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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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616
“성령께서 내 안에서 하시는 일”(롬 8:2-11)
성령은 보혜사(保惠師)로서(요14:16) 신자를 가르치고 돕고 위로하고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불신자를 죄와 의(義)와 심판(審判)에 대하여 책망하심으로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도우십니다(요 14:17,16:8-11) 성령은 우리를 돕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이처럼 성령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눅11:13,요14:16,17) 우리는 철저히 회개하여 깨끗해진 마음으로(요일1:9,행2:38,시42:1), 말씀 가운데 기도하여 성령을 받되(행1:14,2:1)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엡 5:18)
그래서 성령이 임하여 권능(權能)을 받으면 우리는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마 10:20,막 1617,18,행 1:8) 주님의 영광과 복음을 위해 사는 자에게 성령께서 능히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사 그는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성령과 원만한 교제를 이루고 생수의 충만한 공급을 받아 매사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고(요3:3-5) 이웃에게 은혜를 끼치며 본인과 그 가정에 기쁨과 축복이 항상 새로워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에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 1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성령과 바른 교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내 안에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1. 죄(罪)와 사망(死亡)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2절)
본문 2절에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안에 있기 전까지는 죄(罪)와 사망이 나를 완전히 노예로 붙잡고 내 삶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의 "죄와 사망의 법"이란 롬 714에서, 사도 바울이 선을 행하기 원하나 행치 못하고, 악(惡)을 행하지 않으려 하는데 악을 행하는 자신을 모습을 보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랴"라 하며 절규하다가 그것이 바로 자신 속에 죄성(罪性)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인간은 그 죄성(罪性)의 지배를 완전히 받다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순간 성령의 힘, 성령의 역사가 죄성(罪性)의 지배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님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내 안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복음(福音)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내가 영접했는데 알고 보니 성령께서 이해시켜 주시고 마음이 열리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 하게 되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사울이 블레셋 군대와 싸워 패배하자 칼로 자살을 했는데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대상 10:13,14) 인생을 살아 나가면서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하나님의 큰손이 위에서 움직이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느 상황에서도 느긋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45:5,50,50:20)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2. 영(靈)의 일을 생각나게 하십니다(5절)
본문 5절에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영의 일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에 대해서 비난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참된 영을 가진 사람은 성령이 역사 하시는 것을 제대로 알아봅니다. 내 안에 영과 바깥에서 계시는 영이 같은 영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거듭난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 예전에 읽었던 책과 전혀 달라지는데 전에는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 않던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 받아들여지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딤후 3:16) 이처럼 성경을 기록한 성령과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이 같기 때문에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깊은 깨달음과 감동을 받습니다.
성령께 의존해서 성령과 늘 가까운 관계를 갖고 있으면 저것은 성령의 역사구나, 저것은 인간의 인위적인 행위구나 하는 것이 구별이 됩니다. 즉 분별력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순간순간 성령에 의존해서 살아갈 때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령의 일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3.생명과 평안은 주십니다(6절)
본문 6절에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평안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평안을 주십니다. 이는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평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안하지 않는 것은 내 생각이나 문제, 조건(條件), 지혜(知慧) 같은 것을 성령께 의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회의 일꾼을 세울 때에 마음의 평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론 때문에 세우면 나중에 교회에 큰 시험이 옵니다. 이것은 성령을 따라 하지 않고 인간관계, 체면 등 육신을 따라 일했을 때에 생기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인도해 주시고 준비시켜 주시고 움직여 주시는 것이 바로 성령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자연스럽게 진행되며, 우리의 마음을 평안케 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은 염려하고 근심하게 합니다.
4.하나님을 기쁘게 하십니다(8절)
본문 8절에서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는 심령은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에 신경을 쓰고, 이것에 집중시키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성령에 사로잡힌 삶의 모습이 아닙니다. 인본주의적인 사람입니다.
반면에 인간적으로 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하려다 보면 어떤 때는 실수할 것 같고 안 될 것 같고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성령의 방법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은 일이 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경우, 이삭을 죽이면 절대 안 되는데 하나님이 죽이라고 하시니까 순종하여 내리치려는 순간, 비로소 하나님이 '되었다'하시며 큰 축복을 내리셨습니다(창22:12) 대단한 역설(逆說)입니다. 예수님께서 눅 9:24의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말씀처럼 너무나 역설적이기 때문에 육신을 삶을 사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먼저 계산해 보면 성령의 삶의 방법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안 될 것 같은 일이 되니, 그 얼마나 신비하고 재미있는 삶입니까? 하나님은 이런 삶을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순간 성령을 따라가려는 부단한 민감성을 계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꾸준히 훈련을 쌓아 습관이 되면 다음부터는 자동적으로 성령을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5.영에 속한 자,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9절)
본문 9절에서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영에 속한 자,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내주 하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가 교회에 아무리 다녀 봤자 참된 영성은 절대 계발되지 않습니다.
