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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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시대의 선교
편집자 주: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연합감리교뉴스는 전염병이 우리의 삶과 신앙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하여 예배, 역사, 윤리, 성서, 신학, 목회, 상담학적인 관점의 다양한 글을 소개했다. 오늘은 그 시리즈의 번외편으로 김유진 목사의 선교에 관한 글을 소개한다.
대유행병(pandemic)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대유행병을 해석하고 대처하는 방법은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한 이해와 의학의 발전으로 중세의 흑사병과는 전혀 다르다. 물론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유행병을 “신의 형벌”이라는 종교 환상주의적인 방법으로 해석하기가 어려워졌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이 대유행병이 하나님의 형벌이 아닌 인간의 잘못으로 인한 결과이고, 피조물로서 창조자의 행세를 하고자 했던 인류의 죄성의 결과임을 깨달아야 한다.
다만 모든 역사적 사건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볼 때, 대유행병이 교회에 어떠한 변화를 요구하는지 살펴보고, 대유행병으로 인한 사회의 변화로 선교적인 측면의 다양한 길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되었다.
대유행병에 대한 대응 방식은 의료와 과학적 역량에 따라 나라별로 달라도, 이에 대한 이해와 해결을 위한 노력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유행병을 확산을 막기 위한 노력의 대표적인 공통점은 대면접촉을 줄이고 마스크로 착용하고, 친밀함에 바탕을 둔 신체 접촉을 지양하는 등 비대면 방식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이다. 비대면 사회로의 진입, 혹은 비대면 사회를 준비해야 하는 변화의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지금까지의 선교는 대면 접촉을 기반으로 하였다. 하지만 비대면 사회로의 진입은 선교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에 대한 획기적인 전화를 요구하고 있다.
기독교 선교는 중세에는 가톨릭 국가들의 식민주의와 맥락을 같이 하다 19세기 말부터는 서양의 문물을 앞세운 개신교를 중심으로 개화주의적 선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선교사 파송지였던 한국은 20세기 후반부터 선교사 파송국이 되어 활발한 기독교 선교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세계 각지로 파송된 선교사들은 그곳의 문화를 습득하고 언어를 배워 복음의 현지화를 위해 노력했다. 선교사들이 파송된 선교지마다 학교와 병원, 교회와 선교 센터가 세워졌으며,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공동체를 통한 선교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모든 선교 활동은 대면 접촉을 통한 관계 형성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그렇게 선교는 관계였고, 관계 형성의 중심에는 살을 부대끼며 삶을 나누는 대면 접촉 방식이 중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대유행병의 영향으로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오던 대면 접촉을 통한 관계 형성 중심의 선교는 멈출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과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면 접촉을 통한 선교 방식은 계속해서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백신과 치료제가 만들어지면 다시 전통적 대면 접촉 방식의 선교가 되살아날 수 있을까?
선교는 텍스트(Text: 말씀, 복음)와 문맥(Context: 상황, 문화)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문화 속에서 복음을 해석하고(contextualization), 복음으로 문화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 (indigenization)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에 있어서 문화에 대한 이해는 무엇보다 중요하며, 다양한 문화 속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금까지는 대면 접촉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그러한 대면 접촉 방식의 선교는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변화된 사회에서 선교를 이어가기 위한 몇 가지 대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거점 선교(One Point Mission) 방식과 현지인 주도 선교 방법이다.
지금까지는 선교지에 대한 문화적 다양성을 강조하다 보니, 선교사들이 현지인화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금 인류가 직면한 비대면 사회라는 새로운 문화는 다양한 문화 속에 선교사가 직접 들어가 살면서 대면하는 선교가 아닌 인류의 보편적 문화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 평화와 상생, 조력과 협력에 기반을 둔 탈대면적 선교로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선교사가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는 전통적 선교 방법 대신, 거점 방문을 통해 꼭 필요한 대면 접촉만을 하는 거점 선교 방식은 선교의 다양성과 집중성을 제공할 수 있다.
탈대면 혹은 비대면 문화 속에서의 거점 선교는 뚜렷한 필요성과 목표를 필요로 하며, 다양하고 필요한 인적 자원을 단기간에 극대화시켜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장기 선교 프로젝트는 현지인 선교사들에게 이양해야 한다.
