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적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신명기 20장 1-4절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02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거든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03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날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인하여 놀라지 말라 04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니라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허락하실 때에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땅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이미 살고있는 가나안 사람들과 일대 전쟁을 치르며 하나하나 점령하여 들어가도록 지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는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특별히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 땅에 들어가서 세워질 이스라엘 나라가 힘이 있는 강한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많은 체험을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믿음으로 무장된 사람들로 만들기 위해서 적과의 전쟁을 통해 그 땅을 차지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승리하는 비결은 한마디로 “대적을 보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좬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그들의 숫자가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몇 배나 많고, 무기 또한 엄청나며, 그들의 힘이 굉장히 강하다할지라도 그런 것들을 전혀 볼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에 보이는 그런 외적인 요인들로 인해서 그들과 맞서 싸워보기도 전에, 마음이 위축되어 두려움에 떨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사실 두려움은 전쟁을 수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적군의 맹렬한 공격보다 더 치명적인 해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려움부터 없애야 하며마음이 담대해져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겁내지 마라” “두려워하지 말라” “떨지 말라” “그들로 인해 놀라지 말라”고 거듭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행하시며 그들을 위해 대적을 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거듭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두려움이 전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그곳의 형편을 미리 알아보도록 결정했습니다. 그리하여 12명의 정탐군들이 이곳저곳을 두루 탐지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탐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은 매우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가나안 땅은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아주 살기 좋은 땅이지만, 문제는 가나안 사람들의 체격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비교해 볼 때 너무나 크고 강해서 자신들은 마치 그들 앞에 메뚜기와 같은 존재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니 그들과 어찌 맞서 싸울 수 있겠느냐, 도저히 전쟁에서 이길 승산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다 죽게 생겼으니, 이제라도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들의 부정적인 보고에 온 백성들이 얼마나 겁을 먹었든지 밤새도록 울며 통곡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10명의 정탐군들의 비관적인 보고를 듣고 불행하게도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 생각한 것은? 
1.대적보다 크신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싸워야 할 가나안 사람을 보고 두려워하다가 믿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두려움에 떨며 믿음을 잃어버린 결과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광야 1세대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멸망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다시는 이런 실패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 그들의 자손들에게 좬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좭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을 보고 떨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다고 생각하십니까? 천지만물을 지으실 때도 “빛이 있으라” 하시는 말씀 한마디에 빛이 생겼습니다. 우리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의 권세와 하나님의 사랑 또한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기고 지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는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대적들을 치고 구원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승리를 보장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성공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신 위대하신 하나님입니다. 애굽군대의 추격을 목전에 두고 다급해진 백성들 앞에서 콧김으로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육지를 건너가듯이 안심하고 건너게 하셨습니다. 뒤쫓아오던 애굽군사들과 병거들을 몽땅 홍해에 수장시키신 하나님입니다. 그 능력이 얼마나 크신지 우리의 좁은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 그곳의 물이 너무 써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라의 쓴물을 단물되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흡족히 먹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오게 하신 하나님입니다. 아말렉과 싸울 때에 그들의 지도자 모세가 손을 들기만 하면 이기게 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적과 싸워도 이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백전백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2명의 정탐군중 10명은 오늘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계산을 하고 부정적인 보고를 하여 백성들을 비통에 빠지게 만들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대적을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므로 해서 대적들을 물리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나이 어린 청소년인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과 똑같이 골리앗만 생각하고 나아갔다면 감히 두려워서 그 앞으로 나아가 싸울 생각조차도 못했을 것입니다. 사무엘상 17:4-7절을 보면 골리앗의 키가 약 3m에 달하는 거인으로 머리에는 놋투구를 쓰고, 몸에는 57Kg에 달하는 놋갑옷을 입었으며, 다리는 놋경갑으로 둘러있었고, 창날의 무게만 해도 7Kg이나 되는 거대한 창을 들고 서 있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골리앗 앞에는 골리앗을 보호하기 위해 큰 방패를 든 병사들이 지키고 서있었습니다. 이처럼 보통사람들이 상상하기에도 무시무시한 골리앗 앞에 양을 치는 막대기를 들고 서 있는 나이 어린 청소년 다윗이 어떻게 그와 맞서 싸울 수 있겠습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싸움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가 싸워서 골리앗의 목을 베고 승리했습니다. 그가 승리한 비결은 골리앗을 보지 않고 골리앗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큰 적은 사단입니다. 
