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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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회복
- 은광교회/이동준목사
요한복음 4:13~24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요한을 만나고 온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들이 진정으로 만나야 할 분은 바로 “생명의 주시는 주님”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합시다. 오늘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습니까? 습관 때문인가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의무감 때문인가요? 이렇다면 여러분은 진정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곳에 예배하러 왔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인생의 목마름을 해갈하려고 합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나의 인생을 하늘의 풍성함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나의 상처받은 마음과 심령을 치료받으려고 왔습니다. 그렇다면 잘 오셨습니다. 바르게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인생이 풍성해지고 모든 상처가 치료되고 기쁨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국 교회처럼 열심히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가장 열심이 있습니다. 주일 낮예배, 주일 저녁 찬양예배, 수요기도회, 새벽기도회, 구역예배, 가정예배, 기타 등등 예배, 특별히 드리는 예배까지 하면 엄청납니다. 보통 열심히 예배드리는 분은 일주일에 세 번은 기본적으로 예배드립니다. 이런 분은 1년이면 156번 예배드리고 70세까지면 10,920번을 예배드립니다. 만 번의 예배, 대단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다고 놀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열심히 믿는 교인들은 일만 번의 예배를 드립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정도 예배드리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솔로몬이 천 번의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이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는데 일만 번의 예배를 드리고 무슨 소원인들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수학적인 계산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사야 11장이나 아모스 5장에 “내가 예배하는 자를 미워한다”고 하십니다. 너희는 마당만 밟는다고 책망하십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받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예배를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예배를 받지 아니하신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예배하는 자를 가증이 여기시고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충격을 받습니다. 우리가 수많은 예배를 드릴지라도 하나님이 받지 아니하신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헛된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우리가 많은 예배를 드리고서도 우리의 삶에 변화가 없는 것은 바로 우리의 예배가 이러한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아니한 것은, 내 목마름이 아직도 해갈되지 아니함은 나의 상처가 예배를 통해서 치유되지 않는다면 내가 진정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예배를 받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통하여 생명 있는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봅시다. 수가성의 우물가에서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십니다. 원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상종하지 않습니다. 사마리아 길로도 통행하지 않고 그릇도 같이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왜 사마리아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내가 누구인줄 알았으면 나에게 구하였을 것이고 내가 생수를 너에게 주었으리라고 하십니다. 여인은 당신이 어디서 생수를 주신다는 말이니까 하고 반문할 때 주님은 “내가 주는 물은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하는 영생하도록 쏟아나는 샘물이다”고 하십니다. 그 물을 나에게 달라고 하며 여인은 주님에게 어디에서 예배해야 합니까? 우리는 대대로 그리심 산에서 예배해 왔는데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여인의 질문은 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나의 인생은 이렇게 목이 마릅니까? 예배 장소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요? 교회를 잘못 선택해서 이렇게 내 인생이 망가져 있지 아니한가요? 그러면 내 인생을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 어디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인가요? 예수님의 말씀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배의 본질은 몇 번 예배를 드렸느냐, 어디서 예배를 드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가 설교하고, 누가 기도했고 얼마나 오랜 시간 예배를 드렸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렸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학에서 예배를 정의하기를, 예배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고 정의합니다.
예배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심과 그리고 인간의 응답입니다.
