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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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신학과 사회복지 사상
배 경 식 교수(한일장신대학교)
칼빈은 일반적으로 그의 주 저서인 「기독교강요」를 통해 종교개혁의 기초를 제공한 한 사람이며 장로교의 교리를 제정한 저술가 와 신학자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의 여정을 살펴보면 철저한 인문주의자로서 신앙을 그의 삶 속에 실천한 목회자임을 알 게 된다. 동시에 그는 파렐과 함께 제네바에서 추방을 당하면서까지 종교와 사회의 개혁을 단행할 때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과 설 교를 통해 성경적인 사회복지의 일들을 실현하였다고 보여 진다.
본 논고를 통해 필자는 그의 생애와 사상을 간략하게 살펴 본 후 기독교강요와 그의 신학, 정치사상과 두개의 정부 마지막으 로 교회의 직임들과 봉사의 직을 논거하면서 한국교회와 연관시켜 몇 가지의 제안을 해 보려 한다.
 I. 생애와 사상
칼빈은 1509년 프랑스의 노용(Noyon)에서 태어났다. 그의 원 이름은 쟝 깔뱅 (Jean Calvin) 혹은 쟝 꼬뱅(Jean Cauvin)이라 불리었다. 노용시의 주교의 자녀들 과 친하게 지냈으며 1521-23년 경 파리 유학을 같이 갔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
라 마르슈대학에서 라틴문법과 교양과정을 이수한 후 파리의 몽떼귀(de Montaigu) 대학에서 신학예비과목 을 오를레앙(orleans)대학에서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 법학을 공부하였다. 그가 파리 대학교에서 보수적인 신학만을 공부했었다 면 로마 카톨릭교회의 한 성직자로서 남아 있었을 것이나 오를레앙 대학에서 인문주의를 접함으로써 로마 카톨릭교회를 비판하고 종교개 혁 운동을 전개할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보여 진다.
1531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프랑소아 I세가 1530년에 설립한 프랑스 대학 (Coll ge de France)에서 희랍어와 히브리어 공부를 시작하였 다. 1532년 「세네카 관용론 주 석」(Commentary on Senecas Treatise De Clementia) 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당시 베스트셀러인 마키아벨리(Machiavelli)의 군주론 (IL Principe)에 나타난 절대 군주의 사상을 공격한 복음주의적인 정치 윤리학의 저술이다. 이점에 있어서 그 는 신학자이었을 뿐 아니라 교회의 정치가요 외교가 이었다. 이때를 전후로 하여 그에게는 점진적인 회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 책에서 성서적 가르침과 고전철학 전통을 동심원적 관계로 묘사함으로써 복음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인문주의를 부정하지 않는 이 둘을 종합하는 작업을 하였다. 칼빈 신학의 주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임을 밝혔다.
첫째,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구속활동을 하심과 동시에 교회 밖에서 창조활동을 하신다는 것이다. 둘째, 영원한 성자는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안에 계심과 동시에 육체 밖에서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셋째, 성령은 특별 은총을 통해 신자들을 성화 시키시 며 동시에 일반은총을 통해 세상에 지혜를 주시는 분이시다. 이처럼 칼빈에게는 복음주의와 인문주의가 함께 존재하였다.
1533년 파리대학교의 콥 총장의 취임연설을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와 종교개혁자 루터의 말을 인용하여 개혁적인 내용을 담아 써준 것에 연루되어 파리를 피신해야 했으며 1534년에는 성직록을 반환하였다.
1534년 마르쿠트(Antonie Marcourt)가 미사를 반대하는 조문들을 붙인 사건이 있은 후 프랑소 아 I세가 개신교도들을 핍박하기 시작하자 칼빈은 서둘러 복음주의의 진리를 설명하기위해 프랑소아 I세에 게 헌정하는 글을 첨부하여 1536년 바젤에서 라틴어로 출판한 책이 된 「기독교강 요」(Institutio religionis christianae) 제1판이다. 이 책의 본문은 조 직이 단순하며 분량도 많지 않았다. 율법, 신앙, 기도, 참된 예전과 거짓 예전, 기독교의 자유 등이었다.
칼빈은 하나님과 자신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식이라고 가르쳤다. 정확한 지식은 성경에서만 주어지는 데 성경을 읽는 신자의 마 음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증거는 하나님의 음성으로서 보증된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인생의 처음 가는 목표이다. 아담 의 타락으로 인해 선과 선행의 능력을 상실한 인간은 완전한 선행을 할 수없으며 그러므로 인간의 어떠한 행위도 자신의 구원을 이루 는 공로가 될 수 없다. 전 인류는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죄 값으로 말미암아 구 원을 얻게 되는 데 이일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자유스러운 성령의 역사이다. 칼빈의 "행위로서는 아니지만 행위 없는 의롭다 하심 을 받지 않았다" (We are justified not without, and yet not by works) 는 말은 칼빈의 독특한 표현으로서 신자로 하여금 삼속에서 하나님 뜻을 성취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여행후 제네바에 들렸을 때 그곳에서 종교개혁을 하던 파렐 (Guillaume Farel, 1489-1565)을 만나게 되었다. 파렐은 「기독교강요」의 저자 인 칼빈이 제네바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서 칼빈을 찾아가 함께 개혁에 동참할 것을 권유 하였으나 그는 간청으로서는 목적을 달 성 할 수 없음을 알고 드디어 저주하는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가 명하노니, 너는 너의 학문으로 핑 계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만일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거절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저주하실 것이니, 이는 네가 그 리스도를 위하지 않고 오직 너 자신만을 위해서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성서강해자와 설교자로 일을 하게 되었다. 파렐과 함께 베른(Bern)이나 보드(Vaud) 그리고 로잔(Lausanne)에까지 종교개혁을 확립하도록 하였다. 이들의 개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찬식을 매달 행하며 감독자들은 성찬에 합당치 않은 자들을 찾아내어 출교를 시킨다. 둘째, 교리문답을 만들어 아동교 육을 시킨다. 셋째, 신조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부과한다는 것이었다. 제네바의 소의회는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수정 채택하였다. 그 러나 이 일은 1538년 200인 의회에서 거센 반대에 직면하여 그해 4월 칼빈을 비롯 한 제네바 목사들은 제네바에서 추방을 당하였다.
마티 부처(Martin Bucer, 1491-1551)의 초청으로 슈트라스부르크에서 프랑스 피 난민 교회의 목회를 하였으며 1949년 「기독교강요」의 증보판과 「로마서 주석」을 출판하였 다. 1541년 제네바와 베른과의 조약체결에 관한 내부 갈등이 생겨 다시 제네바에 오게 되었다.
칼빈은 제네바에 오자 「교회법령」을 작성하였다. 교회의 네 직임은 목사, 교사, 장로, 집사이며 장로는 소의회에 서 12명을 선출하도록 하였으며 이들은 목사와 함께 당회(Consistoire)를 구성하였다. 당회에서는 권징의 문 제를 취급하였으며 권고해도 회개하지 않으면 출교하고 죄가 무거우면 시 당국에 넘겨 처벌을 하였다. 칼빈은 제네바가 기독교 공동체 의 모델이 되기를 원했다. 제네바에는 많은 프랑스의 난민들이 몰려왔으며 그 이외에도 이탈리아, 네델란드,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도 왔다.
칼빈의 개혁활동은 다시 도전을 받게 되었다. 개혁의 엄격성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들과 외부인들의 영향력에 두려움을 갖던 본토 인들의 도전이었다. 칼빈 신학에 대한 비판은 볼섹(Jerome Bolsec)에 의해 되었는데 "칼빈의 예정설은 하나 님을 죄의 원인으로 만든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1553년 칼빈의 반대파들이 선거에서 우세하였으나 "삼위일체론과 유아세례를 비판하는" 세르베투스 사건이 터져 그가 화형 당함으로써 자유주의 자들의 기가 꺾이게 되었다.
1554년 선거에서 칼빈파가 우세하여 네 명의 집정관이 모두 칼빈파가 되었다. 이후부터 칼빈의 개혁운동은 순조롭게 진행되었 으며 제네바를 방문한 죤 낙스의 표현은 이를 반증해 준다. "여기에 사도시대이후 가장 완전한 그리스도의 학교가 있다. 나는 이곳보 다 도덕과 신앙이 향상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제네바의 정치는 안정되었으나 그의 건강은 악화되었다. 그는 여러 가지 질병을 겪으면서 구술하여 저작활동을 하였 다. 1564년 5월 27일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상 은 그의 저작들과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은 유학생들을 통해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II. 기독교 강요와 그의 신학
 1. 특성
신학자의 사상과 신학이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는 경우와 시종일관 지속적인 경우가 있다. 전자는 어거스틴, 바르트 등이며 후자 는 루터와 칼빈이다. 이러한 일관성 때문에 루터의 작품들과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계속 읽고 또 읽히면서 거의 5세 기 동안 시대적으로 야기되는 신학적 토론에 활발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루터나 칼빈의 작품들이 기독교를 거칠고 편협하게 묘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켰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는가 하면 다른 한 편으로는 성경진리의 독보적 해석이며 복음주의적 신앙의 보루로 격찬을 받으며 수 세대에 걸쳐 인류의 신앙과 행위에 지대한 영향을 끼 치고 있다.
