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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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반드시 너를 축복하리라”(히 6:13-20)
성경에는 하나님께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께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브라함이 복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기에 받아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알렉산더나 카이사르와 같은 유명한 장군(將軍)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유명한 철학자(哲學者)도 아닙니다. 뉴턴이나 아이슈타인처럼 대과학자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물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사람으로 높임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 한 가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복을 쏟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창 12:2에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셔서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소개하는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축복을 상기시키면서 우리로 하여금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의 약속을 붙들고 인내하며 살 것을 권면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을 통하여 주목(注目)할 것은 본문 14절의 말씀입니다.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틀림없이 이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러한 약속의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뿐만 아니라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도 적용되는 귀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하신 축복의 약속입니다.
믿음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복을 그대로 주시겠다는 약속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저와 여러분은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 3:29에서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언제 하셨습니까?
이 말씀의 배경은 창 22장 15절에서 18절에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습니다. 그 일 직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부분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天下)만민(萬民)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니라”
▶▶ 그렇다면 이 축복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만 적용되는 과거완료형의 축복입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은 모든 믿음의 후예들에게 하시는 현재진행형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 20:6에서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약속하신 것처럼 이 축복의 말씀은 바로 저와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서도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축복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물론 지금 현재는 우리 마음속에서 나를 얽어매고 있는 여러 가지 상처들을 가지고 사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하신 축복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을 붙들고 살 때에 내 속에 있는 상처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능력과 가능성을 찾아서 유감없이 발휘하게 하고 기쁘게 살게 하는 내적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많은 상처가 있습니다. 열등감, 과거의 부끄러운 일들, 좋지 못한 환경, 자신의 부족함, 바람직하지 못한 성격, 입시나 사업의 실패, 이런 것들이 나를 얽매고 자꾸 어두운 구석으로 몰고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간에 나에게도 “내가 반드시 너를 축복하리라”고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게 되면 나를 얽어매고 있는 이 모든 상처들을 다 낫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의지하며 나가는 자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패의 상처에 바르면 그 상처가 나아 성공을 바라보고 나갈 수 있고, 열등감이라는 상처에 바르면 열등감이 변해서 자신감이 됩니다. 과거의 부끄러운 일들에 바르면 그 일들이 교훈이 되어서 내게 양약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에게 내적인 상처가 있으면 이 축복의 약속이라는 약을 부지런히 바르기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내적 치유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독수리처럼 훨훨 날 수 있기 바랍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자 예비하신 날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거룩한 주일에 복을 받아야 합니다.
▶▶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왜 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까?
왜 복을 받지 못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 11:1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히 11:6에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축복의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축복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고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15절)
본문 14절 상반 절에서“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복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본문 14절 상반 절에서 “내가..”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복을 받고 싶다고 해서 복을 받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복을 받기를 몸부림친다고 해도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복이시고, 복 주시는 분은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만주의 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래서 딤전 6:15-16에서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영혼(靈魂)도, 육신(肉身)도, 환경도 평안하고 안전(安全)한 복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 요삼 2절에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우리에게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 상반 절에서“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라고 하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사람은 제아무리 큰 소리 치고 큰 약속을 해도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조금도 실수가 없고,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의지를 결코 의심하지 말고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온전히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확실(確實)한 복입니다.