그러기에 예배는 먼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시고 하나님께서 잔칫상을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준비하고 예배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아니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배는 인간들의 잔치가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베풀어 주신 잔치입니다. 그러기에 예배에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식탁에는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피곤한 영을 새롭게 하는 온갖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병든 영혼을 치료하고 병든 육신을 치료하는 온갖 치료제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이 잔치 자리에서 생명을 얻고 상처의 치료함을 받고 새 힘을 얻고 삶의 기쁨과 보람을 회복합니다. 이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이 예배를 통해서 예비하시고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예배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잔치자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준비하고 하나님을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한 것을 아시고 예비하신 다음 우리를 초청하는 것입니다. 마치 왕이 잔치자리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왕의 잔치자리에 초청받은 사람 가운데에 예복을 입지 아니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왕은 진노하여 저 사람을 밖으로 끌어내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사람은 잔치자리에 왔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맙! 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인간의 응답이 잘못되면 그 역사하심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올바른 응답입니다. 인간의 응답이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개정개역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고 번역하였습니다. 보다 알기 쉽게 번역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진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씀입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신령을 ‘프뉴마타이’로 진정은 ‘알레세이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과 진리로 인도되는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예배가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에서 드려지는 예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예배자의 자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진리에 순종하는 자세가 바로 올바른 예배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먼저, 주님의 성전에 와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도합시다. 성령 충만을 위해서 간구합시다. 그리고 주께서 주시는 그 말씀을 진리로 믿고 고백하며 순종하기를 다짐합시다. “주님, 뭐라고 말씀하시든지 주의 말씀이 진리이오니 믿고 따르겠나이다. 말씀대로 살겠나이다.” 이러한 고백 가운데 예배를 드립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잔치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에 대한 준비가 무엇인가요? 세련된 순서 진행이며 매끄러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넉넉한 물질과 잘 준비된 찬양이며 세련된 위원들의 안내인가요? 그렇습니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시는 예배를 받으십니다. 예배자의 심령이 성령으로 채워질 때가 바른 예배자가 됩니다. 동시에 내가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리스도의 삶에 순종하는 마음이 올바른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무슨 설교를 하나 보자’가 아니라 ‘무어라고 하시든지 내가 진리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합니다’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드림이 하나님에게 무엇을 내가 드린다는 불경한 생각을 버립시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의 천국잔치입니다. 잔치에 기대하고 나옵시다. 당신의 필요한 것을 채우시는 은총의 하나님이 준비하신 풍성하신 하나님의 잔치입니다. 당신의 영적 건강을 회복시키시고 심령의 상처를 치료하시고 우리의 빈곤한 삶을 풍성케 해 주십니다. 기대한 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받고 삶의 ! 기쁨을 회복합니다. 생명이 넘치는 풍성한 삶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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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광교회/이동준목사
요한복음 4:13~24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요한을 만나고 온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들이 진정으로 만나야 할 분은 바로 “생명의 주시는 주님”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합시다. 오늘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습니까? 습관 때문인가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의무감 때문인가요? 이렇다면 여러분은 진정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곳에 예배하러 왔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인생의 목마름을 해갈하려고 합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나의 인생을 하늘의 풍성함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나의 상처받은 마음과 심령을 치료받으려고 왔습니다. 그렇다면 잘 오셨습니다. 바르게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인생이 풍성해지고 모든 상처가 치료되고 기쁨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국 교회처럼 열심히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가장 열심이 있습니다. 주일 낮예배, 주일 저녁 찬양예배, 수요기도회, 새벽기도회, 구역예배, 가정예배, 기타 등등 예배, 특별히 드리는 예배까지 하면 엄청납니다. 보통 열심히 예배드리는 분은 일주일에 세 번은 기본적으로 예배드립니다. 이런 분은 1년이면 156번 예배드리고 70세까지면 10,920번을 예배드립니다. 만 번의 예배, 대단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다고 놀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열심히 믿는 교인들은 일만 번의 예배를 드립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정도 예배드리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솔로몬이 천 번의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이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는데 일만 번의 예배를 드리고 무슨 소원인들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수학적인 계산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사야 11장이나 아모스 5장에 “내가 예배하는 자를 미워한다”고 하십니다. 너희는 마당만 밟는다고 책망하십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받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예배를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예배를 받지 아니하신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예배하는 자를 가증이 여기시고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충격을 받습니다. 우리가 수많은 예배를 드릴지라도 하나님이 받지 아니하신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헛된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우리가 많은 예배를 드리고서도 우리의 삶에 변화가 없는 것은 바로 우리의 예배가 이러한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아니한 것은, 내 목마름이 아직도 해갈되지 아니함은 나의 상처가 예배를 통해서 치유되지 않는다면 내가 진정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예배를 받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통하여 생명 있는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봅시다. 수가성의 우물가에서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십니다. 원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상종하지 않습니다. 사마리아 길로도 통행하지 않고 그릇도 같이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왜 사마리아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내가 누구인줄 알았으면 나에게 구하였을 것이고 내가 생수를 너에게 주었으리라고 하십니다. 여인은 당신이 어디서 생수를 주신다는 말이니까 하고 반문할 때 주님은 “내가 주는 물은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하는 영생하도록 쏟아나는 샘물이다”고 하십니다. 그 물을 나에게 달라고 하며 여인은 주님에게 어디에서 예배해야 합니까? 우리는 대대로 그리심 산에서 예배해 왔는데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여인의 질문은 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나의 인생은 이렇게 목이 마릅니까? 예배 장소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요? 교회를 잘못 선택해서 이렇게 내 인생이 망가져 있지 아니한가요? 그러면 내 인생을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 어디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인가요? 예수님의 말씀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배의 본질은 몇 번 예배를 드렸느냐, 어디서 예배를 드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가 설교하고, 누가 기도했고 얼마나 오랜 시간 예배를 드렸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렸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학에서 예배를 정의하기를, 예배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고 정의합니다.