기독교 강요가 갖는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기독교강요가 갖는 의미는 우선 두 가지이다. 기독교 교리의 개요와 믿음의 형제들을 박해하는 프랑스왕 프랜시 스 I세 왕(1515-1547 재위)에게 바치는 자신의 신앙고백이자 탄원서이다. 개혁교회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 고 볼 수 있다. 박해 당하는 성경적 신앙의 소유자들을 계속 변호하기 위해 칼빈은 이 책을 썼다. 강요(Institutio)라 는 말은 훈련(discipline), 교훈(instruction), 교육(education)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2) 칼빈은 교부들의 저서들과 성서와 주석의 역사를 계속 읽음으로서 기독교강요를 보충하였다. 제 1판 인  1536년부터 시작하여 제 2판인 1539년 그리고 제 3판 인 1543년을 보면 어거스틴의 영향이 인류학과 교회론에 까지 미치는 것을 보게 된다. 존 크리소스톰의 영향 은 제 2판부터 나오며 이 두 사람의 영향이 매우 크다.
1536년 판 본문은 6장으로 구성된다. 루터의 교리문답 (Luthers Catechismus) 주제들인 율법, 신조, 주님의 기도, 세례와 성만찬, 중세교회 의 5가지 성례전, 기독교인의 자유 등이다. 제2판에서는 성경인용과 하나님 지식,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 예정과 섭 리, 기도교인의 생활 등을 더 다루었다. 그는 이 책을 신학 지망생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감독할 준비를 시키는 교과서로 보았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기독교신학의 전 분야를 다루는 경건의 대전(Summa pietatis)이다. 「기독교 강요」는 네권의 책으로 나뉘어 지며 일반적으로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르고 있다. 즉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거룩한 공회의 순서이 다. 칼빈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구속주로 그리고 인간에게 영감을 주는 분으로 다루며 교회를 신적인 사회 -그것을 통 해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더불어 역사하시는- 로 묘사한다. 이는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에밀 두메르그(E. Doumergue)는 칼빈이야 말로 말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과 인간 의 말- 인간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높임을 받도록 종교적 확신과 열정으로 살아간 실천적 종교개혁자라고 하였다.
3) 슈트라스부르크에서 가르침을 받은 마틴 부쳐(M. Bucer)의 영향력이다. 특별히 예정론으로서 기독교강 요의 초판과 재판을 이어주는 디딤돌 역할을 한다. 그의 교리문답(1537-38)과 로마서주석(1539)에 확실하게 보여 진다.
4) 슈트라스부르크에서의 프랑스인을 위한 소규모 회중목회기간(1538-1541)의 경험이 들어 있다. 여기에서 그는 교회의 본질과 훈련, 기독교적 경배와 찬송에 대한 실질적인 체험을 갖게 되었다.
5) 제네바의 생활 그 자체이다. 제네바를 개혁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법적이며 행정적인 체계를 동원하여 교회, 법원, 학 교의 심방 그리고 광범위한 서신교환 이 모든 활동이 기독교강요를 목회신학이 되게 한 것이다. 칼빈의 예정설과 삼위일체설을 비판 한 볼섹(J. Bolsec), 캐롤리(Pierre Caroli)와 미카엘 세르베투스 (M. Servetus, 1511-1553)는 그의 신학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이들의 사상은 자유스러 웠으며 유아세례를 부정하고 이단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2. 자서전적 영적 일대기
그는 성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기독교 강요를 기록했다. 그리고 성경의 참된 이해는 성령에 의한다고 말한다 (1:7, 3:2). 구약의 인물들을 그는 전기(傳記)와 동일시함으로서 루터에게서도 보여 지듯이 성경해석에 경험적 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기독교강요와 시편주석에 나오는 다윗을 본받아(Imitatio Davids)는 그 한 예이 다. 그는 다윗으로 하여금 그의 영적 상태를 대변하게 하였다.
신약에서는 바울이 칼빈의 영혼 상태(Status animae)를 가장 잘 반영해 준다. 시편 주석의 서문 (1555/7)에서 밝힌 대로 자신의 개종과 신앙적 성장에 대해 그는 로마서 1:18-25를 든다. 진실과 거짓 의 대립 그리고 하나님과 자아에 대한 두 지식의 가정은 이 귀절에서 유래 한다.
기독교강요는 경건의 책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자는 한 인간의 진실한 노력이며 간절한 바램이기도 하다 (3, 20, 43).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지배 하신다. 하나님은 왕이시다"가 그 주제이다. 프 랜시스 1세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이것을 언급한다.
그는 바젤의 피난처에서 소르본 대학의 가톨릭 신학부의 기독교신앙을 반대하였으며 자신을 급진적인 신앙을 가진 재 침례파로부 터 분리하고 있다. 이 시대의 정치적, 교회적 위기를 변증하는 변증서이기도 한다. 그러나 칼빈은 일차적으로 성서 신학자이다. 철 학, 논리학, 수사학 등 모든 조직에 필요한 것들은 이차적 도구들이다. 항상 칼빈의 사고 속에는 "구원의 역사"에 대한 간절함 이 구구절절 흐르고 있다.
 3. 구조
프랑스왕 프랜시스 I세에게 드리는 헌사
1) 기독교강요가 쓰여 진 배경
① 프랑스 민족의 독실한 신앙에 도움을 주려 함.
② 그릇된 소문으로 인한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박해의 지적.
③ 왕의 공정한 조사 요구
2) 핍박 받는 복음주의 자를 위한 탄원
① 복음 주의자: 가) 성서적 신앙 나) 영웅적 순교
② 가톨릭 성직자들: 가) 성서적 신앙 경시 나) 미사, 연옥, 순례와 같은 하찮은 일 강조
3) 복음주의적 교리에 반대하는 적대자들의 주장
① 복음주의적 교리를 새것, 갓 태어난 것, 의심스럽고 불확실 한 것이라고 함
② 참된 교리가 인간의 불경과 잘못으로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
③ 우리의 확신은 죽음의 공포와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④ 기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해야 한다.
4) 교부들이 개혁 교훈을 반대한다는 부당한 주장
① 가톨릭 성직자들은 교부들의 미덕 보다 단점이나 실수를 숭배 한다.
② 성경의 증거 없는 제도, 교회법, 교리적 결정은 경솔한 짓이다.
가) 하나님은 금이나 은을 필요로 하시지 않음: 풍성한 의식.
나) 고기를 먹는 것과 금함: 사순절 금식.
다) 수도사들도 일을 해야 함: 게으름과 음란.
라) 그리스도나 성자들의 성상의 문제
마) 죽은 자의 안식: 죽은 자의 영원한 고독.
바) 빵과 포도주의 성찬예식 사용: 화체설.
마) 모든 신자들의 주님의 만찬(Lords Supper)에의 초대: 공적 미사와 사적 미사.
바) 성서적 근거: 법령과 법칙의 범람.
사) 성직자 결혼: 독신 생활.
아) 하나님의 말씀: 사색적인 신학 논쟁.
제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The Knowledge of God the Creator)
 1) 하나님: 1-4장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 5장 거짓된 철학적 지식
 2) 계시: 6-9장 성경의 계시와 성경 이외의 그릇된 계시
 3) 경배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 10-12장 미신, 우상
 4) 하나님: 13장 삼위일체에 관한 참된, 그릇된 견해(세르베투스)
 5) 창조: 14장 천사와 사탄, 옳고 그릇된 견해
 6) 인간의 지식: 15장-16장 영혼과 육체, 인간에 대한 진실 된 성경의 견해와 그릇 된 철학적 견해.
 7) 섭리: 16장 진실 된 견해와 그릇된 견해 17장 교리의 적용 18장 불경한 자들의 심판과 하나님의 역사.
제 2권: 그리스도안에 계신 구속자로서의 하나님에 관한 지식 (The Knowledge of God the  Redeemer in Christ)
 1) 인간의 타락과 원죄 2)율법과 복음 3) 중보자 그리스 도 4) 선지자, 왕, 제사장 으로서의 그리스도 5)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승 천
제 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The Way in which We receive the Grace of Christ)  1) 성 령의 역사 2) 믿음 3) 회개 4) 기독교인의 삶 5) 믿음에 의한 칭 의 6) 기독교 인의 자유 7) 기도 8) 예정 설 9) 최후의 부활
제 4권: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초대하시는 하나님 (God invites us into the Society of Christ)  1) 교 회의 본질과 조직: 진정한 교회는 경건한 자의 어머니이다 2) 교회의 회의와 권 위 3) 교황의 제도 4) 성례와 세례 5) 성만찬 6) 국가통치
 III. 칼빈의 정치사상과 두 개의 정부
칼빈의 정치사상은 개신교가 일찍 뿌리를 내린 국가들의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의 정치사상은 「기독교 강요」 제 3권 19장과 제 4권 20장에 자세 히 다루어져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그의 정치사상을 살펴보려 한다.
