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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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삶
-조재호목사/ 고척교회
시편 1:1∼3, 에베소서 1 : 3
영국 런던의 템스 강 근처에 있는 재판소 뜰에는 유명한 포도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그 포도나무는 유난히 맛이 좋고 좋은 열매를 맺기에, 식물학자들이 그 포도를 종자로 하여 우수한 포도를 공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다른 포도나무와 별다른 특징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포도나무는 뿌리가 템스 강 밑바닥까지 뻗어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나무는 뿌리가 강 밑바닥까지 뻗어 있었기 때문에 수분을 충분히 빨아들일 수 있었고, 아울러 양분도 공급받아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광야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거의 메말라 있고 가시가 앙칼지게 돋아 있습니다. 그러나 요단 강가나 지중해 근처에 있는 땅은 얼마나 비옥한지 그곳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굉장히 잘 자랍니다. 뿌리가 강가에 있을 때 풍성한 나무가 되듯,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의 생명수 강가에 삶의 뿌리를 내릴 때 복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본 시는 시편의 서론이요, 시편의 입구에 서 있는 하나의 표지판으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올바른 길에 대하여 분명한 안내 역할을 합니다. 아가서가 ‘노래 중의 노래’라면 이 시는 ‘시 중의 시’입니다. 이 시는 참된 행복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를 깊이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하나님이 아시는데 하나님이 복 주실 삶의 자리에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아니 행복하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벌고, 성공하고, 건강을 지킵니다. 그러나 행복은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고, 설사 된다 해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영원한 행복! 그 무엇으로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그런 절대적인 행복은 어디 있습니까? 오늘 말씀이 바로 그 해답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이라고 하면서 우리 모두를 향한 행복에로의 초청입니다.
1. 복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죄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행복의 파랑새를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행복하려면, 먼저 불행으로 가는 길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악인의 꾀를 좇지(walk)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stand),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sit) 말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단지 부주의하고 악한 자, 곧 하나님을 망각한 자의 꾀를 좇습니다. 하지만 후에 상습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게 되며, 하나님의 계명들을 의도적으로 어기는 죄인의 길에 ‘서게’ 됩니다. 또한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한 단계 더 나아가 스스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죄라는 것은 마치 늪과 같아서 죄에 대한 단호한 단절을 하지 않으면 죄의 늪에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됩니다. 누구나 사소하고 작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이 정도쯤이야’ 하고 쉽게 발을 들여놓습니다.
그러나 장대비보다 이슬비에 옷이 젖음과 같이, 죄의 유혹을 처음에 뿌리치지 못하고 타협하고 양보하다가 보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주어진 자리에서 바른 결단과 선택을 해야 합니다.
2. 복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단어는 묵상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묵상한다’는 말은 되새김질 한다는 의미입니다.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되새김질하면 달고 오묘한 말씀에 젖어들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자꾸 묵상해야 합니다. 되새김질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고 말씀이 우리를 복되게 인도하십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은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입니다.
인간의 머리에는 하루에 수만 가지의 생각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무슨 생각, 무슨 묵상을 하고 살고 있습니까? 세상일에만 분주하지 말고 세상의 것을 묵상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영혼의 살을 찌울 수 있습니다. 그래야 복 있는 인생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시내’라는 단어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시내’는 자연적으로 흐르는 시내가 아니라 관개수로를 말합니다. 관개수로는 수원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아도 마르지 않습니다.
의인은 이러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고갈되지 않는 생명의 원천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필요한 생명력을 끊임없이 공급받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인생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습니까? 생명수 되시는 주님의 말씀에 깊이 내려야 합니다. 그럴 때 예레미야의 말씀처럼 우리의 삶이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 17:78)”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은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는 데 있습니다.