예배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심과 그리고 인간의 응답입니다.
그러기에 예배는 먼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시고 하나님께서 잔칫상을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준비하고 예배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아니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배는 인간들의 잔치가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베풀어 주신 잔치입니다. 그러기에 예배에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식탁에는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피곤한 영을 새롭게 하는 온갖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병든 영혼을 치료하고 병든 육신을 치료하는 온갖 치료제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이 잔치 자리에서 생명을 얻고 상처의 치료함을 받고 새 힘을 얻고 삶의 기쁨과 보람을 회복합니다. 이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이 예배를 통해서 예비하시고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예배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잔치자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준비하고 하나님을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한 것을 아시고 예비하신 다음 우리를 초청하는 것입니다. 마치 왕이 잔치자리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왕의 잔치자리에 초청받은 사람 가운데에 예복을 입지 아니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왕은 진노하여 저 사람을 밖으로 끌어내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사람은 잔치자리에 왔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맙! 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인간의 응답이 잘못되면 그 역사하심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올바른 응답입니다. 인간의 응답이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개정개역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고 번역하였습니다. 보다 알기 쉽게 번역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진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씀입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신령을 ‘프뉴마타이’로 진정은 ‘알레세이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과 진리로 인도되는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예배가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에서 드려지는 예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예배자의 자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진리에 순종하는 자세가 바로 올바른 예배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먼저, 주님의 성전에 와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도합시다. 성령 충만을 위해서 간구합시다. 그리고 주께서 주시는 그 말씀을 진리로 믿고 고백하며 순종하기를 다짐합시다. “주님, 뭐라고 말씀하시든지 주의 말씀이 진리이오니 믿고 따르겠나이다. 말씀대로 살겠나이다.” 이러한 고백 가운데 예배를 드립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잔치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에 대한 준비가 무엇인가요? 세련된 순서 진행이며 매끄러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넉넉한 물질과 잘 준비된 찬양이며 세련된 위원들의 안내인가요? 그렇습니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시는 예배를 받으십니다. 예배자의 심령이 성령으로 채워질 때가 바른 예배자가 됩니다. 동시에 내가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리스도의 삶에 순종하는 마음이 올바른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무슨 설교를 하나 보자’가 아니라 ‘무어라고 하시든지 내가 진리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합니다’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드림이 하나님에게 무엇을 내가 드린다는 불경한 생각을 버립시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의 천국잔치입니다. 잔치에 기대하고 나옵시다. 당신의 필요한 것을 채우시는 은총의 하나님이 준비하신 풍성하신 하나님의 잔치입니다. 당신의 영적 건강을 회복시키시고 심령의 상처를 치료하시고 우리의 빈곤한 삶을 풍성케 해 주십니다. 기대한 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받고 삶의 ! 기쁨을 회복합니다. 생명이 넘치는 풍성한 삶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