인간에게는 두개의 정부가 있다 (duplex in homine regimen). 영적인 정부와 시민정부이다. 전자 는 "경건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에서 양심에게 알려지는 것이며, 후자는 정치적인 것으로서 사람들 사이에 유지되는 인간성과 시 민 됨의 의무를 위해 교육을 받는 곳이다." 이 두 가지의 측면을 영적 및 세속적인 통치권이라 부른다.
칼빈이 여기에서 양심을 영적인 정부에서 인간의 표준으로 삼은 것은 양심을 하나님과 사람의 중간적인 것으로 이해했으며 바울이 나 베드로도 양심을 이렇게 이해했다고 주장한다(양심의 증거, 롬  2:15-16, 선한 양심, 벧 전 3:21). 의미상으로 볼 때 영적인 통치는 영적인 생활에 관한 것이요, 세속적 통치는 현실생활에 관한 것인 데 먹고 입는 것 뿐 아니라 거룩하고 고결하고 절제 있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에 관한 통치이다.
두 세계에는 각기 다른 왕과 법률이 권위를 행사한다. 그러나 이 둘이 철저히 구별되어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 이 하나님 앞에서 양심의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외적인 통치인 인간사회의 법에 복종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며 영적으로 자유스럽다 고 해서 모든 육적 예속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두 개의 정부 이론은 사상적으로 세네카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의 공화국은 법과 정치적인 시민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 적 존재들로 구성된 사회로서 도덕적, 종교적 사회라고 보았다. 칼빈은 이두개의 정부가 궁극적으로는 왕의 왕인 하나님께 속한다고 보 았다. 이런 면에서 두개의 정부가 구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칼빈이 배격하는 시민정부 형태에 관한 두 가지의 다른 입장은 재세례파와 마키아벨리적 입장이다. 전자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 를 절대시하며 자신들의 양심을 속박하는 어떠한 법적인 제도나 규정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를 전복하려 하는 이상 적인 세계관을 갖던 그룹이었으며 후자는 제후들에게 아첨하며 절대 권력을 만들어 감으로써 하나님의 통치와 대립시키려는 것을 말한 다. 칼빈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해악으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영적 통치와 국가 통치는 모두 하나님께 속하며 서로 다른 사명 이 있음을 말한다.
영적 통치는 지상에 있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시작하게 하며, 죽을 수밖에 없고 허무한 이 생명 속에서 영원 히 썩지 않을 축복을 예지하도록 한다. 국가 통치의 우선적인 직무는 정의의 실현이다(롬 13:1-4). 정부의 공무 원들은 하나님의 대리자요, 그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로 인도되어야 한다. 국가통치의 목적 은 하나님께 향한 외적인 예배를 보호하며 교회의 경건한 교리와 지위를 보호하며 우리의 생활을 사회에 적응시키며 우리의 행위를 사회 정의와 일치하도록 하며 우리가 서로 화해하여 전체적인 평화와 평온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칼빈에게서 남는 하나의 물음은 칼빈이 제네바에서 신정정치(theocracy)를 했느냐 라는 것이다. 이 말이 성직자 통치 (hierocracy)나 성서적 통치(Bibliocracy)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칼빈의 신정정치는 불가능했다. 그이유로 는 칼빈이 제네바에서 관리와 성직자를 구분했으며 그가 말한 것은 각 민족에게 그 민족에게 유익되는 법률을 만들 자유를 인정하고 있 기 때문이다. 1535년 독일 뮨스터를 장악하고 구약의 제도를 모방한 신정사회를 건설하려던 재세레파의 참사를 경험 한 칼빈은 구약의 사법적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려던 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칼빈의 통치는 그리스도 통치(Christocracy)이다. 육체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다면 육 체 밖에 있는 그리스도는 온 세계를 다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활동과 창조활동을 말한다.
칼빈의 정치적 이상은 성직자가 직접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설교와 교육을 통해 훌륭한 정치가를 길러 내어 그들을 통 해 하나님의 뜻에 따른 훌륭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사회는 성서의 사법적 규정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일 반은총에 속하는 지성과 양심에 의한 사회였다.
 IV. 교회의 직임들과 봉사의 사역
칼빈은 엡 4:11과 롬 12:7-8을 근거로 하여 교회 안에 여러 가지의 직분이 있음을 말한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그리고 교사이다. 이 가운데 끝의 둘만이 교회 내의 정상적인 직분이고 처음 셋은 필요에 따라 부활시키신 특별 직이다.
사도들은 교회의 창설자로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주님의 명령을 받 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온 세계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람들이다. 선지자는 어떤 특별한 계시의 은사 에 있어서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오늘날에는 거의 없다. 복음전하는 자는 전도자로서 사도들보다는 직분이 낮으나 그 들 다음으로 활동한 사람들이다. 누가, 디모데, 디도 등과 같은 전도자들로서 70인의 제자들도 전도인들 이었다 (눅 10:1).
목사와 교사는 이들이 없이는 교회가 유지될 수 없다. 교사들은 성경 해석하는 일을 전담하였다. 그 이외에 제자 훈련이나 성 례집행이나 경고와 권면을 하는 일은 목사가 전담하였다. 전도자와 사도를 함께 보면 서로 상응하는 두 쌍을 보게 된다. 교사들은 선 지자에 그리고 목사는 사도에 해당한다.
선지자의 직분은 그 탁월한 계시의 은사 때문에 두드러졌으며 교사의 직분도 성격이나 목적에 있어서 비슷하다. 사도들은 특별 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로서 이들의 사명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였다. 목사들은 맡겨진 교회를 다스린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도들과 같 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다스리시기 위하여 교회에 직제를 두셨다. 이 권위는 오직 그의 말씀에 의해 행사되어져야 한다. 그들의 입을 통하여 자신의 사역을 이루시려하신다. 이는 마치 노동자가 연장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아무의 도움이 없이 친히 일하실 수도 있고 천사들을 시켜서 일하실 수 도 있다. 그러나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신다.
바울은 인간의 사역은 신자들을 묶어서 한 몸을 이루게 하는 힘줄과 같다고 한다. 인간의 사역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다스리시 기 위해 사용하시는 중요한 힘이 된다. 교회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교회를 안전하게 유지하기만 하면 교회가 온전히 지켜질 수 있 다.
1. 사도들과 목사들
주께서 사도들을 파송하실 때 복음을 선포하고 성례전을 집행하라고 하셨다(마 28:19). 바울은 목사에 대 하여 "그리스도의 일꾼, 비밀을 맡은 자"(고전 4:1)라고 한다. 감독에 대하여는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리 는 자를 책망한다(딛 1:9)라고 하고 있다. 목사의 직은 복음을 전하고 성례를 집행하는 특수한 기능이 있다. 교회 를 다스리고 돌보는 일을 위해 목사가 세워지며 목사는 하나님의 소명에 의해 부름을 받는다.
2. 장로와 감독
가르치며 다스리는 사람들을 말한다. 장로( )는 감독, 장로, 목사, 사역자라고 불리 우기도 한 다. 칼빈은 딛1:5와 1:7, 행 20:17과 20:28을 근거로 하여 감독과 장로 는 같은 직책임을 주장한다. 다스리는 사람들은 신자들 사이에서 선택된 장로들이었으며(고전 12:2) 각 도시에서 장 로들이 자기들 가운데 한 사람을 뽑아 감독이라 불렀다. 이는 계급이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화를 막기 위함이었다. 장로들 은 감독들과 함께 도덕적인 견책과 권징을 행하는 일들을 맡았다. 그러므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할 것" (롬 12:8)을 말한다. 처음부터 각 교회에는 경건하고 위엄있고 성결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선택된 장로회가 있어 서 과오를 시정하는 재판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직분은 한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필요하다.
감독과 장로들은 말씀 선포와 성례전 집행에 전력을 다했다. 장로가 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된 것은 아리우스의 논쟁 이 있은 후 알렉산드리아에서 이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먹이고 건전한 교리로 교회를 세우는 것은 감독의 일차적인 의무라 고 하는 것이 교회에서 오래 지속된 원칙이다.
3. 집사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일이 집사에게 맡겨졌다. 구제하는 일과 긍휼을 베푸는 일을 했다(롬 12:8). 이 를 볼 때 집사에는 두 종류가 있다. 교회의 구제 사업을 관리하는 집사들과 직접 빈민을 돌보는 집사들이다. 집사라는 말에서 나 온 기독교사회봉사( )는 더 넓은 뜻을 가지지만 성경에서 집사라고 명명되는 사람들은 구제 물자를 분배하며 가난한 자들 을 돌보고 빈민 구제금을 관리하는 일을 교회로부터 맡은 사람들이다.
누가가 이들의 기원과 임명 그리고 직분에 대하여 사도행전에 기록하였다(행 6:3).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 이 매일 구제에서 제외된다는 소식을 듣고 사도들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하기위해 정직한 사람 일곱 명을 택하여 이일을 맡기라고 신 자들에게 부탁을 하였다. 칼빈은 이런 종류의 집사들이 사도들의 교회에 있었고 우리도 본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칼빈이 일 하던 제네바는 두 종류의 집사들이 있었다고 한다. 구제품을 분배하는 집사와 병자들을 돌보는 집사들이었다.