신앙이 도저히 성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영적으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요, 정상적으로 성장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자라도 그 안에 해결하지 못한 큰 죄(罪) 덩어리(문제)가 있으면 성령께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에 영적 성장이 어렵습니다. 문제 덩어리는 곧바로 빼서 던져 버려야 합니다.
6.우리의 영과 몸을 살려주십니다(10-11절)
본문 10-11절에서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위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은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과 몸을 살려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비록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으나 우리의 영은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죄악(罪惡)으로 성령이 죽었던 우리의 몸도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요 5:21,롬 6:4,골 3:1,벧전 3:18)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듯이 예수님을 살리신 성령께서 우리도 마찬가지로 죽은 가운데서 살리십니다. 부활(復活)의 몸을 입게 하시는 것입니다(고전 15:20-23)
7.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하십니다(14절)
본문 14절에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하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 아들이라 칭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보증(保證)해주십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 3:26)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정작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주위에는 그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씀의 가르침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기보다 자신의 생각이나 지혜와 고집을 먼저 따르면서도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듯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이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8.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신 더 가까이 하게 합니다.(15절)
본문 15절에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신 더 가까이 하게 하십니다. .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신 더 가까이 성령께서 내 안에 있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기도 할 때에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주의 주관자, 모든 존재의 바탕, 형이상학적 실체 정도로 생가하지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 6:9)였습니다.
성도는 우리의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용돈을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는 아버지로부터 받는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는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 지 않겠느냐"(마 7:11)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6)
9.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해 주십니다.(16절)
본문 16절에서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해 주십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면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우리가 의심을 할 때 성령은 마음의 평강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유혹을 당할 때도 우리의 양심을 일깨우고 성령은 우리를 지키십니다. 이것을 내적(內的) 증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외적(外的) 증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증거를 말합니다.
10.우리의 몸의 구속을 기다리게 하십니다.(23절)
본문 23절에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의 몸을 구속을 기다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실 때 우리의 썩을 육신이 영광의 몸으로 변화될 것을 믿고 기다리게 해 주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즉 성령에 속한 사람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고 기다립니다. 인생이 힘들고 고달파서 견디기 힘들고 믿음의 시험을 당할 때도 우리에게 인내를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이 세상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몸이 주안에서 구속함을 받고 주의 영광을 볼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며 우리를 견디게 하는 것도 성령이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몸은 죽어도 구속의 그 날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17)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4)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11.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26절)
본문 26절에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기도의 문이 막혀 끙끙 앓는 소리만 나올 뿐 기도를 전혀 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성령께서 그 탄식소리를 번역해서 하나님께 전달해 줍니다. 기도해야 할 것이 있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지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할 때도 우리의 상황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직접 하나님께 전해줍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친히 간구 해 주십니다.
12.우리 생각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해 주십니다(27절)
본문 27절에서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해 주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의 생각을 아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또 성도들의 생각을 아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성도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간구 하십니다. 우리가 잘못된 것을 기도할 때에도 그것을 바로잡아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간구 하시는 것은 모두가 다 응답됩니다. 그것은 성령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로마서 8장을 통해서 모든 영적인 일은 전적으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임을 다시금 확인하였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예전에는 희미하게 보이던 예수님을 직접 보면서 계속적으로 그 영광의 모습을 대하다 보니 나의 속사람도 그렇게 변해갑니다. 처음 믿었을 때 신앙인의 모습의 영광에서 다음 단계인 영광으로, 또 다음 단계의 영광으로 예수님을 닮아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영광의 단계가 깊어져 어떤 사람은 얼굴만 보아도 은혜롭습니다.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예수님과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사람을 모으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으나 모인 사람들이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는 것은 해산하는 것만큼 힘듭니다. 주일학교 선생님 한 분에게 너무 많은 아이가 배정되어도 곤란하고 영의 양식을 먹일 교인들이 너무 많은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한 명씩 보살펴 주고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고 책망해 주시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에까지 자라기 위해서는 해산하는 수고가 필요한데 너무 낳은 교인들이 있는 교회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해산하는 수고로 보살펴줄 사람들이 부족합니다. 이것이 현대교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하여 성령은 지금도 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이렇게 내주 하시며 역사 하시는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롬 8:29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한 것이 그 목적입니다.
