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1. 서론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은 성경의 중심 사상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뜻하는 나라이며,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선포하시고 가르치신 복음의 핵심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고 말씀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마태는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마 4:23 중)라고 기록했으며, 마가는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는 기록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선포가 예수님의 주된 사역이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예수님도 직접적으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 언급하셨다.

즉,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으로써 하나님께서 하늘과 이 땅을 직접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현재 세상 속에서, 특히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이면서도 궁극적인 소망이 되고 있다.

2.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의 시작은 구약이다. 조지 래드(George Eldon Ladd)는 하나님 나라의 출발점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그 분의 목적을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을 통해 이루시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곧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인간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실 것이라는 소망이다. 이와 같은 소망은 하나님 자신이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계시한 구약성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존 브라이트(John Bright)는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상은 구약성서의 신적 계시와 신앙의 대망 가운데 깊이 잠재해 있었다고 강조한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향한 이러한 대망은 곧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고백에 근거해 하나님은 좀 더 강하고 종말론적인 의미에서의 왕이 될 것이라는 대망 사상이 일어나게 된다. 신정왕국으로 말해지는 구약의 하나님 나라 사상은 하나님의 통치 사상에 의한 것으로써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장차 올 미래에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오셔서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주신다는 소망이 피력된 것이다. 결국 구약성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하는 나라, 온 세상의 통치자라는 사실을 그 중심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메시아’라는 대망사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메시아적 예언은 미래에 참다운 하나님의 왕국이 메시아 중심으로 설립되어질 것을 제시하는데,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는 평화의 통치자로 오시고(사 11:1~9), 그의 왕권은 초자연적이며 신적이고, 영원한 특징을 갖는 것이다(미 5:1~9).

특히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통치와 메시아 대망사상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근거를 형성하고 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선포했다. 평화의 그 날이 오면 모든 인간적인 갈등이나 사회적인 문제가 없고, 악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화와 안전이 미래에 약속됐다고 믿은 것이다. 김회권도 구약성경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절대 선언이었다고 말한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죄, 악, 고난, 질병과 죽음, 전쟁 패배와 포로살이로부터의 구출과 해방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복음은 우주의 통치자인 하나님의 왕적 칙령으로써 하나님 없는 상황이 종식되며, 하나님의 생명 통치가 작동할 것이라는 선포였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와 같은 묵시와 예언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성취됐다. 마태는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고 기록했다.

하지만 신약성경은 ‘하나님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언제, 어떤 모양으로 임하는지에 대해 매우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도 다양한 사역과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약성경에서 하나님 나라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특정한 단어로 설명하기는 매우 힘들다.

특히 로마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며 하나님 나라를 현재 각자가 경험할 수 있는 영적 실체로까지 기록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여되는 유업이기도 하다.

하나님 나라는 현재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영적 상태이면서도 동시에 예수님의 재림 때 얻을 수 있는 것으로써 ‘이미’라는 현재성과 ‘아직’이라는 미래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 래드는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 실체이면서(마 12:28), 미래적 축복(고전 15:50), 다시 태어난 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요 3:3) 영적인 내적 축복이면서(롬 14:17) 또한 이 세상 나라의 통치(계 11:15)와도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람들이 실제로 들어갈 수 있는 현재적 영역이면서 나중에 들어갈 수 있는 미래적 영역(마 8:11), 믿는 자에게 상속되는 미래적 축복의 나라이면서(눅 12:32), 현재에 믿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나라(막 10:15)라고 강조한다.
 
3. 하나님 나라의 어원적 의미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다양성과 풍요로움은 하나님 나라를 섣불리 규정하고, 해석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어원적으로 해석할 경우에는 그 의미는 보다 명확해진다.

구약성경에서 히브리어로 기록된 하나님 나라는 ‘말쿠트’(malkeuth)다. 약 200회 정도 나타나는데, 그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인간 왕에게 적용될 경우, 주로 ‘통치’, ‘지배’, ‘왕권’ 등과 같은 추상적, 역동적 의미로 사용됐다. 하지만 지극히 부차적으로 왕이 통치하는 공간적 영역, 지역, 영토의 의미로도 쓰였다. 헬라어로 된 신약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바실레이아’(basileia)’라로 표현한다. 히브리어인 ‘말쿠트’와 동일하게 추상적, 역동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즉, 하나님 나라를 지칭하는 구약의 ‘말쿠트’와 신약의 ‘바실레이아’가 갖고 있는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 또는 ‘주권’과 ‘왕권’을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는 항상 통치, 다스림 또는 주권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이는 구약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사상이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만물의 주인이시다. 눈에 보이는 세계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주인이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 모든 민족도 복종해야 하는 만민의 주인이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만 주인이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세대에도 주인이신 것이다.