 V. 새로운 교회관 건립과 제안들
 1. 대 사회적인 교회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사회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종교로 구분되어 각기 그 기능을 다 할 때 건전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정 치는 국민의 평화와 안전의 문제를 전담하는 것이 주요 사안이다. 공권력을 사용하여 기업이 독점하지 못 하도록 하며 국민들의 경제생 활에서 빈부의 격차를 조절 하는 것이 그 주요과제이다. 동시에 국민의 재산과 권리를 지켜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여러 가지의 법들 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은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생산과 이윤을 추구하며 부를 축적 하여 국가가 부강 해질 수 있 도록 국민의 총생산액(GNP)을 높여야 한다. 종교는 가치와 윤리의 문제를 조절하는 기능을 갖는다. 종교는 정치가 독재로 가지 못 하도록 비판하는 기능을 가지며 경제가 인간의 삶 자체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 세 조직이 기능 을 다 할 때 상호 유기적이고 건강한 사회가 형성되어 간다.
경제가 정경유착이라는 먹이 사슬을 통해 정치에 간섭을 한다든지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주어진 공권력을 남용하거나 제대로 행사하 지 못함으로 인하여 독재적으로 변형된다거나 무능한 정부가 된다면 국민의 주권이 짓밟혀 지고 흐려지는 것은 명약관하한 일이다. 특 히 종교가 이윤을 추구한다거나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곳이 된다면 교회 구성원들의 신앙의 문제는 전혀 다루어지지 못하고 세속적인 단 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교회가 교인들의 신앙적 문제와 삶을 전담하는 기관이 될 때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성스러움을 스스로 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정치와 경제는 인간의 외적인 면을 지배하며 종교는 인간의 내적인 면을 지키는 것이 라고 말 할 수 있 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교회는 종교적인 기능을 기본으로 하는 개 교회의 NGO, NPO 그리고 제3 섹터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은 전체 인구의 25%가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인구 네 명중 한명이 기독교인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우선 목회자들의 좁은 신학적 견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목회의 사명을 개인 의 영혼구원과 교회 부흥에만 치중하며 대 사회적인 것은 구호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과거의 하나님-교 회 -세계라는 교회의 선교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신학적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내셨으며 그를 통해 구원을 이루기 원하신다. 그리고 이일을 계속하시기 위 해 교회를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선교의 주체가 되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한국의 교회들이 받아 들 여 선교의 틀을 삼음으로써 이 세대를 위한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기독교적인 즉 기독교를 상징하는 것이 교회 안의 울타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뛰 어 넘어 사회와 연관되어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기독교적인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칼빈에게서의 교회는 정치, 경제, 사 회 등의 여러 분야에서 서로 분리되지 않고 상호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교회가 있는 자리 에서 더 지역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역으로 사회의 영향을 받아 가고 있다는 점이 우리 한국 교회가 반성해 야 될 것들이다. 이것이 칼빈의 교회와 한국 교회의 일반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차이가 아닌 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회도 사회의 한 조직체로서 교회가 처한 사회와 국가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종교와 정치와 경제 이 세 가지가 긴밀 한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사회는 건전한 사회가 될 것이다. 교회가 정치와 경제가 하는 일에 협조하고 정신적으로 도움 을 주며 경제와 정치는 종교를 보호하고 가르침을 받는 가운데에서 그 기능을 잘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칼빈의 정신이다. 이렇 게 됨으로써 교회와 사회가 분리되는 괴리 현상을 방지 하고 열려진 교회로서 이상적인 교회 상을 이 사회에 보여 주며 교회는 영적 인 지도력을 발휘 할 수 있을 것이다.
 2. 제안들
기독교 사회봉사는 지금까지의 교회가 해오던 구호사업의 일들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사회봉사의 장은 신학적으로 볼 때에 훨씬 더 많은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해야 된다.
1) 기독교 사회봉사를 전문화시키기 위한 신학교육의 개편이 요구된다. 기독교 사회봉사자는 모든 기독교인의 제자 직에 포함되 는 것으로서 개인적인 기독교 삶에 있어서 "나는 기독교 사회봉사자이다"라는 의식을 가져야한다. 전문적인 기독교 사회봉사자로서의 직 업을 가지라는 것은 아니며 자신들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사회봉사를 한다는 말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 (마 5:13-16)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는 모든 것이 사회봉사이다. 교회의 교역자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기독교인 이 된다는 것은 기도만 하는 것이나 설교 말씀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로써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다. 교회는 사회봉사의 설교나 강연 등을 통해 교인들로 하여금 이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기독교 사회봉사자들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의식을 갖게 하고 경제적으로도 도와주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남 여전도회를 통해서 고아원이나 병원, 사회복 지 기관, 시설, 개척교회, 선교지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
2. 교회와 신앙공동체 안에 있는 전문직업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은 달란트의 사회봉사화 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는 많은 직업 가운데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전문직업들이 있다. 예를 들면 교사, 간호사, 간병인, 사회사업가, 의사, 변호사 등등 이다. 이분들이 자신들의 직업을 가지고 사회봉사의 일을 매우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 안에 이러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면 서로 모여 이 직업을 가지고 기독교 사회봉사의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의논하면서 봉사의 일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 다.
어느 노 목사님이 아프리카의 봉사활동에 참여하여서 어린아이들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었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교회 속에 있는 지도급의 장로와 집사, 권사 등 제직들이 하는 봉사이다. 목회의 일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기독교사회봉 사의 일들이다. 목회자가 어느 가정을 심방했을 때 예배를 드리면서 사죄의 확신과 구원의 선포를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처 럼 그 가정에 다른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목회자와 심방 전도사들 그리고 전도부인이 해야 할 일은 사회봉 사의 일들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목회자는 교회 속에 있는 제직들이 봉사를 할 수 있도록 권고하며 동기를 부여하고 봉사의 기회 를 주어야 한다. 이는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며 칼빈은 이를 체계화 하고 조직화 한 것을 보게 된다.
4. 교회가 전문적인 사회복지사를 양성하여 병원이나 지체부자유자 그리고 청소년을 위한 복지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많은 교회들이 노인 선교원이나 지체 부자유자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한다.
한일장신대학교의 김삼수 전도사가 운영하는 완주 화산의 사랑의 집은 160여명의 지체 부자유자와 독거노인을 모 신 기독교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으며 전국 규모단위의 청소년 집회를 유치하여 영적인 집회를 할 뿐 아니라 영농법인을 만들 어 그 지역의 특산물인 감을 주 원료로하는 감식초와 생식 등 자립을 위한 기반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랑의 집을 케냐에 건립하 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
얼마 전에 방문한 일본의 아가페 신체장애자 센터에서는 장애인들이 자립을 하도록 아파트형 기숙사와 공장을 만들어 놓고 기업체의 전기 부속제품을 만드는 단순노동을 하고 있었다.
어느 경우에는 목회자가 사회복지사의 자격을 가지고 일을 하시는 것도 필요하다. 교회의 교인들이 이일에 동참하여 자원봉사 의 일을 하도록 교육을 시키며 일을 하도록 해준다. 이런 일들을 많이 함으로써 한국 교회가 사회봉사의 일을 제대로 감당 할 수 있 다.
5. 세계교회와 연관을 갖는 교회 연합적인 사회봉사이다. 세계는 곳곳에 굶주림과 기아, 홍수, 지체 부자유자와 여성학 대, 환경파괴 등등의 문제들로 인해 어려움 속에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세계적인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보며, 책임의식을 갖는 것 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많은 선교사들을 전 세계에 보내고 있다. 이러한 선교의 일이 사회봉사와 함께 이루어진다면 한국교회는 세계 적인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회를 통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의 국가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선교 가 이러한 다양한 사회복지의 일과 연관되어 행해 져야 한다.
한국교회는 기독교 사회봉사의 좋은 전통을 가진 교회이다. 그러므로 사회봉사를 더욱 발전 시켜 한국교회가 사회봉사의 교회 가 되어야 한다. 많은 교역자를 갖는 한국 교회는 교회안에 한 두 분 정도의 사회복지를 전문한 사람이 있어서 사회봉사가 이루어지도 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참고로 독일 교회는 교회 안에 서 너명의 간호사와 사회사업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봉사 부서" (Sozialestation)를 만들어 상주시킨다. 교구내의 사람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면 간단한 진료와 간호, 상담, 청소, 식사 준비, 수발 등을 해 준다. 여기에 드는 경비는 일부는 본인이 부담하며 보험에서도 지불된다. 사회 봉사부서가 있는 교회 안에는 간 단한 응급 진료실과 물리 치료실과 목욕실도 갖추어져 있다. 이것은 독일 교회를 사회봉사의 교회로 전환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미래의 한국 교회 역시 예배가 중심이 되던 현재의 교회를 사회봉사의 교회로 전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의 한국 교회 는 신앙적인 것에 기초를 둔 교회로서 인권과 평화, 통일, 환경, 여성, 노동, 도시와 농촌 지역의 문제들을 전문적으로 해결하 는 교회가 될 때 그 사명을 다 할 것이라고 보여 진다. 이러한 역량을 가지고 있을 때 한국의 교회는 자연스럽게 남북의 평화통일 의 문제에 참여하게 되며 그 일을 주도적으로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참 모습을 우리는 칼빈에게서 발견하게 되 며 이 일을 실천 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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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경 식 교수(한일장신대학교)
칼빈은 일반적으로 그의 주 저서인 「기독교강요」를 통해 종교개혁의 기초를 제공한 한 사람이며 장로교의 교리를 제정한 저술가 와 신학자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의 여정을 살펴보면 철저한 인문주의자로서 신앙을 그의 삶 속에 실천한 목회자임을 알 게 된다. 동시에 그는 파렐과 함께 제네바에서 추방을 당하면서까지 종교와 사회의 개혁을 단행할 때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과 설 교를 통해 성경적인 사회복지의 일들을 실현하였다고 보여 진다.