예수님만이 완전하신 분이시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닮는 길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으며, 내가 아닌 그리스도를 존귀케 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 1:20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지 아니하면 성령께서 근심하고(엡 4:30) 탄식(롬 8:26)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성령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강하게 역사하실 수 있도록 언제나 성결한 심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내 안에 내주하셔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하실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를 자신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하나님께 드려 의의 병기로 사용 받을 수 있기를(롬 6:13)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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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보혜사(保惠師)로서(요14:16) 신자를 가르치고 돕고 위로하고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불신자를 죄와 의(義)와 심판(審判)에 대하여 책망하심으로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도우십니다(요 14:17,16:8-11) 성령은 우리를 돕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이처럼 성령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눅11:13,요14:16,17) 우리는 철저히 회개하여 깨끗해진 마음으로(요일1:9,행2:38,시42:1), 말씀 가운데 기도하여 성령을 받되(행1:14,2:1)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엡 5:18)
그래서 성령이 임하여 권능(權能)을 받으면 우리는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마 10:20,막 1617,18,행 1:8) 주님의 영광과 복음을 위해 사는 자에게 성령께서 능히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사 그는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성령과 원만한 교제를 이루고 생수의 충만한 공급을 받아 매사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고(요3:3-5) 이웃에게 은혜를 끼치며 본인과 그 가정에 기쁨과 축복이 항상 새로워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에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 1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성령과 바른 교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내 안에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1. 죄(罪)와 사망(死亡)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2절)
본문 2절에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안에 있기 전까지는 죄(罪)와 사망이 나를 완전히 노예로 붙잡고 내 삶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의 "죄와 사망의 법"이란 롬 714에서, 사도 바울이 선을 행하기 원하나 행치 못하고, 악(惡)을 행하지 않으려 하는데 악을 행하는 자신을 모습을 보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랴"라 하며 절규하다가 그것이 바로 자신 속에 죄성(罪性)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인간은 그 죄성(罪性)의 지배를 완전히 받다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순간 성령의 힘, 성령의 역사가 죄성(罪性)의 지배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님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내 안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복음(福音)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내가 영접했는데 알고 보니 성령께서 이해시켜 주시고 마음이 열리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 하게 되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사울이 블레셋 군대와 싸워 패배하자 칼로 자살을 했는데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대상 10:13,14) 인생을 살아 나가면서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하나님의 큰손이 위에서 움직이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느 상황에서도 느긋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45:5,50,50:20)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2. 영(靈)의 일을 생각나게 하십니다(5절)
본문 5절에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영의 일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에 대해서 비난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참된 영을 가진 사람은 성령이 역사 하시는 것을 제대로 알아봅니다. 내 안에 영과 바깥에서 계시는 영이 같은 영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거듭난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 예전에 읽었던 책과 전혀 달라지는데 전에는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 않던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 받아들여지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딤후 3:16) 이처럼 성경을 기록한 성령과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이 같기 때문에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깊은 깨달음과 감동을 받습니다.
성령께 의존해서 성령과 늘 가까운 관계를 갖고 있으면 저것은 성령의 역사구나, 저것은 인간의 인위적인 행위구나 하는 것이 구별이 됩니다. 즉 분별력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순간순간 성령에 의존해서 살아갈 때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령의 일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3.생명과 평안은 주십니다(6절)
본문 6절에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평안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평안을 주십니다. 이는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평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안하지 않는 것은 내 생각이나 문제, 조건(條件), 지혜(知慧) 같은 것을 성령께 의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회의 일꾼을 세울 때에 마음의 평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론 때문에 세우면 나중에 교회에 큰 시험이 옵니다. 이것은 성령을 따라 하지 않고 인간관계, 체면 등 육신을 따라 일했을 때에 생기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인도해 주시고 준비시켜 주시고 움직여 주시는 것이 바로 성령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자연스럽게 진행되며, 우리의 마음을 평안케 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은 염려하고 근심하게 합니다.
4.하나님을 기쁘게 하십니다(8절)
본문 8절에서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는 심령은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에 신경을 쓰고, 이것에 집중시키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성령에 사로잡힌 삶의 모습이 아닙니다. 인본주의적인 사람입니다.
반면에 인간적으로 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하려다 보면 어떤 때는 실수할 것 같고 안 될 것 같고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성령의 방법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은 일이 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경우, 이삭을 죽이면 절대 안 되는데 하나님이 죽이라고 하시니까 순종하여 내리치려는 순간, 비로소 하나님이 '되었다'하시며 큰 축복을 내리셨습니다(창22:12) 대단한 역설(逆說)입니다. 예수님께서 눅 9:24의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말씀처럼 너무나 역설적이기 때문에 육신을 삶을 사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먼저 계산해 보면 성령의 삶의 방법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안 될 것 같은 일이 되니, 그 얼마나 신비하고 재미있는 삶입니까? 하나님은 이런 삶을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순간 성령을 따라가려는 부단한 민감성을 계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꾸준히 훈련을 쌓아 습관이 되면 다음부터는 자동적으로 성령을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5.영에 속한 자,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9절)
본문 9절에서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영에 속한 자,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내주 하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가 교회에 아무리 다녀 봤자 참된 영성은 절대 계발되지 않습니다.