구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구약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나타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신정국가를 통해 당신의 열방을 드러내려 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거역하고 하나님이 끊임없이 이들을 돌이키시려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북 이스라엘, 남 유다에 이른다. 이러한 심판과 바빌론 포로상황에서 이스라엘은 ‘그 선지자’, 또는 ‘다윗의 자손’, ‘여호와의 종’을 간절히 기다린다. 바로 ‘주의 날’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부르시며 악인들과 악한 나라들을 심판하시고, 의인들과 그의 나라를 회복하실 것뿐만 아니라 죄로 인해서 깨어졌던 만물이 회복될 것을 약속하신다. 구약은 이렇게 메시아를 대망하며 마무리된다.

그리고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신약은 예수님이 바로 구약의 이러한 대망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졌음을 선언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지 끊임없이 가르치셨다. 복음서는 단지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도래시킨 메시아가 어떻게, 그리고 왜 죽으시고, 부활하셨는지에 대한 증언임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것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아직 완전히 임하지 않았다고 반복적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사복음서는 거의 ‘하나님 나라’로 표기하고 일부는 ‘천국’으로 표시하고 있다.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로 기록됐고, 마태복음에서는 네 곳(12:28, 19:24, 21:31, 43)을 제외하고 ‘천국’이라고 기록됐다.

결국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대망했던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임했으며, 현재 하나님의 통치가 그의 백성들을 통해 이루어지심을 통해 자라가고 있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경적 또는 어원적 의미는 ‘왕 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통치, 주권’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는 하나님이 영원한 왕이시며 만물을 다스린다는 단순한 추상적 개념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역동적 개념이기도 하며, 단순히 영역으로 제한할 수도 없다.

결국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주권적인 나라, 곧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자라면 누구나 지금 여기에서 복을 누리는 곳, 마지막 날 예수님의 재림 후에 들어가게 되는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 나라는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4.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가 모두 104번 사용되고 있는데, 거의 전폭적으로 예수 자신의 말씀 가운데 나타난다. 그렇다면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이었을까.

예수 당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즉 아직 기다려야 하는 미래적인 나라인 것이 반해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한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가 요단강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종이라는 소명을 받은 후 고향 땅에 돌아가 제일 먼저 한 것이 “그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으라”(막 1:14~15, 마 4:17)는 선포였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예수의 선언은 하나님의 나라의 임박한 도래에 대한 기대나 준비를 위한 선언이 아니라 선포하는 예수 자신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도착했다는 선언이며, 지금 예수 안에서 도착한 그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단의 요청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예수는 유대교의 대표적인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할 것인지 물었다(눅 17:20). 그때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고 답변하시며 당대 유대인들이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의 때와 장소에 관한 두 가지 사상-하나님의 나라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 속해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고 관찰할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나라라는 사상-에 동의하지 않음을 지적하셨다.

물론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정의의 구현 및 윤리를 표방하는 등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포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라고 정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우주적이며, 전 세계적이며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예수는 자신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속적인 나라가 아니며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이미 도래했음을 선언하시기도 하셨다(“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8, 눅 11:20).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에 의해 주도되는 인간 중심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중심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는 위로부터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이며(마 5:2), 구하는 자의 것이며(마 6:33), 어린아이처럼 겸손히 받드는 자의 것이며(마 18:3, 19:14, 막 10:14, 눅 18:17), 거듭난 자의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요 3:5). 그러나 미래에 완성될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아야 하며(마 5:10), 서기관보다 더 나은 의를 가져야 하며(마 5:10),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고 선언하셨다(마 7:21).

결국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 중심의 나라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그 분의 왕권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중심의 나라라고 볼 수 있다.
 
5. 하나님 나라와 교회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 맡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 명확히 말씀하셨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6~18).

