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
2011년 01월 24일 (월) 09:26:05 | 기독신문 ekd@kidok.com |
▲ 김근수 목사 |
율법의 근본정신은 수직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수평적으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사랑없이 행하는 것은 신앙의 원리와 규범과 질서에 벗어난 것이다. 야고보서의 강조점은 “경건의 능력”이 없는 “경건의 모양”을 책망함에 있다. 그 사람의 인격과 생활과 사역이 받쳐주는 실천적 삶이 없는 신앙이란 “죽은 것”이다. 율법의 문자적 시행보다 그 정신에 순복함이 더 높은 질서에 속한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란 율법의 정신적 이해 없이 율법을 해석함으로 율법의 정죄의 기능만을 강조함으로써 유대사회와 같이 외식적 율법주의에 빠져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1.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의 문자적 시행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데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유대사회의 일반적 통념에 젖어있는 율법 해석을 교정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의 해석을 하셨다. 이
해석은 형제들에게 혈기부리며 욕설하는 자들은 곧 살인한 자와 같다는 해석임에 틀림이 없다. 사도 요한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요일 3:15)라고 기록하였다.
이같은 율법이해는 율법의 근본정신에서 이해되어져야만 한다. 지금은
살인하지 않았어도 혈기가 욕설로, 욕설이 미움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미움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아직은 행위로
표현되지는 않은 마음 속의 것이 마치 표현되어진 행동과 같이 그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드러나게 된다. 세상의 실정법 원리에는
행동되어진 범죄만을 단죄한다. 그러나 율법의 근본적 정신에는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그것도 정죄된다. 여기에서 세상의 윤리와
천국의 윤리는 차이점이 있다.
2. 간음하지 말라.
문자적으로 간음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음욕을 품고 행함은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판단해야 한다. 음욕을 품고 사는 것은 고의적인 것이다. 그것이 마침내 간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탐심이 도적질로 이어짐과 다름이 없다. 소위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성추행”이 세상 법정에서 법률적 정죄에서 빠져나올지 몰라도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간음죄로 정죄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살인하지 않았어도 간음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 율법은 복수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 곧 전체성을 지닌 단수의 개념으로 적용된다. 그러므로 문자적 시행으로 율법을 다 지켰어도 그 어느것 하나를 범하면 전체를 다 범한 것과 같다(1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스스로 의롭다고 판단하는 것은 율법의 근본적 정신인 사랑은 잊어버리고 문자적 시행에서 나온 오판인 것이다. 진정한 사랑에는 살인에 이르는 미움이 자리잡을 수 없으며 간음에 이르는 음욕이 자리잡을 수 없게 한다. 구변적 사랑은 강론하지만 실천적 사랑이 받쳐주지 못하니 설교자들이 성추행의 그물에 걸린다. 율법은 살인과 간음의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으로 사람을, 그 가정을 심지어 그 교회까지도 불행하게 하는지를 미리 내다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