조직신학 기독론(p234)> 에 보면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시킬 중보의 자격은 성경에 명시되어 잇다. 중보의 자격은  

 1) 그는 반드시 사람이실 것이라 하였다. 그리스도가 천사의 성질을 취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인성을 취해 입으신 이유는 그가 우리 인류를 구속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2) 그는 반드시 무죄하실 것이라 하였다.  

 3) 그는 반드시 신적 인격이실 것이다.  
위의 내용은 예수그리스도를 지적한 것이요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거나 개인의 기도를 부탁받아 하는 기도를 중보기도라 말 할 수 없고 다만 " 합심기도", "개인기도", "부탁기도"라는 단어를 사용함이 타당하다 보아야 겠다.  

이로써 중보기도는 예수님의 대제사장 기도에만 사용되어져야 할 것이며 도고는 사람에게만 사용되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