복 있는 삶, 즉 행복한 삶이 되는 비결은 우리의 가진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물질적인 넉넉함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복 있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즉, 신앙적인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생명의 길이며 진리이며 우리 인생의 빛이며 등불이 되는 주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 대로 살려는 신앙적인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 복이 있고 행복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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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호목사/ 고척교회
시편 1:1∼3, 에베소서 1 : 3
영국 런던의 템스 강 근처에 있는 재판소 뜰에는 유명한 포도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그 포도나무는 유난히 맛이 좋고 좋은 열매를 맺기에, 식물학자들이 그 포도를 종자로 하여 우수한 포도를 공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다른 포도나무와 별다른 특징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포도나무는 뿌리가 템스 강 밑바닥까지 뻗어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나무는 뿌리가 강 밑바닥까지 뻗어 있었기 때문에 수분을 충분히 빨아들일 수 있었고, 아울러 양분도 공급받아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광야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거의 메말라 있고 가시가 앙칼지게 돋아 있습니다. 그러나 요단 강가나 지중해 근처에 있는 땅은 얼마나 비옥한지 그곳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굉장히 잘 자랍니다. 뿌리가 강가에 있을 때 풍성한 나무가 되듯,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의 생명수 강가에 삶의 뿌리를 내릴 때 복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본 시는 시편의 서론이요, 시편의 입구에 서 있는 하나의 표지판으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올바른 길에 대하여 분명한 안내 역할을 합니다. 아가서가 ‘노래 중의 노래’라면 이 시는 ‘시 중의 시’입니다. 이 시는 참된 행복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를 깊이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하나님이 아시는데 하나님이 복 주실 삶의 자리에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아니 행복하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벌고, 성공하고, 건강을 지킵니다. 그러나 행복은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고, 설사 된다 해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영원한 행복! 그 무엇으로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그런 절대적인 행복은 어디 있습니까? 오늘 말씀이 바로 그 해답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이라고 하면서 우리 모두를 향한 행복에로의 초청입니다.
1. 복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죄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행복의 파랑새를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행복하려면, 먼저 불행으로 가는 길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악인의 꾀를 좇지(walk)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stand),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sit) 말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단지 부주의하고 악한 자, 곧 하나님을 망각한 자의 꾀를 좇습니다. 하지만 후에 상습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게 되며, 하나님의 계명들을 의도적으로 어기는 죄인의 길에 ‘서게’ 됩니다. 또한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한 단계 더 나아가 스스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죄라는 것은 마치 늪과 같아서 죄에 대한 단호한 단절을 하지 않으면 죄의 늪에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됩니다. 누구나 사소하고 작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이 정도쯤이야’ 하고 쉽게 발을 들여놓습니다.
그러나 장대비보다 이슬비에 옷이 젖음과 같이, 죄의 유혹을 처음에 뿌리치지 못하고 타협하고 양보하다가 보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주어진 자리에서 바른 결단과 선택을 해야 합니다.
2. 복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단어는 묵상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묵상한다’는 말은 되새김질 한다는 의미입니다.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되새김질하면 달고 오묘한 말씀에 젖어들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자꾸 묵상해야 합니다. 되새김질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고 말씀이 우리를 복되게 인도하십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은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입니다.
인간의 머리에는 하루에 수만 가지의 생각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무슨 생각, 무슨 묵상을 하고 살고 있습니까? 세상일에만 분주하지 말고 세상의 것을 묵상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영혼의 살을 찌울 수 있습니다. 그래야 복 있는 인생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시내’라는 단어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시내’는 자연적으로 흐르는 시내가 아니라 관개수로를 말합니다. 관개수로는 수원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아도 마르지 않습니다.
의인은 이러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고갈되지 않는 생명의 원천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필요한 생명력을 끊임없이 공급받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인생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습니까? 생명수 되시는 주님의 말씀에 깊이 내려야 합니다. 그럴 때 예레미야의 말씀처럼 우리의 삶이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 17:78)”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은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는 데 있습니다.
복 있는 삶, 즉 행복한 삶이 되는 비결은 우리의 가진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물질적인 넉넉함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복 있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즉, 신앙적인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생명의 길이며 진리이며 우리 인생의 빛이며 등불이 되는 주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 대로 살려는 신앙적인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 복이 있고 행복한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