신앙이 도저히 성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영적으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요, 정상적으로 성장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자라도 그 안에 해결하지 못한 큰 죄(罪) 덩어리(문제)가 있으면 성령께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에 영적 성장이 어렵습니다. 문제 덩어리는 곧바로 빼서 던져 버려야 합니다.
6.우리의 영과 몸을 살려주십니다(10-11절)
본문 10-11절에서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위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은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과 몸을 살려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비록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으나 우리의 영은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죄악(罪惡)으로 성령이 죽었던 우리의 몸도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요 5:21,롬 6:4,골 3:1,벧전 3:18)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듯이 예수님을 살리신 성령께서 우리도 마찬가지로 죽은 가운데서 살리십니다. 부활(復活)의 몸을 입게 하시는 것입니다(고전 15:20-23)
7.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하십니다(14절)
본문 14절에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하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 아들이라 칭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보증(保證)해주십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 3:26)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정작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주위에는 그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씀의 가르침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기보다 자신의 생각이나 지혜와 고집을 먼저 따르면서도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듯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이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8.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신 더 가까이 하게 합니다.(15절)
본문 15절에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신 더 가까이 하게 하십니다. .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신 더 가까이 성령께서 내 안에 있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기도 할 때에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주의 주관자, 모든 존재의 바탕, 형이상학적 실체 정도로 생가하지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 6:9)였습니다.
성도는 우리의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용돈을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는 아버지로부터 받는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는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 지 않겠느냐"(마 7:11)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6)
9.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해 주십니다.(16절)
본문 16절에서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해 주십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면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우리가 의심을 할 때 성령은 마음의 평강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유혹을 당할 때도 우리의 양심을 일깨우고 성령은 우리를 지키십니다. 이것을 내적(內的) 증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외적(外的) 증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증거를 말합니다.
10.우리의 몸의 구속을 기다리게 하십니다.(23절)
본문 23절에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의 몸을 구속을 기다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실 때 우리의 썩을 육신이 영광의 몸으로 변화될 것을 믿고 기다리게 해 주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즉 성령에 속한 사람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고 기다립니다. 인생이 힘들고 고달파서 견디기 힘들고 믿음의 시험을 당할 때도 우리에게 인내를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이 세상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몸이 주안에서 구속함을 받고 주의 영광을 볼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며 우리를 견디게 하는 것도 성령이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몸은 죽어도 구속의 그 날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17)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4)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11.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26절)
본문 26절에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기도의 문이 막혀 끙끙 앓는 소리만 나올 뿐 기도를 전혀 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성령께서 그 탄식소리를 번역해서 하나님께 전달해 줍니다. 기도해야 할 것이 있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지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할 때도 우리의 상황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직접 하나님께 전해줍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친히 간구 해 주십니다.
12.우리 생각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해 주십니다(27절)
본문 27절에서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해 주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의 생각을 아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또 성도들의 생각을 아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성도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간구 하십니다. 우리가 잘못된 것을 기도할 때에도 그것을 바로잡아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간구 하시는 것은 모두가 다 응답됩니다. 그것은 성령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로마서 8장을 통해서 모든 영적인 일은 전적으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임을 다시금 확인하였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예전에는 희미하게 보이던 예수님을 직접 보면서 계속적으로 그 영광의 모습을 대하다 보니 나의 속사람도 그렇게 변해갑니다. 처음 믿었을 때 신앙인의 모습의 영광에서 다음 단계인 영광으로, 또 다음 단계의 영광으로 예수님을 닮아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영광의 단계가 깊어져 어떤 사람은 얼굴만 보아도 은혜롭습니다.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예수님과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사람을 모으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으나 모인 사람들이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는 것은 해산하는 것만큼 힘듭니다. 주일학교 선생님 한 분에게 너무 많은 아이가 배정되어도 곤란하고 영의 양식을 먹일 교인들이 너무 많은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한 명씩 보살펴 주고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고 책망해 주시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에까지 자라기 위해서는 해산하는 수고가 필요한데 너무 낳은 교인들이 있는 교회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해산하는 수고로 보살펴줄 사람들이 부족합니다. 이것이 현대교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하여 성령은 지금도 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이렇게 내주 하시며 역사 하시는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롬 8:29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한 것이 그 목적입니다.
예수님만이 완전하신 분이시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닮는 길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으며, 내가 아닌 그리스도를 존귀케 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 1:20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지 아니하면 성령께서 근심하고(엡 4:30) 탄식(롬 8:26)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성령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강하게 역사하실 수 있도록 언제나 성결한 심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내 안에 내주하셔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하실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를 자신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하나님께 드려 의의 병기로 사용 받을 수 있기를(롬 6:13)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