본문 13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실 정도로 분명하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는 창세기 22:16-17에서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 즉 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으로서 당시에는 절대자의 이름을 걸고서 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맹세의 권위가 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개 인간들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곤 합니다(삼상 19:6 왕상 1:30 느 13:25 사 19:18). 그런데 하나님께 있어서는 자신보다 더 높은 이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가리켜 맹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최고의 권위를 갖고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걸고서 우리에게 맹세하고 계시니 이 얼마나 분명한 약속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걸고 복(福)을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복이라면 틀림없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고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확실한 분이십니다. 틀림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틀림없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고 온전히 믿고 살아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복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복을 기대하면서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예화) 미국의 대통령인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취임식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돈을 하나님으로 알고 있지만, 나는 하나님으로 재력을 삼겠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본문 14절 상반 절에서‘내가’라는 표현을 쓰시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를 반드시, 꼭, 틀림없이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약속을 하지만 지키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공약(公約)을 세우지만, 공약(空約)이 되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와 자식지간에도, 부부 사이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계약 위반 때문에 복잡한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반드시 지켜집니다.(17-18절) 그래서 17절 중반 절에서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라고 말씀하고 있고, 18절 중반 절에서 “변치 못할 사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고보 사도는 약 1:17 하반 절에서 "...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 때 하나님은 여인의 후손에서 날 구세주(救世主)를 약속하셨습니다.(창 3:15) 그런데 그 약속대로 동정녀(童貞女)(= 처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출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지 못하는 한나가 통곡해서 기도하고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에 한나는 그대로 믿고 다시금 근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한나에게 아들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이에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세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더 주셨습니다.(삼상 2:21) 이와 같이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신실하시고, 변치 않으시는 분입니다.(히 11:6)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이뤘습니다. 하나님께 큰 복을 받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생명이 다하기까지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철저히 붙들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2.계속해서 더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14절 하)
본문 14절 하반 절에서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이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더 잘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더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福)은 풍성(豊盛)한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씩이나 반복하시면서 연속적으로 복(福)을 주고 번성케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한 번만 복 주셔도 감사하고 한 번만 번성케 해주셔도 놀라운 일인데 두 번씩 거듭 주신다는 것은 넉넉하게 풍성하게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세계는 부족한 세계이지만 하나님의 세계는 풍요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신 7:13에서 “토지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엡 2:4에서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지금 세상은 모자라는 것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자원도 사랑도 모두 고갈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은 넉넉하고 풍성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풍성한 복은 순종함으로 주어지는 복임을 아셔야 합니다.
창 22:12에서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을 순종함으로 인정함을 받았습니다.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큰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 그런데 히브리어에 보면 “복”이란 말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아솨르(Ashre)라고 하는데 “똑바로 가다”는 뜻이 있습니다.(시1:1) 두 번째로는, 바라크(Barak)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다”라는 뜻이 있습니다.(창12:3) 세 번째로는, 야타르(Yatab)는 “선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신 5:16)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 복을 받게 됩니다. 산업의 형통과 자손이 많아지고, 재물이 증가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구원(救援)의 복(福)입니다.
창세기 22장 18절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씨”란 “다윗의 혈통에서 출생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구원의 복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복은 첫째 가는 복이요, 생명에 이르는 영생의 복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이미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자손이 잘되는 복입니다.(창 12:2,15:5,17:6,22:17)
창세기 12장 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고 말씀하고 있고, 창세기 12장 5절에서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고 있고, 창세기 17장 6절에는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고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창세기 22장 17절에는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교회가 번성가 된다는 약속인 동시에 모든 성도의 가정의 번성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신약의 2천년 교회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출발한 복음이 로마와 독일로 영국과 미국으로 그리고 우리 한국으로 전파되면서 세계를 정복하고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좁게는 유대인이고, 넓게는 우리 신앙인을 말합니다. 유대인은 작은 인구를 가졌으나 세계 경제, 정치를 지배하고 있고, 세계 노벨상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일찍 들어간 나라는 개인을 구원하고 국가를 구원하고, 민족을 구원합니다. 잘사는 나라가 되고 선진국이 됩니다. 반면에 복음을 받지 못한 나라는 후진국이고, 빈곤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불교국가인 캄보디아와 태국, 그리고 유교 국가인 중국은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물질의 복입니다.(신28:2-6,11-13)
창세기 12장 2절에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하고 있고, 창세기 17장 5절에서는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의 뜻은 열국의 아비입니다. 실로 아브라함의 자손은 세상 열국들 중에 거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받은 복인 동시에 그의 자손들이 받은 명예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과 같이 살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됐습니다. 자기 가족만 먹여 살린 것이 아니고, 세계를 먹여 살리는 복을 받았습니다.(창12:2) 하나님은 하늘의 복을 주시고, 자손이 번창 하고 명예도 올라가게 하십니다.(신 28:9-10)
항생제 스트렙토마이신을 발명한 셀멘 와크스맨은 의학에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 딸이 뇌막염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도로 발명하게 됐습니다. 스웨덴의 아돌프 황제로부터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생명을 구합니다.
