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자료
선교자료
이 글은 화란의 신학자 고재수 박사가 고신대학교에 교환교수로 내한하여 「월간고신」에 기고한 글로 요약해 소개하였다.
서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백성이 대부분일 때 그 나라의 정부가 기독교적인 율법대로 다스리는 것은 가능한가? 그런 나라엔 우선적으로 회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따라서 그런 나라에서는 신자들이 기독교적 정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전도를 위해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 전도의 결과로서 인구의 다수가 기독교인이 될 때에 비로소 정부에게 기독교적으로 다스릴 것을 수 있지 않을까?
세계의 모든 개혁신자들은 이런 해결해야 할 처지에 있다. 예컨대 경우에는 개혁교단 안에 개혁주의정치연합 (Reformed Political Confederate)이라는 정당이 있다. 이 정당부터 소개하고 앞의 문제로 돌아가기로 한다.
역사
개혁주의 정치연합이라는 정당은 1988년에 창당 40주년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정당의 배경은 그보다 앞서 19세기로 슬러 올라간다. 이 정당의 정신적 아버지는 19세기의 크룬 판 프린스터러이다. 19세기 화란에 양원제 국회가 생겼을 때 크룬은 국희의원으로 선출되었다. 크룬은 그 국회에서 개혁주의적 정치를 하려고 시도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L920)는 어떤 의미로 크룬의 후계자였다. 크룬이 할 수 없었던 것을 카이퍼가 이룩했다. 즉 카이퍼는 일반교인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또 카이퍼는 개혁주의 원리를 실천이념으로 삼고 정당을 설립했다. 사실 이 정당은 화란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정당이었다. 또 카이퍼는 이 정당의 정치노선을 설명한 800페이지 이상의 책을 쓰기도 했다.
물론 이 정당의 지지자들은 거의가 개혁교회 성도들이었다. 하지만 1944년 개혁교회의 교인들중 일부가 면직되거나 교회를 떠나야만 되었을 때 정치에까지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 그들은(이들이 지금 고신과 자매결연을 맺은 화란개혁교회이다) ‘그들이 주일에 함께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는데 어떻게 월요일의 정치에 우리와 함께 합력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것뿐 아니라 카이퍼가 정당을 만들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원리들은 성장과 분리되어 적용되어 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개혁교회 교인들은 그 당시에 적용된 많은 원리에 더 이상 동의할 수 없이 그보다 더 성경적인 정치를 원했다.
그래서 그들은 1948년에 독자적으로 정당을 설립했다. 그 정당은 정치를 성경대로 곧 신앙고백에 표현된 대로 하고자 했다. 당원들은 성경과 신앙고백대로 행하는 자이어야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부분 개혁교회 교인들이었다.
이 정당의 현황
이 개혁교회의 교인수는 화란 전체 인구 중 많지는 않다. 비율로 파지면 그들은 한국의 고신교단보다 조금 더 클 것이다. 그래서 이 정당을 지지하는 자는 비교적 많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정당의 후보는 자주 국회의원에 선출된다. 150명으로 구성된 하원에 개혁주의정치연합의 대표가 한 명 참여하고 75명으로 구성된 상원에도 이 정당의 대표 하나가 들어갔다. 또한 지방의회 및 시의회에도 그 정당의 대표가 의원으로 참여한다.
이 정당은 월간지를 발행하는데 거기서 논의할 만한 정치문제를 다루며 구체적인 방향 제시도 한다. 또 한 전직의원이 세 권으로 된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그 정당 내에 연구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거기서 토론하고 연구한 결과로 소책자들을 많이 출간하였다.
의원들의 연구를 돕는 연구진도 있다. 그들은 각기 자기가 맡은 분야가 있어 전문가일 뿐 아니라 의원과 함께 참여하는 공식 모임에서 내용있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개혁주의정치연합의 의원은 수적으로는 빈약하지만 그들의 전문성 때문에 일반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이 정당소속의 하원의 한 의원이 어느 신문사에 의해 가장 모범적인 하원 10명 중 한 사람으로 여러해 동안 계속 선정되고 있는 일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정부관
여기 던져진 질문은 개혁주의 정치연합과 같은 작은 정당아 왜 설립되어야만 하는가 하는 것이다. 개혁교회의 교인들이 더 큰 정당에 소속되어 거기서 영향력을 발휘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낳지 않을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개혁교회 교인들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 곧 정부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다른 정당과는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정치연합의 생각으로는 정부가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정부는 나쁜 것을 반대하고 좋은 것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자라는 확신이다. 이 생각은 개혁교회 정부관의 출발점이다.