우리의 대적인 사단, 원수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고 타락하게 만들며 멸망시키려고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굶주린 사자가 먹이 감을 찾아 울부짖으며 다니는 것처럼 마귀는 삼킬 자를 찾아 헤매며, 성도들을 미혹할 수만 있으면 미혹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사실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 세상은 커다란 영적 전쟁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계속해서 마귀와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타락된 이 세상의 문화 특히 음란한 문화가 우리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얼마나 무섭게 공격해오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는 마치 입을 크게 벌리고 먹이 감을 노리는 커다란 독사처럼 우리 성도들을 삼키려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최근에는 사단이 인터넷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인터넷에서 음란물을 접속하고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이 제법 있다고 합니다. 과연 이들이 무슨 정신으로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하겠습니까? 문제는 청소년뿐 아니라 청년들까지 심지어 나이 많은 장년, 주부에 이르기까지 급속도로 타락해가며 음란한 문화에 손쉽게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찌보면 이런 음란한 문화는 공산주의와 같은 적 그리스도의 세력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차라리 공산주의자들의 핍박 앞에서는 성도들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를 각오하고 나아가기 때문에 믿음이 더 순결해지고 강해집니다. 그러나 음란한 문화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색의 독가스가 소리 소문 없이 온 방에 퍼지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죽여가듯이 성도들을 타락시키고 멸망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걱정한 나머지 인터넷의 음란 정도가 어디까지 왔는지 직접 알아보려고 그런 사이트만을 골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채팅에서 목사님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그 상대가 다름 아닌 서울의 어느 큰 교회의 순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어째 이럴 수 있느냐고 책망했더니, 그저 심심해서 들어와 봤다는 뻔뻔스러운 변명만 늘어놓더라고 했습니다. 평신도도 아닌 교회의 일군까지 이렇게 되었으니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어찌보면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는 영적전쟁의 원리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누구나 타락한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반드시 속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문제 많은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소망이 없는 세상임을 알게 되어 실망하게 되고, 이 세상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걱정이 많아지고 낙심하게 되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려고 하면 타락한 이 세상을 바라볼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목사님이라도 인터넷을 연구한다고 날마다 인터넷만 들여다보고 거기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목사님 자신부터 타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2. 두려운 마음으로 인해 믿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범선을 타는 사람의 경우 예로부터 배를 처음 타는 선원을 훈련시키는 방법으로 먼저 높은 돛 위에 올라가게 한다고 합니다. 이때 높은 파도가 치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순간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지 현기증이 나서 그만 떨어져 죽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다의 물결이 요동을 치든지 말든지 아래를 보지말고 오직 하늘을 쳐다보며 나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요동치는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위를 쳐다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문에 난 기사나 방송을 열심히 들여다보면, 당장 이 세상이 망할 것 같아 보입니다. 저는 신문을 볼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다 보지 못합니다만 어제는 큰 제목만 대강 훑어보았습니다. 세계경제가 내리막길로 가고 있고 곧 이 세상이 망할 것 같은 기사로 가득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열심히 뉴스를 보고 신문을 보지만 얼마나 골치가 아픕니까? 더구나 방송을 듣고 TV를 열심히 보다가 은혜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험악한 이 세상을 바라보고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두려움만 생기고 근심만 커져서 결국 믿음이 약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지만 그로 인해 마음이 둔해지고 불안해져서는 절대로 안되겠습니다. 
우리의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흥하고 망하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 하나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마음의 평강을 얻게 되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애가 3:19절 이하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게되었고 일부는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 마치 눈물이 강물되어 흐르듯이 슬피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을 바라보고 구하는 영혼에게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 그 좋으신 하나님을 깨닫게 되는 순간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이 백성이 결단코 진멸되지 아니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게 된 것입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70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면 새힘이 솟고 믿음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면 이깁니다. 
리빙스톤은 그 당시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던 아프리카로 들어가 선교에 앞장섰습니다. 그곳에 가면 짐승의 밥이 되기 쉽고 열병으로 죽을 수 있으며, 식인종들에게 잡혀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나와 함께 하여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담대하게 선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두려움을 주고 근심케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믿음을 병들게 하고 믿음을 약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에 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의 평강이 넘치게 되며 담대한 믿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과 같이 죄가 많고 험악한 이 세상에서 저와 여러분이 승리하며 사는 비결인 줄 믿습니다.  

정필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