(예화) 발레를 할 때 발끝을 세워서 합니다. 발끝으로 해서 유명한 이사도라 던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어머니가 권면하는 말을 늘 넘겨버렸습니다. 그날도 스카프를 길게 메고 빨간 자전거를 탔습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매사에 조심해라 스카프를 길게 매지 마라”그런데 그녀의 스카프가 자전거에 걸려서 넘어지는 순간 목뼈가 부러져서 죽었습니다. 그 때 그녀의 나이가 49살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권면을 들어야 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완전한 복을 받으려면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준비하셨지만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신명기 28장 1-10에서 말씀하시는 복은 바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데,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우리 몸에 속한 소생이 복을 받고, 우리에게 속한 토지와 짐승들이 복을 받습니다.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원수들에게서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하는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한 모든 일에 복을 주시기 때문에 세계 만민이 우리를 두려워합니다. 이러한 복이 바로 순종(順從)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이와 같은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풍성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3.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인내하고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15절)
본문 15절에서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는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인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6-17절에서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 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여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은 변치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는 복입니다. 변한다면 그것은 순금(純金)이 아닙니다. 녹이 쓴다면 그것은 다이아몬드가 아닙니다. 하루나 이틀 행복한 것은 참된 행복이 아닙니다. 마약 중독자들은 체내에 마약 성분이 있는 동안은 환상적 기분에 빠져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약 기운이 떨어지면 경련이 일어나고 발작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복(福)일뿐만 아니라 변치 않는 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변치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생에는 위기도 있고 평안할 때도 있습니다.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또한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때마다 필요한 것을 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때마다 변함없이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살후 3:16에서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 일마다 때마다 복과 평강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인내하고 우리에게 반드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실 때 받는 사람이 감당할 만큼만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0:13에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축복의 시기도 그 사람에 맞춰서 주십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도 축복을 주실 때 75세에 약속을 하셨지만 100세에 주셨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그만 참지 못하고 11년 후에 몸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도 과정 속에서 온전히 인내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인하여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하여 후사를 보고자 했고, 이로 인하여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스마엘로 인해 후에 아브라함의 가정에 불화가 생깁니다. 그리고 그 이스마엘이 지금의 회교를 이루어서 지금까지 기독교와 회교는 분쟁 중에 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탄 지역의 국가들과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다시금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인내함으로 드디어 100세로 이삭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후 14년이 흐른 후 응답이 임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인내하고 나가면 반드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축복은 우리의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때때로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삭을 주신 하나님께서 다시금 후사를 주실 줄 믿고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칩니다. 이에 하나님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다시금 축복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절망 중에서도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모습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성취가 되기를 기다리는 모든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해 볼 때에 본문 15절에서 '약속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과 손자인 에서와 야곱의 출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약속의 완전한 성취로 볼 수는 없습니다. 약속의 완전한 성취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요 8:56에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메시아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인내함으로 붙들고 사는 성도들에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반드시 성취하여 주실 줄 믿고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육적인 복이든 영적인 복이든 간에 그것이 성취되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에게는 물론이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희망이요, 강력한 기쁨의 근거점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약 5:10-11절에서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인내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예화) 1945년 8월 7일 각종의 삐라가 뿌려졌습니다. “빨리 피신하시오”그러나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시간이 되니 고추장 단지만한 것이 히로시마 나가사끼 상공(上空)에 떨어지면서 터지는 순간 직경 4Km까지 한순간에 불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빛을 보는 순간 여자들은 아기 낳는 기능을 상실했고 기형아로 태어났습니다. 버섯구름이 형성되면서 그 구름에 닿은 머리털이 다 빠지고 지금까지도 고통 중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끝까지 믿고 사는 사람은 승리하고, 인내하지 않는 사람은 멸망하게 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고 복을 주시려고 작정하신 분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진다고 낙망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내(忍耐)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소망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눅 21:19절에서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갈 6:9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다다랐어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때인 것을 믿고 끝까지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히 12:1절 말씀에서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기대하면서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그러나 인내한다는 것은 그렇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히 11:35-37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때때로 예수님 때문에 희롱을 당하고, 채찍을 맞을 수 있습니다. 결박과 옥에 갇힐 수도 있습니다.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임을 당하는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때때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고,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9절-20절에서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안에 그리로 앞서 가셨기 때문입니다.