본 논고를 통해 필자는 그의 생애와 사상을 간략하게 살펴 본 후 기독교강요와 그의 신학, 정치사상과 두개의 정부 마지막으 로 교회의 직임들과 봉사의 직을 논거하면서 한국교회와 연관시켜 몇 가지의 제안을 해 보려 한다.
 I. 생애와 사상
칼빈은 1509년 프랑스의 노용(Noyon)에서 태어났다. 그의 원 이름은 쟝 깔뱅 (Jean Calvin) 혹은 쟝 꼬뱅(Jean Cauvin)이라 불리었다. 노용시의 주교의 자녀들 과 친하게 지냈으며 1521-23년 경 파리 유학을 같이 갔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
라 마르슈대학에서 라틴문법과 교양과정을 이수한 후 파리의 몽떼귀(de Montaigu) 대학에서 신학예비과목 을 오를레앙(orleans)대학에서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 법학을 공부하였다. 그가 파리 대학교에서 보수적인 신학만을 공부했었다 면 로마 카톨릭교회의 한 성직자로서 남아 있었을 것이나 오를레앙 대학에서 인문주의를 접함으로써 로마 카톨릭교회를 비판하고 종교개 혁 운동을 전개할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보여 진다.
1531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프랑소아 I세가 1530년에 설립한 프랑스 대학 (Coll ge de France)에서 희랍어와 히브리어 공부를 시작하였 다. 1532년 「세네카 관용론 주 석」(Commentary on Senecas Treatise De Clementia) 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당시 베스트셀러인 마키아벨리(Machiavelli)의 군주론 (IL Principe)에 나타난 절대 군주의 사상을 공격한 복음주의적인 정치 윤리학의 저술이다. 이점에 있어서 그 는 신학자이었을 뿐 아니라 교회의 정치가요 외교가 이었다. 이때를 전후로 하여 그에게는 점진적인 회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 책에서 성서적 가르침과 고전철학 전통을 동심원적 관계로 묘사함으로써 복음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인문주의를 부정하지 않는 이 둘을 종합하는 작업을 하였다. 칼빈 신학의 주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임을 밝혔다.
첫째,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구속활동을 하심과 동시에 교회 밖에서 창조활동을 하신다는 것이다. 둘째, 영원한 성자는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안에 계심과 동시에 육체 밖에서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셋째, 성령은 특별 은총을 통해 신자들을 성화 시키시 며 동시에 일반은총을 통해 세상에 지혜를 주시는 분이시다. 이처럼 칼빈에게는 복음주의와 인문주의가 함께 존재하였다.
1533년 파리대학교의 콥 총장의 취임연설을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와 종교개혁자 루터의 말을 인용하여 개혁적인 내용을 담아 써준 것에 연루되어 파리를 피신해야 했으며 1534년에는 성직록을 반환하였다.
1534년 마르쿠트(Antonie Marcourt)가 미사를 반대하는 조문들을 붙인 사건이 있은 후 프랑소 아 I세가 개신교도들을 핍박하기 시작하자 칼빈은 서둘러 복음주의의 진리를 설명하기위해 프랑소아 I세에 게 헌정하는 글을 첨부하여 1536년 바젤에서 라틴어로 출판한 책이 된 「기독교강 요」(Institutio religionis christianae) 제1판이다. 이 책의 본문은 조 직이 단순하며 분량도 많지 않았다. 율법, 신앙, 기도, 참된 예전과 거짓 예전, 기독교의 자유 등이었다.
칼빈은 하나님과 자신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식이라고 가르쳤다. 정확한 지식은 성경에서만 주어지는 데 성경을 읽는 신자의 마 음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증거는 하나님의 음성으로서 보증된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인생의 처음 가는 목표이다. 아담 의 타락으로 인해 선과 선행의 능력을 상실한 인간은 완전한 선행을 할 수없으며 그러므로 인간의 어떠한 행위도 자신의 구원을 이루 는 공로가 될 수 없다. 전 인류는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죄 값으로 말미암아 구 원을 얻게 되는 데 이일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자유스러운 성령의 역사이다. 칼빈의 "행위로서는 아니지만 행위 없는 의롭다 하심 을 받지 않았다" (We are justified not without, and yet not by works) 는 말은 칼빈의 독특한 표현으로서 신자로 하여금 삼속에서 하나님 뜻을 성취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여행후 제네바에 들렸을 때 그곳에서 종교개혁을 하던 파렐 (Guillaume Farel, 1489-1565)을 만나게 되었다. 파렐은 「기독교강요」의 저자 인 칼빈이 제네바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서 칼빈을 찾아가 함께 개혁에 동참할 것을 권유 하였으나 그는 간청으로서는 목적을 달 성 할 수 없음을 알고 드디어 저주하는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가 명하노니, 너는 너의 학문으로 핑 계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만일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거절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저주하실 것이니, 이는 네가 그 리스도를 위하지 않고 오직 너 자신만을 위해서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성서강해자와 설교자로 일을 하게 되었다. 파렐과 함께 베른(Bern)이나 보드(Vaud) 그리고 로잔(Lausanne)에까지 종교개혁을 확립하도록 하였다. 이들의 개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찬식을 매달 행하며 감독자들은 성찬에 합당치 않은 자들을 찾아내어 출교를 시킨다. 둘째, 교리문답을 만들어 아동교 육을 시킨다. 셋째, 신조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부과한다는 것이었다. 제네바의 소의회는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수정 채택하였다. 그 러나 이 일은 1538년 200인 의회에서 거센 반대에 직면하여 그해 4월 칼빈을 비롯 한 제네바 목사들은 제네바에서 추방을 당하였다.
마티 부처(Martin Bucer, 1491-1551)의 초청으로 슈트라스부르크에서 프랑스 피 난민 교회의 목회를 하였으며 1949년 「기독교강요」의 증보판과 「로마서 주석」을 출판하였 다. 1541년 제네바와 베른과의 조약체결에 관한 내부 갈등이 생겨 다시 제네바에 오게 되었다.
칼빈은 제네바에 오자 「교회법령」을 작성하였다. 교회의 네 직임은 목사, 교사, 장로, 집사이며 장로는 소의회에 서 12명을 선출하도록 하였으며 이들은 목사와 함께 당회(Consistoire)를 구성하였다. 당회에서는 권징의 문 제를 취급하였으며 권고해도 회개하지 않으면 출교하고 죄가 무거우면 시 당국에 넘겨 처벌을 하였다. 칼빈은 제네바가 기독교 공동체 의 모델이 되기를 원했다. 제네바에는 많은 프랑스의 난민들이 몰려왔으며 그 이외에도 이탈리아, 네델란드,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도 왔다.
칼빈의 개혁활동은 다시 도전을 받게 되었다. 개혁의 엄격성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들과 외부인들의 영향력에 두려움을 갖던 본토 인들의 도전이었다. 칼빈 신학에 대한 비판은 볼섹(Jerome Bolsec)에 의해 되었는데 "칼빈의 예정설은 하나 님을 죄의 원인으로 만든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1553년 칼빈의 반대파들이 선거에서 우세하였으나 "삼위일체론과 유아세례를 비판하는" 세르베투스 사건이 터져 그가 화형 당함으로써 자유주의 자들의 기가 꺾이게 되었다.
1554년 선거에서 칼빈파가 우세하여 네 명의 집정관이 모두 칼빈파가 되었다. 이후부터 칼빈의 개혁운동은 순조롭게 진행되었 으며 제네바를 방문한 죤 낙스의 표현은 이를 반증해 준다. "여기에 사도시대이후 가장 완전한 그리스도의 학교가 있다. 나는 이곳보 다 도덕과 신앙이 향상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제네바의 정치는 안정되었으나 그의 건강은 악화되었다. 그는 여러 가지 질병을 겪으면서 구술하여 저작활동을 하였 다. 1564년 5월 27일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상 은 그의 저작들과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은 유학생들을 통해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II. 기독교 강요와 그의 신학
 1. 특성
신학자의 사상과 신학이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는 경우와 시종일관 지속적인 경우가 있다. 전자는 어거스틴, 바르트 등이며 후자 는 루터와 칼빈이다. 이러한 일관성 때문에 루터의 작품들과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계속 읽고 또 읽히면서 거의 5세 기 동안 시대적으로 야기되는 신학적 토론에 활발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루터나 칼빈의 작품들이 기독교를 거칠고 편협하게 묘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켰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는가 하면 다른 한 편으로는 성경진리의 독보적 해석이며 복음주의적 신앙의 보루로 격찬을 받으며 수 세대에 걸쳐 인류의 신앙과 행위에 지대한 영향을 끼 치고 있다.