특히 예수님께서는 ‘에클레시아(ekklesia)’, 곧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규정하셨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공동체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내포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줘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에 기초해 있다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신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불가분의 관계는 ‘하나님 나라가 교회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있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통해 확장된다. 따라서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동일시 할 수 있다. 존 스토트(John R. W. Stott)에 따르면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올바로 일치시키려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증표로, 하나님 나라의 봉사자로, 하나님 나라의 ‘선 경험’이 돼야 한다.

양용의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제자들의 현재적 삶은 그 자체로서 최종적인 목표가 아니라 장차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경성된 삶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지극히 강조하시면서도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도 매우 확고하게 드러내 보이셨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교회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기대를 한 순간도 소홀히 하거나 잊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완전한 그 때의 도래를 늘 기다리며 하나님의 통치에 더욱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에 실존하는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면서 예수님의 재림 이후 온전한 하나님 나라가 할 때까지 성령의 역사에 힘입어 다양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6. 교회의 궁극적 사명
교회,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공동체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 비록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까지는 완전한 축복의 상태로 실현되어지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는 세상에서 역사하고 있으며, 악과의 무서운 싸움 속에서 보증되어지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투쟁을 감당하는 기구인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됐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세상은 사단의 지배 아래 있게 됐다. 사단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강요하고, 그 지은 죄의 결과로 죽음을 가져다줬다(롬 6:23). 결국 하나님 나라는 인간에게 창조자이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가장 큰 이유이다. 죄인들로 하여금 사단의 나라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도록 불러내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막 2:17). ‘회개’와 ‘믿음’으로 죄인인 인생이 사단의 나라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오라고 선포하셨고, 친히 십자가에서 그 길을 여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을 왕으로 섬기는 삶의 방식, 곧 타락한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았던 삶의 모습을 회개하고,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즉, 피조물로서의 인생이 가진 궁핍함에서 창조주의 부요함으로 들어가며, 인생의 유한성으로 인해 야기되는 고통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부요함으로 이루어진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교회, 즉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며, 앞으로 임하시게 될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고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과 환경, 삶의 전 영역으로 확장시켜야 하는 청지기의 사명이 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제대로 누리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마 6:33)는 말씀에 기초해 하나님의 법을 찾고 따라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하나님은 항상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항상 존재하시고 항생 행동하실 것이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존재하고 항상 존재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에 산다는 것은 결국 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삶을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다.

김형국은 “교회는 단지 수동적으로 하나님을 수용하고 기다리는 자들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살아내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세상 사람들의 빛이 되고(마 5:14~16, 엡 5:8~9, 빌 2:15, 골 1:12, 살전 5:5), 우리 가운데 있는 소망에 대해 질문하게 만드는 적극적인 사명을 갖고 있다(벧전 3:15)”고 강조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온전한 회심을 이루어야 한다.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다는 값싼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총체적인 복음, 하나님 나라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섬기는 사역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 나라답게 하기 위해 교회에 소속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며 그 분을 닮아갈 것인지 고민하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살아내야 한다.
 
7. 결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주권적인 나라, 곧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에게 주어진 나라다. 그 나라는 이미 임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최종적으로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를 갈망해야 한다. 그 때는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 속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 백성공동체이며 하나님 나라의 표지인 교회는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공동체로서 예수님의 삶을 뒤따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교회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소개할 수 있는 힘과 능력, 촉매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속에 들어왔다고 선언해야 한다. 교회는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현재적이면서도 종말론적인 공동체다. 예수님의 부활부터 고대하는 재림, 곧 종말 사이에 위치한 이 마지막 때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이끌어야 한다.

교회는 이미 설립된 하나님 나라의 선교적 증거자로서 곧 예수님이 이미 이루신 것에 대한 증거자로서 세상 속에 보내어졌다. 따라서 교회는 이미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의 확실한 승리와 성취된 승리를 믿고, 아직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

특히 인간사회가 이미 세워놓은 모든 장벽들을 초월하는 신앙공동체를 세상 앞에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그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공동체의 흔적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교회는 지체를 넘어서서 세상 속에 선행과 형제사랑을 확대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 복음을 교회 안에 담아둘 수 없는 것처럼 그 아가페(사랑)를 더 이상 교회 안에 가두어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기 위해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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