▶▶ 닻을 내리면 배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표류해서는 안 됩니다. 소망은 우리의 영혼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닻입니다. 바울이 로마로 호송되는데 유라굴로 큰 광풍을 만났습니다.(행 28:18) 배에 탄 사람들은 자포자기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시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내가 너와 함께 행선 하는 자를 다 네게 주겠다”라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행 27:23-24) 그러기에 바울은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이여! 나는 내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노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격려합니다.(행 27:25) 그리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닻을 내려 배가 흔들리지 않게 하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습니다.(행 27:29) 그 결과 이들은 멜리데 섬에 올라 구원을 받았습니다.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내가 평화교회를 반드시 복 주고 복 주며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① 예수님을 믿으면 복이 있고, ② 번성함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③ 예수를 믿으면 불황 속에서도 호황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④ 예수를 믿으면 극한 흉년 속에서도 풍요로움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⑤ 예수를 믿으면 절망 속에서도 소망의 빛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형편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전 15:58에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가 반드시 너를 축복해 주신다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①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② 계속해서 더 번성케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③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소망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복에 복을, 번성에 번성이 있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아니 이미 그 축복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에는 불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에는 부도가 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으로 승부를 걸어 보세요. 우리들도 자녀를 키웁니다만 누가 자녀에게 떡 대신에 돌을 주며, 생선 대신에 전갈을 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이 선언하신 축복을 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혼의 닻을 두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향하여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있는 주일, 공중예배, 새벽기도회, 구역예배에 참석하십시오. 주일 성수는 신앙인의 정조입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온전히 드려야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푼돈은 자기가 벌어도 큰 돈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십일조 생활, 기도, 찬양, 열심인 봉사, 그리고 전도를 하십시오. 그러면서 인내로 끝까지 오래 참고 축복 받기까지 견뎌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축복을 받게 됩니다.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굳게 붙잡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현재보다 갈수록 더 귀하고 좋게 만들어 주십니다. 가정, 자손만대까지 주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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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하나님께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께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브라함이 복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기에 받아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알렉산더나 카이사르와 같은 유명한 장군(將軍)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유명한 철학자(哲學者)도 아닙니다. 뉴턴이나 아이슈타인처럼 대과학자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물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사람으로 높임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 한 가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복을 쏟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창 12:2에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셔서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소개하는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축복을 상기시키면서 우리로 하여금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의 약속을 붙들고 인내하며 살 것을 권면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을 통하여 주목(注目)할 것은 본문 14절의 말씀입니다.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틀림없이 이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러한 약속의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뿐만 아니라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도 적용되는 귀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하신 축복의 약속입니다.
믿음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복을 그대로 주시겠다는 약속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저와 여러분은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 3:29에서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언제 하셨습니까?
이 말씀의 배경은 창 22장 15절에서 18절에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습니다. 그 일 직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부분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天下)만민(萬民)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니라”
▶▶ 그렇다면 이 축복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만 적용되는 과거완료형의 축복입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은 모든 믿음의 후예들에게 하시는 현재진행형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 20:6에서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약속하신 것처럼 이 축복의 말씀은 바로 저와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서도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축복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물론 지금 현재는 우리 마음속에서 나를 얽어매고 있는 여러 가지 상처들을 가지고 사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하신 축복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을 붙들고 살 때에 내 속에 있는 상처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능력과 가능성을 찾아서 유감없이 발휘하게 하고 기쁘게 살게 하는 내적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많은 상처가 있습니다. 열등감, 과거의 부끄러운 일들, 좋지 못한 환경, 자신의 부족함, 바람직하지 못한 성격, 입시나 사업의 실패, 이런 것들이 나를 얽매고 자꾸 어두운 구석으로 몰고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간에 나에게도 “내가 반드시 너를 축복하리라”고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게 되면 나를 얽어매고 있는 이 모든 상처들을 다 낫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의지하며 나가는 자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패의 상처에 바르면 그 상처가 나아 성공을 바라보고 나갈 수 있고, 열등감이라는 상처에 바르면 열등감이 변해서 자신감이 됩니다. 과거의 부끄러운 일들에 바르면 그 일들이 교훈이 되어서 내게 양약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에게 내적인 상처가 있으면 이 축복의 약속이라는 약을 부지런히 바르기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내적 치유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독수리처럼 훨훨 날 수 있기 바랍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자 예비하신 날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거룩한 주일에 복을 받아야 합니다.