기독교 강요가 갖는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기독교강요가 갖는 의미는 우선 두 가지이다. 기독교 교리의 개요와 믿음의 형제들을 박해하는 프랑스왕 프랜시 스 I세 왕(1515-1547 재위)에게 바치는 자신의 신앙고백이자 탄원서이다. 개혁교회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 고 볼 수 있다. 박해 당하는 성경적 신앙의 소유자들을 계속 변호하기 위해 칼빈은 이 책을 썼다. 강요(Institutio)라 는 말은 훈련(discipline), 교훈(instruction), 교육(education)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2) 칼빈은 교부들의 저서들과 성서와 주석의 역사를 계속 읽음으로서 기독교강요를 보충하였다. 제 1판 인  1536년부터 시작하여 제 2판인 1539년 그리고 제 3판 인 1543년을 보면 어거스틴의 영향이 인류학과 교회론에 까지 미치는 것을 보게 된다. 존 크리소스톰의 영향 은 제 2판부터 나오며 이 두 사람의 영향이 매우 크다.
1536년 판 본문은 6장으로 구성된다. 루터의 교리문답 (Luthers Catechismus) 주제들인 율법, 신조, 주님의 기도, 세례와 성만찬, 중세교회 의 5가지 성례전, 기독교인의 자유 등이다. 제2판에서는 성경인용과 하나님 지식,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 예정과 섭 리, 기도교인의 생활 등을 더 다루었다. 그는 이 책을 신학 지망생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감독할 준비를 시키는 교과서로 보았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기독교신학의 전 분야를 다루는 경건의 대전(Summa pietatis)이다. 「기독교 강요」는 네권의 책으로 나뉘어 지며 일반적으로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르고 있다. 즉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거룩한 공회의 순서이 다. 칼빈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구속주로 그리고 인간에게 영감을 주는 분으로 다루며 교회를 신적인 사회 -그것을 통 해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더불어 역사하시는- 로 묘사한다. 이는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에밀 두메르그(E. Doumergue)는 칼빈이야 말로 말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과 인간 의 말- 인간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높임을 받도록 종교적 확신과 열정으로 살아간 실천적 종교개혁자라고 하였다.
3) 슈트라스부르크에서 가르침을 받은 마틴 부쳐(M. Bucer)의 영향력이다. 특별히 예정론으로서 기독교강 요의 초판과 재판을 이어주는 디딤돌 역할을 한다. 그의 교리문답(1537-38)과 로마서주석(1539)에 확실하게 보여 진다.
4) 슈트라스부르크에서의 프랑스인을 위한 소규모 회중목회기간(1538-1541)의 경험이 들어 있다. 여기에서 그는 교회의 본질과 훈련, 기독교적 경배와 찬송에 대한 실질적인 체험을 갖게 되었다.
5) 제네바의 생활 그 자체이다. 제네바를 개혁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법적이며 행정적인 체계를 동원하여 교회, 법원, 학 교의 심방 그리고 광범위한 서신교환 이 모든 활동이 기독교강요를 목회신학이 되게 한 것이다. 칼빈의 예정설과 삼위일체설을 비판 한 볼섹(J. Bolsec), 캐롤리(Pierre Caroli)와 미카엘 세르베투스 (M. Servetus, 1511-1553)는 그의 신학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이들의 사상은 자유스러 웠으며 유아세례를 부정하고 이단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2. 자서전적 영적 일대기
그는 성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기독교 강요를 기록했다. 그리고 성경의 참된 이해는 성령에 의한다고 말한다 (1:7, 3:2). 구약의 인물들을 그는 전기(傳記)와 동일시함으로서 루터에게서도 보여 지듯이 성경해석에 경험적 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기독교강요와 시편주석에 나오는 다윗을 본받아(Imitatio Davids)는 그 한 예이 다. 그는 다윗으로 하여금 그의 영적 상태를 대변하게 하였다.
신약에서는 바울이 칼빈의 영혼 상태(Status animae)를 가장 잘 반영해 준다. 시편 주석의 서문 (1555/7)에서 밝힌 대로 자신의 개종과 신앙적 성장에 대해 그는 로마서 1:18-25를 든다. 진실과 거짓 의 대립 그리고 하나님과 자아에 대한 두 지식의 가정은 이 귀절에서 유래 한다.
기독교강요는 경건의 책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자는 한 인간의 진실한 노력이며 간절한 바램이기도 하다 (3, 20, 43).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지배 하신다. 하나님은 왕이시다"가 그 주제이다. 프 랜시스 1세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이것을 언급한다.
그는 바젤의 피난처에서 소르본 대학의 가톨릭 신학부의 기독교신앙을 반대하였으며 자신을 급진적인 신앙을 가진 재 침례파로부 터 분리하고 있다. 이 시대의 정치적, 교회적 위기를 변증하는 변증서이기도 한다. 그러나 칼빈은 일차적으로 성서 신학자이다. 철 학, 논리학, 수사학 등 모든 조직에 필요한 것들은 이차적 도구들이다. 항상 칼빈의 사고 속에는 "구원의 역사"에 대한 간절함 이 구구절절 흐르고 있다.
 3. 구조
프랑스왕 프랜시스 I세에게 드리는 헌사
1) 기독교강요가 쓰여 진 배경
① 프랑스 민족의 독실한 신앙에 도움을 주려 함.
② 그릇된 소문으로 인한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박해의 지적.
③ 왕의 공정한 조사 요구
2) 핍박 받는 복음주의 자를 위한 탄원
① 복음 주의자: 가) 성서적 신앙 나) 영웅적 순교
② 가톨릭 성직자들: 가) 성서적 신앙 경시 나) 미사, 연옥, 순례와 같은 하찮은 일 강조
3) 복음주의적 교리에 반대하는 적대자들의 주장
① 복음주의적 교리를 새것, 갓 태어난 것, 의심스럽고 불확실 한 것이라고 함
② 참된 교리가 인간의 불경과 잘못으로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
③ 우리의 확신은 죽음의 공포와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④ 기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해야 한다.
4) 교부들이 개혁 교훈을 반대한다는 부당한 주장
① 가톨릭 성직자들은 교부들의 미덕 보다 단점이나 실수를 숭배 한다.
② 성경의 증거 없는 제도, 교회법, 교리적 결정은 경솔한 짓이다.
가) 하나님은 금이나 은을 필요로 하시지 않음: 풍성한 의식.
나) 고기를 먹는 것과 금함: 사순절 금식.
다) 수도사들도 일을 해야 함: 게으름과 음란.
라) 그리스도나 성자들의 성상의 문제
마) 죽은 자의 안식: 죽은 자의 영원한 고독.
바) 빵과 포도주의 성찬예식 사용: 화체설.
마) 모든 신자들의 주님의 만찬(Lords Supper)에의 초대: 공적 미사와 사적 미사.
바) 성서적 근거: 법령과 법칙의 범람.
사) 성직자 결혼: 독신 생활.
아) 하나님의 말씀: 사색적인 신학 논쟁.
제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The Knowledge of God the Creator)
 1) 하나님: 1-4장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 5장 거짓된 철학적 지식
 2) 계시: 6-9장 성경의 계시와 성경 이외의 그릇된 계시
 3) 경배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 10-12장 미신, 우상
 4) 하나님: 13장 삼위일체에 관한 참된, 그릇된 견해(세르베투스)
 5) 창조: 14장 천사와 사탄, 옳고 그릇된 견해
 6) 인간의 지식: 15장-16장 영혼과 육체, 인간에 대한 진실 된 성경의 견해와 그릇 된 철학적 견해.
 7) 섭리: 16장 진실 된 견해와 그릇된 견해 17장 교리의 적용 18장 불경한 자들의 심판과 하나님의 역사.
제 2권: 그리스도안에 계신 구속자로서의 하나님에 관한 지식 (The Knowledge of God the  Redeemer in Christ)
 1) 인간의 타락과 원죄 2)율법과 복음 3) 중보자 그리스 도 4) 선지자, 왕, 제사장 으로서의 그리스도 5)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승 천
제 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The Way in which We receive the Grace of Christ)  1) 성 령의 역사 2) 믿음 3) 회개 4) 기독교인의 삶 5) 믿음에 의한 칭 의 6) 기독교 인의 자유 7) 기도 8) 예정 설 9) 최후의 부활
제 4권: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초대하시는 하나님 (God invites us into the Society of Christ)  1) 교 회의 본질과 조직: 진정한 교회는 경건한 자의 어머니이다 2) 교회의 회의와 권 위 3) 교황의 제도 4) 성례와 세례 5) 성만찬 6) 국가통치
 III. 칼빈의 정치사상과 두 개의 정부
칼빈의 정치사상은 개신교가 일찍 뿌리를 내린 국가들의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의 정치사상은 「기독교 강요」 제 3권 19장과 제 4권 20장에 자세 히 다루어져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그의 정치사상을 살펴보려 한다.