선교하는 교회는 온라인 연결을 통해 정기적으로 현지인 선교사를 만나 필요한 영적, 물적, 신학적 자료를 비대면 방식으로 제공하고, 다른 나라 선교사의 주도가 아닌 현지인 선교사의 주도로 복음의 토착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둘째, 대사명(Great Commission)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해야 한다.
대면 사회의 문화 속에서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라고 하신 주님의 대사명을 “가서 그곳에 살면서 양육하라.”로 해석해왔고, “그곳에서 뼈를 묻으리라.”라는 사명감이 바람직한 선교사의 자세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곳에 뼈를 묻으리라”라는 말은 복음의 자생력과 토착화의 측면에서 선교지에 아직 복음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뜻이고, 외국인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반증이다.
앞으로 선교사의 최종 목표는 “나를 현지에서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외국인 선교사가 없어도 복음이 자생적으로 퍼질 수 있도록 복음의 토양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특히 코로나 시대의 선교적 대사명은 그곳에 살며 뼈를 묻는 것이 아닌, 이미 선교지에 사는 제자화된 현지인들이 자신들의 이웃을 제자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서 만나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했던 대사명을 이제는 현지인들에게 넘겨주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에 집중함으로 선교지에 영적인 조력을 제공해야 한다. 마치 사도들이 일곱 명의 헬라파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사역을 넘겨주었던 것처럼 말이다(행 6장).
셋째, 주도하는 선교에서 조력하는 선교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개체 교회만의 선교가 아닌 네트워크를 활용한 선교가 더욱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교회는 몇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했고, 몇 나라에 선교를 지원하고 있으며…”와 같이 선교가 그 교회의 역량을 드러내는 지표로 여겨져, 선교가 자랑거리가 되는 간혹 경우를 보게 된다. 하지만 선교는 개교회 혹은 개인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아닌, 협력이며 동역이자 조력이다.
주도하는 선교 대신 모두가 협력하고 조력하는 교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와 한인 교회가 구축해 놓은 선교들을 통합한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한 교회 주도의 선교가 아닌 여러 교회가 마음을 모아 함께 조력하는 선교가 더울 절실해졌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교회 선교지”라는 개교회 중심의 선교를 “우리 교회도 함께하는 선교지”로 탈바꿈한 협력 선교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연합감리교 세계선교부(GBGM)를 통한 선교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개교회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선교 분야(구제, 교육, 의료, 구호 등)를 세계선교부나 공신력 있는 선교 단체를 통하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선교 시장의 개척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미 구축된 선교를 네트워크를 통한 조력으로 그 지평을 넓히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넷째, 선교의 현장을 국외만이 아닌 국내로도 돌리는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전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시대적 지역적 여건에 맞춘 범세계화(glocalization)로 세계(global)와 지역(local)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시대를 살고 있으며, 디아스포라 선교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서 대면 접촉하는 것만을 선교로 생각하지 말고, 내가 사는 커뮤니티와 우리 교회가 있는 커뮤니티가 선교지라는 점을 인식하여, 지역 내 커뮤니티를 활용한 다양한 방법의 비대면, 탈대면 선교 방식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각 교회의 사정과 커뮤니티의 상황에 맞는 온라인 성경 클래스를 오픈하거나, 지역 사회에서의 구호나 구제 사역을 위해 교회가 중심이 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오랫동안 선교 사역을 감당해 왔던 선교사들과 각 나라의 언어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그 나라 출신의 이민자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할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가 지닌 모든 사고의 지평을 흔들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삶의 방식,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삶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다.
선교도 마찬가지다. 바깥으로 향하던 선교적 시각을 내 주위로 향하도록 하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가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형성하며, 공동체를 만들고, 교회를 개척해 복음 전하는 등의 전통적 선교 방식도 방향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했던 대면 사회가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이 시점이야말로 선교의 방법론을 제고해야 할 때다. 다만 변치 않는 한 가지 진실, 즉 복음의 능력은 우리가 정해 놓은 비대면 최소 거리인 6피트를 훌쩍 뛰어넘고도 남는다.
선교는 어떤 모습, 어떤 방법으로든 지속되어야 한다. 복음의 능력 때문에, 주님께서 주신 대사명은 비대면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김유진 목사는 버지니아연회 정회원으로, 감리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한 후, 2003-2007년에 필리핀 바탕가스에서 선교사로 섬겼다. 애스베리 신학대학원에서 간문화학 박사(intercultural studies Ph.D.)를 받고, 현재 Pleasant Valley UMC에서 담임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