▶▶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왜 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까?
왜 복을 받지 못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 11:1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히 11:6에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축복의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축복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고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15절)
본문 14절 상반 절에서“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복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본문 14절 상반 절에서 “내가..”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복을 받고 싶다고 해서 복을 받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복을 받기를 몸부림친다고 해도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복이시고, 복 주시는 분은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만주의 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래서 딤전 6:15-16에서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영혼(靈魂)도, 육신(肉身)도, 환경도 평안하고 안전(安全)한 복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 요삼 2절에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우리에게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 상반 절에서“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라고 하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사람은 제아무리 큰 소리 치고 큰 약속을 해도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조금도 실수가 없고,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의지를 결코 의심하지 말고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온전히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확실(確實)한 복입니다.
본문 13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실 정도로 분명하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는 창세기 22:16-17에서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 즉 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으로서 당시에는 절대자의 이름을 걸고서 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맹세의 권위가 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개 인간들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곤 합니다(삼상 19:6 왕상 1:30 느 13:25 사 19:18). 그런데 하나님께 있어서는 자신보다 더 높은 이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가리켜 맹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최고의 권위를 갖고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걸고서 우리에게 맹세하고 계시니 이 얼마나 분명한 약속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걸고 복(福)을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복이라면 틀림없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고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확실한 분이십니다. 틀림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틀림없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고 온전히 믿고 살아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복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복을 기대하면서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예화) 미국의 대통령인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취임식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돈을 하나님으로 알고 있지만, 나는 하나님으로 재력을 삼겠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본문 14절 상반 절에서‘내가’라는 표현을 쓰시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를 반드시, 꼭, 틀림없이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약속을 하지만 지키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공약(公約)을 세우지만, 공약(空約)이 되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와 자식지간에도, 부부 사이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계약 위반 때문에 복잡한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반드시 지켜집니다.(17-18절) 그래서 17절 중반 절에서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라고 말씀하고 있고, 18절 중반 절에서 “변치 못할 사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고보 사도는 약 1:17 하반 절에서 "...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 때 하나님은 여인의 후손에서 날 구세주(救世主)를 약속하셨습니다.(창 3:15) 그런데 그 약속대로 동정녀(童貞女)(= 처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출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지 못하는 한나가 통곡해서 기도하고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에 한나는 그대로 믿고 다시금 근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한나에게 아들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이에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세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더 주셨습니다.(삼상 2:21) 이와 같이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신실하시고, 변치 않으시는 분입니다.(히 11:6)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이뤘습니다. 하나님께 큰 복을 받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생명이 다하기까지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철저히 붙들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2.계속해서 더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14절 하)
본문 14절 하반 절에서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이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더 잘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더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福)은 풍성(豊盛)한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씩이나 반복하시면서 연속적으로 복(福)을 주고 번성케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한 번만 복 주셔도 감사하고 한 번만 번성케 해주셔도 놀라운 일인데 두 번씩 거듭 주신다는 것은 넉넉하게 풍성하게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세계는 부족한 세계이지만 하나님의 세계는 풍요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신 7:13에서 “토지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엡 2:4에서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지금 세상은 모자라는 것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자원도 사랑도 모두 고갈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은 넉넉하고 풍성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풍성한 복은 순종함으로 주어지는 복임을 아셔야 합니다.
창 22:12에서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을 순종함으로 인정함을 받았습니다.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큰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 그런데 히브리어에 보면 “복”이란 말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아솨르(Ashre)라고 하는데 “똑바로 가다”는 뜻이 있습니다.(시1:1) 두 번째로는, 바라크(Barak)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다”라는 뜻이 있습니다.(창12:3) 세 번째로는, 야타르(Yatab)는 “선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신 5:16)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 복을 받게 됩니다. 산업의 형통과 자손이 많아지고, 재물이 증가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구원(救援)의 복(福)입니다.