인간에게는 두개의 정부가 있다 (duplex in homine regimen). 영적인 정부와 시민정부이다. 전자 는 "경건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에서 양심에게 알려지는 것이며, 후자는 정치적인 것으로서 사람들 사이에 유지되는 인간성과 시 민 됨의 의무를 위해 교육을 받는 곳이다." 이 두 가지의 측면을 영적 및 세속적인 통치권이라 부른다.
칼빈이 여기에서 양심을 영적인 정부에서 인간의 표준으로 삼은 것은 양심을 하나님과 사람의 중간적인 것으로 이해했으며 바울이 나 베드로도 양심을 이렇게 이해했다고 주장한다(양심의 증거, 롬  2:15-16, 선한 양심, 벧 전 3:21). 의미상으로 볼 때 영적인 통치는 영적인 생활에 관한 것이요, 세속적 통치는 현실생활에 관한 것인 데 먹고 입는 것 뿐 아니라 거룩하고 고결하고 절제 있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에 관한 통치이다.
두 세계에는 각기 다른 왕과 법률이 권위를 행사한다. 그러나 이 둘이 철저히 구별되어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 이 하나님 앞에서 양심의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외적인 통치인 인간사회의 법에 복종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며 영적으로 자유스럽다 고 해서 모든 육적 예속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두 개의 정부 이론은 사상적으로 세네카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의 공화국은 법과 정치적인 시민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 적 존재들로 구성된 사회로서 도덕적, 종교적 사회라고 보았다. 칼빈은 이두개의 정부가 궁극적으로는 왕의 왕인 하나님께 속한다고 보 았다. 이런 면에서 두개의 정부가 구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칼빈이 배격하는 시민정부 형태에 관한 두 가지의 다른 입장은 재세례파와 마키아벨리적 입장이다. 전자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 를 절대시하며 자신들의 양심을 속박하는 어떠한 법적인 제도나 규정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를 전복하려 하는 이상 적인 세계관을 갖던 그룹이었으며 후자는 제후들에게 아첨하며 절대 권력을 만들어 감으로써 하나님의 통치와 대립시키려는 것을 말한 다. 칼빈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해악으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영적 통치와 국가 통치는 모두 하나님께 속하며 서로 다른 사명 이 있음을 말한다.
영적 통치는 지상에 있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시작하게 하며, 죽을 수밖에 없고 허무한 이 생명 속에서 영원 히 썩지 않을 축복을 예지하도록 한다. 국가 통치의 우선적인 직무는 정의의 실현이다(롬 13:1-4). 정부의 공무 원들은 하나님의 대리자요, 그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로 인도되어야 한다. 국가통치의 목적 은 하나님께 향한 외적인 예배를 보호하며 교회의 경건한 교리와 지위를 보호하며 우리의 생활을 사회에 적응시키며 우리의 행위를 사회 정의와 일치하도록 하며 우리가 서로 화해하여 전체적인 평화와 평온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칼빈에게서 남는 하나의 물음은 칼빈이 제네바에서 신정정치(theocracy)를 했느냐 라는 것이다. 이 말이 성직자 통치 (hierocracy)나 성서적 통치(Bibliocracy)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칼빈의 신정정치는 불가능했다. 그이유로 는 칼빈이 제네바에서 관리와 성직자를 구분했으며 그가 말한 것은 각 민족에게 그 민족에게 유익되는 법률을 만들 자유를 인정하고 있 기 때문이다. 1535년 독일 뮨스터를 장악하고 구약의 제도를 모방한 신정사회를 건설하려던 재세레파의 참사를 경험 한 칼빈은 구약의 사법적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려던 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칼빈의 통치는 그리스도 통치(Christocracy)이다. 육체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다면 육 체 밖에 있는 그리스도는 온 세계를 다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활동과 창조활동을 말한다.
칼빈의 정치적 이상은 성직자가 직접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설교와 교육을 통해 훌륭한 정치가를 길러 내어 그들을 통 해 하나님의 뜻에 따른 훌륭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사회는 성서의 사법적 규정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일 반은총에 속하는 지성과 양심에 의한 사회였다.
 IV. 교회의 직임들과 봉사의 사역
칼빈은 엡 4:11과 롬 12:7-8을 근거로 하여 교회 안에 여러 가지의 직분이 있음을 말한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그리고 교사이다. 이 가운데 끝의 둘만이 교회 내의 정상적인 직분이고 처음 셋은 필요에 따라 부활시키신 특별 직이다.
사도들은 교회의 창설자로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주님의 명령을 받 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온 세계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람들이다. 선지자는 어떤 특별한 계시의 은사 에 있어서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오늘날에는 거의 없다. 복음전하는 자는 전도자로서 사도들보다는 직분이 낮으나 그 들 다음으로 활동한 사람들이다. 누가, 디모데, 디도 등과 같은 전도자들로서 70인의 제자들도 전도인들 이었다 (눅 10:1).
목사와 교사는 이들이 없이는 교회가 유지될 수 없다. 교사들은 성경 해석하는 일을 전담하였다. 그 이외에 제자 훈련이나 성 례집행이나 경고와 권면을 하는 일은 목사가 전담하였다. 전도자와 사도를 함께 보면 서로 상응하는 두 쌍을 보게 된다. 교사들은 선 지자에 그리고 목사는 사도에 해당한다.
선지자의 직분은 그 탁월한 계시의 은사 때문에 두드러졌으며 교사의 직분도 성격이나 목적에 있어서 비슷하다. 사도들은 특별 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로서 이들의 사명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였다. 목사들은 맡겨진 교회를 다스린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도들과 같 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다스리시기 위하여 교회에 직제를 두셨다. 이 권위는 오직 그의 말씀에 의해 행사되어져야 한다. 그들의 입을 통하여 자신의 사역을 이루시려하신다. 이는 마치 노동자가 연장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아무의 도움이 없이 친히 일하실 수도 있고 천사들을 시켜서 일하실 수 도 있다. 그러나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신다.
바울은 인간의 사역은 신자들을 묶어서 한 몸을 이루게 하는 힘줄과 같다고 한다. 인간의 사역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다스리시 기 위해 사용하시는 중요한 힘이 된다. 교회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교회를 안전하게 유지하기만 하면 교회가 온전히 지켜질 수 있 다.
1. 사도들과 목사들
주께서 사도들을 파송하실 때 복음을 선포하고 성례전을 집행하라고 하셨다(마 28:19). 바울은 목사에 대 하여 "그리스도의 일꾼, 비밀을 맡은 자"(고전 4:1)라고 한다. 감독에 대하여는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리 는 자를 책망한다(딛 1:9)라고 하고 있다. 목사의 직은 복음을 전하고 성례를 집행하는 특수한 기능이 있다. 교회 를 다스리고 돌보는 일을 위해 목사가 세워지며 목사는 하나님의 소명에 의해 부름을 받는다.
2. 장로와 감독
가르치며 다스리는 사람들을 말한다. 장로( )는 감독, 장로, 목사, 사역자라고 불리 우기도 한 다. 칼빈은 딛1:5와 1:7, 행 20:17과 20:28을 근거로 하여 감독과 장로 는 같은 직책임을 주장한다. 다스리는 사람들은 신자들 사이에서 선택된 장로들이었으며(고전 12:2) 각 도시에서 장 로들이 자기들 가운데 한 사람을 뽑아 감독이라 불렀다. 이는 계급이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화를 막기 위함이었다. 장로들 은 감독들과 함께 도덕적인 견책과 권징을 행하는 일들을 맡았다. 그러므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할 것" (롬 12:8)을 말한다. 처음부터 각 교회에는 경건하고 위엄있고 성결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선택된 장로회가 있어 서 과오를 시정하는 재판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직분은 한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필요하다.
감독과 장로들은 말씀 선포와 성례전 집행에 전력을 다했다. 장로가 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된 것은 아리우스의 논쟁 이 있은 후 알렉산드리아에서 이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먹이고 건전한 교리로 교회를 세우는 것은 감독의 일차적인 의무라 고 하는 것이 교회에서 오래 지속된 원칙이다.
3. 집사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일이 집사에게 맡겨졌다. 구제하는 일과 긍휼을 베푸는 일을 했다(롬 12:8). 이 를 볼 때 집사에는 두 종류가 있다. 교회의 구제 사업을 관리하는 집사들과 직접 빈민을 돌보는 집사들이다. 집사라는 말에서 나 온 기독교사회봉사( )는 더 넓은 뜻을 가지지만 성경에서 집사라고 명명되는 사람들은 구제 물자를 분배하며 가난한 자들 을 돌보고 빈민 구제금을 관리하는 일을 교회로부터 맡은 사람들이다.
누가가 이들의 기원과 임명 그리고 직분에 대하여 사도행전에 기록하였다(행 6:3).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 이 매일 구제에서 제외된다는 소식을 듣고 사도들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하기위해 정직한 사람 일곱 명을 택하여 이일을 맡기라고 신 자들에게 부탁을 하였다. 칼빈은 이런 종류의 집사들이 사도들의 교회에 있었고 우리도 본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칼빈이 일 하던 제네바는 두 종류의 집사들이 있었다고 한다. 구제품을 분배하는 집사와 병자들을 돌보는 집사들이었다.