이 정부관에 대한 반대
이와같은 개혁주의정치연합의 정부관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고 모든 기독교인들조차 인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기독교인은 이구동성으로 하나님의 율법이 세속화된 사회에서도 유익한 것임을 인정할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을 믿지 않는 자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찌니라’ 같은 하나님의 계명은 이웃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좋은 것으로서 모든 사람이 지키면 좋다. 기독교인은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도할 때 모든 사람이 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게 하도록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속화된 사회에 살고 있으며 그 사회에는 믿지 않는 자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정부가 하나님의 나라로 행하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런 사회에는 중립적 정부 즉 기독교를 따르지도 않고 반대하지도 않는 정부가 옳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는 대다수 국민의 뜻을 성취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국민 중 대부분이 기독교인이 아닌데 정부가 기독교적으로 다스릴 수는 없는 것이다. 전도를 통해 기독교인이 대다수가 될 때 비로소 정부는 기독교적 정부로서의 변모가 가능할 것이다. 그 전에는 정부에게 기독교 규칙대로 행하기를 요구할 수 없다. 따라서 개혁주의정치연합의 정부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 반대에 대한 대답
대답으로서 첫째로 이 정치관의 역사적 배경이다. 정부도 하나님을 소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참된 기독교인이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게 된 때에 제시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19세기의 크룬이 그것을 주장했을 때 화란은 중립적인 입장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그리스도를 순종해야 한다고 크룬은 생각했다.
칼빈과 종교개혁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제네바 시의 대다수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려고 하지 않았지만 칼빈은 그것을 요구했다(기독교강요 IV. 20). 또 화란 개혁교회의 고백서에서 정부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벨직신앙고백 36)정부는 신교를 핍박하고 있었다. 사실 이 고백서를 쓴 목사는 정부의 핍박을 받아 순교자가 되었다. 그래서 정부가 하나님을 소중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백성에게 제시한다고 하는 생각은 시대정신의 산물이 아니다.
다음으로 두번째 대답으로서 정치의 실제를 고려할 수 있다. 민주주의적인 사회에도 대다수가 그대로 결정한다는 규칙이 없다. 그런 것이 사실이었더라면 화란 정부가 하원에서 통과된 동의안을 그대로 실행해야 했을텐데 사실 하원이 받아들인 동의안을 정부가 실행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다. 미국도 이 점에 있어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대다수가 항상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국민이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하나님을 순종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자유는 있는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중립적 정부를 지지하는 자는 사실들 중 반만을 보고 반은 무시하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과 그들의 생각을 고려하고 하나님과 그분의 견해를 무시한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무시할 때에도 하나님은 계시고 당신의 명령을 위해 안정을 필요로 하신다, 정부에 있어서도 그렇다.
정부가 하나님을 순종해야 함은 구약에 이미 나온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느부갓네살 왕을 ‘내 종’이라고 불렀다(렘27:6). 하나님은 능력있게 느부갓네살 왕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셨다(단 4장). 다니엘은 그 왕에게 하나님은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신다’고 말했다 (단2:21). 그래서 정부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선을 행하는 자에게 칭찬을 해 주어야 하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롬13:3-4).
신약은 이와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도 강조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 두셨고 예수님을 만물 위에 있는 머리로 교회에게 주셨다(엡1:22, 한글개역판은 오역이다). 모든 것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골1:16). 예수 그리스도는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된다(계1:5; 17:14).
성경은 분명한 해답을 주고 있다. 정부는 하나님을 순종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섬겨야 한다. 정부는 대다수의 뜻대로 그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이 아니다. 정부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는 임무를 받았고 기독교인 국회의원은 그것을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결과
이러한 정부관의 구체적 결과는 무엇인가? 다양한 경우가 있으므로 지면 관계상 여기서 두 가지만 간단히 언급하겠다. 지금 화란의 대부분 국민은 낙태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낙태를 원하는 여자는 그것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혁주의정치연합이란 정당은 이 자유를 항상 반대해 왔고 정부에게 가장 약한 아이 곧 모태에 있는 아이의 생명을 보호할 것을 요구했다. 하나님은 낙태를 금하신다. 그래서 정부가 하나님의 사자로서 낙태를 허락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정부에게도 결정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에서 하나님의 항상 완전하게 지키도록 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예는 이혼문제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혼을 미워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혼증서제도를 허락하셨듯이 정부는 불신자를 고려하여 이혼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인정하는 정부는 이혼하기 좋도록 제도를 만들지 않을 것이며 결혼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조직으로서 인정되도록 애를 쓸 것이다. 이처럼 개혁주의정치연합이라는 정당은 정부가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자가 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