창세기 22장 18절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씨”란 “다윗의 혈통에서 출생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구원의 복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복은 첫째 가는 복이요, 생명에 이르는 영생의 복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이미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자손이 잘되는 복입니다.(창 12:2,15:5,17:6,22:17)
창세기 12장 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고 말씀하고 있고, 창세기 12장 5절에서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고 있고, 창세기 17장 6절에는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고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창세기 22장 17절에는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교회가 번성가 된다는 약속인 동시에 모든 성도의 가정의 번성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신약의 2천년 교회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출발한 복음이 로마와 독일로 영국과 미국으로 그리고 우리 한국으로 전파되면서 세계를 정복하고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좁게는 유대인이고, 넓게는 우리 신앙인을 말합니다. 유대인은 작은 인구를 가졌으나 세계 경제, 정치를 지배하고 있고, 세계 노벨상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일찍 들어간 나라는 개인을 구원하고 국가를 구원하고, 민족을 구원합니다. 잘사는 나라가 되고 선진국이 됩니다. 반면에 복음을 받지 못한 나라는 후진국이고, 빈곤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불교국가인 캄보디아와 태국, 그리고 유교 국가인 중국은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물질의 복입니다.(신28:2-6,11-13)
창세기 12장 2절에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하고 있고, 창세기 17장 5절에서는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의 뜻은 열국의 아비입니다. 실로 아브라함의 자손은 세상 열국들 중에 거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받은 복인 동시에 그의 자손들이 받은 명예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과 같이 살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됐습니다. 자기 가족만 먹여 살린 것이 아니고, 세계를 먹여 살리는 복을 받았습니다.(창12:2) 하나님은 하늘의 복을 주시고, 자손이 번창 하고 명예도 올라가게 하십니다.(신 28:9-10)
항생제 스트렙토마이신을 발명한 셀멘 와크스맨은 의학에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 딸이 뇌막염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도로 발명하게 됐습니다. 스웨덴의 아돌프 황제로부터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생명을 구합니다.
(예화) 발레를 할 때 발끝을 세워서 합니다. 발끝으로 해서 유명한 이사도라 던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어머니가 권면하는 말을 늘 넘겨버렸습니다. 그날도 스카프를 길게 메고 빨간 자전거를 탔습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매사에 조심해라 스카프를 길게 매지 마라”그런데 그녀의 스카프가 자전거에 걸려서 넘어지는 순간 목뼈가 부러져서 죽었습니다. 그 때 그녀의 나이가 49살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권면을 들어야 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완전한 복을 받으려면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준비하셨지만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신명기 28장 1-10에서 말씀하시는 복은 바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데,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우리 몸에 속한 소생이 복을 받고, 우리에게 속한 토지와 짐승들이 복을 받습니다.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원수들에게서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하는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한 모든 일에 복을 주시기 때문에 세계 만민이 우리를 두려워합니다. 이러한 복이 바로 순종(順從)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이와 같은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풍성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3.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인내하고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15절)
본문 15절에서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는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인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6-17절에서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 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여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은 변치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는 복입니다. 변한다면 그것은 순금(純金)이 아닙니다. 녹이 쓴다면 그것은 다이아몬드가 아닙니다. 하루나 이틀 행복한 것은 참된 행복이 아닙니다. 마약 중독자들은 체내에 마약 성분이 있는 동안은 환상적 기분에 빠져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약 기운이 떨어지면 경련이 일어나고 발작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복(福)일뿐만 아니라 변치 않는 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변치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생에는 위기도 있고 평안할 때도 있습니다.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또한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때마다 필요한 것을 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때마다 변함없이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살후 3:16에서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 일마다 때마다 복과 평강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인내하고 우리에게 반드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실 때 받는 사람이 감당할 만큼만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0:13에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축복의 시기도 그 사람에 맞춰서 주십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도 축복을 주실 때 75세에 약속을 하셨지만 100세에 주셨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그만 참지 못하고 11년 후에 몸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도 과정 속에서 온전히 인내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인하여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하여 후사를 보고자 했고, 이로 인하여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스마엘로 인해 후에 아브라함의 가정에 불화가 생깁니다. 그리고 그 이스마엘이 지금의 회교를 이루어서 지금까지 기독교와 회교는 분쟁 중에 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탄 지역의 국가들과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다시금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인내함으로 드디어 100세로 이삭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후 14년이 흐른 후 응답이 임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인내하고 나가면 반드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축복은 우리의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때때로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삭을 주신 하나님께서 다시금 후사를 주실 줄 믿고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칩니다. 