 V. 새로운 교회관 건립과 제안들
 1. 대 사회적인 교회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사회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종교로 구분되어 각기 그 기능을 다 할 때 건전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정 치는 국민의 평화와 안전의 문제를 전담하는 것이 주요 사안이다. 공권력을 사용하여 기업이 독점하지 못 하도록 하며 국민들의 경제생 활에서 빈부의 격차를 조절 하는 것이 그 주요과제이다. 동시에 국민의 재산과 권리를 지켜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여러 가지의 법들 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은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생산과 이윤을 추구하며 부를 축적 하여 국가가 부강 해질 수 있 도록 국민의 총생산액(GNP)을 높여야 한다. 종교는 가치와 윤리의 문제를 조절하는 기능을 갖는다. 종교는 정치가 독재로 가지 못 하도록 비판하는 기능을 가지며 경제가 인간의 삶 자체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 세 조직이 기능 을 다 할 때 상호 유기적이고 건강한 사회가 형성되어 간다.
경제가 정경유착이라는 먹이 사슬을 통해 정치에 간섭을 한다든지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주어진 공권력을 남용하거나 제대로 행사하 지 못함으로 인하여 독재적으로 변형된다거나 무능한 정부가 된다면 국민의 주권이 짓밟혀 지고 흐려지는 것은 명약관하한 일이다. 특 히 종교가 이윤을 추구한다거나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곳이 된다면 교회 구성원들의 신앙의 문제는 전혀 다루어지지 못하고 세속적인 단 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교회가 교인들의 신앙적 문제와 삶을 전담하는 기관이 될 때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성스러움을 스스로 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정치와 경제는 인간의 외적인 면을 지배하며 종교는 인간의 내적인 면을 지키는 것이 라고 말 할 수 있 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교회는 종교적인 기능을 기본으로 하는 개 교회의 NGO, NPO 그리고 제3 섹터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은 전체 인구의 25%가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인구 네 명중 한명이 기독교인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우선 목회자들의 좁은 신학적 견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목회의 사명을 개인 의 영혼구원과 교회 부흥에만 치중하며 대 사회적인 것은 구호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과거의 하나님-교 회 -세계라는 교회의 선교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신학적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내셨으며 그를 통해 구원을 이루기 원하신다. 그리고 이일을 계속하시기 위 해 교회를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선교의 주체가 되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한국의 교회들이 받아 들 여 선교의 틀을 삼음으로써 이 세대를 위한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기독교적인 즉 기독교를 상징하는 것이 교회 안의 울타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뛰 어 넘어 사회와 연관되어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기독교적인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칼빈에게서의 교회는 정치, 경제, 사 회 등의 여러 분야에서 서로 분리되지 않고 상호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교회가 있는 자리 에서 더 지역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역으로 사회의 영향을 받아 가고 있다는 점이 우리 한국 교회가 반성해 야 될 것들이다. 이것이 칼빈의 교회와 한국 교회의 일반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차이가 아닌 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회도 사회의 한 조직체로서 교회가 처한 사회와 국가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종교와 정치와 경제 이 세 가지가 긴밀 한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사회는 건전한 사회가 될 것이다. 교회가 정치와 경제가 하는 일에 협조하고 정신적으로 도움 을 주며 경제와 정치는 종교를 보호하고 가르침을 받는 가운데에서 그 기능을 잘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칼빈의 정신이다. 이렇 게 됨으로써 교회와 사회가 분리되는 괴리 현상을 방지 하고 열려진 교회로서 이상적인 교회 상을 이 사회에 보여 주며 교회는 영적 인 지도력을 발휘 할 수 있을 것이다.
 2. 제안들
기독교 사회봉사는 지금까지의 교회가 해오던 구호사업의 일들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사회봉사의 장은 신학적으로 볼 때에 훨씬 더 많은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해야 된다.
1) 기독교 사회봉사를 전문화시키기 위한 신학교육의 개편이 요구된다. 기독교 사회봉사자는 모든 기독교인의 제자 직에 포함되 는 것으로서 개인적인 기독교 삶에 있어서 "나는 기독교 사회봉사자이다"라는 의식을 가져야한다. 전문적인 기독교 사회봉사자로서의 직 업을 가지라는 것은 아니며 자신들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사회봉사를 한다는 말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 (마 5:13-16)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는 모든 것이 사회봉사이다. 교회의 교역자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기독교인 이 된다는 것은 기도만 하는 것이나 설교 말씀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로써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다. 교회는 사회봉사의 설교나 강연 등을 통해 교인들로 하여금 이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기독교 사회봉사자들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의식을 갖게 하고 경제적으로도 도와주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남 여전도회를 통해서 고아원이나 병원, 사회복 지 기관, 시설, 개척교회, 선교지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
2. 교회와 신앙공동체 안에 있는 전문직업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은 달란트의 사회봉사화 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는 많은 직업 가운데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전문직업들이 있다. 예를 들면 교사, 간호사, 간병인, 사회사업가, 의사, 변호사 등등 이다. 이분들이 자신들의 직업을 가지고 사회봉사의 일을 매우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 안에 이러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면 서로 모여 이 직업을 가지고 기독교 사회봉사의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의논하면서 봉사의 일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 다.
어느 노 목사님이 아프리카의 봉사활동에 참여하여서 어린아이들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었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교회 속에 있는 지도급의 장로와 집사, 권사 등 제직들이 하는 봉사이다. 목회의 일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기독교사회봉 사의 일들이다. 목회자가 어느 가정을 심방했을 때 예배를 드리면서 사죄의 확신과 구원의 선포를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처 럼 그 가정에 다른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목회자와 심방 전도사들 그리고 전도부인이 해야 할 일은 사회봉 사의 일들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목회자는 교회 속에 있는 제직들이 봉사를 할 수 있도록 권고하며 동기를 부여하고 봉사의 기회 를 주어야 한다. 이는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며 칼빈은 이를 체계화 하고 조직화 한 것을 보게 된다.
4. 교회가 전문적인 사회복지사를 양성하여 병원이나 지체부자유자 그리고 청소년을 위한 복지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많은 교회들이 노인 선교원이나 지체 부자유자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한다.
한일장신대학교의 김삼수 전도사가 운영하는 완주 화산의 사랑의 집은 160여명의 지체 부자유자와 독거노인을 모 신 기독교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으며 전국 규모단위의 청소년 집회를 유치하여 영적인 집회를 할 뿐 아니라 영농법인을 만들 어 그 지역의 특산물인 감을 주 원료로하는 감식초와 생식 등 자립을 위한 기반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랑의 집을 케냐에 건립하 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
얼마 전에 방문한 일본의 아가페 신체장애자 센터에서는 장애인들이 자립을 하도록 아파트형 기숙사와 공장을 만들어 놓고 기업체의 전기 부속제품을 만드는 단순노동을 하고 있었다.
어느 경우에는 목회자가 사회복지사의 자격을 가지고 일을 하시는 것도 필요하다. 교회의 교인들이 이일에 동참하여 자원봉사 의 일을 하도록 교육을 시키며 일을 하도록 해준다. 이런 일들을 많이 함으로써 한국 교회가 사회봉사의 일을 제대로 감당 할 수 있 다.
5. 세계교회와 연관을 갖는 교회 연합적인 사회봉사이다. 세계는 곳곳에 굶주림과 기아, 홍수, 지체 부자유자와 여성학 대, 환경파괴 등등의 문제들로 인해 어려움 속에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세계적인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보며, 책임의식을 갖는 것 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많은 선교사들을 전 세계에 보내고 있다. 이러한 선교의 일이 사회봉사와 함께 이루어진다면 한국교회는 세계 적인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회를 통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의 국가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선교 가 이러한 다양한 사회복지의 일과 연관되어 행해 져야 한다.
한국교회는 기독교 사회봉사의 좋은 전통을 가진 교회이다. 그러므로 사회봉사를 더욱 발전 시켜 한국교회가 사회봉사의 교회 가 되어야 한다. 많은 교역자를 갖는 한국 교회는 교회안에 한 두 분 정도의 사회복지를 전문한 사람이 있어서 사회봉사가 이루어지도 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참고로 독일 교회는 교회 안에 서 너명의 간호사와 사회사업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봉사 부서" (Sozialestation)를 만들어 상주시킨다. 교구내의 사람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면 간단한 진료와 간호, 상담, 청소, 식사 준비, 수발 등을 해 준다. 여기에 드는 경비는 일부는 본인이 부담하며 보험에서도 지불된다. 사회 봉사부서가 있는 교회 안에는 간 단한 응급 진료실과 물리 치료실과 목욕실도 갖추어져 있다. 이것은 독일 교회를 사회봉사의 교회로 전환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미래의 한국 교회 역시 예배가 중심이 되던 현재의 교회를 사회봉사의 교회로 전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의 한국 교회 는 신앙적인 것에 기초를 둔 교회로서 인권과 평화, 통일, 환경, 여성, 노동, 도시와 농촌 지역의 문제들을 전문적으로 해결하 는 교회가 될 때 그 사명을 다 할 것이라고 보여 진다. 이러한 역량을 가지고 있을 때 한국의 교회는 자연스럽게 남북의 평화통일 의 문제에 참여하게 되며 그 일을 주도적으로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참 모습을 우리는 칼빈에게서 발견하게 되 며 이 일을 실천 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