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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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신앙: 한국전쟁 이후의 기독교 변동
김 흥 수 (목원대학교 신학과)
한국종교 연구자들은 한국인들이 믿고 있는 신앙 내용과 종교적 실천을 분석하면서 그 특성의 하나로 종종 ‘기복신앙’이
란 용어를 사용해 왔다. 기복신앙이란, 종교가 부귀영화와 건강 같은 세속적인 조건들을 충족시키려는 인간의 현세적 욕망과 과다하
게 연결된 상태를 지칭하는 말로, 흔히 샤머니즘이나 고려시대 이후 한국불교의 특성을 언급할 때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지
난 1970년대 이후에는 한국 기독교가 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기복신앙을 전파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 시작했으
며, 국내외 연구자들로부터 한국 기독교는 ‘무속적 기독교’라는 말을 듣기에 이르렀다.
한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현세에서의 복을 중시하는 종교문화적 전통 속에서 살아왔으며, 이 점에 근거해서 한국 기독교
의 지나친 기복현상은 불교의 기복현상에 대한 분석과 마찬가지로 흔히 샤머니즘의 기복성과 현실주의의 영향으로 설명되어 왔다. 이 글
은, 한국전쟁 이후 급격히 확산된 한국교회의 과다한 기복적 성격은 전쟁과 그후의 사회위기의 환경 속에서 독특하게 형성된, 전통
적 기독교의 두드러진 변형이라는 것을 가정한다. 전쟁의 충격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신도들은 국가나 가정 등 그들이 속한 공동체
가 경제생활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 자신의 생존 문제에 매달려야 했다. 전쟁 체험은 전후에도 오랫동안 한국인들로 하여
금 생존을 그들의 사유와 행동의 가장 기본적인 근거로 삼도록 했으며, 전후의 교회에서는 생존동기를 충족시켜 주는 위로 및 현세 복
락적인 요소가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의 사회변동
 1,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참혹했던 한국전쟁은 인명과 재산의 손상은 물론 사회질서
와 전통적인 규범, 퍼스낼리티 등 모든 것을 변형시키거나 붕괴시킴으로써 한국사회를 총체적 파국상태에 빠뜨린 대재난이었다. 따라
서 전후의 한국사회는 장기간의 복구와 재건을 필요로 하는 파국의 시대였으며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되
는 시대였다. 특히 1950년대의 사회혼란은 극심하였다. 전쟁시 5백만 명에 달하는 인명 살상과 공
포, 가족의 이산, 주택과 각종 산업시설의 파괴에다 1950년대 거의 해마다 계속된 가뭄과 홍
수 (1954, 1956, 1957), 태
풍 (1952, 1957, 1959) 같은 재난, 결핵, 나병, 뇌염 등 전염병의 만연, 그리고 빈곤
은 사회불안을 더욱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 구성원들을 그들의 사회적 기반에 관계없이 실존적인 상황에 내팽개쳐진 개인으
로 만들었다. 따라서 전후의 한국사회는 강력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회였지만, 국가나 사회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얻지 못하는 사람
들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생존을 위한 노력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1950년대 초반 이후 10여년 동안의 한국사회는 전쟁에다가 전염병, 기근, 혁명 등
이 중첩된 대재난의 시기였으며 따라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생존 문제에 매달려야 하는 극심한 시련의 시기였다. 전쟁과 같은 재난으
로 인하여 생기는 사회적 위기는 광범위한 사회문화적인 변동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 및 행동의 변화를 포함한다. 전후의 한
국사회도 마찬가지였다. 전쟁과 그 여파는 사회현상의 세 가지 측면인 사회질서와 규범, 퍼스낼리티를 변형시키거나 손상시켰고 그 영향
은 한국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오랫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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