이에 하나님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다시금 축복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절망 중에서도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모습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성취가 되기를 기다리는 모든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해 볼 때에 본문 15절에서 '약속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과 손자인 에서와 야곱의 출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약속의 완전한 성취로 볼 수는 없습니다. 약속의 완전한 성취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요 8:56에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메시아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인내함으로 붙들고 사는 성도들에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반드시 성취하여 주실 줄 믿고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육적인 복이든 영적인 복이든 간에 그것이 성취되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에게는 물론이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희망이요, 강력한 기쁨의 근거점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약 5:10-11절에서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인내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예화) 1945년 8월 7일 각종의 삐라가 뿌려졌습니다. “빨리 피신하시오”그러나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시간이 되니 고추장 단지만한 것이 히로시마 나가사끼 상공(上空)에 떨어지면서 터지는 순간 직경 4Km까지 한순간에 불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빛을 보는 순간 여자들은 아기 낳는 기능을 상실했고 기형아로 태어났습니다. 버섯구름이 형성되면서 그 구름에 닿은 머리털이 다 빠지고 지금까지도 고통 중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끝까지 믿고 사는 사람은 승리하고, 인내하지 않는 사람은 멸망하게 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고 복을 주시려고 작정하신 분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진다고 낙망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내(忍耐)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소망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눅 21:19절에서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갈 6:9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다다랐어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때인 것을 믿고 끝까지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히 12:1절 말씀에서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기대하면서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그러나 인내한다는 것은 그렇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히 11:35-37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때때로 예수님 때문에 희롱을 당하고, 채찍을 맞을 수 있습니다. 결박과 옥에 갇힐 수도 있습니다.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임을 당하는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때때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고,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9절-20절에서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안에 그리로 앞서 가셨기 때문입니다.
▶▶ 닻을 내리면 배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표류해서는 안 됩니다. 소망은 우리의 영혼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닻입니다. 바울이 로마로 호송되는데 유라굴로 큰 광풍을 만났습니다.(행 28:18) 배에 탄 사람들은 자포자기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시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내가 너와 함께 행선 하는 자를 다 네게 주겠다”라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행 27:23-24) 그러기에 바울은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이여! 나는 내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노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격려합니다.(행 27:25) 그리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닻을 내려 배가 흔들리지 않게 하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습니다.(행 27:29) 그 결과 이들은 멜리데 섬에 올라 구원을 받았습니다.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내가 평화교회를 반드시 복 주고 복 주며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① 예수님을 믿으면 복이 있고, ② 번성함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③ 예수를 믿으면 불황 속에서도 호황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④ 예수를 믿으면 극한 흉년 속에서도 풍요로움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⑤ 예수를 믿으면 절망 속에서도 소망의 빛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형편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전 15:58에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가 반드시 너를 축복해 주신다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①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② 계속해서 더 번성케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③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소망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복에 복을, 번성에 번성이 있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아니 이미 그 축복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에는 불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에는 부도가 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으로 승부를 걸어 보세요. 우리들도 자녀를 키웁니다만 누가 자녀에게 떡 대신에 돌을 주며, 생선 대신에 전갈을 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이 선언하신 축복을 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혼의 닻을 두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향하여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있는 주일, 공중예배, 새벽기도회, 구역예배에 참석하십시오. 주일 성수는 신앙인의 정조입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온전히 드려야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푼돈은 자기가 벌어도 큰 돈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십일조 생활, 기도, 찬양, 열심인 봉사, 그리고 전도를 하십시오. 그러면서 인내로 끝까지 오래 참고 축복 받기까지 견뎌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축복을 받게 됩니다.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굳게 붙잡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현재보다 갈수록 더 귀하고 좋게 만들어 주십니다. 가정, 자손만대까지 주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